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6m 준설한 강에서, 꼬마물떼새알을 찾았다

10만인 리포트

찾아가는 글쓰기 학교

박원순 시장에게 '직설', 이 기자들의 정체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청소년 기자학교, 30명의 학생과 함께한 54시간의 기록

16.01.27 20:19 | 글: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손지은쪽지보내기

▲ 지난 18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신의 집무실을 찾은 <오마이뉴스><10만인클럽>의 청소년 기자학교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정책설명을 하고 있다. ⓒ 정대희

"박원순 시장님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서울시를 이끌어 가십니까?"
"시장님은 정책을 만들 때 그 속에 어떤 철학적 가치를 담습니까?"
"자라나는 청소년을 위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귀를 의심했다.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찾은 아이들의 '직설'이다. 신변잡기 수준, 딱 그 정도를 예상했던 기자의 뒤통수를 때렸다. 박원순 시장과 사전에 교감하거나, 질문 내용과 순서가 담긴 시나리오도 없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 청와대 춘추관에서 벌어진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꿈은 펜보다 강하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청소년 기자학교에 참가한 학생들 모습이다.

첫 만남, 만만치 않은 아이들

▲ 지난 19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의 청소년 기자학교 참가자들이 이동미 작가와 함께하는 강화도 역사탐방에 나서 현장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 정대희

학생들과 2박 3일, 처음에는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을 기다렸다. 인원은 총 30명.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온 지난 18일, 합정역 9번 출구 앞에서 이름표를 손에 쥐고 찬바람을 견뎠다. 곁에선 아이들이 탈 버스가 히터로 몸을 데웠다. 지옥과 천국이 한 발 차이다.

빌딩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뺨이 맵다. 엎친 데 덮친다고 했던가. 약속시간이 되자 엄마, 아빠를 앞세운 아이들이 한꺼번에 버스에 올랐다. 같은 시각, 지각생의 문자와 전화로 휴대폰이 요동친다.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통화하며, 막 도착한 또 다른 아이를 붙들고 출석부를 내밀었다. '멘붕'이다.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정신은 영화 <그래비티>와 <마션> 사이를 오가다 결국 <인터스텔라>가 된다.

"부모님이 신청해서 왔는데요."

아이들은 솔직했다. 기자나 PD를 꿈꾸지 않는 친구들도 부모가 등을 떠밀어 왔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아이는 손에 꼽혔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고스란히 감정이 읽힌다. 이 녀석들을 데리고 2박 3일을... 고민이 깊어진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웃으며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 가슴을 움켜지게 한 대화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 대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 최경준 편집국장: '기자'를 떠올리면 무엇이 생각나죠?
- 서너명의 아이들: (나지막한 목소리로) 기레기요.

첫 만남에서의 당혹스러움을 떨쳐버리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두 시간 남짓 지났는데, 여자 아이들은 벌써 몰려다녔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게 믿을 수 없다. 뭐가 그리 좋은지 말만하면, '까르륵'이다.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많아졌다. 학생들 사이에서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뺀다. 무리 틈에 끼여 함께 '까르륵'한다.

하루가 지나가는데 남자 아이들은 아직도 '점조직'이다. 여학생들보다 속도가 더디다. 목소리도 못 들어본 아이가 여럿이다. 말을 붙이면, '네', '아니오'가 전부다. 쉴 때는 강연장을 어슬렁거리거나 책상에 엎어져 잔다. 딱 두 가지 유형만 존재한다. 처음엔 대부분 데면데면하다.

수민(17)이가 현정(17)이와 저녁 강연에 함께 들어왔다. (학생들의 이름은 가명) 첫날 점심시간, 수민은 홀로 앉아 밥을 먹었다. 식판을 들고 곁에가 앉아 물으니 "낯을 많이 가린다"며 수줍어하던 아이다. 친구가 생겨서일까. 수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한빛(15)은 발랄했다. 점심때만 해도 혼자 밥 먹던 아이가 수영(15)과 은희(15), 보미(16), 도희(16)와 어울리더니 '까불이'로 변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굴부터 가리더니 이젠 망가진 얼굴을 들이민다. 반나절 만이다.

태민(15)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녀석은 조용히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강의보다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야할지 모르고, 그곳의 치안이 좋지 않다는 게 고민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연락을 해온 어머니에게 직접 영상편지를 쓰도록 했다. 걱정스런 낯빛이 의젓하게 바뀌었다. 태민이 달라보였다.

열혈 기자와 불난 단톡방... 뜨거운 밤이었다

▲ 청소년 기자학교의 실시간 중계창이 불이 났다. 박원순 서울서울 시장과 학생들의 만남을 기록한 사진과 동영상이 학부모 단톡방에 게재되자 잇따라 댓글이 달렸다. ⓒ 정대희

"박원순 시장님 저도 만나고 싶어요."
"생생한 소식 제가 현장에 있는 듯해요."
"기자님이 여자 애들을 좋아하시네요.^^ 남자 애들 사진도 올려주세요."

'단톡방'에 불이 났다. 청소년 기자학교 실시간 중계창에 서른 명의 엄마, 아빠가 댓글로 화답했다. '깨톡'소리에 버퍼링이 일어난다. "깨깨깨...톡" 이렇게. 아이들보다 부모가 더 신이 났다. 친해지는 속도도 아이들을 능가한다. 제주서, 창원서, 양산서, 비행기타고 기차타고 기자학교에 참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 아이를 응원하는 글에서 생일날이라는 신상정보까지 참, 버라이어티하다. 그때는 차마 적지 못한 말을 옮겨본다.

"어머님, 아버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돼요. ^^;;;"

댓글이 폭발했다. 기자학교 둘째 날(19일), 소영(14)이의 깜짝 생일파티를 열었다. 하룻밤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이들은 목청껏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제야 더 이상 홀로 외롭게 서성이는 아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핸드폰은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에 버금가는 카톡 메시지 수신음이 울렸다. 학부모 단톡방이 메시지로 가득찼다. 덩달아 기자의 인기도 높아졌다. 적어도 단톡방 안에선 스타였다. 30명이던 단톡방 멤버가 어느새 43명으로 늘었다.

"기자님을 글로 쓸 거예요."

도희(16)가 말했다. 언제나 해맑은 아이다. 남녀가 뒤섞이지 못할 때 자연스레 어울리게 분위기를 띄운 아이다. 그래서일까. 도희 주변은 늘 시끌벅적했다. 막내부터 큰 오빠까지 서슴없이 녀석에게 다가갔다.

기사쓰기 실습시간, 주제는 '가슴 뛰는 이야기'. 기자는 도희의 인터뷰 제안을 거절했다. 곁에서 낄낄거리던 장난꾸러기 석민(15)과 동수(16) 때문이 아니다. 글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장가를 못 갔을까'라니. 믿었던(?) 호진(19)이조차 웃는다. 신이 난 아이들이 기자의 주변사람을 취재한다. 설문조사까지 마쳐 기사를 출고했다. 기자가 반론을 제기했다.

"첫째, 못 간 게 아니고 안 간 거다. 둘째, 당사자를 취재하지도 않았다."

가슴 뛰는 이야기를 기사로, 일상의 일을 글로 써본 강연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사는 추측과 감정은 빼고 정확한 수치와 육하원칙을 더해야 한다. 기사쓰기 실습을 하고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기자의 첫째 반론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줄 쓰기도 버거웠던 아이들, 신문을 창간하다

▲ 지난 20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의 청소년 기자학교에 참가한 학생들이 직접 벽신문을 창간했다. 제호는 '색색이 신문'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 아이들의 기사에 지면을 가득 채웠다. ⓒ 정대희

비행기를 타고 온 우성(16)의 표정이 굳어졌다. 녀석은 자신의 글 평가를 앞두고 끝내 고해성사했다.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자기가 직접 쓴 글을 여러 명이 함께 보고 토론하는 '기사 합평회'가 효과를 본 것일까. <벽신문>에 게재된 두 번째 민우의 글이 180도 변해있다. 제주도에 대한 편견을 그럴듯한 논리로 반박했다.

말이 없던 용수(14)가 입을 열었다. 두루뭉술한 평가에 거듭 질문을 쏟아내자 구체적인 생각을 말한다. 아이들이 박수로 녀석을 응원한다. 용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기자를 꿈꾸는 학진(17)이 합평회가 돼서야 적극적으로 변했다. 따끔한 지적에도 눈이 초롱초롱하다. 사진작가가 꿈인 하연(17)은 글도 빼어났다. 사진대회서 입상한 이유가 사진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밤새 기사를 안고 끙끙거린 현정(17)도 '기사는 엉덩이로 쓴다'라는 말을 새삼 깨달은 듯 데드라인을 어겼지만 일취월장했다.

마지막 날(20일), 5개조로 나뉘어 <벽신문>을 만들었다. 6명씩 나누니 다섯 개의 신문이 창간됐다. 막내 승기(13)가 타원형을 따라 기사를 썼다. 눈이 빙글빙글 돈다. '아! 추워 NEWS' 신문에서 형태로 단연 돋보이는 기사였다. 은정(15)은 종이 신문 기사에도 댓글을 다는 기획을 주도했다. 머리 싸매고 쓴 글을 마무리했는지 곁에 있던 수경(15)의 표정이 밝다.      

아이들이 달라졌다. 수줍어 등 뒤로 숨던 아이가 나서서 신문을 만들었다. 강민(15)이가 그렇다. 뒷줄에 앉아있던 녀석이 철퍼덕 바닥에 앉아 원고를 종이신문에 옮겨 적고 대표로 발표까지 맡았다. 더는 말을 걸면 쭈뼛거리던 아이가 아니다. 지연(17)과 백호(14)도 마이크를 잡고 각 조별로 만든 <색색이 뉴스>와 <햇반늬우스>의 주요뉴스와 편집의도를 설명했다. 이름만 불러도 깜짝 놀라던 아이들이 아니다.

글도 달라졌다. 원경(15)은 강화도 역사탐방 후 기사의 시점을 1인칭으로 전환, 철종의 입장에서 문맥을 이어갔다.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 섹션에 담길 만한 현수(17)와 태연(15)이의 글은 간밤에 남자방과 여자방에서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게 했다. 말보다 글로 표현을 잘하는 태균(16)은 박원순 시장과의 만남을, 우석(15)은 2박 3일간의 기자학교 이야기를, 희연(15)은 자신이 화장실 귀신이 된 사연을 기사로 출고했다. 글 한 줄 쓰기 어려워 몸을 배배 꼬던 아이들이 변했다.

기자학교 출신 학생기자가 탄생하다

▲ 지난 20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의 청소년 기자학교에 참가한 학생들이 54시간의 합숙을 끝마치고 기념촬영한 모습 ⓒ 정대희

2박 3일간의 청소년 기자학교가 끝나고 다시, 합정역 10번 출구로 향하는 길. 학부모 단톡방에 짧은 소감을 올렸다. 내용은 이렇다.

"다 읊을 수 없는 2박 3일간 이야기.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아이들이 달라졌습니다. 적어도 제가 본 모습은 그렇습니다.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요. 하지만 어른들의 생각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뭐든지 잘합니다. 판만 깔아주면 말이죠. 물론, 저는 압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는 또 예전처럼 변하겠죠. 하지만 이곳에서 기억은 그게 무엇이든 남겠죠. (중략)

소망합니다. 아이 가슴에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었길. 먼 훗날 줄기가 자라고 가지를 뻗어 한그루의 울창한 나무가 되길. 그리해서 부모님들의 희망투자가 헛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왜냐고요. <오마이뉴스>도 이런 이유로 '10만인클럽'을 만들어 희망의 씨앗을 키우고 있으니까요.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늘, 30명의 새로운 기자가 탄생했습니다. 세상을 바꿀 이들입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단톡방이 뜨거워졌다.

"코끝이 찡합니다. 변화의 씨앗을 우리 아이 가슴 속에 심어주고 좋은 추억 나눌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은 멍석만 깔아주면 되겠군요. 멍석을 덮든 접든 그것은 아이들 몫으로 바라만 봐야겠네요."



위의 동영상을 보아주기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한 54시간의 기록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한가? 기자보다 한 발 앞선 친구가 있다. (" 박수가 절로 나오는 강의보다 더 좋았던 것") 녀석에게 추월당했지만 기쁘다. 이 글을 쓰면서 자꾸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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