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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프로젝트

손석희 앵커의 그 한 마디, 눈물이 맺혔다
[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프로젝트] 8화. 의리로 버텨온 25년

15.12.18 21:26 | 성장순 기자쪽지보내기

1990년 창단한 마당극패 우금치는 25년간 창작극 40편, 공연2500회를 올린 한국의 대표 마당극 극단입니다. 우금치는 동인제 극단으로서 공동책임과 투명한 재정운영, 체계적인 훈련시스템 등 독자적인 운영방식과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받아 백상예술대상 특별상(1997),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 창작연희 대상(2008), 대한민국 창작국악극 대상(2014) 등 각종 상을 수차례 수상했습니다. 우리의 전통예술을 잇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20대 청년들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습니다. 연습 공간 하나 없는 척박한 전통예술 환경에서, 마당극을 지키려는 열정과 헌신을 우금치인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이라 합니다. 지금 우금치는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마당극장 '별별마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단원이 대출을 받아 건물을 구입하고, 건물 수리비를 시민이 후원합니다. 그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6억 빚을 안고 2억의 공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달리고 있던 지난 7월 어느 날 아침. 건물담보 2억, 개인 대출로 4억의 빚을 나눠서 떠안은 선후배들에게 류기형 예술감독이 한마디 한다.

"남들에게 별별마당 지킴이 해달라고 하기 전에 우리부터 솔선수범해야지? 20년 전, 월급이 10만 원이던 시절에도 100만 원씩 냈었잖아~."

눈빛만 시끄럽고 사무실은 조용하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들린다.

'그럴 줄 알았어.'
'집 담보로 몇 천씩 대출해 밀어 넣었으면 됐지. 뭘 또 내?'
'그때는 젊은 이십대고 이제는 쉬흔인디...'
'환장하겄네. 마누라한테 뭐라고 하지?'
'우리 딸내미는 방도 없는디.'
'내일 모레 둘째 태어나는데...'
'애가 고 3인데...'
'차 할부금 이제 시작인데...'
'헉! 나는 이제 막 정단원 됐는데... 나도 내나?'
'나는 우금치에 뼈 안 묻을 건데...'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나온 첫마디.

"얼마씩 낼까요?"
"후배들은 부담되니까 선배들만?" 
"아뇨, 정단원까지는 내지요."
"선배/후배 구분해서 낼까요?"
"사정 어려운 건 마찬가지니 똑같이 100만 원으로 합시다." 
"20년 전에 비하면 싸네. 물가도 올랐는데."
"이달 말까지 무조건 입금?"
"예."

회의 끝.

그리고 며칠 후 통장에 찍히기 시작한 숫자들. 류기형 500만 원, 함석영 300만 원, 이주행 200만 원, 김연표 100만 원, 박지헌 100만 원, 이신애 100만 원, 이광백 100만 원, 김황식 200만 원, 임창숙 200만 원, 성장순 200만 원, 김시현 300만 원, 유재진 100만 원, 이상호100만 원, 이기원100만 원, 김미희 100만 원, 모두 2700만원이 모였다. 감동과 두려움의 눈물이 났다.

▲ 별별마당 공사 철거작업 중 ⓒ 우금치

20년 전 12명의 단원들이 100만 원씩 내고 대전 하소동 산 속에 연습실을 지었다. 단원들이 나서서 땅을 고르고, 기둥을 세우고, 못질을 했다. 몇천만 원이면 될 줄 알았던 공사는 1억 원을 훌쩍 넘겼고, 그 빚을 갚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마당극을 널리 알리자고, 후배들을 위해 보금자리 만들자고, 그 미친 짓을 또 다시 시작했다. 이미 빚이 6억 원인데, 이번에 또 얼마나 늘어날까? 빚 갚다가 칠순잔치 하는 건 아닐까?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기가 막힌다는 듯 한마디 한다.

"너네 미친 거 아냐? 무슨 종교집단이냐?"
"그려 미쳤어~ㅎㅎㅎㅎㅎ"

동인극단도 점차 사라지고 그나마 있는 극단들도 대표 혼자 사재를 털어 겨우 공연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단원들이 공동으로 6억의 빚을 내서 공간을 만든다? 극단이 망하면? 다 떠나면? 대출받은 빚은 어쩌려고? 미쳤다는 말을 듣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나에겐, 우리에겐 너무나 확고한 신념이 있다.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며 문화예술운동을 선택했다. 이 시대의 소외된 이야기를 드러내며 더불어 나누는 세상을 바라기 때문이다. 또 '역시 우금치여'라며 감동하는 관객이 있다. 마지막은 으~리(의리). 엎치락뒤치락 지지고 볶으며 같이 늙어가는 25년지기 선후배, 그리고 창단부터 변함없이 후원하는 200여 명의 후원회원들과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산 속에서 먹고 자며 오로지 마당극만

▲ 1995년 하소동 상량식 ⓒ 우금치

때는 바야흐로 1990년, 극단 운영을 체계적으로 해보겠다고 월급제를 만들고 동거수당, 생리수당, 부모님 생신수당에 이것저것 규약을 만들었다. 지각을 3번 이상하면 월급을 감봉하는 제도까지.

그 당시 막내였던 나는 지각 담당자가 되어 출근 후 몇 분 동안 아주 예민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단원들이 늦는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버스가 안 와서."
"극단 시계랑 내 시계가 안 맞네?"
"슈퍼 아저씨가 말을 시켜서."

선배의 보이지 않는 압력과 시선은 하루 종일 따갑고 불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월급 7만5000원에서 지각 한 번에 5000원식 감봉하는 건 살점을 떼어내는 것만큼 쓰라린 일이었다. 6개월 만에 지각 버릇은 고쳐졌고 자연스럽게 감봉제도 폐지됐다. 지금도 지각이 잦을 때면 그 제도를 부활하자고 한다. 지금은 한 5만 원쯤 해야 먹히려나?

하지만 모두 잘해보자고 결정한 일이니 원망할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탓할 그 무엇도 없었다. 지금 각자 100만 원씩 내자고 합의하는 것처럼.

산 속에 집짓고 살던 1996년, 주변에서는 자타공인 전국 최초 극단 공동체 생활이라며 미국의 <빵과 인형극단>, 일본의 <천막극단>과 비교하며 파격적 행보에 주변인들은 격려와 걱정을 아끼지 않았다.

돌투성이 산언덕에 시멘트를 비비고 골조를 세워 만든 조립식 건물. 거기서 우리는 6시 기상, 산길조깅, 식사, 청소, 출근, 야간훈련, 공동거실 10시 이후 사용 금지, 연애 시 퇴소, 단원 지인 출입금지, 평일 외박 금지 등을 지키며 살았다.

공동의 생활공간이지만 월세부터 전화 요금, 난방비까지 단체에서 해결하니 꿈같은 복지조건이었다. 단체로 살다보면 먹는 것에 집착이 심해진다. 손님이 오면 손에 든 봉지부터 반겼고 술이나 먹을 것이 남으면 여기저기 숨겨두기 바빴다. 그러다 입이 고플 때 하나씩 보물 내주듯 꺼내오면 그 단원은 순식간에 영웅이 된다.

그때는 왜 그리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는지. 하기야 김장 300포기, 동치미 무 100개, 총각김치 10단씩 해댔으니 "한 사람이 소 한 마리 못 먹어도 열사람이 소 열 마리 먹는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아무튼 젊은 청춘을 산속에서 열정적으로 살았다. 문 열고 나가면 연습실이고 집이니 밤낮없이 연습하고 마음만 먹으면 작품제작도 순식간에 해결됐다. 온통 산이라 소품, 도구제작도 자연에서 해결했다. 보통 1년에 한 작품 만들던 것도 거기선 2~3개도 거뜬했다. 그렇게 미친 듯이 공연하고 훈련하면서 10년 만에 빚을 갚았다. 참 엄청난 일을 했던 그 시절, 어쩌면 내가 그만두면 모두 힘들겠지 하는 그놈의 '으~리' 때문에 여태껏 버텨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만두면 나머지는…' 의리로 버텨온 25년

▲ 2007년 김장하는 날 ⓒ 우금치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끼리만 살 수는 없었다. 지역사회와의 관계도 줄어들고 젊은 친구들은 산골짜기 공동생활을 엄두도 못 냈다. 하소동 10년 만에 교통편이 나은 폐교로 이사를 했으나, 교육청과 매년 재계약하는 임대조건으로 골머리를 앓았고 신입단원 영입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결국 5년 만에 다시 시내로 진출했다. 이제는 8명이나 되는 젊은 단원들이 들어왔다.

25년지기 선배 7명, 10년이 넘은 중간후배들, 그리고 꽃다운 청춘단원 8명이 대흥동에 둥지를 틀었다. 부부도 5년만 지나면 권태기가 오고, 부모-자식도 키울 때만 살갑다는데, 우리는 25년을 같이 살았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보고 있노라면 노부부를 보는 것 같단다. 으르렁거리다가도 깔깔댄다고. 질긴 인연의 의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믿음과 힘으로 또 이렇게 일을 저질렀다. 이제는 더 이상 떠돌지 않기 위해, 선배 믿고 마당극 해보겠다고 들어온 20대의 후배단원들을 위해, 지역민들과 함께 마당극 축제도 만들고 마당극 워크숍도 하기 위해.

▲ 지난 11월 24일, JTBC <뉴스룸>의 앵커 손석희가 '2015 한국 사회의 복면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제목의 앵커브리핑을 하고 있는 화면 갈무리. 그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 교과서 집필진의 비공개를 비판하며 "탈춤과 마당극은 때로는 권력자를 조롱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라고 말했다. ⓒ JTBC

어느 날이었다. JTBC 뉴스를 보고 있었다. 손석희씨의 앵커 브리핑은 국민의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은유적 표현 또한 기가 막히다. 그래서 곧잘 챙겨본다. 그때였다. 

"탈춤과 마당극은 때로는 권력자를 조롱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는 사람이라도 나온 듯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탈.춤.', '마.당.극.', '권.력.자.', '조.롱.' 손석희 앵커가 마치 나보고 들으라는 듯, 너무나 또렷한 발음으로, 너무나 크게 말해줬다. 정부가 국정교과서 집필 명단을 비밀에 부친 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빗대어 꼬집던 그는 '마당놀이'도 아니고, '민속극'도 아니고 '마당극'이라고 했다.

1980년대 아무개 방송사가 극단 미추(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 불리는 김성녀, 윤문식, 김종엽)와 함께 전국 체육관을 돌며 고전 심청전, 춘향전 등을 공연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영향으로 사람들은 마당극을 마당놀이로 생각하거나 전통극 아니면 국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손석희 앵커는 정확하게 마당극을 '권력을 조롱하는 현대 풍자극'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순간, 눈물이 맺혔다. 한술 더 떠서 '우리 사연도  방송에 나왔으면 좋겠다', '<전국고민자랑>에 나가볼까? 김제동의 <걱정 말아요 그대>에 나가볼까? 김제동은 우리 알지도 못하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괜히 혼자 실실거렸다. 

주변의 많은 분들은 우금치가 대전의 자랑이라고 한다. "그런 공간은 지원금이나 지자체 후원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안타까워하신다. 1년 반을 여기저기 쑤시고 돌아다녀봤지만 국고지원노력은 헛수고로 끝났고, 대출이자만 쌓여나갔다. 결국 시민의 힘으로 만들어보자고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그 하나의 방법으로 스토리펀딩, <오마이뉴스> 연재기획이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전 정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정태춘 박은옥의 사람들'(팬클럽)에서 우금치를 찾아왔다. 스토리펀딩을 읽고 '우금치' 단원들의 살아온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1천만 원을 내놓고 간 것이다. 대전의 향토 중소기업 (주)삼진정밀에서도 1천만 원을 후원했다. 단돈 만 원부터 5만 원, 30만 원, 100만 원….

그렇게 후원해주시는 별별마당 '지킴이'가 100명을 넘어섰고 7000만 원의 기금이 모아졌다. 희망이 보이고 힘이 솟는다. 이제는 '1억이나' 가 아니고 '1억만' 모으면 된다.  이 스토리펀딩이 더 많이 알려져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이 후원금 팍팍 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6억 빚도 갚고, 공사도 하고, 빚 걱정 안하고 국민 속 시원하게 하는 작품 만들어서 죽을 때까지 공연만 했으면 좋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별별마당 후원기금 ⓒ 우금치

ⓒ 우금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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