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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고신을 만나다

"자기 연봉 깎으며 '노조하자'는 사람도 있다"
[구고신을 만나다③]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①

15.12.08 15:10 | 조혜지 기자쪽지보내기

2003년 경기도 부천시 까르푸(현 홈플러스) 중동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내 최초 '노동 문제' 드라마 <송곳>이 막을 내렸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노동 문제냐'라고 말하는 대중에게 노동 문제의 현실을 고발하는 주인공 구고신의 대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구고신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구고신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외침을 세상에 전달한다. [편집자말]
▲ JTBC <송곳> 중 한 장면. 극중 노동운동가 구고신은 학생 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만성 신부전증을 앓는다. ⓒ JTBC

"만성 신부전. 고문 후유증. 당신 선배들 '대통령질' 할 때. 너무 그렇게 존경스러운 눈으로 보지마. 그런 사람 아니야." - JTBC 특별기획 드라마 <송곳> 5화 중에서

부진노동상담소에서 의자에 앉아 신장 투석 하는 구고신. 뜨악한 얼굴로 내려다보는 이수인 과장을 향해 그가 엷게 웃으며 무심히 툭 던진다. 엄혹한 시절, 학생 운동을 하다 '통닭구이'와 같은 고신(拷訊, 고문)을 받고 대학에서 제적 당한 후, 그 길로 노동 운동에 뛰어든 게 구고신의 삶이었다.

여기 또 하나의 굴곡진 삶이 있다. 학생 운동을 하던 1981년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콩팥의 핏줄이 다 터져서 오줌 속에 시뻘겋게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혹독했다. 1983년 출소한 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고문 탓인지 만성 신부전증과 간경화를 앓았다. 10년 동안 하루에 4번씩 투석했다. 사무실에서 투석하는 동안 상담 전화를 수없이 받았다. 건강을 챙기지 못했고, 2003년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의 삶은 구고신의 인생역정과 닮았다. 어쩌면 당연하다. 그가 구고신의 실제 모델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송영수(54)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이다. 1981년 송영수 위원과 함께 고문을 받은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은 <송곳> 원작 웹툰을 그린 최규석 작가에게 송 위원의 사연을 얘기했다. 구고신에는 송 위원의 삶이 투영돼있다.

그는 "평범한 길이었다. 대학생이 데모를 안 하면 대학생이 아닌 세상이었지"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난달 14일과 지난 3일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그를 만났다. 14일은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한 서울역에서, 3일은 2차 민중총궐기를 집회를 이틀 앞둔 그의 일터에서였다.  

"인간이 물건 취급 받는 시대, 휴머니즘으로 말해야 한다"

▲ <송곳> 구고신의 모티브가 된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 ⓒ 민석기

송영수 위원은 2003년 21시간의 긴 수술 끝에 아내의 간과 조카의 신장을 받아 그가 말한 '평범한 길'을 다시 걸어나갔다. 수술 12년 뒤, 그의 병색은 모두 사라졌다. 대신 강한 어조의 경상도 사투리로 직언을 멈추지 않는 짱짱한 노동 운동가의 얼굴이 남았다.      

1983년 처음 노동 현장을 찾은 날부터 지금까지 그는 노동자들과 부대꼈다. 100여 개의 노조를 만들며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승리라 부를 수 있는 성공도 거뒀다. 용역 파견 노동자, 마을 버스 기사, 환경 미화원, 사회복지사 등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모아 부산에서 전국 최초로 지역 일반 노조를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33년을 노동 운동가로 살아온 송영수 위원은 <송곳>을 어떻게 봤을까.

"<송곳>에 보면 구고신이 청소노동자의 산업재해(산재) 처리를 위해 동료를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중 한 운전기사가 함께 호소해주고. 그 밑바탕에 흐르는 건 휴머니즘, 인간애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시대에서 노동 운동은 휴머니즘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걸 <송곳>의 구고신이 보여줬다."

송 위원이 구고신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라는 사실이 회자되자, 주변에서 많은 연락을 받았다. 그는 "연락이 닿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기도 전화로 '니가 맞냐'고 하더라. 노동자의 일상적인 삶이 그렇듯 특별한 삶이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고신의 모델로 자신이 부각되는 건 옳지 않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노동) 현장에서 이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은 많다. (내가) 특출난 것도 아니고.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다. 구고신도 그런 사람들을 모아 만든 인물이다. 나만 부각되는 것은 쑥스럽다."

"자기 연봉 깎아 '노조 가입하자' 설득한 사람도..."

송영수 위원은 그가 만난 '송곳 같은 인간'들을 소개했다. 송 위원은 부산지역일반노조에 청소노동자들을 가입시킬 때 '한 사람'의 역할이 컸다고 회상했다. 송 위원에 따르면 그는 회사가 정부의 용역 지원 비용을 반절 이상 빼돌려 청소노동자가 열악한 대우를 받는 구조에 분노했다고 한다.

송 위원은 그 사람이 "현실적인 분노와 함께 전체 구조적인 모순에 스스로 눈을 뜨면서 청소노동자 조직화에 헌신했다"라고 말했다. 대개 밤 10시부터 업무를 시작해 새벽 늦게 까지 일하는 청소노동자에게 "노조하자"고 설득하려면, 늦은 밤부터 동이 틀 때까지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 사람은 다른 청소 사업장에 노조의 필요성이 담긴 유인물을 뿌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타 업체의 신고로 벌금형을 받고 회사에서 해고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청소 노동자들을 모아 노조를 조직했고, 정부 지원 비용 100%를 노동자의 몫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케이블 방송 설치 기사 노조를 조직하는 데 위기를 겪었을 땐 '한 지점'이 나섰다. 송 위원은 "'1인당 얼마 줄고' 하며 노조 탈퇴를 요구하는 소장의 말을 거역한 거다. 그전까진 소장을 신으로 알던 사람들이었다. 이후 조직이 복원됐다"라고 말했다.

제2금융권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정에선 고액 연봉자였던 사람이 자신의 연봉을 깎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함께 잘 살자"고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몫을 내놓은 '송곳'이었다. "(노조 조직화 참가자 중) 연봉이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전체를 설득해 사장 반대 편에 서게 하기 위해 그렇게 결심한 사람이었다. 결국 전체 조합원을 모을 수 있었다"라고 송 위원은 회상했다.

그는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저항이 힘들어도 송곳 같은 사람은 삐져나오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팍팍한 노동자의 삶이 일상이듯, 이 부조리한 일상에 저항하는 작은 용기 또한 일상적으로 나온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디어가 이 같은 노동 문제를 다루지 않다 보니 '송곳'들의 목소리가 묻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어떤 탤런트가 불안 장애로 방송에서 하차한다는 이야기는 즉각 나온다. 하지만 산재 사고로 노동자가 몇 천 명이 죽는지, 계단으로 물건을 옮기는 노동자가 한 해 2200명이 죽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언론 자체가 (노동 현실을 다룰 때) 비인간적인 것이다. 이러면 전체 사회의 시선도 비인간적으로 바뀐다. 많은 이가 (<송곳>을 통해) 내 안의 비인간적인 부끄러운 모습을 알아차리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찾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용기는 신발이다"

▲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 ⓒ 민석기

기자가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하자, 송 위원은 용기를 신발에 비유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노조 조끼 입는 것, 처음에야 어렵지 입고 나면 마치 신발처럼 된다. 신발을 고를 때 어떻게 하나. 억수로 고민하면서 고르잖아. 흠이 있나, 없나 따지고. 신고 나면 어떤가. 그냥 신발이다. 용기는 신발이랑 같다. 처음에야 어렵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그냥 일상적인 삶이 된다."

송 위원은 "노동 상담을 할 때마다 조직이 아니라 사람이 힘을 준다는 말을 자주한다"고 말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사고의 변화가 작은 용기로 이어져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송곳>의 구고신이 변화하는 조합원에게 감동 받는 것처럼, 나 또한 '눈치만 보고 있던 사람'이 어떤 계기를 만나 작은 용기를 낼 때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부산 금정구에 있는 노인 요양시설 총무팀에서 일하면서 '노인장기요양기관 노동자 권리 찾기 공동행동 부산지부'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교대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노인장기요양기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처우 개선을 위해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작아 노조 만드는 게 어렵지만, 2008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33년간 '갑'이라는 바위에 노동자의 권리를 던지는 수많은 '을'들과 함께 살아온 그. '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웃으며 "늙고 병들었는데 갈 데가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어떻게'를 묻자 한참 말을 멈춘 그는 잠시 뒤 입을 떼고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을 비춰 보니 대단해 보이는 거지. 학교 가서 데모하다가 제적 당하고 구속 되고. 그렇게 상황이 흘러서 지금까지 왔고. 내가 남아 있는 건 내가 떠났을 때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죠. 얼마나 힘들겠어요. 내가 떠나면... 떠난 사람들을 보면 대단한 용기가 있다고 생각해. 난 용기가 없어서 못 떠났어. 같이 하는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송영수 부산지역일반노조 교육위원②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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