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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고신을 만나다

'송곳' 같은 사람, 세상엔 생각보다 많다
[구고신을 만나다②] 이종명 부천 비정규직센터장·김재광 노무사 인터뷰②

15.12.02 10:36 | 조혜지 쪽지보내기|이희훈쪽지보내기

2003년 경기도 부천시 까르푸(현 홈플러스) 중동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국내 최초 '노동 문제' 드라마 <송곳>이 막을 내렸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무슨 노동 문제냐'라고 말하는 대중에게 노동 문제의 현실을 고발하는 주인공 구고신의 대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구고신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구고신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외침을 세상에 전달한다. [편집자말]
이종명 부천비정규직센터장-김재광 노무사 인터뷰①편에서 이어집니다.



▲ 김재광 노무사 ⓒ 이희훈

푸르미마트 영업 시작 직전, 계산대 아래에 주저앉은 30대 여성 노동자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단결 투쟁 승리'가 적힌 빨간 노동조합(노조) 조끼의 지퍼를 올린다. 두려움과 근거 없는 용기가 교차한다. 눈을 질끈 감고 벌떡 일어나 천천히 눈을 뜬다. 줄지어 선 다른 동료 모두 그와 같은 빨간 조끼를 입은 모습이 보인다. 이내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 JTBC 특별기획 드라마 <송곳> 8화 중에서

"그게 더럽게 어렵거든요."


ⓒ JTBC

김재광 노무사는 이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 결심을 한다는 건 자신을 세상과 맞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명 센터장도 "혼자서는 절대 못 입는다. (조끼를 입으면) 사용자가 얼마나 괴롭힐지 아니까"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노조 활동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빨간 조끼 입기'로 설명했다.

<송곳> 원작 웹툰을 그린 최규석 작가의 소개로 지난 11월 23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비정규직센터에서 만난 구고신의 실제 모델 두 사람은 '노조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기자의 편견을 깼다. 밥벌이를 걸고 사측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송곳' 같은 사람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빨간 조끼]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고?

기자가 "노조는 빨간 조끼와 팔뚝질, 머리끈 질끈 묶는 과격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고 하자, 김재광 노무사는 "그럼 파란 조끼 입고 리본 달고, 투쟁을 화합으로 바꿔서 하면 나아질까"라고 반문했다. 이종명 센터장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사) 환경이 왜 그를 그렇게 내모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그걸 한 마디로 '과격하다'고 하는 건 옳지 않다. 임금을 똑바로 안 주는 사용자한텐 벌금을 아무리 때려봤자 10만 원, 20만 원이다. 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 가족은 생활이 안 되고 굶어 죽는다. 그 노동자가 열 받아서 책상 한 번 걷어차면 폭력으로 50만 원, 100만 원의 벌금을 문다. 이게 정상 사회인가."

김 노무사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노조 활동을 하겠다고 나서기 어려운 까닭을 "가진 자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3권이 헌법으로 보장돼 있어도 (노조 활동을 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이 (노조 만드는 것을) 싫어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쇠파이프 노조' 발언을 예로 들었다(관련 기사 : 김무성 "노조 쇠파이프 없었으면 3만 불 넘었다"). "먹고 살 만해서 만드는 노조는 없다. 회사가 구조 조정이나 해고를 하려고 하니 노조를 만드는 거다"라면서 "여당 대표가 '노조 때문에 망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상식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빨갱이] 편견을 가진 자도 싸워야 한다

▲ 이종명 부천비정규직센터장 ⓒ 이희훈

노조를 향한 사회적 인식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가장 많이 마주하는 질문은 "질 게 뻔한 싸움을 왜 하느냐"다. 이종명 센터장은 이 질문을 뒤집는 기억 하나를 꺼냈다.

"부천 모 공기업에서 사실상 어용 노조인 노조가 정년을 단축하는 것에 동의했다. 정년이 넘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잘린 거다. 이분들을 만나서 같이 고민을 이야기하고, 1년 넘게 끈질기게 투쟁해서 2년 기간제를 얻어 냈다."

당시 이 센터장이 "노조를 만들자"고 설득한 사람 대부분은 정년을 앞둔 보수적 성향의 60대였다. "'데모'하면 빨갱이들이 하는 것으로 알던 분들이 저를 믿고 함께 싸워 그 '2년 기간제'를 쟁취했을 때, 그래도 내가 좋은 일 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가 말을 받았다.

"투쟁하거나 파업하면, 기본적으로 사람이 모인다. 몰랐거나 친하지 않았던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느낀다. 아, 이 사람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연대감을 느끼는 거다. 정의감도 느끼게 되고, 동지애가 생기는 것이다. 오늘은 힘들지만, 그래도 여기를 떠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송곳] 뚫고 나온다, 반드시

▲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만화<송곳>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이종명 부천비정규직센터장, 김재광 노무사의 모습이 비가 내려 고인 물에 비치고 있다. ⓒ 이희훈

▲ <송곳>의 주인공인 부진노동상담소의 구고신 소장 ⓒ 창비

노조 조직률 10%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가 나서기 힘든 나라' 대한민국. 2013년 12월 웹툰 <송곳>이 세상에 나왔을 때 몇몇 누리꾼들은 밥벌이를 걸고 회사와 맞서는 '송곳 같은 인간은 현실에 없다'고 자조했다. 김재광 노무사와 이종명 센터장의 대답은 달랐다. 그들은 입 모아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그것이다. "이수인, 구고신 같은 사람이 여러분(기자)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다"면서 "세상이 이 지경이라고 좌절하는 분도 있겠지만, 세상이 여기까지라도 오게 한 많은 분이 있다"고 전했다.

김 노무사는 "어떤 영웅주의가 아니라, 꾸준히 자기 삶을 살면서 송곳처럼 '이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분명히 많다"면서 <송곳> 속에 등장하기도 하는 한 계약직 직원의 말을 전했다.

"노조에 가입해도 보장되는 게 없을 수도 있다고 사과하는 이수인에게 계약직 직원이 이렇게 얘기한다. '어차피 저는 잘려도 상관없어요. 어디 가나 똑같을 거면 싸울 수 있을 때 싸워나 봐야죠'라고. 실제 2007년 (까르푸의 후신인) 이랜드 노조 파업 때 제가 들은 말이다."

김 노무사는 "그건 각성이다.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엄청난 변화다. 자기의 권리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 어느 날 그렇게 되는 것이다. 기지도 못했던 사람이 달리고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노조를 만들다 보면 송곳 같은 사람이 꼭 한두 명씩 있다. (회사의) 억압에 분노를 느끼고 '도저히 못 참겠다'며 돌발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면서 "(그런 사람을) 잘 봐뒀다가 이렇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노조에 참여하게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싸움] 노동자의 자존심

▲ 최근 드라마로 제작된 만화<송곳>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이종명 부천비정규직센터장(왼쪽), 김재광 노무사. ⓒ 이희훈

"노동법 개악이든 개혁이든,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설사 개악이 되더라도, 심신을 다해 스스로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싸워야 한다. 그래야 설사 그 싸움에서 지더라도 다른 기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 태도가 다음 싸움을 결정한다."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에 쉬운 해고의 가능성을 열어둔 박근혜 정부의 노동 정책까지,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은 암울하다. 노동자에게 희망이 있을까. 김 노무사는 "(한국) 사회는 다수 사람에게 포기하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런 구조적인 절망에 꺾이지 않고 삶을 계속 지속하겠다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힘든 상황일지라도 노동자의 자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 일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하나의 바퀴다', '내 월급이 왜 이것밖에 안 돼? 당연히 더 받아야지'라는 자부심이 그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노조의 싸움을 오직 그들의 권리만을 위한 싸움으로 보지 않길 당부했다. 그는 "그 싸움으로 내 권리도 신장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노동운동을 봐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명절만 되면 상담했던 분들이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추어탕도 먹으러 오라고 하고 시골에서 짠 참기름도 보내주시고. 하하. 저번 교육 땐 돼지 족발을 줘서 그걸 안고 차에 타니까 사람들이 어찌나 쳐다보는지..."

인터뷰 말미 김 노무사가 노동 상담과 교육을 하면서 연이 닿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노동 교육을 할 때마다 "여러분이 이기면 내가 잘 산다"고 말한다. 노동자의 권리가 높아지면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니, '밤길도 안전해진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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