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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이 사람, 10만인

"임을 위한 행진곡 못 불러? 광주 학살 말라"
[이 사람, 10만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묏비나리' 이야기

16.05.14 15:47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영상: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박순옥쪽지보내기



"박근혜는 지금도 광주를 학살하고 있는 거야! 민주주의를 학살하는 거라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5·18 민주화운동 36주년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논란이 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곡은 이명박 정부 2년차인 지난 2009년부터 공식 기념식에서 부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도 5·18 기념식 금지곡으로 묶었다.

입으로 감옥 천장에 쓴 시 '묏비나리'

지난 12일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한 백 소장을 만났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시 '묏비나리'를 지었던 때를 되짚다가 눈시울까지 붉혔다. 유신 잔재를 청산하라고 거리에서 외치다가 1980년 서빙고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을 때였다.

"그건 내가 입으로 쓴 시야. 입으로 웅얼대면서 감옥 천장에 눈으로 쓴 시야."

심한 고문으로 무릎이 축구공만큼 부었단다. 그곳이 이불 껍데기나 무명실이 스쳐도 아플 정도였다고 했다. "죽음이 심장을 짓누르고 있던 때"였다. 천장에 몸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고문하는 수사관들이 주먹으로 툭툭 치고 지나갔단다. 때로는 축구하듯이 배를 발로 세게 걷어찼는데, 그때마다 목으로, 코로 똥물이 흘러나왔다. 찬물을 끼얹어서 기절에서 깨어나면 바닥에 흥건히 고인 노란 액체.

"그걸 입으로 핥아 먹으라는 거야. 내 똥물을 혀로 핥아서 청소하라는 거야."

5·18 광주에서 시민들이 학살 당할 때, 백 소장은 감옥에서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돌려라. 나는 죽지만 산자여 따르라. 나는 죽지만 살아있는 목숨이여, 나가서 싸우라"고 한 것이다. "감옥에서 꼼짝없이 드러누운 채 입으로 웅얼거리며 새길 수밖에 없던 시", 그게 '묏비나리'다.  

- 감옥에서 5·18 광주 소식을 들었나요?
"광주에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 정도 밖에 몰랐어. 자세한 건 몰랐지. 교도관들도 내용을 아니까, 비밀통신이라고 해서 우리 도둑놈들끼리 연락하는 방법이 있어. 왜정 때 독립군들이 했듯이. 그런 방법으로 듣긴 들었지."

- 5·18 광주정신이 '묏비나리'에 녹아있다고 봐야겠네요?
"그럼, 시대의 아픔이 녹아 있지."

비밀 유인물로 만들어 퍼트린 '묏비나리'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모태가 된 시 '묏비나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대희

백 소장은 그 때 '묏비나리' 몇 구절을 입으로 웅얼대다가 잊어 버리기도 해서 깨알만한 글씨로 종이에 쓰기 시작했단다. 이걸 숨기려고 시 몇 편을 적은 종이를 사타구니에 끼어놓고 지내다가 감옥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묏비나리'는 고문 현장과 감옥에서 완성된 시인 셈이다.

백 소장은 1980년 겨울쯤에 젊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그 시를 모아 '젊은 날'이라는 제목의 비매품 시집을 내려다가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군부정권의 서슬이 퍼런 때여서 '시를 발표하는 건 죽음'이라고 출판사가 만류했다고 한다. 대신 일부를 비밀 유인물로 만들어서 돌렸다.

"그 뒤에 누군가가 내 시 구절을 따서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내 시가 맨날 싸우자는 건데, 뭔 노래를 만들어? 그냥 그런가 했지. 1982년 예장기독교 청년들이 불러서 대구에 통일 강연을 갔다가 그 노래를 들었어. 2000명이 들어가는 큰 교회에서 나를 소개한 뒤에 모두 일어나서 '산 자여 따르라'를 부르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전두환이 한참 까불 때인데, 그러니까."

'임을 위한 행진곡'이 백 소장의 '묏비나리'에서 따온 구절은 이것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시는 한 번 쓰면, 내 게 아냐!"

그런데도 백 소장은 "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강기정 의원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책을 쓸 때 '작사 백기완'이라고 적겠다고 해서 그러지 말라고 했단다.

"시는 그런 거야. 내가 만들었다고 한 적도 없어. 시는 한번 쓰면 내 거가 아냐. 그 때부터 여러 사람들의 것이야. 그건 민중의 것이야. 내 거라고 말할 수 없어."

-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구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는 묏비나리와 일치하는데요, 어떤 심정으로 쓰셨나요? 
"전쟁 직후인 1950년도 초부터 '조상의 뼈다귀가 널려있는 산과 들, 메마른 땅에 목숨을 심자'라고 말하면서 나무 심기 운동을 했어. 그 때 내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그거야. '사랑은 내 게 아냐. 명예도 내 게 아냐. 이름도 내 게 아냐.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우리는 하나의 목숨이 되자'라고 말하고 다녔어. 내 입에서 늘 맴돌던 연설 구절의 하나야."

- 마지막 구절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절규이자 외침은 어떻게 나온 건가요? 
"그 놈들이 내 똥물을 혓바닥으로 핥으라고 할 때, 죽는 순간까지 짓밟힌다는 생각을 했어. 나는 죽지만 산목숨이여, 나가서 싸우라는 이야기야."

- 5·18 민주화운동 36주년을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못 부른다, 논란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떤 심경이신지요?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만든 노래야. 박근혜가 부르지 못하게 할 수는 없어. 박근혜는 지금도 5·18 광주를 학살하고 있는 거야. 민주주의를 학살하고, 역사를 학살하고, 정의를 학살하는 거야. 세계적 타살이 계속되는 거야.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기를 스스로 거부한 거지. 그럼 어떻게 해야지? 독재자 스스로 물러나든지, 안 물러나면 끌어내려야 해."

노래는 죽지 않는다

▲ 백기완 소장이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 정대희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표적인 민중가요이자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이 노래가 오는 16일 국가보훈처가 발표할 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 식순에 들어갈 수 있을까? 5·18을 정부 기념일로 제정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공식 기념식에서 불렀던 이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질 수 있을까? 공식 기념식장에서는 부를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노래가.    

백 소장과 헤어지면서 '묏비나리' 끝부분을 떠올렸다.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땅을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노래도 새싹 같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노래가 잠시 금지곡이 된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입을 틀어막는다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치욕의 역사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귀를 틀어막는다고 광주 학살이 잊히는 건 아니다. 봄이 되면 언 땅을 이고 새싹이 일어서듯 매년 5월이 되면 이 노래도 불끈거리며 일어난다.

다음은 '묏비나리' 시 전문이다.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맨 첫발
딱 한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목숨을 아니 걸면 천하 없는 춤꾼이라고 해도
중심이 안 잡히나니
그 한발 떼기에 온몸의 무게를 실어라

아니 그 한발 떼기에 언땅을 들어올리고
또 한발 떼기에 맨바닥을 들어올려
저 살인마의 틀거리를 몽창 들어엎어라

들었다간 엎고 또 들었다간 또 엎고
신바람이 미치게 몰아쳐오면
젊은 춤꾼이여
자네의 발끝으로 자네 한몸만
맴돌자 함이 아닐세 그려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저 썩어 문드러진 하늘과 땅을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려라

돌고 돌다 오라가 감겨오면
한사위로 제끼고
돌고 돌다 죽음의 살이 맺혀오면
또 한사위로 제끼다 쓰러진들
네가 묻힐 한 줌의 땅이 어디 있으랴
꽃상여가 어디 있고
마주재비도 못 타보고 썩은 멍석에 말려
산고랑 아무데나 내다 버려지려니

그렇다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거라
팔다리는 들개가 뜯어가고
배알은 여우가 뜯어가고
나머지 살점은 말똥가리가 뜯어가고
뎅그렁 원한만 남는 해골바가지

그리되면 띠루띠루 구성진 달구질 소리도
자네를 떠난다네
눈보라만 거세게 세상의 사기꾼
정치꾼들은 모두 자네를 떠난다네
다만 새벽녘 깡추위에 견디다 못한
참나무 얼어터지는 소리
쩡쩡, 그대 등때기 가르는 소리가 있을지니

그 소리는 천상
죽은 자에게도 다시 내려치는
주인 놈의 모진 매질소리라

천추의 맺힌 원한이여
그것은 자네의 마지막 한의 언저리마저
죽이려는 가진 자들의 모진 채찍소리라
그 소리 장단에 맞춰 꿈틀대며 일어나시라
자네 한사람의 힘으로만 일어나라는 게 아닐세 그려
얼은 땅, 돌부리를 움켜쥐고 꿈틀대다
끝내 놈들의 채찍을 나꿔채
그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네

치켜뜬 눈매엔 군바리들이 꼬꾸라지고
힘껏 쥔 아귀엔 코배기들이 으스러지고
썽난 뿔은 벌겋게 방망이로 달아올라
그렇지 사뭇 시뻘건 그놈으로 달아올라

벗이여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꽹쇠는 갈라쳐 판을 열고
장고는 몰아쳐 떼를 부르고
징은 후려쳐 길을 내고
북은 쌔려쳐 저 분단의 벽
제국의 불야성을 몽창 쓸어안고 무너져라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
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
이슬처럼 맺히고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
세월은 흘러가도
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산자여 따르라

노래 소리 한번 드높지만
다시 폭풍은 몰아쳐
오라를 뿌리치면
다시 엉치를 짓모으고 그것도 안 되면
다시 손톱을 빼고 그것도 안 되면
그곳까지 언 무를 수셔 넣고
이런 악다구니가 대체 이 세상 어느놈의 짓인 줄 아나

바로 늑대라는 놈의 짓이지
사람 먹는 범 호랑이는 그래도
사람을 죽여서 잡아먹는데
사람을 산 채로 키워서 신경과 경락까지 뜯어먹는 건
바로 이 세상 남은 마지막 짐승 가진 자들의 짓이라

그 싸나운 발톱에 날개가 찢긴
매와 같은 춤꾼이여

바로 이때 가파른 벼랑에서 붙들었던
풀포기는 놓아야 한다네
빌붙어 목숨에 연연했던 노예의 몸짓
허튼춤이지 몸짓만 있고
춤이 없었던 몸부림이지
춤은 있으되 대가 없는 풀 죽은 살풀이지
그 모든 헛된 꿈을 어르는 찬사
한갓된 신명의 허울 따위는 여보게 그대 몸에
한 오라기도 챙기질 말아야 한다네

다만 저 거덜난 잿더미 속
자네의 맨 밑두리엔
우주의 깊이보다 더 위대한 노여움
꺼질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 있을지니

바로 그 불꽃으로 하여 자기를 지피시라
그리하면 해진 버선 팅팅 부르튼 발끝에는
어느덧 민중의 넋이 유격병처럼 파고들고
부러졌던 허리춤에도 어느덧
민중의 피가 도둑처럼 기어들고
어깨짓은 버들가지 물이 오르듯
민중의 생기가 신바람이 일어
나간이 몸짓이지 그렇지 곧은목지 몸짓이지

여보게, 거 왜 알지 않는가
춤꾼은 원래가 자기 장단을 타고난다는 눈짓 말일세
저 싸우는 현장의 장단 소리에 맞추어

벗이여, 알통이 뻘떡이는
노동자의 팔뚝에 새내기처럼 안기시라

바로 거기선 자기를 놓아야 한다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 줌의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비로소 한 춤꾼은 굽이치는 자기 춤을 얻나니

벗이여
비록 저 이름 없는 병사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어깨를 껴
거대한 도리깨처럼
저 가진 자들의 거짓된 껍질을 털어라
이 세상 껍질을 털면서 자기를 털고
빠듯이 익어가는 알맹이, 해방의 세상
그렇지 바로 그것을 빚어내야 한다네

승리의 세계지
그렇지 지기는 누가 졌단 말인가
우리 쓰러져도 이기고 있는 노동자의 아우성
오, 우리 굿의 절정 맘판을 일으키시라

온몸으로 들이대는 자만이 맛보는
승리의 절정 맘판과의
짜릿한 교감의 주인공이여

저 폐허 위에 너무나 원통해
모두가 발을 구르는 저 폐허 위에
희대의 학살자를 몰아치는
몸부림의 극치 신바람을 일으키시라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벅벅
네 허리 네 팔뚝으로 역사를 돌리다
마지막 심지까지 꼬꾸라진다 해도
언땅을 어영차 지고 일어서는
대지의 새싹 나네처럼

젊은 춤꾼이여
딱 한발 떼기에 일생을 걸어라

1980년 12월  / 백기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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