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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여자친구랑 놀고 싶다면 그 길로 퇴사하세요"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②] 파견회사에서 마주한 파견노동의 현실

16.05.03 21:24 | 글·사진:선대식쪽지보내기|편집:손병관쪽지보내기

파견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파견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기자 명함을 버리고 파견노동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난 2,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 취업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기획기사로 공개합니다. [기자말]

▲ 지난 2월 안산역 앞에 있는 한 파견회사 입구에 인력 모집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 선대식

남자 사원 모집이라고 쓰인 간판 앞에 섰다. '생산직', '시급 6030원', '경력자·초보자 환영' 따위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뒤에서 재중 교포 말투로 "일자리 구하세요?"라는 말이 들렸다. 곧 그의 손에 이끌려 파견회사에 들어갔다.

'혹시 갑자기 어디로 팔려가는 건 아니겠지?'

계단을 오르면서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파견회사 문이 열리더니,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50,60대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1980년대에나 있을 법한 인신매매를 떠올렸다니, 괜히 겸연쩍었다.

내 손을 이끈 이는 나를 한국사람 앞에 앉혔다. 그는 자신을 소개하지도 않고 나에 대한 호구조사에 나섰다. 나를 데려온 이를 대리로 부르는 것을 보니, 팀장쯤으로 보였다. 그는 "집은 어디시죠?", "몇 살이죠?"라고 물었다. 결혼 여부도 질문했다.

차근차근 대답했다. 그는 "한국 사람만 있는 곳에서는 일할 수 없다"면서 회사 한 곳을 소개했다. LG전자의 최신형 스마트폰 G5의 몸체 일부를 가공하는 회사였다. 공작기계를 작동하는 단순 업무라고 했다. LG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피라미드 하청 구조의 밑바닥 쪽에 있는 회사로 보였다. 120명의 직원이 일한다고 했다.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회사들은 대부분 대기업의 하청 기업이다. 전국 산업단지 중에서 가장 큰 이곳은 1970년대 서울의 제조업·공해유발 기업들을 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기업의 주문 물량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하청 기업들은 주문량에 따라 쉽게 해고하거나 채용할 수 있고, 저임금을 받고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는 노동자가 필요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인 1998년 2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정리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함께 국회에서 통과됐다. 노동계는 근로조건 악화와 중간착취를 우려하며 반대했지만, 김영삼 정부를 비롯한 정치권은 'IMF 사태'를 이유로 밀어붙였다.

기업들이 음성적으로 활용하던 파견은 합법화됐다.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회사들은 파견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제 이곳에서는 파견회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취업하기가 어렵다. 안산은 파견노동자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

"일요일에도 일한다고요?"

▲ 지난 2월 안산역 앞에 있는 한 파견업체의 인력모집 광고판. 2016년 최저임금인 시급 6030원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 조건이 눈에 띈다. 지난해 최저임금인 시급 5580원에 맞춘 급여조건으로 보인다. ⓒ 선대식

그는 근무조건을 설명했다.

"아침 8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일해요. 이곳 사무실까지는 7시 30분까지 나와야 해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특근해요. 한 달에 28,29일 일하는 '풀근무'예요."

그의 말에 머리가 띵했다. 위장취업에 나서면서 주말 근무는 각오한 일이다. 하지만 일요일에도 일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와 돌을 갓 지난 아이 얼굴이 스쳤다. 자연스레 박노해 시인의 시 <휴일 특근>이 떠올랐다.

너만은 훌륭하게 키우려고
네가 손꼽아 기다리며 동그라미 쳐논
빨간 휴일날 아빠는 특근을 간다
발걸음도 무거운 창백한 얼굴로
화창한 신록의 휴일을 비켜
특근을 간다.

이 시가 담긴 시집 <노동의 새벽>은 1984년에 나왔다. 3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시는 유효하다. 나도 모르게 "일요일은 못 쉬나요?"라고 되물었다.

"일요일에 쉰다고 하면, 회사에서 안 받아줘요."

앞서 들른 여러 파견회사에도 장시간 노동을 강조했다. "생산직 안 해봤으면, 다 됐고요. 힘들어요. 자기 시간이 없어요. 하라는 건 무조건 해야 해요"라는 으름장을 들었다. 한 파견회사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출퇴근 시간까지 생각하면, 하루 15시간 이상을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해요. '일찍 퇴근해서 여자친구랑 놀고 싶다'라고 한다면, 그 길로 퇴사하시면 돼요. 생산직은 부지런해야 해요. 일하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합니다. 공장에서는 무시당하고, 막말도 들을 거예요. 대우 좋다고 하는 곳에 가서, 속아도 봐야 해요."

최저임금에서 에누리 10원도 없다

이렇게 일하면 얼마를 받을까. 그는 "시급은 6030원"라고 말했다. 정확히 올해 최저임금이다. "주차·월차 수당도 있으니까, 한 달에 240만 원 정도는 돼요"라는 말이 이어졌다.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 아니냐는 말투였다.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포기하고 받는 돈 치고는 적은 것 아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장기 근무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당연하다"였다. "공작기계를 가진 회사는 대기업으로부터 계속 주문을 받을 수 있다. 최신 스마트폰은 계속 나오기 때문에, 계속 일할 수 있다"고 했다.

파견법은 결원이 생겼거나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에서 파견노동자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파견회사에서 파견법은 휴짓조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제조업을 뜻하는 뿌리산업에 파견을 허용하겠다며 파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면, 불법이 하루아침에 합법이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을 잘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파견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굴레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 말을 들었을 수많은 파견노동자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서늘했다. 

고심 끝에 이곳에 취업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파견노동자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신분증을 복사하고 연락처, 계좌번호를 받아 적은 그는 "내일부터 나오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파견회사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근로계약서를 깜빡한 게 생각났다. 발길을 돌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가 답했다.

"네? 그런 거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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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는 안산·시흥스마트허브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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