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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프로젝트

마당극 쇠퇴에도, 우금치가 25년을 버틴 이유
[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프로젝트] 5화. 광대 임진택이 마당극패 우금치를 지지하는 이유

15.11.19 16:39 | 이정림 기자쪽지보내기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다.

연극 연출가이자 창작판소리 명창, 축제 감독인 임진택님을 직접 만나게 되다니. 우금치 단원들이 선생님을 뵈러가는 길에 동행하게 됐다. 배우 이신애(46)님과 성장순(45)님은 들뜬 기색이다. 양 손에는 선생님께 드릴 커다란 홍삼세트가 들려있다. 우리는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에 대해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어느새 서울에 도착. 약속 장소로 향한다.

임진택(66), 1970년대 전통연희를 바탕으로 한 민중연극 '마당극 운동'을 주도한 분으로, 마당극운동의 기본정신과 원리, 연출법 등을 수립한 예술가다. 생명사상을 담은 김지하 시인의 산문 <밥>을 마당극으로 만들었고, 80년대 군부독재시절을 풍자한 마당극으로 대학가에 마당극 바람을 불게 한 분으로 더 알려져 있다.

기다리는 장소 뒤편에는 꽃가게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서 예쁜 꽃다발 하나를 냉큼 샀다. 만남을 꽃으로 시작해야지. 드디어 임진택님이 장소에 도착했고 환영의 꽃다발을 손에 쥐어드렸다. 약간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고마워하셨다. 그리고 같이 뵙기로 한 극단 길라잡이 양정순 대표님을 기다렸다. 임진택님은 벤치에 앉아서 꽃향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아 차 싶다. 내가 건넨 꽃다발은 색감이 화려한, 그러나 향기가 없는 드라이플라워용 꽃이다. 예술가의 섬세한 감성을 놓쳤다.

모두 모이자 우리는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당극과 우금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예술은 정치적 선전 도구가 아냐"

▲ 성장순,임진택,이신애 ⓒ 우금치

먼저, 임진택님이 생각하는 마당극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마당극이란 무엇인가요?"

"전통예술의 입장에서 마당극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이렇게 설명하지. '닫혀 있는 무대에서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열린 무대에서 모두가 같이 어울려서 판을 만들어가는 연극입니다'라고. 그럼 마당극의 반대는 뭐냐? 무대극이지. 그러니까 마당극은 무대까지도 마당화 하는 것이지.

연극이 다른 예술과 다른 점은 직접사람이 참여해서 만드는 거야. 거기에 답이 있어. 연극의 본질은 관객하고 직접 만나는 거지. 그렇다면 무대극하고 마당극하고 어느 것이 더 연극의 본질을 갖고 있을까? 관객과 직접 만나서 신명나게 연극을 하자는 것이 마당극이지."

마당극 운동은 1970년대에 펼쳐졌고, 1980년대에 확산됐다. 하지만 지금은 마당극을 하는 극단도 줄고, 마당극 공연도 쉽게 접하기 어려울 만큼 쇠퇴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위기가 있었지. 80년대 중반에 마당극이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왔어. 사람들이 아주 염증을 느꼈어. 프로파간다(사상을 선전하는 일)가 너무 심하니까. 전두환 정권 시절이니까 이해를 한다 해도, 나는 그런 방식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거든. 대학가에서 마당극이라는 게 전부 위장집회를 위한 것이 된 거야. 연극은 어떻게 되더라도 사람이 많이 모여서 집회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상황에 대해 내가 반대도 많이 했고 갈등도, 논란도 많았지.

예술을 그런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옳지 않다고. 예술은 사회의식을 함께하고, 사회모순을 폭로하고 그것을 공유해서 함께 울분을 느끼고, 슬프고, 통쾌하고 그런 거지. 예를 들면 사회 문제에 참여하고 싶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예술이지, 연극한다고 하고서는 집회하고 그런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 그때 내가 마당극 <밥>을 만들어서 전국 공연을 했어. 한 번 공연하면 2000명 정도가 보러 왔었어.

또 90년대 들어서는 완성도가 너무 낮은 작품이 계속 만들어지는 거야. 다섯 작품 중에 하나는 엉터리 작품이 나왔어. 한마디로 수준 낮은 작품들. 작품에 대한 애정도 없고, 예술성이 떨어지고…내가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민극협) 의장일 때 '그런 작품하지 마라', '내놓지 마라' 그랬어. 후배들 중에서 서운하게 생각하는 애들도 있었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저항담론을 생산하고 전달하는 기능으로 부흥했던 마당극은 극 자체의 다양성과 질적 수준을 향상하지 못한 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한 흐름 안에서 우금치는 어떻게 지금까지 건재한 것인가. 우금치와의 만남부터 물어봤다.

"마당극은 현장성이 중요하잖아. 소재가 주로 민중의 삶의 현장인데, 대전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적 특색이 좀 약하니까 사실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었어. 그런데 우금치의 첫 작품 <호미풀이>를 보고 놀랐지. 잘 만들었어. 그리고 다음에 <아줌마만세>를 보니 아주 잘 만든 거야. 와 진짜 마당극이 나왔다 그랬지. 그래서 제3회 민족예술상(1992년)을 받았어.

마당극의 특성 위에 진정성과 절실함이 담겨 있었어. 농업문제를 다룬 것이었는데 배우들이 정말 농사꾼 아낙네들처럼 연기했어. 그들이 사회 안에서 받은 아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표현했지. 겉멋이 하나도 들지 않았더라고. 잘 만들었구나 하며 감탄했어."

임진택님의 우금치 칭찬은 계속됐다.

"우금치에서 그 후로 좋은 작품이 계속 나왔거든. <우리 동네 갑오년>, <두지리 칠석놀이>, <쪽빛황혼>. 그 레퍼토리 그 하나만으로도 우금치는 최고야. 상도 많이 받았잖아. 그렇지? 백상예술대상 특별상도 받았고. 내가 막 추천했어. 작품이 정말 좋았거든."

우금치가 성공한 이유? "예술성과 대중성 모두 확보했으니까"

▲ 쪽빛황혼 공연 ⓒ 우금치

마당극의 쇠퇴에도 우금치가 25년간을 버티며 성장한 이유를, 그동안 우금치의 활동을 지켜본 분에게 물었다.

"우금치는 작품성이 담보됐기 때문에 전국적인 단체로 성장한 거야. 성장의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면 작품의 완성도야.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작품이 좋으니까, 재밌으니까, 잘 만들었으니까, 신나니까 사람들이 보는 거지. 우금치 공연 보면 재밌어. 그럼 사람들은 또 보러 와. 계속 여기저기서 초청하고. 거기에 답이 있는 거야…예술성과 대중성을 다 확보한 거지. '우금치를 초청합시다' 하면 다 좋다고 해. 그 분위기를 내가 봤거든. 나도 많이 초청했잖아."

하지만 지금, 우금치와 마당극은 전환점에 서 있다. 민중예술이 다시 도약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거대한 자본의 압력 안에서 묻히게 될 것인지 하는 문제다. 도약을 위한 발판의 중심에는 마당극장 '별별마당'의 건립이 있다. 임진택님은 민중예술을 위해 노력해온 후배들이 안쓰러운지 연신 다정한 말씀을 해주신다. 결국 후배들은 견뎌왔던 시간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임진택님을 한번 뵌 적이 있다. 1996년 전주의 어느 소극장에서 본 연극은 임진택님이 연출한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연출가 소개가 있었고 무대 위에 그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본 연극의 제목도,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무대 한 켠에 서서 따뜻한 눈빛으로 관객들이 공연장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지켜보던 임진택님의 모습만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오래전 그날, 그 기억의 조각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접했다. 직접 뵈었어도 기억 속 인상 그대로다. 따뜻하고 큰 사람이다. 특히 목소리가 대단하다. 판소리를 하실 때와는 또 다르다. 직접 만나서 듣는 임진택님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독특한 무게가 있었다. 소리 자체에 이미 '울림'이 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시낭송을 하시거나, 좋은 곡의 피처링을 하신다면 좋겠는데 하는 엉뚱한 상상이 떠올랐다. 계속 듣고 싶은 목소리니까. 타고난 예술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최근에는 광복 70주년 특별공연 창착판소리 <백범김구>를 공연 중이시고,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에서 국가폭력피해자들을 위한 치유프로그램 일환으로 판소리 강좌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바쁘신 와중에 우금치를 위해서, 마당극을 위해서 시간을 내주신 임진택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임진택님이 우리에게 보내는 말씀을 동영상으로 올립니다.

ⓒ 우금치


임진택(林賑澤)
연극(마당극) 연출가, 창작판소리 명창, 축제 총감독 

1950년 전북 김제 출생
1969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4년 긴급조치 4호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름
1975~1980년 중앙일보․동양방송 (TBC-TV) 프로듀서
1981년 KBS로 통폐합 이적 후, 국풍81 추진 거부 이유로 강제사직
1975~1980년 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심청가(예능보유자 故 정권진 님) 이수
1975년 ~ 전통연희에 바탕한 민중연극인'마당극 운동'전개
1984~1988년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실행위원
1985~1989년 마당극 전문극단 "연희광대패" 창립, 공연활동 전개
1985년 ~ 창작판소리 '똥바다' 작창 공연
1990년 ~ 창작판소리 '오월광주' 작창 공연
1989~2009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대변인, 사무총장, 부회장 역임
1995~1997년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민극협) 의장
1995~(현) 극단"길라잡이"상임연출
1995~2006년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감사 역임
1996~1999년 참여사회를 위한 시민연대(참여연대) 지도위원
1997~2007년 과천세계마당극큰잔치, 세계통과의례페스티벌, 세계야외공연축제, 전주세계소리축제, 경기도실학축전, 가야세계문화축전 총감독 역임.
1998~1999년 완판장막창극 <춘향전>, 마당창극 <비가비명창 권삼득> 연출
2001~2002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초빙교수
2004년~ 반부패국제회의 조직위원회 위원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위원회 위원, 국가의전의 문화적 개선을 위한 TF 위원장
2007년 임권택 감독 100번째 영화 <천년학> 주연 (애비 유봉 역)
2009년~ <창작판소리열두바탕추진위원회> 예술총감독
2010년~ 창작판소리'백범 김구'작창 공연
2011년~ 창작판소리'남한산성'작창 공연
2014년 서울시 마을박람회 시민추진위원장 역임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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