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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프로젝트

응답하라 1988 보고 심쿵, '성보라들'이 만든 놀이패
[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프로젝트] 7화. 응답하라 1990 - 이런 연극도 있었네

15.12.13 16:45 | 성장순 기자쪽지보내기

1990년 창단한 마당극패 우금치는 25년간 창작극 40편, 공연2500회를 올린 한국의 대표 마당극 극단입니다. 우금치는 동인제 극단으로서 공동책임과 투명한 재정운영, 체계적인 훈련시스템 등 독자적인 운영방식과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받아 백상예술대상 특별상(1997),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 창작연희 대상(2008), 대한민국 창작국악극 대상(2014) 등 각종 상을 수차례 수상했습니다. 우리의 전통예술을 잇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20대 청년들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습니다. 연습 공간 하나 없는 척박한 전통예술 환경에서, 마당극을 지키려는 열정과 헌신을 우금치인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이라 합니다. 지금 우금치는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마당극장 ‘별별마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단원이 대출을 받아 건물을 구입하고, 건물 수리비를 시민이 후원합니다. 그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어머나 이거 뭐야, 이제 우리 또래로 넘어왔네~".

응사, 응칠이에 이어 응팔이('응답하라 1988')가 나왔다. 주인공 성덕선은 내 또래, 성도 같고 단발머리에 수학여행 장기자랑 나간 것도 같다. 덕선이가 내가 비싸서 못 입었던 더블 코트를 입은 것만 빼고. 참 재밌다.

고교 시절 5인방, 그중 덕선이는 아직 사춘기가 안 온 천방지축 어린애 같다. 아무리 날 때부터 친구라 해도 그렇게 설레발치고 친구 앞에서 잠옷 입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데 말이다. 오히려 그 나이 때면 서먹해지고 내숭 떨며 주변 사람 없을 때 몇 마디 주고받고 마는데.

그래도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흐뭇해진다. 그 시절 음악과 패션에 빠지고. 밥그릇보다 더 수북하게 올라온 밥, 얻어먹은 빈 그릇에 뭐라도 채워서 보내던 인정 넘치는 삶... 하지만 보라의 시위 장면을 보고는 결국 '심쿵'하고야 만다.

'부모 속 좀 썩인 자식들'이 만든 우금치
▲ 1988년 필자의 경주 수학여행 ⓒ 성장순

그 시절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범국민 6월 민주화 투쟁으로 군사정권을 몰아냈지만 여전히 시위는 계속되었다. 나의 대학 시절도 1991년 강경대 열사 추모 시위로 이어졌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 싸늘한 주검 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이~" 로 시작되었던 정태춘의 '일어나라 열사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고 TV 속 닭장차와 전경, 백골단의 모습도 생생하다.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우금치가 탄생했다.

뿌리는 1980년 중반이다. 대학을 졸업한 탈춤, 연극동아리 출신들이 문예운동으로서 사회 변혁을 이루자는 피 끓는 의지로 1990년 놀이패 '우금치'를 만들었다. 1960년대 식민지시대로부터 단절된 우리 전통문화를 복원하려는 움직임 속에 탈춤부흥운동이 유행처럼 대학가를 휩쓸었다. 탈춤 추고 풍물을 치다보니 흥이 절로 나고, "어라 이거 재밌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하며 전공하던 물리학, 정치외교, 토목학, 상업교육을 때려치고 허구한 날 데모했던, 한마디로 부모 속 좀 썩인 자식들이 만든 것이다.

왜 '우금치'일까?

▲ 매년 정초에 가는 시무식에는 계룡산 등산을 하고 우금치 동학혁명군위령탑에 제를 지내고 온다. 사진은 2011년 ⓒ 성장순

'우금치'는 공주와 부여를 잇는 고개 이름이다. 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 격전지이기도 하다. 대전, 충청의 지역성을 드러내고 외세, 관료들의 부정, 부패에 대항하여 평등세상 외쳤던 민중항쟁의 정신을 문화예술로 되살려보자는 취지였고, 그 시작도 농민극이었다.

술자리 때 마다 나오는 영화 같은 일화가 있다.

"1990년 전국농민 추수대동제가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열렸고 소품, 의상 보따리를 들고 전경의 눈을 피해 학교 담을 넘어 공연장에 도착했다. 마당극<호미풀이> 공연 도중 갑자기 실내에 최루탄 연기처럼 안개가 자욱해졌다. 노총각 덕구의 자살소동 장면에서 수백 명의 농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삽시간에 담배를 물었고 헛기침을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단다. 최루가스인 줄 알았던 그 안개는 농민들의 한숨 섞인 담배연기였고 선배들은 절규에 가까운 연기를 하며 목이 메여 같이 울었단다. 그때의 감동과 힘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지난 11월 14일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궐기 대회에서 백남기 어르신이 쓰러지셨다. 68세의 어르신은 25년 전에도 우루과이라운드 수입쌀 반대, 수입 소고기 반대를 외쳤을 것이고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자리에 계셨다. 살인이라도 날 것 같은 무시무시한 물대포 동영상은 투쟁의 장소에서 저만큼 멀어진 나를 울렸고 죄인으로 만들었다.

초창기 수년간 농민 마당극을 해왔던 우금치는 작품 주제도, 공연 장소도 다양해졌다. 어쩌면 목숨 걸고 싸우는 농업정책 반대 운동이 힘없이 무너지고 마는 현실에서 먼저 지쳐 외면했는지도.

5년 전 다시 농촌문제를 다룬 <덕만이 결혼 원정기>를 만들었다. 농촌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다문화 가정'이라는 새로운 난관을 맞이했을 뿐이다.

"나는 우금치에서 공연하며 사는 삶이 좋다"

▲ 농민회 회원들과 가족들이 쌀수입 반대및 제값받기 쌀투쟁 집회와 함께 마당극<호미풀이> 공연을 보고 있다. ⓒ 성장순

▲ 농촌 마당극 <호미풀이>,<아줌마만세>,<우리동네 갑오년>

ⓒ 성장순


그렇게 농민극으로 시작된 우금치는 통일, 반전, 여성, 노인, 환경, 자본경쟁, 정치, 다문화 등 사회문제를 풍자한 작품과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고전, 역사, 인물, 설화, 신화까지 40여 편의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왔다. 25년 동안 2700군데나 찾아다닌 공연장은 집회현장, 대학, 시민운동행사, 농촌, 산골, 아파트, 학교, 광장, 극장, 축제장, 요양원, 복지관까지 민중, 대중의 삶 깊숙한 곳이었다.

문화생활이 풍족한 21세기라고 하지만 여전히 공연을 처음 보시는 분들도 참 많다. 먹고 살아야하는 아주 치열한 현실에서 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어쩌면 시간과 돈의 사치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분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이 더 보람되고 소중한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시장판에서 공연을 할 때였다.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인데 관객 하나가 극 중의 남편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나와 남편역의 선배를 갈라놓으며,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아니라고, 가짜로 싸우는 거라고 해도 무조건 말리며 참으란다. 웃기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마당판 한가운데 돌부리가 있다고 공연하는데 들어와 돌멩이를 치우는 관객, 심청이 젖동냥에 젖 주겠다고 불쑥 젖을 꺼내는 할머니. 쑥스럽게 공책을 꺼내 싸인 해달라는 어린아이. 죽기 전에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눈물이 그렁한 병원 환자 그분들은 모두 아름다운 심성을 가졌고 서로 보듬고 나누는 사회를 꿈꿀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선우, 정환이네 이웃처럼 말이다.

마당극에 애정이 깊었던 사람들은 종종 "마당극은 끝났다. 한때의 유행이었다. 변했다"고 말한다. 7~80년대 군사정권 아래 말 한마디가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마당극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것이었으니 그 '속 시원함'이 그리워서라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삐삐에서 스마트 폰으로 바뀌었고 1988년 이웃과 2015년 이웃의 모습이 달라졌듯이 심성이 변하고 풍경도 달라졌다.

우금치의 작품도 다양해지고, 표현하는 기술도 달라졌고 관객도 농촌부터 도시까지 다양해졌다. 그렇게 우금치 작품도 늘 변하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개똥 같은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25년을 한결같이 버스 한 대에 트럭을 끌고 여기저기 공연을 다니는 것이다.

내 의지와도 상관없고 연극계 현실에 대해 무지한 친구들은 "서울로 가라", "방송 쪽으로 나가라" "'너도 이제는 떠야지"하며 애정어린 충고를 한다. 24년 동안 보따리 장사하듯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무명배우, 이미 중년이 되어 버린 친구가 측은해 보이는 모양이다.

솔직히 떴으면 하는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배우니까. 그러면 부모님이 뿌듯해하실 거고 친구들도 더 자랑스러워 할 거고. 무엇보다 시민 모금으로 공간 마련하는 수고로움은 없을 테니.

하지만 나는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공연하는 이 삶이 좋다. 아마 우금치 모두가 그 맛에 사는 것이지 싶다. 너무나 솔직해서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소리치고, 슬퍼 박수 치고 웃겨서 박수 치고, 용기내서 큰소리로 배우랑 대거리 해놓고 옆 사람 호응에 쑥스러워하는, 투박한 손으로 박카스 한병 건네는 인정 넘치는 따뜻한 손맛을 느끼고...
 
▲ 2011년 대구 동구문화체육센터에서 마당극 <덕만이 결혼원정기> 공연중 덕만네 오이밭 장면 ⓒ 성장순

▲ 공연 영상 모음

ⓒ 성장순


비록 폼도 안 나고 보따리를 싸고 푸는 떠돌이 광대지만 그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짜릿한 감동을 알면 그런 소릴 못할게다.

"정년, 노후를 걱정하는 친구들아 나는 정년퇴임이 없단다. 나중에 복지관 실버극단서 보자. 연기지도 해 줄게 호호호"

응팔 고교 시절 5인방은 2015년엔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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