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거대한 굴뚝이 토해낸 미세먼지..."암 환자가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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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안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급작스럽게 잃은 시력, "후회하고 싶진 않았어요"
[조금 덜 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⑧] 점자와 흰지팡이, 절대 부끄럽지 않아요

16.03.25 08:17 | 글:김혜원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장애인들의 바바람을 막아 줄 큰 우산이 되어주고 싶다는 이경아씨 ⓒ 김혜원

"소아 백내장으로 생후 8개월에 수술을 받았지만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었어요. 그런데 고2 때부터 갑자기 눈이 나빠지기 시작해서 22살에 시각장애 4급을 받게 된 거예요. 

이상한 건 녹내장으로 안압이 엄청 올라간 상태고 눈이 점점 안보였는데도 통증이 없었다는 거예요. 통증이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않고 눈이 안 보일 때가지 그대로 뒀지요. 그래서 저는 아픈 것이 축복이라고 말해요. 통증만 있었더라도 눈이 안 보일 때까지 그대로 두진 않았을 테니 말이에요."

봄볕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3월 15일, 시각장애인 사회복지사 이경아씨를 만나기 위해 동대문구 휘경동에 위치한 동문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내가 이경아씨를 만난 것은 2년 전. 당시 이경아씨는 내게 동문장애인복지관에서 발행되는 신문 <아워보이스>의 기자단을 대상으로 '기사 쓰기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그녀는 내게 먼저 자신이 시각장애인임을 밝혔지만 전화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을 때만해도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떠올릴 때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검은 안경을 끼고 흰 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인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의 만남도 그렇게 상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검은 안경을 끼고 있지도 않았고, 흰지팡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사뿐사뿐 걸어와 "기자님 이리로 오세요"라면서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 사람 뭐지? 보이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명함을 주고 악수를 하면서 그녀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민 내 손을 찾지 못했고 명함 역시 손에 쥐어 주기 전에는 받지 못했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허공을 바라보거나 수시로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야 진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바보처럼 자기 연민에 빠져서... 순간에 감사하지 못한 게 후회"

"오른쪽 눈은 빛도 보이지 않는 전맹 상태고요. 왼쪽 눈에만 약하게 잔존 시력이 남아있는데 동그란 어항 속에 앉아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 어항 속에 앉아서 물 밖을 내다보는 느낌인데 그것도 흐리고 명확하지 않은 편이에요.

2002년 22살에 처음 복지카드를 받을 때는 4급이었는데 지금은 점점 진행이 돼 1급이고요. 22살부터 언젠가는 두 눈 모두 전맹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2년 동안 급격히 안 보여져서 저도 약간 당황하고 있어요."

당황해 하고 있다면서도 경아씨는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억울해 하고 힘들어 하고 슬퍼하고 좌절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일이라도 안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가 너무 소중하죠. 그래서 매일 매일 오늘 하루도 후회 없이 살자고 결심해요. 후회 없이 사랑하고 후회 없이 표현하고…. 분명히 눈이 전혀 안 보이는 그 어느 날, 오늘의 저를 돌아보게 될 텐데 그때 후회하고 싶지 않거든요.

바보처럼 자기 연민에 빠져서 우울해하고 청승떨고 이 순간에 감사하지 못한 것이 후회될 것 같아요. 최근에 불면증이 생겼어요. 난 항상 밝아, 난 괜찮아, 난 당당해 그랬는데…. 사실은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하니까 잠이 안 왔던 거예요. 

스물두 살 처음 복지카드를 받을 때 장애를 수용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요. 장애를 수용한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자신과 싸우며 장애를 수용하는 사는 거라고요."

그녀의 목표는... '장애인을 위한 큰 우산'

▲ 한쪽 눈에 남아있는 미약한 잔존시력으로도 충분히 남을 돕는 일을 할 수 있다. ⓒ 김혜원

그녀가 처음 장애등급을 받았던 때는 한참 꿈 많은 나이였을 때였다.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 눈, 그리고 그녀에게 붙여진 장애인이라는 또 다른 이름.      

"지금은 사회복지사 일을 하고 있지만 원래 성악가가 꿈이었어요. 지방 음악대학에 입학했다가 이사를 하는 바람에 서울로 편입을 했는데 학교 안에서 인사를 안 한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안 보여서 못한 건데….

거기다가 외부강사로부터 지속적인 장애인 비하 발언을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좌절이 오더라고요. 좋은 학교도 아니고, 변변한 배경도 없고,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고…. 가진 거라고는 작은 재능과 노력뿐인데 장애까지 갖고 냉혹한 성악계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성악과를 졸업하고 다른 길을 찾았어요. 거센 비바람을 홀로 맞으며 외롭게 울고 있을 또 다른 '이경아'를 도와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제가 장애인이 돼 보니까 그 심정을 너무나 잘 알겠는 거예요.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앞으로도 마찬가지에요. 장애인들을 위한 큰 우산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래서일까. 이경아씨가 중점을 두는 분야는 장애인들의 자조를 돕는 활동이다. 특히 '인권교육' '인권강사양성교육'은 보람도 크고 호응도 좋다.

"예전부터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경제적 자립과 인식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장애인들에게 인권교육과 인권강사양성교육을 실시하는데 일정한 단계를 이수하고 나면 '찾아가는 인권교육'에 강사로 활동하게 돼요. 

주로 인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파견돼 인권교육을 하는데 호응이 상당히 좋아요. 아이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들으니 자존감도 높아지구요. 작지만 수입도 생기고요. 인권교육이란 게 장애인 차별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모든 차별받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장애인, 탈북자, 다문화가정, 여성, 노인, 노동자 등등.

보람 있는 일도 많이 생겨요. 얼마 전에 한 초등학교 학생이 인권교육 나간 선생님에게 이렇게 묻더래요. '선생님 제가 휠체어를 밀어드려도 될까요?'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먼저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알게된 거죠."

더 받아들이기 힘든 장애

▲ 지적장애인이 만든 신문 <아워보이스>의 기자와 함께 ⓒ 김혜원

그녀가 동문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한 지 6년. 장애인들의 심경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경아씨는 이용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사회복지사가 됐다.

"장애인 사회복지사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요. 사회복지사 보다 장애가 먼저 보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열심히 노력했어요. 처음에 여기 오니까 휠체어 타신 이용자분들이 보이더라고요. 저는 잘 보이지 않아도 휠체어와 서서 걷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휠체어만 보면 허리를 90도 굽혀서 인사했어요.

이곳에서 만큼은 이경아라는 사람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환영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제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마시고, 고민도 나누고…. 그렇게 그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됐어요. 그분들도 저를 많이 도와 주셨고요. 그렇게 오늘까지 왔어요."

선천적인 장애보다 살다가 중도에 장애인이 되는 경우,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도 문제지만 본인 역시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네 살에 처음 장애인 복지관에 가봤어요. 스물둘에 복지카드를 받았지만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았었거든요. 스물여섯살에 복지관에 가서 처음 점자를 배우던 날. 처음 점자를 찍던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내가 점자를 찍다니…. 충격이었지요. 내 인생에 처음 장애를 받아들이고 나를 내려놓는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그때도 시각장애인용 흰지팡이는 들지 않았어요. 흰지팡이는 다른 사람에게 '나는 시각장애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인데 그러고 싶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여기 와서 인권교육을 하면서 생각했어요. 나조차 나를 부끄럽게 여기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떳떳하라고 말할 수 있나.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흰지팡이를 들자…."

"네가 잘못해서 장애가 된 건 아니잖니"

▲ 2014년 <아워보이스>기자단과 오마이뉴스를 방문했다 ⓒ 김혜원

경아씨는 이제 자신의 장애와 더 이상 싸우지 않는 듯 보인다. 오히려 마음의 눈을 밝혀 더 많은 장애인들의 눈이 돼 주고, 손이 돼 주고, 입이 돼 주며 그들의 권익과 편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진 비바람과 홀로 싸우고 있는 수많은 '이경아'들을 돕겠다, 그들과 한편이 돼 주겠다, 그들 대신 싸워주겠다는 그 마음. 그 마음 하나로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얼마 전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시각장애인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었죠. 그분 제가 아는 분인데 너무나 가슴이 아파요. 하반신 마비가 됐더라고요. 사실 뭘 해달라, 뭘 고쳐라 이런 말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장애인과 내가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된다면 어떨까요. 그들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불편함을 없애주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기준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약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감이 필요해요."

인터뷰 말미 경아씨는 아직 어린 혹은 자신의 장애와 싸우느라 힘든 후배나 청소년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어쩌면 이경아씨 그녀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일 것도 같다. 

"장애는 너의 탓이 아니야. 네가 잘못해서 장애가 된 건 아니지 않니. 그렇다고 남의 탓을 하거나 시선이 비뚤어지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함께 이 길을 걸을 테니 힘들면 손을 내밀어 봐. 거기에 함께 할 길동무가 있을 거야. 그리고 함께 모여 한소리를 내어보자. 함께 소리낼 때 그 소리는 고요한 외침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소리가 될 테니까 말이야. 조금 안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 그녀는 말한다. "장애는 너의 탓이 아니야. 우리 함께 이 길을 걸을 테니 힘든면 손을 내밀어 봐"라고.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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