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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안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친구 그리워 시작했는데... 종이접기 하다 우는 이유
[조금 덜 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⑤] 사춘기 성윤이의 '하늘색 꿈'

16.03.01 17:22 | 글:김혜원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글씨를 읽거나 쓰려면 얼굴을 바짝 대고 봐야 한다 ⓒ 김혜원

성윤이의 일기 2016년 1월 5일

나는 초등학교를 6년 동안 다니면서 외롭고 심심했다. 왜냐하면 6년 동안 원반에 친구들이 없없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들이 좋은데 친구들이 내 얘기도 들어주지 않고 내가 얘기 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놀 때 끼어주지 않았다. 나는 정말 6년 동안 원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는 원반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고 외로웠지만 중학교가서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는 성윤이가 일기를 썼던 1월 5일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지난 6년간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았던 터라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서럽게 펑펑 울면서 일기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난 너무 외로웠어.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도 원반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었는데…. 겨우 도움반(특별반)에 친구가 한 명 있을 뿐인데 중학교 가면 그 친구와도 이제 헤어져야 하잖아. 중학교 가면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중학교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어 줄까? 내 친구가 돼줄 아이가 있을까. 한 명이라도 좋으니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 나 정말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

서럽게 울고 있는 성윤이를 안아주며 엄마도 함께 울었다. 엄마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겠지만 엄마는 엄마일 뿐 '친구'가 돼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36개월 만에 뗀 걸음... 이유가 있었다

▲ 눈물로 얼룩진 성윤이 일기 ⓒ 김혜원

"성윤이는 31주 만에 태어난 미숙아였어요. 뇌출혈·폐출혈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서 뇌병변장애와 시신경 손상이 온 거예요. 걸음마도 36개월 만에 했는데 뇌병변도 그렇지만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더 걷지 못한 거리고 하더군요. 

아무리 큰 병원 유명한 박사님을 찾아가도 눈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시더라고요. 그저 사진상 시신경 상태가 이러니 잘 안 보일 거라는 정도였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잘 볼 수 있는지 어떤 기구가 도움이 되는지…. 그런 건 전혀 상담받을 수 없었어요."

성윤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어찌 다 말로 할까. 인큐베이터 안에서 할딱거리며 가쁜 숨을 쉬던 아기가 어느새 자라 중학생이 된다고 하니 엄마의 마음 속에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한다.

"다행히도 성윤이는 잘 자라줬어요. 딸아이라 그런지 감성도 풍부한 편이고 사춘기라 그런지 감정도 얼마나 풍부한지 몰라요. 뇌병변이나 시각장애가 있어 조금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정서적으로는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더 감성적인 편이지요. 집에 구피를 키우고 있는데 구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요. 성윤이 별명이 구피 엄마거든요. 동물들도 사랑하고, 동생들도 예뻐하고, 작은 것, 예쁜 것 좋아하는 말 그대로 감성 폭발 사춘기 소녀지요."

어린이집에서의 '큰 상처'

▲ 사춘기 소녀 성윤이의 꿈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 김혜원

몸이 조금 불편하다보니 성윤이의 세상은 조금 느릴 수밖에 없다. 인지가 늦다 보니 반응 역시 늦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늦을 뿐이다. 성윤이가 할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 준다면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표현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윤이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군가를 기다려주기에 우리의 참을성은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윤이 처음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 너무 큰 상처를 받았어요. 통합 어린이집이라서 장애아들에 대한 생각이 좀 다를 것 같아 보낸 건데 성윤이를 담당한 특수교육 선생님이 안 계신 며칠 동안 성윤이를 누구도 돌보지 않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알림장에 몇 마디 적어 보냈는데 그걸 보고 원장님이 제게 했던 말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성윤이 같은 중증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으면 엄마도 어느 정도 협조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그 정도를 참고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성윤이가 그렇게 중증이냐고 되물었더니 1년 동안 다니면서 원장인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고 인사도 안하는 아이가 중증이 아니면 뭐냐고 하시더라구요…."

약한 아이, 아픈 아이, 돌봄이 필요한 아이를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나 부담처럼 이야기하는 원장의 태도에 큰 상처를 받고 어린이집을 옮겼다. 다행히도 옮겨 간 이후 전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지난날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새살이 나는 시간이 됐다.

"그 후 다녔던 꿈나무 어린이집, 신길어린이집에서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어요. 무엇보다도 성윤이를 제외시키지 않았고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지요. 작은 일에도 칭찬과 격려를 해주셨구요. 지금까지도 방과후 교실을 다니며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런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성윤이를 지금처럼 밝게 키우기 어려웠을 거에요."

중학교 가는 성윤이... 엄마의 고민

▲ 동생이나 약한 친구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성윤이 ⓒ 김혜원

성윤이가 어느새 자라 중학교를 갈 나이가 됐다. 엄마는 이 시점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성윤이를 위한 바른 선택은 무엇인지, 일반학교를 보내야 할지,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맹학교를 보내야 할지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중학교를 가는데 참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일반학교를 보내야 하는지,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맹학교를 보내야 하는지 많은 고민되더라고요. 눈에만 문제가 있으면 맹학교를 가겠는데 뇌병변 때문에 운동능력이나 학습능력도 떨어지는 편이라서요. 어딜 가든 어려움을 겪을 거라면 비장애아들과 함께 지내게 하고 싶었어요.

어차피 어른이 되어서도 비장애인들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일단은 계단 보행이 위험해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학교를 가기로 했어요. 중학교 시절이 예민해서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일단은 시도해보고 정 어렵다 싶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려고요. 성윤이도 그렇지만 저도 기대반 걱정반이에요."

초등학교의 마지막 겨울방학. 다른 아이들은 친구들과 영화도 보러가고 놀이동산도 가고 쇼핑도 하러다니며 추억을 만들었지만 성윤이는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해마다 열리는 한국실명예방재단 겨울캠프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초등학생들만 참가 하는 캠프라 중학교에 진학하는 성윤이는 올해가 마지막 캠프가 되는 셈이다.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없다니 아쉬운 마음이 너무나 크다. 성윤이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캠프를 거쳐 간 저시력 중고생들 하나같이 느끼는 아쉬움이다. 성윤이 역시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캠프가 생기게 해달라는 말을 특히 강조했다.

"눈썰매도 타고 닥터피시 촉감 놀이도 하고 애코백도 만들었어요. 유치원 때부터 캠프에 다녔는데 거기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그래서 좋았어요. 혁이라는 남자 친구도 만났어요. 혁이는 굉장히 어른스럽게 말해요. 버스 타고 올 때 제 뒤에 앉았는데 말도 잘하고 재미있는 친구라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 캠프를 갈 수 없다고 해서 너무 슬펐어요. 선생님 저희 캠프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캠프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놀이도 하고 운동도 하고 자기 생각도 이야기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비슷한 친구들이 오는 캠프라서 더 좋아요. 거기서는 누구나 다 같이 참여하고, 다 같이 놀고, 다 같이 친해질 수 있으니까요."

감성폭발 사춘기소녀 성윤이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생각할 것도 없이 "친구"라고 답한다.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친구랑 카톡도 하고 보드게임이나 퍼즐 맞추기도 하고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놀고 싶어요. 제가 잘하는 종이접기도 가르쳐 줄 수 있고 함께 게임도 할 수 있어요. 혼자 노는 것은 좋지 않아요. 엄마 아빠도 있고 오빠도 있지만 그래도 친구가 필요해요. 중학교가서 좋은 친구가 생겼으면 정말 좋겠어요."

종이접기 하다가 눈물... 이유는

▲ 성윤이의 꿈이 담긴 종이접기 작품 ⓒ 김혜원

성윤이의 취미이자 특기는 종이접기다. 접고 싶은 것이 생기면 직접 유튜브를 찾아보는데 영상을 두세 번 만 보면 익숙하게 접고 싶은 걸 접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종이접기를 하다가도 우는 날이 많아졌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 때문에 세밀한 부분이 어긋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와서 자꾸 서러움이 폭발하고 눈물이 많아진 것이 성윤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사춘기가 왔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초점이 맞지 않아서 잘 안 되면 짜증이 나고 눈물이 나요. 전에는 안 그랬는데 사춘기라서 그런가 봐요. 어떨 땐 다섯 시간씩 종이접기를 할 때도 있어요. 잘 접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예쁘게 될 때까지 하다보면 그래요. 하늘색을 좋아해서 하늘색을 많이 접어요. 저는 하늘색을 좋아해요. 그냥 좋아요. 친구가 생기면 친구에게 예쁜 종이접기 작품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어요. 친구도 종이접기를 좋아하면 좋겠어요."

성윤이가 보는 세상은 아주 좁은 관을 통해 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시야의 각이 극히 좁은 상태라 작은 시야라도 고개를 돌려야만 볼 수 있으며 보이는 모양도 여러 개의 거울에 한꺼번에 반사돼 보이듯 왜곡이 심하다. 흔들리는 초점 때문에 책을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읽던 줄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윤이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림 그리기와 종이접기를 한다. 약한 근육과 눈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남들에 비해 적은 능력을 가지고 하려다 보니 시간과 노력이 수십 배 필요하다. 성윤이가 만들어 낸 종이접기와 성윤이의 일기가 귀하고 가치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나이가 있어서 성윤이의 곁을 언제까지 지켜줄 수 없잖아요. 우리가 성윤이 곁에 없어도 성윤이가 함께 할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엄마 아빠가 없어도 외롭지 않게, 슬프지 않게 행복할 수 있도록 성윤와 평생을 함께할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성윤이 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큰 바람이에요."

성윤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성윤이의 꿈을 노래하는 것 같은 <하늘색 꿈>이라는 노래다.

아침햇살에 놀란 아이 눈을 보아요
파란 가을 하늘이 내 눈 속에 있어요
애처로운 듯 노는 아이들의 눈에선
거짓을 새긴 눈물은 아마 흐르지 않을거야

세상사에 시달려가듯 자꾸 흐려지는 내 눈을 보면
이미 지나버린 나의 어린 시절 꿈이 생각나
작고 깨끗하던 나의 꿈이 생각나 그때가 생각나

난 어른이 되어도 하늘빛 고운 눈망울
간직하리라던 나의 꿈 어린 꿈이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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