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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안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시력 10%' 4살 지아의 기적같은 그림 실력
[조금 덜 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②] 지아와 지아 엄마의 소망

16.02.09 13:54 | 글:김혜원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Mike Carpenter

"지아(가명, 6세)가 백혈병 무균실에 있을 때였어요. <뽀로로>를 틀어줬는데, TV 화면을 등지고 앉아 있더라고요. 스피커가 설치된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에요. 집에서는 화면에서 소리가 나니까 당연히 TV 쪽을 보게 되지만 무균병실 TV는 병실 밖에 설치돼 있고, 소리는 반대쪽에서 나오게 돼 있었거든요. 지아가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어요."

여섯 살 지아의 지난 4년은 보통사람의 40년에 맞먹는 '고난의 나날들'이었다. 생후 24개월에 찾아온 백혈병과 싸우느라 집에서 보낸 시간보다 병실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고, 밥보다 약과 링거에 의존해 지낸 날들이 더 많았다. 다행히 여섯 살이 된 지금 백혈병은 치료됐고, 5년간 재발이 없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5년이 되지 않아 완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의사선생님이 완치 메달을 주셨어요.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요. 백혈병으로 생사를 넘나들 때는 누워만 지내도 좋으니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어요. 하지만 막상 아이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제 눈이라도 주려고 했는데 그것도 불가능했고요. 

병원에서 자라다시피 했지만 지아는 밝고 씩씩한 아이예요. 그런 지아가 오히려 저에게 힘을 주지요. 지아와 함께 밝고 씩씩하게 살아보려고 해요. 저는 엄마니까요. 엄마가 실망하고 슬퍼한다면 지아는 얼마나 더 슬프고 힘들겠어요. 지아를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낼 거예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지아는 작은 색종이를 뜯고 붙이며 놀았다. 식당에 들어설 때도 지아는 혼자 신발을 벗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식탁까지 걸어와 앉았다. 카페에서는 기둥을 사이에 두고 기자와 까꿍 놀이도 했다. 누구든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다면 지아에게 시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렵다. 시력측정이 불가한 시각장애 2급이지만 놀랍게도 오른쪽 눈에 남아있는 15%의 시력을 사용해 이 모든 것을 무리 없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전맹과 저시력은 다르다

▲ 한국실명예방재단이 주최한 겨울 오감체험 일일캠프. 저시력 아동들이 피자 만들기 활동을 하고 있다. ⓒ 한국실명예방재단

"지아는 전맹(全盲, Blindness)은 아니고요. 저시력(Low vision)이라고 해야 맞아요. 눈에 아주 작은 기능이 남아 있어서 그것을 이용해 물체를 보고 색을 구별하거든요. 지아는 오른쪽 눈 아래 15% 정도를 이용해 보는 것인데 집중해서 보려면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돌려야 해요.

책을 보거나 글씨를 쓰려면 눈에 바짝 대고 봐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수 있죠.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지아는 눈이 아파서 그렇게 보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셔서 잘 지내고 있어요. 다만 소풍을 가거나 견학을 가거나 익숙한 장소가 아닌 곳에 갈 때는 선생님이 지아를 곁에서 챙겨주셔야 해서 그게 조금 죄송해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아이라서요."

한눈을 완전히 가리고 또 다른 눈의 90%를 가린 후 사물을 바라본다면, 그 모습은 어떨까. 그나마도 맑은 상태가 아닌 흐리고 부유물이 떠다니는 상태라면…. 하지만 지아는 그런 눈을 가지고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아직은 지아의 생활이 단순해 엄마와 선생님의 지도가 가능한 때문도 있겠지만 4살부터 받은 시기능 훈련의 덕이 컸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떨어져 나온 망막을 살짝 붙여놓았을 뿐 더 이상 해줄 게 없다고 했어요. 치료로 나아질 것이 없는 상태인 거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남아있는 작은 시력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실명예방재단에서 진행하는 시기능훈련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2년째 매주 2회 재활훈련을 받고 있어요.

시기능 훈련은 눈에 보이는 것을 형상화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잘 보는 방법을 찾아 가르치는 것인데, 처음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조금씩 보고 있어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빛을 구분하고 색을 구분하고 형체를 파악하고 서툴지만 글과 그림도 배우고 있어요."

두 눈이 건강한 상태로 태어난 지아. 백혈병을 앓기 전 지아는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음 짓는 예쁜 아이였다. 그러나 치료를 받던 중 시력을 잃었다. 어느 날 갑자기 깜깜한 세상 속에 던져진 아기. 얼마나 외로웠을지 얼마나 두려웠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자꾸 울었어요.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려면 그동안 얼마나 애타게 엄마를 찾는지 몰라요. '엄마? 엄마?' 계속 그렇게 저를 불렀어요. 불안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어서 손톱이 남아나지 않았고요. 

병원에서도 자주 길을 잃었어요. 잠시라도 엄마와 떨어지면 엄마를 찾는다고 복도를 헤매고 다녔거든요.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불안이 더욱 심해서 엄마를 찾아 나섰다가 오히려 길을 잃곤 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지아가 불안과 외로움으로 길을 잃는 일이 없었으면 바라지요."

기적에 가까운 지아의 그림

▲ 가진 시력은 10%라고 능력도 10%는 아니다 ⓒ 김혜원

병원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는 지아는 병원을 나와서도 가끔씩 길을 잃을 것 같은 때가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지아를 위해 길을 안내를 해주지 못하고 깜깜한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 남겨 놓기 때문이다.

"지아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알아볼 때 많은 곳에서 거절당했어요. 시각장애라고 하니까 받아줄 수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앞을 볼 수 없는 아이라 다치거나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지요. 지아를 전맹으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지아를 한번 보고 말씀해주시라고 사정했어요. 실제로 지아를 보시고 난 후에 입학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지아는 혼자 밥도 먹고, 옷도 입고, 씻고, 화장실 가고 하는 게 다 가능해요. 작은 부분이지만 사용할 수 있는 시력이 남아있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마구 뛰어놀고 그럴 수는 없어요. 전체가 다 보이는 것이 아니고 작은 부분만 제한적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조금만 기다려주신다면 할 수 있어요. 시력은 10%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능력도 10%는 아니거든요."

신나게 색종이 놀이를 하고 있는 지아를 바라보며 엄마는 수줍게 휴대전화에 담긴 지아의 그림을 보여준다. 지아 또래의 아이가 그릴 수 있는 단순한 그림이지만, 지아와 같은 저시력 아동들에게는 기적에 가까운 그림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냥 내버려둔다면 바보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지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치려고 했어요. 다행히도 지아는 가르치는 대로 잘 받아들이고, 놀랄 만큼 잘 적용하고 응용하는 아이예요. 처음엔 손을 잡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그리는 연습을 했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이용해 사람을 그리는 연습을 했어요.

엄마가 그린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으로 그림을 배우고 있는데 당연히 쉽지는 않았지요. 지아는 작은 점 같은 것은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그려도 눈을 긴 타원형으로 그려놓곤 했었거든요. 지금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지금은 지아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릴 것 같아요. 아직 어려서 그림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앞으로 지아가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혹은 또 다른 어떤 다른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재능을 보일지 궁금할 뿐이에요."

지아 엄마의 걱정

지아는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야 할 때면 책상 가까이 오른쪽 눈을 붙여야 한다. 유효한 시력을 얻어 내기 위한 지아 만의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지아의 보는 방법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많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인원도 적고 활동도 많지 않아서 친구들과 선생님의 도움과 배려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는데 학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일단 칠판을 봐야 하는데 지아 시력으로는 칠판을 볼 수 없고 책도 눈에 가까이 붙여서 읽어야 하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읽는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서 친구들과 수업 속도를 맞추기 어렵거든요.

장애학생을 위한 도우미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겠지만 인원이 워낙 적어서 지아는 혜택 받기가 어렵다고 해요. 선생님이 안 되면 책이나 칠판을 크게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전자독서확대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어요. 하지만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모니터를 사용하는 것 때문에 학교에서 난색을 표하시는 것 같아요. 혹시라도 아이들이 이동 중이나 활동 중에 파손되기라도 하면 책임과 보상의 문제가 따라오니까요."

지아는 시각장애가 있지만 아주 작은 잔존 시력을 이용해 모든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학습도 가능한 아이라 조금만 배려를 해주면 장애를 떠나 평범한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헬렌 켈러 같은 사람은 될 수 없다 해도 본인의 장애를 극복하고 더 어려운 친구들과 이웃들을 돕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엄마의 소망을 응원하고 싶은 이유다.

불편함이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

▲ 저시력인들의 눈이 되어 주는 각종 확대 기구들 ⓒ 김혜원

우리 사회가 아직은 시각장애와 저시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시각장애의 범주에는 빛조차 보이지 않는 전맹이 있는가 하면 미세하게 남아있는 잔존시력을 이용해 사물을 구분하거나 일상생활이 가능한 저시력이 있다.

2015년 전국의 등록 시각장애인은 약 25만 명. 그중 85%인 21만 명이 저시력 인구로 시각장애인 중 저시력인들이 훨씬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카카오가 '카카오톡' 내 글자와 이미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저시력인을 위한 '카카오톡' 고대비 테마를 배포한 바 있고, 버스와 지하철 승강장등 공공장소에서 저시력인들을 위한 안내판이 설치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저시력인에 대한 이해와 서비스는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저시력인과 그들의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덜' 보이는 것이므로 조금의 배려만으로도 충분히 보이는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또 이들의 불편함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기다려주고 자리를 내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함께 가길 원하는 것이다.

[조금 덜 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① "조금 덜 보이지만... 제 꿈은 축구선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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