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4대강 찬성한 전문가들, 피해 모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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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안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홀로 남겨질 아이... "그건 네 잘못이 아냐"
[조금 덜 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⑦] 재희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해주세요

16.03.18 12:15 | 글·사진:김혜원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저시력 학습을 돕는 다양한 기구. ⓒ 김혜원

"재희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오해가 '안 보이는 아이'라는 것이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각장애라고 하면 전혀 안 보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엄마인 저도 제 아이가 시각장애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 차이를 잘 몰랐어요."

지난 3월 11일, 시기능검사와 훈련을 하기 위해 한국실명예방재단 사무실을 찾은 재희를 만났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된 재희. 엄마는 너무나 작고 약하게 태어났던 재희가 건강하게 크고 있다는 것만도 고맙고 감사하다고 한다. 890그램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다섯 달을 지내고도 자가 호흡이 어려워 산소통을 달고 퇴원했던 아이. 태어난 지 5일 만에 개복수술을 받았고 살 가능성이 20~30%밖에 되지 않는다는 폐혈증까지 견뎌낸 아이이기에 살아있는 하루하루가 선물 같고 기적 같다.

"태어나서 1년은 병과의 사투를 벌이느라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위험한 순간마다 재희는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돌이 돼서야 비로소 3.5kg이 됐으니까요. 조금씩 늦을 뿐 앉고 서고 걷고…,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내며 엄마에게 힘을 주는 아이였어요."

재희는 오른쪽 눈 상단 일부에 미세하게 남아있는 시력을 이용해 세상을 본다. 미숙아 망막증으로 세 번의 레이저 수술을 받았다. 잘 보였던 왼쪽 눈의 안압이 높아져서 수정체 제거 수술을 한 뒤로는 쭉 오른쪽으로만 보는 것이다. 오른쪽 눈의 시야각이 2시 방향으로 한정돼 있어 고개를 돌려보는 경향이 있는 것 정도일뿐 평상시에는 시각장애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저시력 아동들은 오해를 많이 받아요. 하는 행동이나 모습은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은데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거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엄두를 내지 못하는 등의 것들이죠. 하지만 실제로 보는 능력은 아주 작아요. 보인다기보다는 살면서 학습되고 훈련된 정보를 통해서 사물이나 환경을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죠."

재희의 머릿속에는 커다란 그림 지도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작고, 뿌옇고, 희미하고, 아스라할지 몰라도 지도에는 모든 것들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교실로 가는 길, 급식 실 가는 길, 운동장, 컴퓨터실, 화장실, 복도, 계단 모퉁이, 책상과 의자, 교탁, 나무와 꽃, 엄마, 가족, 선생님, 친구들…. 눈으로 찾으려면 희미하고 흔들리던 것들이 머릿속에 저장된 지도 속에서는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우리 아이가 뛸 수 있구나... 뛰는 걸 좋아했구나"

▲ 시기능검사와 시력검사를 통해 개발할 수 있는 시력을 찾아간다. ⓒ 김혜원

"몇 번 만 반복해서 알려주면 금방 익숙하게 행동해요. 어린이집에서도 그랬고 초등학교 생활도 마찬가지였어요. 너무나 감사한 것은 아직까지는 재희가 저시력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었다는 거예요. 다섯 살에 처음 잠실 어린이집을 보냈어요. 그 전까지는 제가 데리고 있었고요. 재희가 신변처리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길고 힘든 병원 생활 끝에 재희의 건강은 회복됐지만, 여전히 몇 가지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던 기억 때문에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에 거부감을 심하게 느껴 먹는 것을 입에 넣어주기가 어려웠고 매일매일 손과 발에서 채혈을 했던 아픈 기억 때문에 누군가 손발을 만지면 주삿바늘을 찌르는 줄 아는지 손을 빼고 달아나는 아이였다.

아기 때 겪었던 극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먹고 만지고 느끼는 너무 쉬운 것들과 친해지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재희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는 엄마, 아빠, 형들 그리고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까지 늘 곁을 지켜주셨던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재희 스스로가 건강하게 커온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더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재희를 돌봐주신 많은 선생님들이에요. 다섯 살 때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몰라요. 잘 지내고 있을까, 혼자 남겨진 건 아닐까, 힘들어하진 않나…. 그런 걱정을 하며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선생님이 재희 손을 잡고 운동장을 뛰고 계셨어요. 깔깔깔 웃으며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또 저쪽 편에서 이쪽 편으로 뛰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요. 저는 다섯 살 될 때까지 재희와 함께 뛰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우리 아이가 뛸 수 있구나, 뛰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저렇게 행복해 하는구나…. 선생님이 정말 고맙고 감사하더라고요."

재희는 엄마의 노력으로만 성장하지 않았다

재희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던 엄마. 그런 엄마의 지극 정성이 오늘의 재희를 가능하게 했겠지만 엄마는 선생님들에게 감사함을 돌린다. 아픈 자식을 돌보는 엄마의 사랑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선생님들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님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정말 깜짝 놀라요. 실제로 몇몇 어린이집이나 유치원·학교에서 선생님들에 의한 차별과 무관심 그리고 방치가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감사하게도 저는 재희를 키우며 한 번도 선생님들이 재희를 차별하거나 소외시킨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잠실 어린이집도 그렇고 지금 다니고 있는 방이초등학교도 그렇고 원반 선생님이나 도움반 선생님 심지어 교장선생님까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높으시고 통합교육의 중요성도 잘 알고 계셔서 저보다 먼저 재희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해주시거든요. 그러지 않았다면 저 혼자 재희를 저렇게 밝게 키우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재희는 티 없이 맑고 밝게 자란 아이다. 재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재희가 보는 세상이 그렇게 티 없고 밝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재희는 희미하게 색깔과 윤곽만 느낄 뿐 한 발짝 앞에 엄마가 앉아 있어도 소리 내어 불러주지 않으면 알지 못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엄마는 일반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어차피 재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일반인들의 세상이라면 조금 힘들더라도 그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그들 속에서 배우고 알아가길 원했던 것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상처를 받고 힘들었다면 일반학교 진학을 고민했을 거에요. 하지만 통합유치원에 다니며 충분히 일반학교 생활이 가능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지요. 재희는 지난 4년 동안 즐거운 초등학교 생활을 하고 있어요.

분명한 것은 선생님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 가에 따라 학교나 교실 안에서 그 아이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재희를 다른 아이들과 동등하게 대해주시고 친구들 사이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는 오해가 없도록 잘 설명해주시는 등의 과정을 통해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먼저 인사해달라'는 부탁

▲ 기구의 도움 없이 칠판글씨를 보려면 칠판 앞에 바짝 붙어야 한다. ⓒ 김혜원

재희의 학교생활을 전해 들으니 모처럼 바람직한 통합교육의 모델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 특수반 선생님이 동일하게 장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통합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는 처음부터 재희의 장애를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았어요. 도움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고 다름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어요. 상대방이 먼저 아는 채를 해주지 않으면 재희는 누가 지나가는지, 누가 쳐다보는지, 누가 무슨 요청을 하는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나 누구인데 재희야 안녕?' 이렇게 인사를 하면서 자신을 알려주면 좋겠다고요. 그럼 재희도 '누구야 안녕, 반가워' 이렇게 상호작용을 하면서 인사를 할 수 있잖아요. 5학년이 된 지금은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먼저 인사하고 도와주고 챙겨주고 그래요. 선생님들도 먼저 인사를 해주시고요."

선생님과 친구들의 지지는 재희에게 큰 힘이 됐고, 조금씩 홀로 설수 있는 용기를 갖게 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몇 가지 이동수업을 제외하고는 보조선생님의 도움 없이 혼자 수업을 받고 있다. 

"지난해 특기적성으로 스카우트 활동을 했어요. 특기적성 활동의 경우 장애가 있는 아이가 할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거든요. 도움반 선생님이 스카우트를 권하셨지만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뒤뜰야영도 잘하고 모든 것을 잘해냈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이 자신의 휴일도 반납하시고 함께 나와 도움을 주셨더라고요. 아마도 제가 알지 못하는 학교와 선생님, 친구들의 수많은 배려과 관심이 더 있었을 거에요. 재희는 그런 주변의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혼자 설 수 있게 되고 또 그들 속의 한사람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장애가 잘못은 아니잖아요"

▲ 책과 칠판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확대로봇이 개발됐다. ⓒ 김혜원

재희엄마의 바람은 크지 않다. 지금처럼 재희가 잘 자라서 우리 사회 속의 한 구성으로 스스로를 감당하며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다. 엄마나 아빠가 없어도 또 형들이 없다고 해도 스스로의 삶을 잘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노년이 돼 지금처럼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따뜻한 관계 속에서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큰 욕심은 없어요. 다만 언젠가는 재희도 홀로 남겨질 테니 그때를 위해 홀로서기를 준비해야겠지요. 장애가 있다고 위축되거나 뒤로 물러서지는 않기를 바라요. 장애는 '아픈 것'이고 '다른 것'일 뿐 잘못은 아니잖아요. 스스로 장애를 당당히 밝히고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친구들이나 주변에서 장애를 놀리면 이렇게 말하라고 가르쳤어요. '나는 장애가 있어. 너는 두 눈이 다 보이지만 나는 한 쪽 눈만 보이고 그것도 아주 조금 밖에 보이지 않거든. 내가 느리거나 잘하지 못하는 건 보이는 게 너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야.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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