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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고신을 만나다

"지금 노동운동에는 휴머니즘이 없다"
[구고신을 만나다④]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②

15.12.15 10:42 | 조혜지 기자쪽지보내기

2003년 경기도 부천시 까르푸(현 홈플러스) 중동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내 최초 '노동 문제' 드라마 <송곳>이 막을 내렸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노동 문제냐'라고 말하는 대중에게 노동 문제의 현실을 고발하는 주인공 구고신의 대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구고신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구고신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외침을 세상에 전달한다. - 편집자 말 [편집자말]
▲ JTBC <송곳> 중 한 장면 ⓒ JTBC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①편에서 이어집니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바뀌는 거야." - JTBC 특별기획 드라마<송곳> 3화 중에서

구고신이 노동조합(노조) 강의를 들으러 온 이들에게 던진 말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는 한 청강생의 말에 각자 상황에 따라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일침이었다. '서 있는 상황'의 범주는 한국 노동 현실에서 다소 아프게 나뉠 때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본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의 경제적, 환경적 차이다.

"임금 피크제? 피크로 갈 틈도 없다. 비정규직 근속 연수가 평균 3.6년이다. 정년까지 어떻게 가겠나. 쉬운 해고?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는) 해고에 무방비로 노출 돼 있는데? 저성과자 해고는 대부분 공기업 정규직 노동자 대상이다. 90% 넘는 노동자는 저성과 해고와 상관 없다. (이들에겐) 헌법에 적힌 노동 3권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도 않은데... 노동조합 교섭의 자유조차 없는데."

지난달 14일과 지난 3일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만난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은 노동운동 현실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머무르고 있는 지금, 나머지 노조에 참여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90%의 노동자들이 공감할 만한 의제를 노동운동이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와 우'가 아닌 '상과 하'

▲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 ⓒ 민석기

송영수 위원은 그 이유를 현 노동운동 진영이 '프레임', 즉 문제의 각도를 잘못 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좌우 구도에 틀어박혀 제대로 된 투쟁이 안 되고 있어 답답한 노릇"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송 위원은 "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 진영이 좌우 정치 이념의 문제보다는 상하, 즉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문제에 더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이념적 이슈를 제기하고 부각하면서 좌와 우로 편을 가르는 것은 실제로 민중의 삶에 더 중요한 문제인 상과 하의 균형 맞추기를 향한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밑에 있는 것을 빼앗아 위로 주려고 하는 게 (현 정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이걸 위해 노조를 없애려고 하고. 이런 이슈를 (노동운동에서) 많이 제기해야하는데... 재벌 사내 유보금 문제나 재벌 기업의 순이익 분배 방식이 뭐가 잘못됐는지 하는 것은 민주노총에서 제일 먼저 제기해야 했다."

그는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성과급에 관한 문제제기를 할 때 비정규직이나 하청 노동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 것도 "노동조합이 전체 대중에게 지지 받지 못하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지지받기엔 그 메시지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송 위원은 개별 기업의 투명한 성과급 배분을 요구하는 한 대기업 노조의 예를 들면서 "그런데 사실은 이 성과급이 어떻게 나오나. 비정규직부터 납품하는 2차, 3차 하청에서 올라오는 생산은 왜 염두에 안 두나"라면서 "'순이익의 몇 퍼센트를 (생산과 관련되는) 노동자에게 배분해라' 같은 구호를 외쳐야 노동운동이 고립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그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나만, 우리 조합원만 이익을 보는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이익을 보는 게 중요하다. (현재 노동운동은) 투쟁한 사람만 이익을 본다. 그러니 (전체 노동자의) 지지를 받겠나. 절대 못받는다."

시시한 약자와 시시한 강자

▲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 ⓒ 민석기

"당신이 지키는 건 인간이오. 착하고 순수한 인간 말고. 비겁하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그냥 인간.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오."- JTBC 특별기획 드라마 <송곳> 4화 중에서

구고신은 노조를 이끄는 이수인에게 '조합원'이 아닌 '인간'을 지키라고 당부한다. 송영수 위원도 인원 수로 셈되는 '조합원'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노동운동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송곳> 구고신의 설득 기술엔 휴머니즘(인간애)이 있다, 지금 노동운동엔 이런 휴머니즘이 없다"면서 "조합원의 이익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이 아닌) 전체 노동자를 아우를 수 있는 노동조합이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노동운동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보탰다. 송 위원은 "지금 노동운동은 교섭을 위해 조직의 양을 늘리는 숫자 중심의 계량주의식으로 가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도 노동운동을 위한 상근자, 샐러리맨으로 직업화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덧붙여 "상근자로서 출근하는 직원이 아니라, '직업적 혁명가'로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하면 '질 수밖에 없다', '계란에 바위치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기자의 말에, 과거 독재 정권 당시 노동운동가들이 했다는 생각을 들려줬다.

송 위원은 "과거 (노동자 권리를 위해) 투쟁을 할때는 소수의 노동자가 저항한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노동자 권리를 빼앗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허물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싸운 거고, (조합원의 이해가 아니라) 전체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싸운 거다"라고 말했다.

노조가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 구조를 '고치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기자에게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고 근로자 기준법을 준수하는 노동 현장을 위해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유서를 곱씹어 보길 권했다.

어쩌면 반지(돈의 힘)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이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전태일 열사 유서 중에서

민중총궐기에서 '희망'을 봤다

▲ 지난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차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던 노동자, 농민, 시민 수만명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중태인 백남기 농민이 입원한 대학로 서울대병원까지 가면을 쓰거나 직접 준비한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3일 2차 민중총궐기를 이틀 앞둔 날, 송영수 위원에게 총궐기 참석 여부를 묻자 "가면 하나 준비해서 쓰고 가지 뭐"하며 웃었다. 다소 설렌 얼굴이었다. 그는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때도 서울로 올라와 밤 늦게까지 현장에 남아 있었다. 송 위원은 "가서 보니 현장이 들끓고 있었다. 민주노총이 최근 이렇게 부각된 적이 있었나"라면서 "(대중에게) 진정성이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송 위원장은 "(노동운동에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반성과 자성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빨리 회복될 거라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민중 총궐기에서 어느 때보다 늘어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강조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노동운동의 의제가 '아래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송 위원은 "(노동운동 현장의 의제가) 민중 총궐기를 계기로 점점 민중 중심으로 확장될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좌우가 아닌 상하로 봐야 한다,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항상 '상'이었다. 아래를 보듬고 아래와 함께 하는 이슈, 전체 노동자와 같이 가는 싸움을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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