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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버스 5호차-경기도 수원시] '꼴찌'에서 최고의 마을로, 지동마을

15.12.04 09:34 | 김예지 기자쪽지보내기

▲ 수원제일교회 13층 '노을빛 전망대'는 데이트 명소다. 밤이면 이곳에서 수원시와 인근 도시의 야경을 볼 수 있다. ⓒ 여신주현

매일 아침이면 골목마다 쓰레기 더미가 쌓였다. 조부모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많았지만, 이들이 놀며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은 마땅치 않았다. 종종 강력범죄가 일어났다. 낡고 어두워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힘든 동네, 그런데 이곳이 이젠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다. 하늘을 찌를 듯 한 47m 높이의 첨탑에 '데이트 명소'가 있다. 수원시 팔달구 지동 수원제일교회다. 이곳에선 수원시 야경이 한눈에 보인다. 지난 11월 7일 오후, 꿈틀버스 5호차가 수원제일교회로 갔다.

62년의 역사, 수원제일교회 꼭대기엔 '노을빛 전망대&갤러리'가 있다. 엘리베이터가 닿지 않는 8층부터 시작이다. 한 층 한 층, 나선형 계단을 타고 유명 작가의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를 지나면 13층, 꼭대기에 도착한다. 노을빛 전망대다. 그곳에 올라서면, 360도의 탁 트인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수원 시내부터 인근 도시까지, 광활한 야경이 펼쳐진다.

▲ 노을빛 전망대&갤러리는 먼지가 쌓여있고, 창고로도 쓰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 공간을 활용해보려고 마음먹은 건 2011년. 수원시 '마을르네상스' 사업 중 하나였다. 아름다운 광경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 정대희

"엘리베이터 없이 나선형 계단이 이어지는데, 올라가다보면 어지러워요. 그래서 죽어있던 공간이었죠."

노을빛 전망대&갤러리 유순혜(57) 관장은 "먼지가 쌓여있고, 창고로도 쓰기 힘든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공간을 활용해보려고 마음먹은 건 2011년. 수원시 '마을르네상스' 사업 중 하나였다. 아름다운 광경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마을 만들기 사업 통해 죽어있던 공간이 데이트 명소로

첨탑에선 수원 전역뿐만 아니라 동탄, 화성, 안양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이 종종 들러 풍경을 담아갔지만 동네 주민이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사진으로만 남기기엔 아까운 풍경, 수원시와 수원제일교회가 함께 나섰다.

시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교회는 마을 주민에게 선뜻 문을 열었다. 여기에 유순혜 관장이 합류했다. 유 관장은 갤러리와 전망대를 꾸미고, 지동마을 벽화 그리기 사업에 앞장섰다.

"그날 유난히 지동마을이 굉장히 예뻐 보였어요. 낙후되고 낡았다는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눈이 내리던 날, 예쁜 마을을 보고 '뭔가 작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둡고 침침한 것이 안 보이고 예쁜 것만 보더라고요. 그렇게 '뭘 좀 해보자' 해서, 기획을 한 거죠."

그야말로 눈에 '콩깍지'를 끼고 시작한 일. 처음엔 포부가 있었지만,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나선형 계단을 감싼 원기둥엔 수원 화성을 만드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역사고증을 거친 유 관장의 작품이다. 높이 4m의 원기둥을 빼곡히 채운 1200여 명의 표정과 행동이 제각각 살아있다.

▲ 나선형 계단을 감싼 원기둥엔 수원 화성을 만드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역사고증을 거친 유 관장의 작품이다. 높이 4m의 원기둥을 빼곡히 채운 1,200여명의 표정과 행동이 제각각 살아있다. ⓒ 여신주현

▲ 나선형 계단을 감싼 원기둥엔 수원 화성을 만드는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역사고증을 거친 유 관장의 작품이다. 높이 4m의 원기둥을 빼곡히 채운 1,200여명의 표정과 행동이 제각각 살아있다. ⓒ 정대희

먼지 가득한 공간에서 사다리 하나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죽어있던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 쉽지 않았다.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돌려 세우는 일은 더 어려웠다. 노을빛 갤러리&전망대 기획과 함께 진행된 지동마을 벽화그리기 사업이 그랬다.

"34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벽화를 그리면 눈에  띌 수밖에 없어요. 저희가 먼저 인사해도, 고개를 휙 돌리고 가시더라고요. '다 쓰려져 가는 동네에 무슨 벽화를 그린다고 해? 재개발이나 해줘'라고 혼잣말을 하시며 가는 분들도 있고요."

지동마을은 문화재 보호구역에 속한다. 개발이 쉽지 않다. 집에 수리가 필요해도, 그대로 내버려두는 주민들이 많았다. 주민들의 평생 꿈은 지동마을이 재개발돼서 신도시로 떠나는 것. 그런 주민들에게, 지동마을에 그리는 벽화는 '재개발은 없다'는 것을 에둘러 확인해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벽화를 그리던 초기,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럼에도 3개월, 5개월, 6개월... 매일 그림을 그리니까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어요. 뒤통수가 따끔따끔해요. 슬그머니 지켜보고 있는 거죠. '그림 되게 잘 그리네요', '뭐 그리는 거예요?' 이렇게 묻기도 했어요.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아유, 더운데 무슨 고생들을 그렇게 해'라고 말해주시고요. 칭찬은 안 해도 인사를 받아주기 시작한 거죠."

처음엔 차가웠던 주민들도 매번 인사를 건네는 유 관장에게 점차 마음을 열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라며 보리차를 얼려 내어준 어르신, "혼자만 먹으라"며 손에 작은 땡감과 햇귤 두 개를 쥐어준 할머니, 집 마당에 페인트 통을 맡겨놔도 싫은 내색 하지 않던 어르신까지. '올해까지만 버티고 얼른 서울로 도망 가버려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살가운 정을 느끼고는 '이 마을에 조금 더 있어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 유순혜 관장(왼쪽에서 두번째)이 꿈틀버스 참가단에게 노을빛 갤러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날 노을빛 갤러리에서는 한재면 작가의 도예 작품 전시가 한창이었다. ⓒ 정대희

재개발만 기다리던 '꼴찌' 마을에서 수원 '최고의 마을'로

유 관장은 햇수로 5년 동안 지동마을과 노을빛 전망대&갤러리를 가꿨다. 벽화그리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전국 최장 길이의 벽화를 그리려고 지금까지 1만2천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지동마을을 찾았다. 유 관장은 "마을 어르신들의 분위기가 점차 바뀌는 것을 보면서 오늘까지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마을이 점점 살만한 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수원의 꼴찌에서 최고의 마을'로 타이틀을 붙여주고 싶었어요."

실제 지동마을에 벽화 그리기 사업을 진행한 뒤 2010년 304건이었던 강력범죄는 2014년, 192건으로 줄었다. 공무원들이 야간에 순찰을 돌며 스티커를 발부해도 줄어들지 않던 쓰레기 무단투기도 3, 4년 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변화는 더 있다. 노을빛 전망대&갤러리가 생긴 뒤, 마을 주민들은 제 집 드나들 듯 문화시설을 이용한다.

조부모와 함께 살아 문화예술 활동을 자주 할 수 없었던 아이들이 노을빛 갤러리에서 유명 작가의 전시를 볼 수 있게 됐다. 실제 꿈틀버스단이 노을빛 전망대&갤러리를 찾은 날에는 한재면 작가의 도예 작품 전시가 한창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관람객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해 9월엔 이곳에서 174년의 역사가 있는 독일 베를린 미술협회의 초대전을 열었다.

"지동마을 주민분들이 그동안 '어디 사냐고' 물으면 지동 산다고 안 했거든요, 그냥 수원에 산다고 말하지. 이제는 '나 지동에 살아. 우리 마을 와봤어? 갤러리, 전망대 있어'라고 하셔요."

유 관장이 자랑스레 말했다. 죽어있던 공간은 이제 동네 주민들이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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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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