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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안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드럼 치는 시각장애인, 특이하게 볼 필요 없어요
[조금 덜 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③] '장애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열여덟 호현이

16.02.16 12:28 | 글:김혜원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맹학교 고3. 호현이의 고3생활을 응원합니다 ⓒ 김혜원

"생후 7개월에 뇌종양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 후에 시력이 나빠진 것 같은데 그래도 4학년 때까지는 안경을 끼지 않고 칠판도 보고 교과서도 봤어요. 그러다 4학년 때 뇌종양이 재발해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그 이후에 눈이 완전히 나빠졌지요.

하지만 못하는 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취미로 드럼이랑 피아노를 했는데 지금은 밴드활동도 하고 있어요. '레인보우브릿지'라고 소아암 완치자들이 모여 만든 밴드에서 드럼을 맡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제주도에서 열린 소아암가족캠프에서 공연도 했고요. 올해도 4월에도 공연이 있을 예정이에요. 하지만 고3이라서 활동을 많이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밝고 씩씩한 호현이는 서울 맹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다. 3월이면 무시무시한 고3 수험생 생활이 시작돼 걱정이라지만,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단다.

"먼저 대학에 간 선배들이 이야기하는데 대학생이 되면 훨씬 편하다고 해요. 일단 다들 어른들이니까 장애에 대한 이해도 높고 장애 때문에 친구를 소외시키거나 그러는 일도 없고요. 장애가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하면 도움을 주는 친구들도 많이 있대요.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보다 외롭지 않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고 친구도 만들 수 있다고 들었어요. 한때는 실용음악을 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지금은 유아교육이나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기로 했어요. 유치원 선생님이나 사회복지사가 되려고요. 그동안은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았으니 대학 졸업 후에는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초등학교를 일반학교에서 보낸 호현이는 특별한 어려움이 없이 학교에 다닌 편이다. 다만 4학년에 급격히 눈이 나빠지다 보니 중도 실명이라고 해도 과언 아닐 만큼 불편함을 겪은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불편했죠. 보이던 것이 안 보이니까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몰라서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몇 년간은 점자도 배우고 그랬는데 전자확대기를 사용하다 보니 점자를 배울 필요가 없어졌어요. 

전맹인 친구들이나 저시력이라고 해도 확대경조차 볼 수 없는 친구들은 점자를 배워야 하지만 저는 다행히 확대경을 사용할 수 있는 시력이라서요…. 확대경을 이용하면 조금 늦기는 해도 보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다만 눈이 많이 피곤하고 아파서 오랜 시간 보기 힘들다는 건 있죠. 보는 게 힘들면 소리로 들어요. 보는 것이 어려운 대신에 듣고 외우는 건 잘하는 편이거든요. 소리는 아주 작은 소리까지 잘 들어요."

맹학교 친구만 친구? 우물 안 개구리는 싫어요

▲ 음악은 호현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 ⓒ 김혜원

맹학교에 다니는 호현이의 공부 방식은 일반학교 학생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보는 게 어려운 학생들이다 보니 수업진행 방식이 주로 듣는 데 집중돼 있고, 글씨를 보다 잘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각종 광학도구들의 사용이 가능하다. 일반학교에서였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일반학교에서는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까 아무래도 학습이 뒤처질 수 있죠. 하지만 맹학교는 한 학년이 20명 내외고 한 반에 많아야 10여 명 정도라 수업에 집중하기가 좋아요. 친구들도 부모님들까지 다 알 정도니까 왕따나 그런 것도 없고요. 하지만 친구관계가 너무 좁아요. 늘 만나는 아이들만 만나다 보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그래서 청소년 캠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전국에서 다 오고 비장애인 친구들이나 대학생 선배들이 오니까. 그때밖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거든요. 바람이 있다면, 시각장애 청소년들과 비장애청소년들이 함께하는 캠프가 있었으면 해요. 장애를 가지지 않은 청소년들과 만날 기회가 정말 없거든요. 대학생이 되면 만날 수 있다지만 청소년들에겐 청소년만의 문화가 있는 거니까요. 우리 학교 친구들도 다 그래요. 맹학교 밖에서 만날 친구들이 없는 게 가장 아쉽다고 해요."

한파가 무섭게 몰아치던 지난 1월 22일, 인터뷰를 위해 방학동에서 논현동까지 전철을 타고 온 호현이. 낯선 길을 혼자 찾아오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지하철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시간만 맞추면 딱 내 앞에 서니까요. 그리고 익숙지 않은 역에서는 공익요원에게 전화를 하면 도움을 줘요. 무슨 역 몇 번 출구에 있다고 하면 거기까지 와서 안내보행을 해주고, 다음 역까지 함께 가주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지하철에 태워주고 내리는 역에 있는 공익요원에게 연락해서 마중을 나오도록 해줘요. 

그런데 버스는 힘들어요. 확대안내판도 있고 몇 분 뒤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도 나오지만 몇 분 뒤에 도착하는 버스가 10대도 넘거든요.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버스가 도착해 있으면 주변 분에게 몇 번째 서 있는 버스가 내가 탈 버스인지 물어봐서 막 달려야 해요."

호현이를 힘들게 하는 것들... 볼라드 그리고 메뉴판

▲ 저시력이나 시각장애인들에게 유용한 휴대폰 기능들이 개발되고 있다 ⓒ 김혜원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인도를 보행할 때도 마음을 놓을 순 없다. 비장애인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볼라드(보행자용 도로나 잔디에 설치되는 진입방지말뚝)가 저시력인들에겐 흉기(?)가 되기 때문이다.

"볼라드는 도로 위의 흉기에요. 볼라드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전맹인들보다 맨눈으로 다니는 저시력인들에게 더 위험해요. 보통 인도나 차도의 색이 거의 회색이고 볼라드도 비슷한 색이라 장애물로 구별하기 어렵거든요.

저 같은 시력인 중에 볼라드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여서 지나가려다 정강이를 부딪히는 거죠. 볼라드가 대부분 대리석이라서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시각장애인들 대부분이 정강이에 흉터가 있어요. 볼라드 때문이죠. 뺄 수 없다면 잘 볼 수 있도록 불빛이 나오게 만들면 좋겠어요."

최근에는 다양한 공공시설에 저시력인들을 위한 서비스가 도입되고 있다. 버스정류장의 확대안내판 서비스와 휴대전화 읽어주기 서비스, 컴퓨터의 돋보기 서비스, 안내 점자나 블록, 횡단신호 음성지원 서비스 같은 게 바로 그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공공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반면 일반 서비스 분야는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어렵다.

"페스트푸드점이나 카페, 음식점을 이용하기가 힘들어요. 메뉴를 볼 수 없으니까요. 햄버거, 치킨, 피자 같은 건 메뉴를 외워서 늘 먹던 것만 먹어요. 음식점의 경우 메뉴판이 없는 곳도 있고 메뉴판이 있다고 해도 글씨가 너무 작아서 볼 수가 없어요. 어느 식당 사장님은 메뉴판을 다 읽어주시고, 설명해주시고, 고기도 직접 구워서 접시에 다 놓아주시기도 하는데 그런 분은 얼마 없어요. 대부분은 이상하게 생각해요. 카페나 페스트푸드점이라도 큰 글씨 메뉴판을 마련했으면 좋겠어요."

불편함은 있지만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말하는 열여덟 살 호현이. 뇌종양이라는 두려운 질병을 이겨내고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 무엇도 그에게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빼앗지는 못했다.

"저는 잘 보이지 않지만 다른 걸 가졌어요"

▲ 칠판과 책을 번갈아 볼 수 있는 로봇 확대기 '이봇' ⓒ 김혜원

"중학교 때였던가…. 한참 사춘기 때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적이 있어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원망도 하고. 남들에게 시각장애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본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어차피 장애는 평생 변하지 않는 거니까요. 제게는 잘 볼 수 없는 눈 대신에 잘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남들보다 예민한 감각도 있고, 잘 느낄 수 있는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슬프거나 절망하지 않아요.

부모님들도 슬퍼하지 말았으면 해요.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 대신 함께 재능을 찾고 즐겁고 행복한 일을 찾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제가 배운 공부와 제가 가진 음악적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게 저의 바람이고 소망이에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대한민국의 어떤 고3보다 행복한 고3 호현이가 함께 수험생활을 할 친구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맹학교 고3 인문반 13명 친구들아. 힘내라. 파이팅. 우리 함께 고생하자. 그리고 내년엔 멋진 대학생이 돼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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