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주인만 2천명, 이런 집은 처음이다

10만인 리포트

조금 안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940g으로 태어난 서정이, 이제 혼자 걷기 시작했다
[조금 덜 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④] 알록달록 보일락말락 서정이의 눈

16.02.23 12:17 | 글:김혜원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안구모형을 신기한 듯 관찰하는 서정이 ⓒ 김혜원

"서정이는 임신 25주 만에 태어난 미숙아였어요. 양수가 터져서 수술로 출산했는데 몸무게가 겨우 940g이었어요. 워낙 일찍 나와서 장기 등 모든 게 미성숙 상태였고, 미숙아 뇌출혈과 미숙아 망막증으로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고비였지요.

석 달을 입원하고 퇴원했지만 뇌출혈 후유증으로 왼쪽으로 편마비가 됐고, 미숙아 망막증 때문에 시력에도 문제가 생겼어요. 지금도 뇌출혈 때문에 생긴 수두증으로 셔틀을 끼고 있어요. 뇌에 생기는 물을 빼주는 호스를 몸에 심어 놓은 것이지요. 평생을 몸에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더라고요."

얼마나 급했으면 25주, 겨우 6개월 만에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까. 서정이가 엄마와 나눈 말을 알아듣고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으며 답한다.

"엄마 뱃속이 답답해서 빨리 나왔어. 나는 아빠한테 오고 싶었어. 아빠랑 놀고 싶어서 빨리 나온 거야."

지난 1월 22일, 엄마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빠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는 서정이. 애교 많고 사랑 많은 딸내미의 장난에 아빠의 표정이 눈처럼 녹아내린다.

"서정이 눈이 그렇게 안 보이는지 몰랐어요. 그동안은 걷는 훈련만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유치원 갈 나이가 돼 한글을 가르치려다 보니 서정이가 생각보다 더 많이 못 보는 거예요. 보통 일고여덟 살이면 눈치로도 글을 읽는데 서정이는 전혀 글을 몰랐어요. 뇌병변 때문에 지능에 문제가 있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없으니 배울 수 없었던 거였어요."

뇌가 가공하는 정보의 90%는 '눈'을 통해 들어온다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 입력되는 정보의 양 역시 크게 제한되기 때문에 사고력·판단력·논리력·이해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이 경우 시력 자체를 좋아지게 할 수는 없지만 경험과 훈련, 적합한 도구를 찾아주는 것으로 시기능을 키워주면 지적 능력 역시 좋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안 보이는 것을 개선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게 없다고 했거든요. 가림 치료가 전부고 1년에 두 번 상태를 볼 뿐 약도 치료도 없었어요. 그런데 학교에 보내려면 책도 봐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학습이 불가능할 것 같아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한국실명예방재단에서 시기능 검사와 시기능 훈련을 한다고 해서 도움을 받으러 왔어요."

▲ 서정이 눈에 맞는 글자크기와 색등을 찾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 김혜원

서정이의 시기능 검사와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실명예방재단의 김효진씨는 겨우 두 번 만났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서정이의 상태를 보면서 누구보다 큰 기대와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서정이가 낯을 많을 많이 가려서 처음 검사할 때 애를 많이 먹었어요. 난시가 있어서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을 써도 겨우 눈앞에 있는 손가락 개수만 알아볼 수 있을 뿐, 시력검사판의 큰 숫자도 멀리서는 읽을 수 없었어요.

근거리 시력도 매우 나쁜 편이라 신문의 헤드라인 정도의 크기만 겨우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색 구분은 가능해서 서정이가 보는 세상은 희미하지만 알록달록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시력이 많이 안 좋긴 하지만 이해력이 빨라서 마음을 열고 수업에 열심히 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 서정이가 보는 희미하고 알록달록한 세상이 저시력 기구를 통해 좀 더 선명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저의 책임감도 더해지는 것 같아요."

서정이는 하루 1시간씩 비교적 잘 보이는 왼쪽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으로 좋아하는 TV를 보거나 휴대전화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가림 치료를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는 실명예방재단 선생님과 함께 더 잘 보이는 각도와 색 크기가 뭔지 함께 찾아갈 계획이다. 엄마는 시기능 훈련을 통해 서정이의 세상이 조금 더 맑고 환해지길 기대한다.

"서정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기본적인 것들은 배워야 하잖아요. 특별히 공부를 잘하게 하려는 건 아니고요. 기본적인 건 배워야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요. 지금 눈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어린이집에서 보니까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있더라고요. 왜 아이가 혼자 멍하게 앉아 있나 했는데 안 보여서 그랬던 거예요. 어렵더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뭔가 달라지겠지요. 지금보다 조금만 좋아져도 서정이 삶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눈앞에 바짝, 서정이가 책을 읽는 방법

▲ 고배율 확대경과 밝은 빛으로 책읽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 ⓒ 김혜원

어린이집에서 서정이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고, 활동성이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였다. 뇌병변 때문에 움직임에 지장이 있어서 그런 면도 있지만, 선생님도 친구들도 주변 환경도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의 율동도 잘 따라하고 선생님 말씀에 따라 잘 움직이거나 호응하는데 서정이는 잘 보이지 않다보니 뭐든지 늦었던 거예요. 겨우겨우 보고 따라하려고 하면 이미 친구들은 다른 것을 하고 있는 거죠.

서정이는 2미터 정도 떨어지면 엄마도 알아보지 못했어요. 지금은 종합적 시각 능력이 좋아져서 형태만 보고도 저라는 것을 알지만 전에는 옆으로 지나가도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러니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을 수가 없지요. 친구들과 상호작용이 안 되니까요."

한국의 교육은 장애인-비장애인의 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지만, 시각장애아들에게 통합교육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시각장애아들이 비장애아와 함께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장애아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들이 아이를 맹학교에 진학시키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일반학교 환경에서는 학습부진이라는 판단을 받던 아이들도 적합한 교육환경이 마련된 맹학교에서는 높은 학업성과를 도출한다. 속도를 늦춰주고, 크기를 키워주고, 광학 기계를 사용하게 하고, 점자나 청각자료를 사용하게 하는 등 각자의 시기능에 따른 적합한 학습방법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서정이를 맹학교 부설 특수유치원을 보내려고 해요. 거기에 보내면 혼자 내버려두거나 수업에서 제외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요. 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아이들이니까 서정이가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요. 친구관계가 너무 좁고 한정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긴 하지만, 맹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면 비장애인 친구들도 사귈 수 있게 되겠죠. 그때까지는 조금 외로워도 참아야죠. 어차피 일반학교에 다녀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일 것 같으니까요. 어쩌면 맹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외롭고 힘들 수도 있지요."

여덟 살 서정이, 이제 조금씩 혼자 걷기 시작했다

▲ 서정이의 세상보기 훈련을 응원합니다 ⓒ 김혜원

편마비였던 서정이가 비록 비틀거릴지라도 혼자 걸을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있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고통의 세월을 보냈을까. 어렵게 걸음을 배운 서정이가 이제 보는 것을 배우려고 한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바라보며 흐림과 얼룩 속에 비치는 것들의 이름을, 의미를 배우는 것이다. 얼마나 더 배워야 할지, 얼마나 더 볼 수 있게 될지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이니 어떻게 변화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우리 서정이도 다른 아이와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자라길 바랄 뿐이에요. 가능하면 모든 것을 가르쳐보려고 해요. 장애가 있어서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니까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체육이든 그 어떤 것이든 서정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것을 찾으려고 해요. 지금은 아직 어려서 서정이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 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찾다 보면 알게 되겠지요.

세상에 너무 일찍 나와서, 몸이 아파서 힘들었던 아이잖아요. 그래서 엄마는 서정이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외롭게 혼자 지내지 말고 친구와 이웃들 속에서 그들의 일원이 돼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해요."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