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넉달 간 노숙투쟁, 박근혜가 탄핵됐다

10만인 리포트

조금 안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조금 덜 보이지만... 제 꿈은 축구선수랍니다"
[조금 덜 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 ①] 혁이가 맹학교에 진학한 까닭

16.02.02 12:05 | 글·사진:김혜원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저시력 청소년 송혁(15세). 왼쪽 눈은 실명 상태지만 오른쪽 눈에 남아 있는 잔존 시력을 이용해 일상 생활과 운동이 가능하다. ⓒ 김혜원

"캠프에 다녀왔는데 정말 즐거웠어요.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잘 놀 수는 있거든요.

캠프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도 만나고, 평소에 하기 어려웠던 체험이나 활동들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이나 소풍, 수학여행, 견학 같은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지 못해요. 바깥에서 하는 활동은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저시력캠프에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선생님들이 도와주시거든요. 또 같은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모이니까 서로 이해해주고, 맞춰주고, 도와주고, 그래서 아주 즐거워요. 그런데 1년에 두 번 했던 캠프를 한 번으로 줄인 것도 아쉬운데, 제가 올해 중학생이 되거든요. 그러면 저는 못 가는 거잖아요."

오는 3월이면 중학교에 입학하게 될 혁이(송혁, 15세). 중학교 입학이 설레고 기뻐야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인터뷰에는 적극적이었다. 지난 1월 16일, 혁이는 인터뷰 자리에서 캠프가 얼마나 필요한지, 엄마나 선생님들보다는 장애가 있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장애는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비장애인들이 장애체험을 한다고 안대도 써보고, 눈을 감고 걸어보기도 하고 그러지만 그건 정말 잠깐이잖아요. 잠깐 해보면 재미있을 수도 있고 신기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평생 이렇게 사는 거잖아요. 가까운 가족들도 몰라요. 제가 볼 때는 엄마가 가장 많이 이해하는 것 같아요. 엄마는 제 눈이 돼 늘 저를 도와주니까요."

단 한 번도 '맑은 세상'을 본 적이 없는 아이

선천성 녹내장 및 무홍채증이 있는 혁이는 왼쪽 눈은 각막 혼탁이 심해 전혀 보이지 않고 비교적 깨끗한 오른쪽 눈 일부에만 작은 부분 잔존 시력을 갖고 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맑고 환한 세상을 본 적이 없는 아이 혁이. 어릴 때는 겨우 빛에 반응하는 정도의 시력이었지만 자라면서 반복적인 학습과 보조기구 사용을 통해 지금 정도로 볼 수 있게 됐다. 안타까운 건 녹내장의 특성상 그나마 잔존 시력도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전맹(全盲, Blindness, 실명)은 아니니까 보이긴 해요. 하지만 안개가 가득 낀 것 같이 뽀얗고 검은 점 같은 것이 막 떠다녀서 정확하게 보기가 어려워요. 형체는 구분하지만 자세한 건 가까이 가야만 볼 수 있어요. 사람도 형태는 보이지만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고요.

지나가는 자동차가 버스인지 택시인지는 구별할 수 있어요. 전철은 색으로 노선을 구별할 수 있고요. 색중에도 빨간색을 잘 구별해요. 노란색이나 원색 종류는 잘 보이는 편이에요. 하지만 회색이나 고동색 그리고 작은 글자나 작은 물건 같은 건 안 보여요. 계단도 잘 구분하지 못해요. 그래서 걸을 때 조심하는 편이에요. 넘어질까 걱정되거든요."

"자꾸 저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요"

▲ 혁이의 눈을 대신해주고 있는 엄마. 이제 혁이도 혼자 설 나이가 됐다. ⓒ 김혜원

늘 엄마 손을 잡고 등·하교를 했던 혁이. 1년 가까이 하교는 혼자서 하고 있다. 언제까지 엄마가 곁에 있어 줄 수 없기에 홀로 서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통합교육은 장애인 차별이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 교육이 가야 할 바른 방향이다. 하지만 막상 장애를 가진 학생이 일반학교에 진학할 경우, 크고 작은 어려움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특별반(도움반) 운영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교육적 지원이 크지 않은 것은 물론, 오히려 특별반이라는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의 대상이 되거나 왕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일반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이 장애인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진학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통합'이라는 말처럼 적극적으로 수업에 끌어 들여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소통하도록 유도하기 보다는 '보호' 라는 이름으로 소외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칠판이나 교단 앞 모니터의 글씨는 전혀 안 보여요. 칠판 옆에 붙여놓은 글씨들도 그냥 하얀 종이로만 보이고요. 책은 독서확대경으로 보고 선생님 목소리로만 수업을 하는데 집중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오히려 시험 볼 때는 글자가 큰 시험지를 주시고 보조 선생님이 문제를 읽어주시니까 힘들지 않았어요.

독서확대경은 교과서에 있는 글씨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기계인데, 글자 크기나 색도 바꿀 수 있고 소리도 나고 거울처럼 반사 기능도 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신기한지 자꾸 만져보려고 해요. 하지만 제가 못 만지게 하지요. 제 눈인데 잘못하다가 떨어뜨리거나 고장 내면 큰일 나니까요. 

친구들 중에는 착한 친구도 있지만 장난꾸러기도 있어요. 그런 친구들 때문에 좀 힘들었던 것도 있어요. 중학교를 일반학교로 가지 않고 맹학교로 선택한 것도, 맹학교에 가면 친구도 생기고 그 친구들하고 같이 축구도 하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예요."

이제 겨우 열다섯이 된 혁이는 나이답지 않게 사려가 깊고 생각이 많은 편이다. 어쩌면 혁이가 가진 장애가 혁이를 더 어른스럽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저보고 자꾸 왜 그러냐? 왜 그렇게 행동하냐? 하는데 저도 답답해요. 눈이 아파서 그렇다고 말했는데도 친구들이나 선생님·친척들은 잘 잊어버려요. 자기 일이 아니니까 그렇겠지요. 그래서 자꾸 저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봐요. 왜 못하냐? 왜 안 되냐? 왜 그렇게 하는 거냐? 진짜 안 보이는 거냐? 그런데 저도 잘 보이면 안 그러지요. 안 보이니까 그러는 건데 자꾸 그러면 속이 상해요.

친구들 중에는 제가 안 보이는 걸 알고 일부러 저를 치고 가는 아이들이 있어요. 뒤에서 흉을 보거나 이상하다고 말하는 소리도 다 들려요. 장애가 있거나 자기보다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는 건 잘못하는 일이에요. 도와주고 잘해주는 친구도 있지만 가끔씩 괴롭히는 친구도 있어서 힘들었어요."

▲ 한국실명예방재단에서 연 겨울 1일 캠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 혁이. ⓒ 김혜원

혁이는 검은색과 회색의 대비나 무채색의 대비를 구별하지 못한다. 회색 바닥에 검은색 소파나 의자가 놓여 있을 경우 소파와 바닥을 구별할 수 없다. 계단의 경우도 같은 색인 경우 원근감과 입체감이 없이 평평한 바닥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곁에서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의자에 앉을 수도, 계단을 내려갈 수도 없다.

"엄마는 계단 손잡이로 저를 데리고 가서 계단이라고 설명해주고 의자가 있으면 의자라고 말해주고 손을 잡아 주지만 다른 사람들은 설명하지 않아요. 제가 집으로 가는 길도 찾아가고, 책도 보고, 지하철 같은 것도 구별할 줄 아니까 보이면서 안 보이는 척(?)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보이는 게 다 달라서 그래요. 색깔로 구분해서 보이는 것도 있고 형체로 알아보는 것도 있고, 빛 때문에 보이는 것도 있고 그래요. 어떤 때는 더 맑게 보이기도 하지만 요즘엔 점점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안 보이는 것을 보려고 하면 눈도 많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요. 그래서 책 읽기가 힘들고 책을 안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저시력 장애인도 축구를 할 수 있어요

잘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바깥 놀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혁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의외로 축구란다. 축구를 좋아해서 새벽까지 축구 중계를 보곤 하는데 최근에는 보는 것 말고도 직접 운동장을 뛰는 축구를 시작했다고.

"시각장애인 축구단은 기구를 쓰고 하잖아요. 그건 전혀 안 보이는 사람들이 하는 거고요. 저같은 저시력 장애인도 축구를 할 수 있어요. 흐릿하게 보이거나 조금만 보이지만 말이에요. 넘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날아오는 축구공을 보지 못해서 얼굴이나 몸에 맞을 때도 있지만 그건 괜찮아요. 조금 아파도 참을 수 있어요.

▲ 스마트폰 크기의 독서확대기와 로봇 확대기 등 특수 기구를 이용하면 일반학교 수업도 가능하다. ⓒ 김혜원

외국에는 저시력 장애인 축구단도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없다고 해요. 초등학교 때 학교 친구들과 축구를 해봤는데 그건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친구들 공은 너무 빠르고 너무 잘해서 제가 낄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는 날아오는 공에 많이 맞았어요.

요즘은 지적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데 거기서는 잘할 수 있었어요. 공도 느리고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찼는지 소리로 알려주니까 어느 정도 따라가요. 저는 빨간색이나 노란색 공은 볼 수 있어요. 형광색 공도 볼 수 있어요. 저시력 장애인을 위해서 운동장색과 공 색깔을 특별하게 만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지금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저시력 장애인 축구선수요." 

시각장애가 있는 혁이에게 축구선수의 꿈을 갖게 한 것은 바로 1년에 두 번씩 열렸던 저시력 장애인 캠프였다. 아무리 좋아해도 학교에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축구였다. 하지만 캠프에서는 달랐다. 눈에 잘 보이는 색깔과 크기를 가진 공으로 좋아하는 축구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축구선수가 꿈이라는 아들의 이야기에 엄마는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혁이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닌 여럿이 함께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혁이는 더욱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에 가면... 도움 줄 수 있는 친구 되고 싶어요"

"일반 학교에서 통합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혁이는 늘 제외되곤 했어요.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더욱 혼자가 됐고요. 가끔 학교에 들러 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늘 혼자였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도 기회를 주기보다는 그냥 혼자 두는 것이 아이를 보호한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고요. 선생님들도 시각장애에 대해 잘 모르시니까요. 전혀 안 보이는 것인지, 얼마나 보이는 것인지…. 또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잘 모르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혁이를 맹학교에 보내는 것을 많이 고민했어요. 물론 초·중·고등학교를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자라는 게 바람직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빨리 선택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맹학교에 가면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높은 선생님들이 계실 것이고, 수업을 도와줄 전문적인 기구들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비슷한 친구들이 있어서 의지가 될 것 같아서요."

혁이 역시 엄마의 말에 크게 동의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중학교에 가면 반장도 하고 싶고 전교회장도 하고 싶어요. 일반학교에서는 하기 어려웠지만 맹학교에 가면 그런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돕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요. 거기 가면 저처럼 다른 학교에서 조금 상처를 받고 온 친구도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도움이 돼줄 거예요."

인터뷰라는 말에 수줍어 말도 잘 못하던 혁이가 웃는다. 일반학교를 다니다 특수학교로 진학하게 된 게 두렵고 걱정도 될만하지만, 되레 그럴수록 더욱 환하게 웃어넘긴다.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축구도, 공부도, 캠프도, 봉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밝게 웃어 보인다.

안 보여서, 덜 보여서 할 수 없다는 건 오히려 비장애인이 가진 잘못된 선입견일 수 있다. 혁이는 강조한다. 안 보여서, 덜 보여서 못하는 게 아니라 기회를 주지 않아서, 기다려주지 않아서 못하는 것뿐이라고.  

저시력 청소년들을 응원하는 이유
흔히 시각장애라고하면 흰지팡이나 안내견의 도움을 받는, 실명한 사람들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에는 285만 명의 실명 및 저시력인이 있으며 그중 실명(전맹)인구는 39만 명, 중경증의 시각장애인은 249만 명으로 저시력인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시력은 수술이나 광학적 교정을 했음에도 좋은 눈의 시력이 0.05이상 0.3 미만이거나 시야가 주시점으로부터 10도 미만으로 일반적으로 학습이나 일상생활의 어려운 상태를 말합니다.

세상이 온통 부옇게 보이거나, 터널이나 원통을 통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거나, 보고자 하는 중심이 보이지 않고 주변만 보이거나 얼룩덜룩 검은 얼룩이 져서 보인다고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답답하고 가슴이 아플까요.

저시력인들은 외모상 특성이 없기 때문에 비장애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는 사람을 보고도 지나쳐 인사성이 없는 예의 바르지 못 한 사람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며 성격 이상이나 불안장애로, 성적이 자꾸 떨어져 성적 부진아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자신의 정체감을 찾고 정립해야 하는 시기에 저시력이라는 장애 속에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며 커 나가고 있는 저시력 중고생들이 있습니다. '안'보이는 것이 아니고 '덜'보이는 것뿐인데 많은 것으로부터 소외되고 제한되는 아이들입니다. 보이는 것이 10%라고 해서 능력도 10%는 아닙니다. 다만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입니다.

<조금 덜 보여도 괜찮아. 힘을 내 친구야>는 '덜' 보이는 청소년들의 스토리를 통해 저시력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며 그것을 통해 저시력 청소년들의 꿈을 응원하고자 합니다.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