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60살 노가다'가 150만 원 쾌척한 까닭

10만인 리포트

이 사람, 10만인

"동정의 눈빛 그만, 다가오면 찌를 거라고"
[이 사람, 10만인] <소년원의 봄> 시집 출간한 시인 조호진

15.12.31 16:21 | 글:김병기쪽지보내기|편집:손병관쪽지보내기|영상:정대희쪽지보내기

▲ <소년의 눈물> 후원자에게 보낸 <소년원의 봄> ⓒ 조호진
<소년원의 봄>(도서출판 삼인). 가끔 막걸리를 함께 섞어 마시던 그가 시집을 냈다. 아주 오랜만에 펴든 시집을 몇 장 넘기다가 난, 숨이 멎었다.

혼자
푸르면
숲이 될 수 없다.

(조호진 시인의 '숲' 전문)

진리는 한 문장이다. 단순명쾌하다. 이걸 압축한 건 기술이 아니라 시인의 삶이다. 혼자 발버둥을 치면서 온갖 곁가지를 쳐낸 뒤에 얻은 깨달음. 더불어 살겠다는 다짐이자 선언이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헐벗은 나무들. 하지만 희망 한 톨을 꽉 움켜쥔 사람들. 

탈출
       
조호진(55) 시인. 그는 이력부터 간단치 않다. 1960년 서울 영등포 피난민촌에서 출생했다. 1부 '시인의 삶'에 언뜻언뜻 어린 그의 그림자가 내비친다.

"어머니가 가출했다./아버지가 기다린 것은/아내보다 육성회비였다./육성회비 체납자인 아들은/수업 중에 교실에서 쫓겨났다./여관 조바로 돈을 번 아내는/남편 몰래 육성회비를 보냈지만/아버지를 찾아오진 않았다. 대신에/노점 단속반이 예고 없이 들이 닥쳤다/(중략)/아버지의 입이 돌아갔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리/다짐했는데 아버지처럼 입이 돌아갔다. 쉰둘이었다." (구완와사 1)

그와 나는 6호선 오목교역 앞에서 막걸리를 섞어 마셨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영등포 피난민 촌이 철거되며 이주한 안양천 뚝방 동네 판자촌, 겨울에는 칼바람을 간신히 피하는 거적때기 판자촌이 바로 오목교역 근처였다고. 그때 그는 가리봉에서 이주노동자 돕는 일을 했다. 시인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그냥 퍼준 건 밥이고/가득 퍼준 건 정입니다./산 목숨 버릴 수 없어 얻어먹는/식판 밥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집니다." (무료급식소에서 1)

육성회비 상습 체납 학생이었던 시인은 남도의 야간 공고를 졸업한 뒤 선원과 공사판 잡부, 프레스공으로 일했지만 갇혔다. 서울 구로공단 노동자와 날품팔이 노동 현장. 가난한 노동은 그를 한없이 옥죄었다.

"기습 한파가 몰아치면서/수도관과 계량기가 동파되고/지하 배관과 전선마저 얼어 붙었다.//얼어붙고 터지면서 일감이 생겼다./날품팔이 노동자들은 눈보라 몰아치는/길거리에 깡통 불 지피며 목장갑을 쬐는데/(중략) 얼어붙고 동파돼야 사채 이자를 겨우 갚을 수 있다/용대리 덕장 황태처럼 얼어붙어야 자식 급식비를 댈 수 있다/늙어버린 아내는 일당을 받아 들고 해진 웃음을 겨우 짓는다." (2009년 12월30일)   

절망

그는 절망의 끝에도 섰다. 열두 평 영구임대아파트 고층 베란다 앞. 그가 불법 거주했던 곳이다.  

"삶과 죽음은/한 발자국 차이/투신 베란다에서/위험한 희망을 보았다.//(중략)끝내, 살아/옆구리 찢어서/신장 나눠주고 산/그 사내를 나는 안다." (그 사내)

절망의 끝에서 날아오른 그 사내가 시인 조호진이다. 그는 얼굴도 모르는 25세 청년에게 자신의 신장을 대가 없이 내줬다. 다시 살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얻은 게 또 '희망 한 톨'.

그가 <오마이뉴스> 등 언론사 기자로 15년 동안 일하다가 사표를 낸 뒤 찾아간 곳은 가리봉이었다. 한 톨 희망을 주기 위한 길. 그곳엔 자화상 같은 이주노동자들이 많았다.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그리고, 불법체류자로 온갖 피해와 수모를 당하는 그들을 5년 가량 도왔다. 자기를 찾는 일이었다.

그는 또 다른 어린 자기를 돕고 있다. 시인의 연년생 형은 버리고 떠난 엄마를 원망하고 분노하다 거리 소년이 됐고 끝내 소년원생이 됐다. 지금 그는 아픈 소년범과 함께 있다. 그 속에서 2부 '소년원의 봄'이 나왔다. 

"10호 처분을 받은/너는 억울하다고 했다./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낸/너의 아버지는 판사에게/선처를 호소했지만 돌아온 것은/무능한 아비의 등 굽은 눈물이었다./너를 소년원에 보내고 객지로 떠나/공사판 떠돌이로 저녁을 술로 때운/너의 아버지는 면회도 가지 못한 아비를/용서해라 미안하다 술에 취해 울다 잠들고/까까머리 소년수인 넌 신입방이 춥다고 했다./(중략)이불 덮어쓰고 덜덜 떨면서 홀아버지를 그리는 소년원의 겨울" (10호) *10호는 장기(2년 이내) 소년원 송치처분으로 소년범 중에 가장 무거운 처분이다.

▲ 가출청소년이 아니라 탈출청소년입니다. 상당수 청소년들은 생존을 위해 가정을 탈출합니다. ⓒ 신림청소년쉼터

연쇄 방화범

그가 만난 소년범은 부모에게 버림받고 해체된 가정의 아이들이다. 소년원과 교도소에 갇힌 그들에게 영치금이 있을 리 없다. 연쇄방화범으로 잡힌 아이는 '팔순 정 씨'의 손자였다.

"팔순 정 씨 노인연금/20만원 중에 10만원은/절도죄로 구치소에 갇힌/2072번 손자 영치금이다/(중략)나 떠나면 저놈 영치금 누가 넣어주랴/생존연금 절반 떼어낸 독거노인의 눈물" (영치금)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돕다가 숙명처럼 만난 어린 연쇄방화범. 시인이 소년범을 돕는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매일 탈옥을 꿈꾸는 아이들. 그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엄마를 그리워했듯이.

소년의 눈물이
간밤에 탈옥했다.

굳게 닫힌
소년원 철문을 따고
철조망과 담장을 넘어

잡혀온 겨울에도
겨울이 한 바퀴 돌아도
면회조차 오지 않는 여자
버리고 떠난 엄마를 찾으러

(조호진 시인의 '엄마' 전문)

소년원의 겨울은 길다. 춥고 배고프다. 그들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떤 사람들이 동정과 사랑을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소년범들과의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가시밭길이었다.

"1만6천 개의/가시를 두른 것은/찌르려는 게 아니랍니다.//사랑한다고 다가와/불쌍하다며 다가와/하도 찌르고 따돌리고 놀려서/그만 당하려고 두른 가시랍니다.//제발 다가오지 마세요./동정의 눈빛 좀 그만하세요./안아주는 척하다 가버릴 거잖아요.//됐어요, 그냥 놔둬요/다가오면 찌를 거라고 씨팔.//접-근-금-지" (고슴도치)

눈물

조호진 시인은 3부에서 20천년 동안 버림을 받았던 '눈물의 예수'와 만난다. 구원자가 아니라 아주 낮고 누추한 움막에 사는 '눈물의 사내', 그는 "2천년 동안 눈물만 흘렸다". 그래서 때론 불같이 화를 낸다. 빼앗긴 자들, 쫓겨난 자들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예수의 모습에 절규한다.

"하나님이 진짜 있냐고/하나님이 있다면 말이 되냐고/지옥 같은 이 세상이 말이 되냐고//비정규직 해고 노동자가/복직에 목숨을 걸고 엄동 새벽에/공장 굴뚝 오르는데 뭐하고 계시냐고//(중략)귀먹은 하나님/파업 중이신가요?/폐업을 하셨나요?" (주여, 뭐하십니까?)

방방곡곡에 불을 켠 붉은 교회 십자가도 '유곽의 불빛 혹은 공동묘지 불빛'으로 묘사하면서 "제 몸도 간수하지 못하면서 감히 누굴 구원하겠다고" 날 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눈물의 힘'을 믿는다. 육성회비 체납 학생의 눈물과 무료급식소에서 줄선 가난한 이들이 흘리는 눈물. 그리고 매일매일 탈옥을 꿈꾸는 소년범과의 눈물의 연대. 그건 주먹보다 세고, 이념보다 강하고, 권력보다 담대하기에 "눈물의 깃발을 앞세우라"고 말한다. 2천 년 전, 예수가 흘린 위대한 눈물처럼.

▲ 2015년 12월 14일 가톨릭청년회관 니꼴라오홀에서 열린 <소년원의 봄> 북 콘서트에서 '아픈 사람을 위한 발라드'라는 제목으로 시와 인생 이야기를 하고 있는 조호진 시인 ⓒ 조호진

조호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소년원의 봄>은 세상 밖으로 나와도 갈 데가 없는 소년범들의 일터이자 치유센터인 '소년희망공장' 건립에 종잣돈을 내준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리워드(선물)이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한 그는 지난 7월부터 4개월 동안 '10만인리포트'와 <다음카카오>의 뉴스펀딩에서 '소년의 눈물'을 18회에 걸쳐 동시 연재했다. 그 결과, 2899명이 후원에 참여하면서 69,237,000원을 모금했다. 이 시집은 후원자의 리워드로 특별 출간됐다.

사회적협동조합 방식으로 세워지는 <소년희망공장>은 2016년 3월 경기도 부천에 세워질 예정이다. 소년범을 비롯한 위기청소년들은 이곳에서 희망의 빵을 생산하고 매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곳은 단순히 빵을 만들고 파는 곳이 아니라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픔을 치유하면서 푸르른 나무로 성장하도록 돕는 게 목적이다.

"혼자 푸르면 숲이 될 수 없다."

그는 이제 눈물의 숲을 만들 곳을 찾았다. 

▲ 조호진 시인의 소년의 눈물을 읽으면, 가슴이 찡하다. 경찰과 검찰, 법원은이소년의 죄를 주목할때 그는 우는 소년들과 같이 울었습니다.그는 따뜻한 시인이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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