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넉달 간 노숙투쟁, 박근혜가 탄핵됐다

10만인 리포트

행복을 찾아가는 꿈틀버스

강의실은 시장, 교수님은 상인?
[꿈틀버스 6호차-서울시 성북구] 사람을 품은 시장, 정릉신시장에 가다

15.12.31 21:10 | 글:김예지쪽지보내기|편집:최은경쪽지보내기

지난 12~13일 서울시 성북구로 꿈틀버스 6호가 달려갔습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탑승객들은 성북구서 아파트 전기요금을 낮춰 경비원 임금을 높인 석관두산아파트, 주민참여가 활발한 새날도서관, 마을이 함께하는 정릉시장, 이웃을 만나는 장수마을, 대안교육공간 민들레, 주민이 만드는 방송 성북마을미디어지원센터 등을 차례로 누비며 마을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잊고 지내던 사람을, 외면했던 이웃을 만났습니다. 공동체 복원의 희망씨앗이 싹 트고 있었습니다. [편집자말]
▲ 박형진 정릉신시장 사업단 부단장은 “정릉신시장은 일반 시장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릉신시장에는 전통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골 구조물, 아케이드가 없다. ⓒ 정대희

고소한 반찬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상인은 "오늘 물건이 좋다"며 손짓하고, 손님은 저마다 장바구니를 든 채 잰걸음을 한다. 많은 사람이 오가진 않았지만, 시장의 저녁은 활기찼다. 지난 12일, 꿈틀버스 6호차가 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신시장을 찾았다.

"손님들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여기 시장 어디예요?' 하고 물어요."

시장 초입, 허름한 상가 건물 2층에 마련된 정릉신시장 사업단 사무실에서 꿈틀버스단을 맞은 박현진 정릉신시장 사업단 부단장은 "정릉신시장은 일반 시장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릉신시장에는 전통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골 구조물, 아케이드가 없다.

대신 시장 안으로 정릉천이 흐르고 시장 가운데에선 북악산이 보인다. 가게가 빽빽하게 모여 있지 않은 것도 정릉신시장의 특징이다. 정릉신시장은 주택가 근처에 자리 잡았다. 주거지와 상점이 묘하게 어우러진 구조다. 일반적인 전통시장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처음에 신시장 사업에 선정되는 과정에서도 '이곳이 시장 같지 않은데, 정말 활성화 될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

▲ 정릉신시장이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평범한 동네장에 ‘신시장’이라는 이름이 붙고 변화하게 된 건 지난 2014년부터. 서울시의 서울형 신시장 육성 사업의 일환이다. ⓒ 정대희

정릉신시장이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평범한 동네장에 '신시장'이라는 이름이 붙고 바뀌기 시작한 건 지난 2014년부터. 서울시의 서울형 신시장 육성 사업의 일환이다. 서울시는 정릉시장을 포함해 신창시장, 길동시장, 신원시장, 길동시장 등 5개의 시장을 사업 대상으로 택했다.

이전까지 지자체가 이끄는 시장 육성 사업은 외관을 꾸미는 하드웨어 중심이었지만, 서울형 신시장 육성 사업은 달랐다. 사업단은 시장의 외관을 정비하고 일시적으로 손님을 끄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지역이 지속적으로 어우러지는 것을 원했다. '시장을 활성화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부터 고민했다.

"'활성화'의 의미가 본래 기능을 살려내는 활동이더라고요 '시장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나', '시장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살려내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에 대해 초점을 맞췄어요."

사극 드라마만 봐도 시장의 역할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장은 소비자와 판매자가 함께 교류하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시장은 동네 주민들이 모이고, 소문이 돌고, 마을의 이야기가 결집되는 하나의 '미디어'다. 남사당패가 신나게 공연을 펼쳤던 곳도 시장이다. 시장은 소비의 공간이자 미디어, 그리고 문화예술 활동 무대다. 사업단은 시장의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했다.

"우리가 현재의 시장만 바라봐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탄생한 정릉신시장의 브랜드 네임이 '정릉 마을인시장'이다. 박 부단장은 "마을이면서 시장이고, 시장이면서 마을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시장 상인의 상당수는 정릉 거주민. 이들이 주민으로 30, 40년을 살아온 마을을 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사업단의 목표였다.

▲ 시장은 소비의 공간이자 미디어, 그리고 문화예술 활동 무대다. 정릉신시장 사업단은 시장의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했다. ⓒ 정대희

청년들의 실험실이 된 정릉신시장

사업단은 지난해부터 여섯 개의 사업을 시작했다. 상인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시장의 발전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큰상인포럼', 청년들이 시장을 실험 무대로 활용하는 '시장살이 발전소', 정릉시장 안에 흐르는 정릉천 옆에서 열리는 '개울장', 시장의 이야기와 상품을 알리는 매체 '시장사용설명서' 발행 등이 그것이다.

이중에서도 시장의 본래 기능을 잘 살린 '개울장'은 상인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외부인에게도 인기가 좋다. 블로거들도 개울장을 찾는 단골 손님이다. 개울장에선 판매뿐만 아니라 각종 체험행사, 문화예술 공연이 펼쳐진다.

본래 매달 둘째 주, 넷째 주 토요일에 상인회에서 진행하던 토요장터를 변경한 것인데, 이전과 분위기가 다르다. 토요장터를 할 때는 차를 막고 장터를 열다보니 민원이 많았다. 이름을 바꾼 뒤, 한적한 정릉천 옆길로 장소를 옮기면서 작은 마을장은 주민들이 즐겨 찾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개울장을 시작한 건 주민들이 시장의 정서를 추억으로 느낄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어요. 이 공간을 주민들이 좀 더 많은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인식시키고 싶었지요."

주민들이 개울장에서 복닥복닥한 시장 고유의 맛을 느낀다면, 지역 청년들은 시장에서 창업 모티브를 얻어간다. 정릉동 인근에는 국민대학교, 서경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중 서경대학교 학생들은 개울장 서포터즈로 활동한다. 국민대학교의 창업지원단은 정릉신시장 사업단과 MOU 협약을 체결했다. 국민대의 한 수업에선 정릉신시장을 기반으로 '기업가정신'을 공부한다.

"지역에 있는 청년들에게 시장이 미래를 보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상인, 주민, 청년, 문화예술가가 함께 활동하는 공적인 공간, 사회적 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만들자는 생각이었지요."

▲ 정릉동 인근에는 국민대학교, 서경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중 서경대학교 학생들은 개울장 서포터즈로 활동한다. 국민대학교의 창업지원단은 정릉신시장 사업단과 MOU 협약을 체결했다. 국민대의 한 수업에선 정릉신시장을 기반으로 ‘기업가정신’을 공부한다. ⓒ 정대희

▲ 정릉동 인근에는 국민대학교, 서경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중 서경대학교 학생들은 개울장 서포터즈로 활동한다. 국민대학교의 창업지원단은 정릉신시장 사업단과 MOU 협약을 체결했다. 국민대의 한 수업에선 정릉신시장을 기반으로 ‘기업가정신’을 공부한다. ⓒ 정대희

시장이 사람에게 다가가자, 새로운 꿈틀거림이 생겨났다. 정릉신시장의 한 떡집은 지역의 어린이집에 떡 만들기 체험 재능기부를 하고, 그 이후 판매자와 소비자라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다. 시장을 누비며 피부에 와 닿는 창업 공부를 한 젊은 청년들은 시장 안에 '손바닥가게'(숍인숍)를 열었다.

정릉신시장 사업은 내년이면 3년차에 접어든다. 이제껏 진행해온 사업이 많지만,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많다. 스토리텔링을 접목시킨 상점가 이미지 변신 프로젝트, 상품 발굴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박 부단장은 "3년차에는 그간의 사업을 기반으로 한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사업단이 해체되더라도 거버넌스를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시장엔 사람을 담아야 한다"는 사업단의 철학을 이어간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