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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고신을 만나다

"회사 근처서 단체로 자면 해고, 말이 되나"
[구고신을 만나다 ⑥]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②

15.12.22 15:24 | 조혜지 쪽지보내기|이희훈쪽지보내기

2003년 경기도 부천시 까르푸(현 홈플러스) 중동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내 최초 '노동 문제' 드라마 <송곳>이 막을 내렸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노동 문제냐'라고 말하는 대중에게 노동 문제의 현실을 고발하는 주인공 구고신의 대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구고신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구고신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외침을 세상에 전달한다. [편집자말]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인터뷰 1편에서 이어집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요.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JTBC 특별기획 드라마 <송곳> 6화 중에서

<송곳> 속 구고신은 대량 해고 위기에 놓인 푸르미 마트 노동자들을 모아 놓고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수년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대가를 '해고 통보'로 받은 노동자들은 비로소 그들이 회사로부터 인간이 아닌 한 조각 부품으로 존재했음을 자각한다.

지난 16일 만난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과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센터 소장은 수십 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며 이를 목격해 왔다. 평생 몸바쳐 일한 회사로부터 버림받은 이의 분노를 명확하고 날카롭게 다듬어 법정에 세우거나, 노동조합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짓기도 했다. 문재훈 소장은 노조를 만든 이들에게 늘 "인간이 된 걸 축하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그가 말한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다.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오른쪽)과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 ⓒ 이희훈

"노동법은 최저법이다. 노조를 만들어야 인간 존엄성의 최저 기준이 형성되는 거다. 노조를 못 만들고 가입하지 않았다면 아직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노조 조직률이 10%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은 그래서 더 막막하다. 이 막막함은 두 구고신이 박근혜 대통령표 '노동개혁'을 바라보는 눈이 매서운 까닭이기도 하다. 노동계로부터 '개악'이라 비판받는 새로운 노동정책 적용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두 사람이 기다리는 것은 송곳 같은 노동자들의 분노였다.

'바위' 앞에 선 노동자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 이희훈

"우리 나라에서 가장 민주화가 덜 된, 봉건적인 곳은 자본가 머릿속이다."

최근 신입사원과 20대 직원에게 희망 퇴직을 요구해 큰 논란을 빚은 두산 인프라코어의 이야기를 꺼내자 문 소장이 한 말이다. 청·장년을 가릴 것 없이 일자리 안정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2016년 새해를 맞이하는 노동자들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

일부 노동계는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파견직 허용 범위 확대, 저성과자 해고,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등의 내용을 담은 박근혜 대통령의 노동개혁 정책에 우려를 넘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종강 학장은 과거 취업 규칙을 악용해 노동자를 해고하려 시도했던 사례를 들려줬다. <송곳>에도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한 버스 회사 취업 규칙에 불이익 조항으로 '회사 인근에서 숙박을 단체로 하는 자는 해고한다'가 있었다. 회사 근처에서 잔다고 해고 되는 게 말이 되나. 그래서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사장에게 따져 물으니, 몇 해 전 기사들이 회사 근처에서 숙박하면서 (회사) 탈세 사실을 수집해 고소했다고, 그래서 5억 원을 손해봤다고 하는 거다. <송곳>에 보면 구고신이 이 말에 기가 차 '그럼 대실은 됩니까'라고 물어보는 장면이 바로 이 이야기다."

하 학장은 보다 엄격했던 과거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조건을 설명하면서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기존의 노동 조건보다 저하된 새로운 취업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판결을 과거 몇 년 동안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관련 판결에서 취업 규칙 변경 적용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가 이뤄져 왔고, 이는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노동 조건이 저하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사측의 일방적인 취업 규칙 불이익 적용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제도적 안전 장치의 존재 이유다. 문 소장은 "취업 규칙을 내맘대로 쉽게 바꾸겠다는 박근혜표 노동개악이 그래서 무서운 거다"라면서 "지금도 징벌 조항이 400개가 넘는 취업 규칙을 더 (완화해) 바꾸겠다는 것이니 정말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도입에 대해서도 하 학장은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저성과자 해고를 만들 수 있다"면서 KT의 저성과자 해고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안내 업무를 하던 여성 노동자를 전신주에 태워 가설 업무를 시켰다"면서 "저성과자로 분리돼야 하는 사람이 실제 업무 평가가 높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사) 지침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문 소장도 사무실 출구에 책상과 걸상을 놓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라"라고 지시해 저성과를 조장한 사례를 들면서 "(그 노동자에게) 견뎌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그런 조치는) 고문과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이다. '헬조선'의 '헬'이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을 쥔 당신에게

"세상 진짜 건조하다 건조해." - JTBC 특별기획 드라마 <송곳> 1화 중에서

길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는 사람을 무심하게 지나는 행인을 보며 구고신이 한 마디 툭 던진다. 이 세상의 건조한 시선은 특히 '노동자'라는 단어 앞에서 더욱 촉촉함을 잃는다. 하종강 학장은 한 중학교에 특강을 하러 갔다가 청소년들의 노동인식을 마주했다.

그는 "노동자는 '□이다'라는 질문에 빈칸을 채우도록 했다. 아이들이 주로 쓴 것은 '노동자는 거지다' '노동자는 힘들다' '노동자는 득이 없다' '노동자는 동남아다' 이런 (잘못된) 인식이었다"라고 말했다.

한숨을 내쉬는 기자에게 하 학장은 다른 이야기를 내놨다. 그는 "'노동자는 우리 아빠다' '노동자는 미래의 나다'라고 쓴 학생도 몇몇 있었다.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많지만 그래도 희망을 약속할 수 있는 인식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인식이 점차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 ⓒ 이희훈

"강물이 흘러가는 방향이 있는 것처럼 인류 역사도 변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어려운 시기를 만났기 때문에 정체돼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오늘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집에 가다 붙잡혀 고문 당하고 퇴학 당할까 걱정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이렇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하는가의 문제이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 소장은 노동자 스스로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노동자에게 '인생 대박'이 아닌 '인생 역전'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품어 보라고 조언했다. "내가 저항하지 않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으면 누구도 지옥에서 구해줄 수 없다"면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는 덧붙여 20, 30대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길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노동은 사실 축제다. 즐겁게 먹고 마시기 위해 일하는 거다. 노동에는 3요소가 있는데 생각하고, 만들고, 향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생각도 고용주가 하고 내가 만든 일의 결과물도 거의 다 가져간다. 노동이 지긋지긋해지는 거다.

노동이 즐겁고 보람있는 것이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나의 일터가 돼야 하는데 도망갈 생각부터 하게 만든다. 이걸 역전하려면, 노동과 노동조합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 노동법 공부 한번 해보시라. 인권 최저 기준의 중심이 노동권이다. 사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공부해야 한다. 짐승 기업이 아니라 사람 기업을 경영하려면 말이다. 옛날엔 한자가 많았는데 요즘엔 한글로 쉽게 쉽게 잘 나와 있다." 

'송곳'을 기다리는 구고신의 자세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오른쪽)과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 ⓒ 이희훈

변화하는 노동시장 구조 앞에서  가장 바빠질 사람들은 아마 노동자들의 위기와 두려움을 가장 먼저 간파할 한국의 수많은 구고신일 것이다.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저녁 시간부터 바빠지는 노동상담소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를 맞는다.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기도 한다.

자연히 가족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종강 학장은 가족으로부터 '이대로는 살 수 없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까지 받았다. 2박 3일을 상담소에서 보내고 새벽 4시에 집에 들어온 날이었다. 하 학장은 "(노동운동가는) 가정에 충실하면 불성실한 활동가가 되고, 내 입장만 생각하면 가정이 불행해진다"면서 "(노동운동가는) 항상 이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난다"고 말했다.

팍팍한 삶이지만 상담과 교육을 통해 눈빛이 바뀌어 가는 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구고신은 가슴이 뛴다. 아래는 문재훈 소장의 말이다.

"상담 받으러 처음 오시는 분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게 눈이다. 너무 아파서 흔들리는 눈. (그중) 어떤 사람들은 말려도 끝까지 가는 사람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싸우기 위해) 중앙노동위원회에 가는 사람들은 열 중 하나다. 그 후 행정법원에 가는 사람은 거기서 열 중 하나고. 대법원까지 가는 사람은 천 명 중 하나다. 끝까지 싸움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훌륭한 거다. 1994년부터 했으니 22년 정도 됐는데, (긴 싸움을 거쳐 오면서) 정년 퇴임한 노동자도 있다. (그 분들이랑은) 이젠 인생 상담을 한다."

법적 문제를 다루다 보니 가끔 노동자들의 법리적 문제까지 해결하기도 한다. 하 학장은 "노동자가 이혼을 해도 노동문제, 보증금을 떼여도 노동문제"라면서 "이혼 심판 청구도 많이 해봤다. (보증금을 떼인 노동자의 집주인 집에) 가압류 딱지를 붙인 적도 있다"고 말했다.

문 소장은 노동자의 가슴에 맺힌 것을 풀어주려고 한다는 점에서 노동상담은 "무당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1993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노동자를 맞으며 지내온 날을 떠올리며 농담 한 토막을 덧붙였다.

"옛날 이야기 중에 피묻은 빗자루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도깨비가 된다고 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긴 (투쟁의) 흐름에 함께 하다 보니 일종의 영성도 얻는 것 같다. 하하. 그래서 행복한 것 같다. 물질적인 요소는 모르겠지만, 생애 행복도는 우리 같은 사람이 백 번 나을 거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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