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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고신을 만나다

"가족이 화목해지는 노동조합, 정말 가능하다"
[구고신을 만나다 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①

15.12.22 15:10 | 조혜지 쪽지보내기|이희훈쪽지보내기

2003년 경기도 부천시 까르푸(현 홈플러스) 중동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내 최초 '노동 문제' 드라마 <송곳>이 막을 내렸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노동 문제냐'라고 말하는 대중에게 노동 문제의 현실을 고발하는 주인공 구고신의 대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구고신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구고신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외침을 세상에 전달한다. [편집자말]
▲ 만화 속 실제 공간 모티브가 된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 창비

▲ <송곳>에서 구고신이 노동법을 가르친 실제 배경이 된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의 모습. ⓒ 이희훈

16일 오후 4시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 층에만 십여 곳의 일터가 있는 낡은 아파트 상가. 입구에 있는 중국집의 달큼한 춘장 냄새를 뒤로 하고 3층 꼭대기 층에 다다르자 '남부 노동 상담 센터'라 새겨진 나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좁은 사무실 오른편 66㎡(20평) 남짓한 넓이의 노동조합 교육장에서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장이 나왔다. 1994년부터 구로공단 근처에 뜻맞는 이와 상담소를 열고 노동자를 맞아온 그였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바닥에 쌓여 있는 서류들, 화이트보드 칠판, 앉은뱅이 책상과 의자들. 교육장 공간은 <송곳> 속 부진노동상담소와 똑같이 닮았다. 장판 바닥은 열기가 들어오는 곳이 드물었다. 문재훈 소장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 화초도 그대로 나오죠? 이 공간 그대롭니다. '싱크로율' 백 퍼센트."

<송곳>의 탄생, 그 옆에 구고신이 있었다

기자가 신기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사이,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이 상담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쭉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그다. 문재훈 소장이 일어나 그를 맞았다. "여기 따뜻한 데 앉아요. 거긴 낡은 의자고, 대학로 때 단식하면서 썼던 의잔데 (여기로) 가져온 거야." 오랜만에 마주했음에도 어제 만난 이웃처럼 인사를 나누는 둘. 노동운동가라는 점을 제외한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최규석 작가'로 다시 좁혀진다.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 이희훈

하종강 : "한 번은 최규석 작가 작업실에 가서 만화가들 밥을 한 번 샀어. 다른 구고신도 많은데 하종강이 구고신이라고 (언론에) 소개되는 게 미안하니까 밥을 사겠다고 했지. 그런데 최 작가가 이렇게 말하더라. '그걸 왜 우리한테 삽니까, 다른 구고신들한테 사야지'라고."

▲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 ⓒ 이희훈

문재훈 : "최규석 작가가 <송곳> 전에 <100도씨>라는 작품을 만들 때, 내게 취재 온 적이 있었어. 그때 우리 노동 쪽에도 이야기도 많고 감동도 있는데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지. (최 작가가) '어디엘 가면 될까요' 하길래 그날 기륭전자 (노동) 문화제에 같이 갔어. 거기 있던 금속노조 젊은이들이 '혹시 최규석?' 하면서 사인을 받더라고. 난 (처음에)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강풀인가?' 했는데... 유명하긴 한가보다 했지."

문재훈 소장과 하종강 학장은 최규석 작가가 <송곳>을 구상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자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극중 구고신의 교육 장면, 젊은 날 구고신의 기억 등 캐릭터 설정부터 상담소 풍경, 명대사, 제목의 모티브까지 이 두 사람의 '귀띔'이 작품 곳곳에 스며 들었다. 문 소장은 '송곳과 정'이라는 제목을 최규석 작가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문재훈 : "취재만 2006년부터 한 거니까. 처음 그 친구(최규석 작가)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하면서, 노조위원장이 (청소년들에게) 직업적 꿈이 되는 그런 만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하종강 : "(최규석 작가가) 작업하는 걸 보면 정말 완벽주의자다. 진압하는 경찰의 심리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 경찰도 소개 받아 밤새 이야기 듣고... 그래 봐야 만화에는 두세 컷 나왔다. 구고신 얼굴 선 한 줄, (그 선을) 수십 번 그었다가 한 선만 살아남더라."

하종강 학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규석 작가는 집요할 정도로 묻고 또 물었다. 그 물음에 두 사람은 여지없이 입을 열었다. 다신 떠올리기 싫을 법한 엄혹한 시절의 시간부터 30여 년간 노동운동가로 살며 만난 수많은 송곳을 기억이 닿는 데까지 모두 그에게 들려줬다. 이를 바탕으로 <송곳>의 칸칸에 그려진 장면의 '실제 이야기'는 만화보다 더 만화 같았다. 만화였으면 더 좋았을 법한 시리고 아픈 이야기도 있었다. 

[장면 #1] "너 북한 언제 갔다 왔어?"

▲ JTBC <송곳> 중 한 장면. 젊은 날 자신을 고문한 담당 형사와 마주한 구고신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만다. ⓒ JTBC

"어색해 보이지 않았냐. 웃지 말고 욕을 할 걸 그랬나. 저 사람은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저 사람은 내가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해줄 때까지 고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난 저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 JTBC 특별기획 드라마 <송곳> 10화 중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형사가 일터 건물 경비가 되어 나타난다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던 구고신은 이 순간 단박에 무너져 내렸다. 이 에피소드는 하종강 학장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함께 고초를 겪은 대학 후배의 건물에 수십 년 후 경비원으로 들어온 그. 후배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그를 마주한 순간 그는 "저 놈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곳> 구고신을 만나다' 연재를 진행하면서 만난 노동운동가 몇몇은 "어쩌면 고문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꺼내곤 했다. 독재 정권에 맞서다 길거리에서, 서점 한 구석에서 소리 없이 끌려가 "너 북한 언제 갔다 왔어?(<송곳> 웹툰 장면 중 일부)" 같은 영문 모를 질문을 받으며 고문을 겪은 그들이었다(관련 기사 : "자기 연봉 깎으며 '노조하자'는 사람도 있다").  

"사실 (그는) 절 고문한 사람이 아니라 잡아간 사람이다. 당시 잡아가는 것까지는 담당 정보과에서 하고 고문은 대공분실 고문관들이 했다. 고문을 당하고 나서 지쳐 떨어져 있으면 와서 담배도 넣어주고, 자판기 커피도 뽑아주는 놈들이 담당관이다. 한 놈은 어르고 한 놈은 뺨을 치는 역할이다."(하종강)

문 소장도 과거 보안수사대에 끌려가 세 차례 고문을 당한 바 있다. 그는 고문이 정보를 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성을 죽이고 파괴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문 소장은 "차라리 '내가 개다, 너도 개고. 우리 그냥 웡웡 짖고 말자' 하면 견디지만,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견디지 못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에서 아들의 수학 성적을 걱정하며 공부법을 묻자 고문 담당관에게 성심껏 설명하는 젊은 구고신의 모습도 실화다. 하 학장이 떠올린 이 쓰린 순간은 "난 국가한테 고문 받은 것이지 사람한테 받은 게 아니다"라는 <송곳> 속 구고신의 말을 곱씹게 했다.

"날 고문했던 이가 (고문을 잠깐 멈췄을 때) '청평 관할 경찰서에 있을 때 수상 스키를 탔는데 굉장히 잘 탔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럼 나는 최대한 맞장구를 치면서 '여기서 인간적으로 친해지면 고문의 강도가 약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송곳>에 '진심으로 그 놈 맘에 들고 싶었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정말 그랬다."(하종강)

[장면 #2] "왜 파업했다고 뭐라 그래요"

▲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 이희훈

하종강 학장은 인터뷰 중간 중간 자신이 30여 년간 노동운동을 하며 만나 왔던 '송곳'을 떠올리다 눈물을 보였다. 그는 노동상담을 하며 가장 곤혹스러웠던 순간을 '내가 겪지 못한 고통을 겪은 노동자가 나를 찾아왔을 때'라고 상기했다.

주방 용품을 만드는 산업체에서 프레스 사고로 손가락 두 개를 잃고 산에 올라가 목을 매려다 마지막 길로 상담소 문을 두드린 40대 중반의 가장과 마주 앉았을 때 그는 이 상담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딸 둘을 둔 그 가장은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딸들이 우리 아빠 실패한 인생이라고 보면 어떡하냐, 딸들 보기가 괴롭다'고 그에게 말했다.

"젊은 놈이 노동법 좀 공부했다고 앉아서... 그 사람 앉혀놓고 상담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노동) 상담하는 사람은 (노동자에게) 진실로 도움을 주려면 삶에 대한 깊은 성찰 같은 게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없겠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자신보다 어린 노동자에게 부끄러움을 느낀 적도 있었다. 1990년 서울 구로구 전자 공장의 20대 초반 여성 노동자들이 갑자기 집단 월차 휴가를 내고 파업해 한꺼번에 해고됐다. 파업을 결행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 아니어서 의아했지만 하 학장은 스스로 그들이 대답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끝내 이유를 말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대체 왜 파업을 했냐' 캐물었다.

그때 한 노동자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현대중공업, KBS에 공권력이 투입되면 우리 총파업하기로 결의했잖아요." 당시 관련 연대 파업을 결행한 조직은 거의 없었던 상황이었다. 하 학장은 "근데 이 사람들이 그걸 한 거다. 말을 못하겠더라. 부끄러웠다. (노동) 상담하는 사람들은 항상 부끄러움을 통해서 배운다"고 말했다.

[장면 #3] '허벌나게 조져불자'

▲ JTBC <송곳> 중 한 장면 ⓒ JTBC

하루 아침에 비정규직이 된 버스 정비사 차성학. 극중 부진노동상담소의 행동 대장이자 구고신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그의 티셔츠 등판엔 언제나 '허벌나게 조져불자'라는 문구가 있다. 노동조합을 해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측에 맞선 그의 자세를 상징하는 말이다. 문재훈 소장은 이 캐릭터가 실존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버스 정비사들과 노동상담을 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연봉제를 빙자한 계약직으로 바뀌는 상황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들을) 교육을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이 노조를 한다는 건 인간의 기초적인 존엄을 존중받겠다는 거다, 그런데 집에 가서는 당신 아내나 자식들 존중하냐. 자기 사장한테는 뭐라고 하면서 집에 가선 술 먹고 욕하고 깽판 부리면 (사장과) 뭐가 다른가'라고."

그의 질문 끝에 변화를 보인 두 사람이 있었다. 조직 내에서도 '개차반'이라고 소문난 이들이었다. 문 소장은 노동교육을 하면서 가장 특별했던 경험은 노동자가 조직의 노예에서 인간으로 변화하는 작은 순간들을 목격할 때라고 했다. 그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 "'(노동조합) 교육 받았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싶더라, 나부터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 뒤로 맨날 '얼른 가라'고 쫓아냈다고 하더라. 나부터 개판이 아닌 사람답게 살아야겠구나 느끼는 순간 모든 게 바뀐다. 가족이 화목해지는 노동조합, 이거 정말 가능하다니까." ⓒ 이희훈

"갑자기 사람이 변하니 (두 사람의 아내가) 그랬다고 하더라. '당신 왜 그러냐, 미쳤냐'고. 그래서 '(노동조합) 교육 받았는데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싶더라, 나부터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 뒤로 맨날 '얼른 가라'고 쫓아냈다고 하더라. 나부터 개판이 아닌 사람답게 살아야겠구나 느끼는 순간 모든 게 바뀐다. 가족이 화목해지는 노동조합, 이거 정말 가능하다니까."

하종강 학장도 "노동조합 (교육을 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게, 술 적게 마시고 노름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라면서 "(한 노조원은) 표현을 이렇게 하더라, 노동조합이 아니면 우리가 언제 역사와 사회를 알았겠냐고"라고 말했다. 문 소장은 "(노동자의 이런 변화는) 상담하는 사람의 최고 즐거움이고 낙이다. 자기 삶이 당당해지기 시작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소장,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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