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한국의 4대강 사업, 미국에선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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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진술

"우리가 무엇 때문에 나라를 위해 싸우는가"
[최후의 진술 - 박흥숙 편 부록] 자필 최후 진술 전문

16.01.27 18:07 | 글:이정환쪽지보내기|편집:장지혜쪽지보내기

나는 무등산 덕산골에 살며 77년 4월 28일 철거반 공무원 피습 사건의 주인공으로 '한국판 이소룡', '무등산 독수리', '무등산 타잔' 등등 수많은 악의 대명사를 걸머진 그야말로 끔찍하고 흉악무도한 살인마로 알려진 박흥숙이다.

신성한 이 자리를 빌어 저의 지난날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저의 울분 때문에 아깝게 희생되버린 그분들의 영령을 위로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또 많은 물의를 일으켜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하고, 유가족 여러분에게 너무나도 큰 죄를 지었다.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자식, 사랑하는 형제를 잃고 애통해 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이 자나깨나 눈앞에 어른거려 날이 갈수록 괴롭고 괴롭다. 나의 죄는 죽어 마땅하리다.

그 애통해 할 유가족들을 생각한다면, 그 어디에 댈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을 안긴 유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어찌 백 번 죽는다 한 들 죄 닦음이 다 될 수 있겠으며 무슨 말로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 있겠는가. 그저 죄송하고 죄송하다.

그러기에 이렇게 신성한 자리에서 재판장님께 나의 고충 일부나마 말씀드릴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나라와 국민 앞에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원인이야 어떻게 됐든 죄의 대가를 달게 받아야 하는 중죄한 몸으로써 무슨 말이 필요하겠으며 무슨 말을 더할 수 있겠는가. 구구한 변명이 앞선다는 것은 x달린 사내자식으로 도저히 취할 바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으며, 이 말씀을 드리는 나 자신이 온전한 정신인지, 미친 것인지, 극과 극의 현존하는 현실에서 오락가락하는 내 정신을 나도 모르겠다. (원문 : 내가 알 바 아니다)

미친 정신병자의 개소리라 해도 좋고, 빗나간 영웅심의 궤변이라 해도 좋다. 또한 나 자신이 바라는 바이다. 하오나 다음에는 이같은 불상사가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죽어가는 몸으로써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잘 사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날그날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그야말로 영세민들에게는 안식처가 될 보금자리가 사활에 관계된다 해도 절대로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처음 영광에서 그곳 덕산골로 이사를 했을 때는 그 마을 산지기로 있는 이모네를 연줄로 하여 남의 집 셋방살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그도 말못할 불행이 생겨서 어머니와 나와 동생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야 했고 나는 돼지 움막보다도 못한 보잘 것 없는 집이지만 짓지 않으면 안되었다.

방 한 칸 의지할 데가 없어서 남의 집 변소를 들여다보지 않고, 남의 집 처마 밑을 들여다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지금 말씀드리는 나의 고충, 조금이라도 이해하시기 어려우시리라. 내가 처음 집을 지을 당시 허가 없이 지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곳이 개발 제한 구역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며, 또 그 당시 어린 시절은 그런 것에 무관심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중에사 모든 사실을 알았지만 당장 이사 갈 여유도 없었고, 참, 피와 땀의 결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고생 고생 그 고생을 해서 지은 집을 차마 내 손으로 부술 수는 도저히 없었다. 당국에서도 지난 겨울 1차 계고 당시까지는 집을 지은 지 5∼6년이 지나도록 까지 말 한 마디 없었으며 우리들도 그처럼 그런 산골에까지 계고장이 나오리라고는 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예전에 미처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렇다고 자진 철거하라는 당국 명령을 받고 이를 묵인하여 그냥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았었으며 그 마을 모두가 그렇듯이 시내로 나가 방을 알아도 보았고, 또 어디 적당한 곳에 (천)막 칠 자리라도 없나 하고 몇 날을 두고 찾아 돌아다녀 보기도 하였다. 또 그 옆 마을 신림 부락 그런 종이 쪽지가 7회나 나왔어도 아직껏 무사하다고 하기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고 설마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새삼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지만 지지난 겨울의 추위는 50년 만에 처음 있는 추위로 보리가 다 얼어죽었을 정도며 4월 초까지 눈이 왔고 눈이 쌓여 있었지 않았는가. 추위에 떨고 가난에 떨어야 했던 그 산골에서는 이 혹독한 추위 때문에 날씨가 풀릴 때까지(의역, 원문은 '해풍해지도록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것이다.

헌데 당국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으면서도 그 추운 겨울에도 꼬박꼬박 계고장을 내, 추위가 채 풀리기도 전인 4월 6일 마지막 계고에 응하지 않았다고 그 마을 사람들을 개 취급했고 집을 부숴 버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당장 올 데 갈 데 없는 우리들에게 불까지 질러 돈이며 천장에 꽂아두었던 봄에 뿌릴 씨앗 등 정신이 헝클어져 미처 생각 못한 것들은 깡그리 타 버리고 말았다.

요즘 세상은 형제간에도 일가족을 데리고 가서 방 한 칸 빌려 달라면은 눈살을 찌푸리는 세상이다. 하물며 당국에서까지 이처럼 천대와 멸시를 받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누가 달갑게 방 한 칸 내 줄 수 있겠는가. 이런 사정을 당국이라고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원문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 당국이라고 자처하지는 못할 것이다)

옛말에도 있듯 태산은 한 줌의 흙도 거부하지 않았으며 대하 또한 한 방울의 물도 거부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세상에 돈 많고 부유한 사람만이 이 나라의 국민이고, 죄 없이 가난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내 선조가 무식했기에, 가난했기에, 그런 전철을 되밟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 사람들이 약속을 어기고 불을 지를 때 우리와 불쌍한 그 마을 사람들은 우선 막칠 비닐 조각 하나라도 건져보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애걸복걸했어도, '상부의 명령이다', '이런 것들을 놔두면 또 집을 짓는다', '강제 철거가 무엇인줄 아느냐' 하면서 끝내 외면하고 모조리 태워 버렸던 것이다.

자기네들이 계고장을 돌렸으니까 한 푼 대책 없고, 올 데 갈 데 없는 줄 번연히 알면서 세상에 그럴 수 있겠는가. 아무리 돈에 환장병이 걸렸다 해도 친부모 형제가 사는 집이라면, 사랑하는 처자가 사는 집이라면, 그렇게까지는 못하리라.

세상에 올바른 두뇌를 갖고, 올바른 양심을 가진 자들이라면은 그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명령하지는 못하리라.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가 무식하고 등신 같이 생겨서 인간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고 할 지라도 자기 것을 갖고 그렇게까지 사정을 하고도 끝내 외면을 당해야 옳단 말인가.

허물어진 담장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그들을, 타오르는 불길 속에 발을 동동 구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타까이 허둥대는 그들을 보라. 불쌍하지도 가엾지도 않단 말인가. 반 넋이 나가버려 초점 잃는 눈으로 멍청히 바라보시던 어머니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말인즉 그렇지, 정말로 아비규환을 이루는 그 당시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서고, 이가 갈리는 그 당시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사고가 나자 당국에서는 그 마을을 무당골이라 했고, 그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무당이라고까지 했다. 생게망게한 온갖 추악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나에게 뒤집어씌우는 것만도 부족해 말못하고 쫓기는 짐승처럼 선량하고 불쌍한 그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무당이라고까지 하다니, 이 무슨 비열한 짓인가. 이 더럽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덜 된 수작은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그래도 켕기는 데는 있었던지 자기네들의 실책을 커버해보려고, 사고 때문에 중단된 일을 나중에 하면서는 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허술해 전부터 말썽이 돼 왔던 그 마을 집 두 채를 보란 듯이 그대로 보류해 두었다고 한다. 이야말로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우스꽝스러운 짓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우리 마을이 산수가 그야말로 아름답고 호젓한 산골이라서, 조용한 곳을 찾아 치성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산 좋고 물 좋은 무등산 어느 골짜기, 이 사람들이 들락거리지 않은 곳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무등산은 등산객들이 많아 해마다 연례 행사처럼 겨울과 봄철만 되면 자주 일어나는 산불도 80∼90%는 그 산골 사람들이 꺼 왔다는 사실을 알라. 아니, 도맡아 꺼왔다고 해도 절대로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산골에서 사니까 산림의 피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굳이 따져 말한다면 당국에서까지 그처럼 학대를 받고 쫓겨나야 할 만큼 큰 잘못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동정은 못해 줄망정 세상에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당국이라고 믿었던 우리가, 그래도 조금은 대책을 바랐던 우리가 어리석었을 뿐이다.

내가 교도소에 있는 동안 흉악범이라고 낙인이 찍히고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처져야 할 판인데 생판 낯모르는 시민들까지 삼삼오오 면회를 오고 있으며 그 중에는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까지 있었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지만, 우리들 경우처럼 억울하게 헐려버린 마을들이 결코 하나 둘은 아닐 것이다. 물론 당국에서는 국가의 백년 대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오로지 손톱 밑에 비접('가시'의 전라도 사투리) 드는 줄만 알지, 염통 굉기는 줄을 모르는, 민이야 죽건 말건 명분 세우기에 급급한 파렴치한 소인배들의 옹졸한 생각이라고 밖에 더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알량하고 옹졸한 소인배들로서야 어떻게 국가의 백년대계를 논할 수 있겠으며, 만인의 고충을 염려하고 만인의 고충을 보살필 수 있단 말인가.

이를 견제해야 하는 관계 당국마저 시세에 편승해 버린 것인지, 아니면 송판에 뚫린 나무 구멍처럼 밥먹이나 다루는 동전벌레들이었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노라.

아직도 미지근 소리들이 계속 들려오고 있는데 더 이상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반항아 아닌 반항아들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기네들의 실책을 솔직하게 반성할 줄 아는, 옳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감한 미덕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구국선인들의 뜨거운 피가 뒤엉킨 한 많고 눈물 많은 단군 반만년 역사 위에 이번 당국에서 행한 처사가 과연 용납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야말로 시대적인 착오이며 역사적인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우리가 무엇 때문에 내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가. 무엇 때문에 마지막 피 한 방울을 다 바쳐 총칼을 부여잡고 쓰러져야 하겠는가. 진정으로 내 나라를 위하고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뜻 있는 국민이라면, 진리를 사랑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양심적인 학도들이라면, 이 어찌 하늘을 우러러 통탄할 일이 아니냐.

1978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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