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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망친 자들, <오마이뉴스>에 진저리 칩니다
[10만인클럽 만인보⑨] 김종술 기자가 호소합니다

15.12.16 10:25 | 김종술 기자쪽지보내기

시뻘건 실지렁이와 깔따구, 새살 돋는 낙동강, 영덕 대게를 살리려는 아름다운 투표 행렬. 저무는 한해를 정리하면서 떠올린 나의 올해 키워드이다. 시궁창에 사는 실지렁이와 깔따구가 금강에 나타났다. MB 삽질로 망가진 낙동강에 투명카약을 띄웠는데, 아!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강은 스스로 희망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를 업은 아낙과 지팡이를 든 어르신들은 '영덕 탈핵 투표'에 한 표를 던졌다. 그 현장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내가 있었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충격적인 4대강의 모습 고발

▲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를 위해 찾아간 지난 8월 24일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플라스틱 양동이를 가져와서 한 가득 녹조를 채워서 다시 부어 보았습니다. ⓒ 권우성

▲ ‘MB여, 라떼 받아라!’, 지난 8월 24일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플라스틱 양동이를 가져와서 한 가득 녹조를 채워서 선착장 바닥에 냅다 패대기쳤습니다. ⓒ 권우성

강에 나가 주검을 목격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다. 내가 사는 금강, 올해도 어김없이 봄부터 물고기가 죽었다. 4대강 사업으로 보가 막힌 뒤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금강이란 이름처럼, 비단결처럼 흐르지 못해서이다. 예전처럼 굽이치지 못해서이다. '갇힌 물도 썩지 않는다'고 우겼던 권력자들은 떵떵거리면서 잘도 사는데 물고기들은 말없이 죽고 있다. 그게 더 가슴 아프다.

4대강 삽질로 강의 살과 뼈를 도려내고 내장을 후벼 놓은 사람들은 여전히 변명만 늘어놓는다. 녹조를 잡겠다고 강물에 공기 방울을 내뿜는 기계를 설치했다. 물속에 볏짚도 띄웠다. 늪지에 사는 물 배추와 부레옥잠 등 식물까지 옮겨다 놓았다. 모두 무용지물이다. 금강 녹조는 해를 거듭할수록 짙어지고 있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당한 짓을 하지만 자기 호주머니에 월급이 착착 꽂히는 일이다. 지난해 수자원공사는 녹조를 제거한다고 강물에 황토와 유화제를 뿌렸다. 큰빗이끼벌레를 제거한다고 보트를 타고 강물을 휘저어 놓았다. 깊게 파인 세굴을 메운다고 강물에 모래 자루를 던졌다. 언제까지 이렇듯 밑빠진 독에 물붓기를 해야하는지.

금강변을 혼자 걸을 때마다 안타까웠다. 아니 화가 치밀었다. 지금까지 혼자서 금강 기사 400여 개를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것은 숭고한 기자정신이라기보다는 파렴치한들의 얼굴 때문이었다. 적수역부(積水易腐). '고인 물은 반드시 썩는다'는 초등학생도 다 아는 진리를 뒤집으려 하는 그들에 대한 화 때문이었다. 금강을 저렇게 버려놓고도 그들은 훈장을 받았고 고위직에 올랐다. 황당하지 않은가. 이런 후안무치한 세상을 뒤집고 싶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올해 초에 <오마이뉴스>에 금강 탐사보도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단 기획을 잡아보세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게요."

▲ 지난 6월 24일 오전 충남 공주시 공주보 상류 1키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한 큰빗이끼벌레가 3미터가량 되는 나무에 줄지어 붙어 있다. ⓒ 권우성

10만인클럽은 흔쾌히 나의 요청을 받았다. 취재진을 대거 특파했고, 탐사보도를 위한 시민기자단을 구성했다. 전문가들의 연속 기고 글도 조직했다. 환경단체들도 함께하기로 했다. 잠수부와 보트도 구했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특별기획은 이렇게 탄생했다. 수만 시민기자 중의 한 명인 나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10여 명의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금강을 찾았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 20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오전 8시부터 밤늦게까지 강행군했다. 무인기를 띄워 죽어가는 금강의 신음소리를 영상에 담았다. 보트를 띄워서 강의 한 가운데로 간 뒤 채취기를 내려 금강의 내장 상태를 정밀진단했다. 홈페이지에 기사를 올리고 서울 모바일국에서는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쏘아올린 기사를 SNS로 생중계했다.

첫날부터 몸길이만 3m 50cm 초대형 큰빗이끼벌레를 세상에 알렸다. 무등산 수박보다도 더 큰 큰빗이끼벌레가 강 주변의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충격적인 현장도 확인해서 동영상과 기사로 송고했다. 보트를 타고 강 중앙에서 퍼 올린 시커먼 펄 속에서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 유충이 나왔다. 환경부가 수생태계 4급수로 지정한 생명체다. 시궁창에서 사는 생물이 금강에 서식한다는 충격적인 모습을 최초로 확인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오마이뉴스>가 휩쓸고 간 현장에 중앙언론사와 지역방송국이 찾아왔다. 4대강 사업의 폐해가 늘어나고 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우리들이 터트린 뉴스를 뒤늦게 주워 담으려고 온 것이다. 이렇게 2015년 초여름, 4대강의 아픈 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결국 정부는 준공 이후 굳게 닫았던 공주보 승강기식 수문을 열었다. 작지만 큰 승리였다.

[낙동에 살어리랏다] 국민 성금으로 만든 '투명카약'

▲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지난 8월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낙동강 지킴이' 정수근 시민기자와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위를 지나고 있다. ⓒ 권우성

이번에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제안했다. 투명 카약을 타고 낙동강을 탐사보도하자고. 일명 '김종술 기자에게 투명카약 선물하기' 프로젝트였다. 난 좋은 제안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데... 나에게 투명카약을 선물하자는 기획이 부담스러웠다. 4대강이 아니라 내게 이목이 쏠리는 것도. 또 투명카약 한 대에 300만 원인데 그 돈이 모일지도 두려웠다.

"안 하면 안 돼요?"

전날 저녁 내 카톡 문자를 받자마자 10만인클럽 측에서 다음날 새벽 고속버스를 타고 득달같이 공주로 달려왔다.

"당신을 살리자는 게 아니라, 당신이 3년 동안 집요하게 팠던 4대강을 살리자는 것이다."   

난 할 말이 없었다. 목표액 300만 원은 하루 반나절 만에 모였다. 늘 혼자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아무 말 없이 자기 주머니를 연 그들이 고마웠다. 400여 명의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1300여 만 원을 보내왔다. 그 때 낙동강 지킴이가 생각났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가난한 단체 살림을 꾸려가면서 헌신하는 그에게도 투명카약을 한 개 사주자고 제안했고 그는 흔쾌히 받았다. 이렇게 우리는 국민성금으로 만든 두 대의 투명카약을 타고 낙동강으로 향했다.

낙동강은 금강보다 더 열악했다. 첫날부터 특종을 잡았다. 도동서원 앞에서 한 어부가 고깃배를 몰고 물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녹조를 흐트러트리고 있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 그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에게 대신 전화를 해서 자기가 한 일을 알려달라고 취재진에 요청했다. 일당을 받기 위한 증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부가 아무리 휘젓고 다녀도 흩어지지 않는 녹조의 강에 투명 카약을 띄웠다.     

투명카약은 녹조의 강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흰옷 입고 들어갔다 나왔더니 녹색으로 염색이 됐다. 녹조로 악취와 두통이 밀려들었다. 또 다른 어부가 그물을 건지자 죽은 물고기가 가득했다. 물고기의 배를 가르니 기생충이 나왔다. 또 다른 그물은 이끼벌레가 잔뜩 달라붙은 채 올라왔다. 보에 막혀 올라간 수위 때문에 물속에서 목만 내놓고 죽어버린 수많은 나무들... 괴기 영화의 세트장이었다. 이 상황을 <오마이뉴스>와 SNS로 실시간 중계했다. 

주검의 강에선 희망도 꿈틀대고 있었다. 구미보 하류 감천 합수부에서 목격한 대자연의 치유 능력에 놀랐다. 감천은 수심이 더 깊어진 낙동강에 자기의 모래를 쏟아붓고 있었다. 강의 중간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MB가 4대강에 손을 대기 이전의 강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여전히 강물은 막혀 있지만 언젠가 수문이 열린다면 강은 다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영덕대게를 부탁해요!] 연이어 터트린 단독 취재 보도

▲ 경북 영덕리 영덕읍 천정리 주민들이 영덕조각공원 앞 오리요리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이들은 3~4인에 4만9000원짜리 오리요리 풀코스로 55만 원 정도의 식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 김종술

내가 늘 강에서 산 것은 아니다. 환경 사안이 터지면 여기저기 불려 나갔다. 상근기자도 아닌 나에겐 '혜택'이었다. 강원도 가리왕산을 취재했고, 지난달에는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놓고 갈등을 겪는 경북 영덕군에 다녀왔다. 역시 10만인클럽의 제안이었다. '영덕대게를 부탁해요!'라는 제목의 기획이었다. 핵마피아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자는 취지였고, 주민투표의 현장 열기를 생생하게 전달하자는 데 동의했다.  

영덕은 2005년 당시 군수가 400명도 안 되는 군민의 이름으로 핵발전소 유치신청서를 낸 곳이다. 투표에 임박해 현장에 갔더니 인구 4만명의 소도시에 '핵발전소 찬성' 관련 현수막만 1만 장이 걸렸다. 누군가가 핵발전소 유치 여론을 조장하려고 엄청난 돈을 뿌린 것이다. 난 소문만 무성했던 한수원의 식사대접 현장을 단독 취재했다. 주민투표를 하루 앞둔 특종보도는 영덕군을 뜨겁게 달궜다(관련 기사: 영덕 주민들에게 밥 사주고...'주민투표 소문'사실이었다).

"마음 졸였는데, 이젠 끝났다."

내 기사를 본 주민투표 대책위 사무실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어깨가 으쓱 올라갔고 무엇보다 나에게 영덕 취재를 요청한 <오마이뉴스>가 고마웠다. 투표 당일에도 또 한 개의 현장 단독 기사를 썼다. 투표소 인근에 세워진 허·하 차량을 추적했다. 180cm 이상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밥을 먹으며 대기했고, 심지어 초소형 블랙박스를 통해 투표장에 들어가는 사람까지 몰래 촬영하고 있다는 기사를 쏘아 올렸다.

투표 당일 벌어진 풍경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아이들까지 업고 나온 투표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개표 결과 91.7%의 핵발전소 유치반대. 쉽게 나오기 어려운 수치다. 20개 투표소에 1만1209명이 몰렸고 865명(7.7%)만이 유치 찬성표를 던졌다. 6박 8일간의 취재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나는 오늘도 홀로 금강에 나갔다. 겨울바람이 매서웠다. 귀가 얼얼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겨울 강변을 걷고 또 걸으면서 가슴은 뜨거워졌다. 어느새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오마이뉴스>의 온기를 느낀다. 4대강을 망친 자들이 진저리칠 정도로 내가 이 길을 걷을 수 있는 것은 나와 뜻이 같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민기자인 내가 한해 동안 많은 기사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오마이뉴스> 지원 때문이다.

▲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금강에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를 만진 손은 쭈글쭈글 상처투성이다. ⓒ 김종술

수백 번이나 물속을 들락거리며 수천 번 녹조와 이끼벌레를 만졌던 손은 쭈글거리고 거칠다. 난 이 손이 자랑스럽다. 이 손으로 <오마이뉴스>의 취재수첩을 들고 내년에도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혹시 나를 후원하고 싶다면, 죽어가는 금강을 살리고 싶다면 매월 1만원 이상씩 '자발적 유료 구독료'를 내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 되어 주셨으면 한다. 나도 10만인클럽 회원이다. 나와 오마이뉴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금강의 실지렁이처럼 역사 퇴행의 나팔수들이 득시글하는 이 땅의 4급수 언론환경을 바꾸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10만인클럽 회원은 1만명도 되지 않고, 그 깔따구 같은 언론들이 수백만부나 팔려나가는 현실을 뒤집어야 4대강도 지킬 수 있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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