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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북에 오른 아파트 "살맛납니다"
[꿈틀버스 5호차-경기도 수원시] 동화 속 이야기를 닮은 꽃뫼버들마을

15.11.12 17:13 | 정대희 기자쪽지보내기

꿈틀버스 5호가 지난 11월 7일 ‘도심 속의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경기도 수원시로 달려갔습니다. 한 달 동안 자동차 없이 생활한 생태 교통마을 골목을 둘러보고 옛 ‘대추나무골’인 조원1동 마을공동체 현장인 작은 도서관, 사회적 협동조합 ‘마돈나’, 수원제일교회 노을빛 전망대 등을 누비며 탑승객들은 마을 공동체의 희망을 엿봤습니다. 시멘트벽으로 단절된 팍팍한 아파트에서 꽃을 매개로 공동체가 다시 살아나는 현장도 목격했습니다. 우리 안에 덴마크는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편집자말]
수원에는 '기네스북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 화단이 세계 기록을 세웠다. 하루아침에 이룬 기록은 아니다. 13년 동안 공을 들였다. 한 사람이 이룬 기록이 아니다. 서로 얼굴도 알지 못해 데면데면 했던 아파트 주민들이 함께 가꾼 꽃밭이다.

꿈틀버스 5호가 아파트로 향한 이유

▲ 서로 얼굴도 알지 못해 데면데면 했던 아파트 주민들이 꽃밭을 가꾸면서 끈적끈적한 사이로 변했다. 공간이 변하면, 사림이 변한다는 것을 꽃뫼버들마을 아파트 주민들은 경험을 통해 배웠다. ⓒ 정대희

지난달 7일 '꿈틀버스 5호'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2동에 위치한 '꽃뫼버들마을LG아파트'로 달려갔다. 기네스북에 오른 아파트다. 알록달록 단풍이 물든 가로수길을 따라 걸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어딜 가나 손쉽게 보는 아파트와 다른 게 없다. 이렇게 평범한 장소가 동화 속 풍경이 된 곳이라니. 고개를 자꾸 갸우뚱거리게 된다.

메마른 땅, 아파트 화단에 누군가 꽃을 하나 심었다. 그러자 어느 날, 그 꽃 옆에 꽃이 들어섰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나를 심으면 둘이 되고 셋, 넷이 됐다. 하루가 다르게 꽃은 늘어 밭을 이루고 화단이 됐다. 13년이 지나서 화단에는 약 500여 종의 식물이 자랐다. 이 정도면, 수목원이다. 동화 속 이야기 같다.

"보잘 것 없는 일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조안나(46) 입주자대표회장의 말이다. 아파트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조 회장의 작은 행동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 일은 화단에 꽃을 심는 일이다. 조 회장은 "보잘 것 없는 일"이라 지칭했으나 이 일로 삭막하고 각박한 아파트 삶에 꽃이 피었다.

"왜 꽃을 심었나요?"

꿈틀버스 5호에 탑승한 노봉남(60) 전남대 교수가 물었다. 조 회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꽃을 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아파트 1층에 살다보니 꼭대기 층에 살던 때와 달리 베란다에 햇볕이 덜 들어 꽃을 키우는 게 어려웠다. 그때 조 회장의 눈에 띈 곳이 창문 넘어 보이는 방치된 화단이다. 당장 꽃을 사다 심었다. 슬하의 아이들도 모종을 땅 속에 묻었다. 버려진 땅에 생명이 돋아났다.

목초본유 총 368종. 꽃뫼버들마을 아파트 단지내 화단에서 자라는 식물의 개수다. 지난 2012년 한국기네스협회가 인정한 우리나라 아파트 가운데서 가장 많은 수다. 현재는 약 500여종으로 늘었다. 숫자가 더 커진 이유를 조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애초 꽃을 심을 때부터 누가 시켜서가 아닌 주민 스스로 한 일이다. 저마다 좋아하는 식물이 다르다보니 지금은 아파트 세대수(665)에 버금갈 정도로 종류가 많아졌다. 마음대로 심고 알아서 가꾸는 게 기네스북에 등재된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아파트서 사는 맛, "살맛납니다"

ⓒ 정대희

아파트서도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적어도 꽃뫼버들마을은 그렇다. 화단이 변하니 사람도 변했다. 꽃이 피니 벌이 찾아오고 주민들이 모여서 어울리다보니 공동체가 꿈틀거렸다.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두고도 얼굴 한번 본 적 없던 사이가 이웃사촌이 됐다. 이웃을 알고 나니 일상이 즐거웠다. 의미 있는 일을 계획하고 봉사활동도 활발해졌다. 이젠, 화단 밖에도 꽃이 피었다. 공동체가 살아난 것이다. 조 회장의 증언이다.

"당시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보도도 잇따랐다. 학업을 벗어나 진정으로 내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엄마들이 하나 둘 모여 체험활동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끈끈한 사이가 됐다. 그러다보니 딴 곳으로 이사를 가는 세대가 이곳은 거의 없다. 오히려 친인척들이 이사 오는 아파트가 됐다."

아이들도 신이 났다. 엄마 따라 꽃을 심다가 언니, 오빠를 만났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같이 놀 친구를 사귀었다. 손위누이는 공부방을 열어 동생들을 살뜰하게 보살폈고 손아래누이는 오빠와 언니에게 공부법을 배우고 봉사활동도 나갔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서로 뒤엉켜 놀면서 선순환 작용이 일어났다는 것. 그 옛날 골목길에서나 보던 풍경이 아파트 단지에서 복원된 거다. 조 회장이 말했다.

"옆 동네로 이사를 간 엄마가 있었다. 하루는 아들이 주말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외출을 하기에 몰래 따라가 봤더니 글쎄, 이 동네(꽃뫼버들마을)로 자원봉사를 가더란다. 어릴 적부터 봉사하는 게 버릇이 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놀이가 된 거다. 다른 아이는 봉사활동으로 학교에서 상을 받게 되면서 그게 자존감을 키우는 기회가 돼 학업 성적도 올라갔다. 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던 아이도 자연스레 자기주도학습능력이 높아지고 실력도 늘어 최근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다. 이젠, 어른들의 도움 없이 아이들이 알아서 공부방 프로그램을 짜고 운영도 한다."

'기네스북 아파트'의 조언, 공간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 한 편의 동화가 떠오르는 경기도 수원시 꽃뫼버들마을 LG아파트의 마을공동체 이야기. 꽃을 매개로 공동체가 다시 되살아나서일까. 13년 동안의 공이 꽃처럼 아름답다 ⓒ 정대희

공간이 변하니 사람도 변했다. 개발의 상징인 아파트 공간서 주민들 스스로 친환경적인 삶을 고민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게 낙엽과 김장쓰레기로 만든 퇴비다. 이 퇴비는 지난 2011년 수원시 시민창안대회서 대상을 차지했다. 친환경적이면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 먹은 수박껍질과 빗물을 받아 화단에 물을 주고 지렁이를 풀어놓는 것도 '건강한 흙'을 위해서다. 덕분에 음식물 처리비용은 단돈 50원밖에 나오지 않아 아파트관리비용도 줄었다. 반면, 각종 공모사업 지원금과 수상금은 꽤 많아 책걸상을 구입해 공부방을 꾸미고 화단을 가꾸었다. 공동체의 생명을 이어주는 매듭 역할에도 소홀하지 않았다는 거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조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특별할 것은 없다. 꽃에 기울였던 관심이 자연스레 흙으로 이어지고 그러다 환경문제, 윤리적 소비, 사회적경제로까지 확대됐다. 주민들 스스로 원예와 조경, 도시농업을 공부한 결과도 화단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13년 동안 모여서 서로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누고 교육을 받은 것도 오늘을 이룬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얼마 전에는 화단에 심어져 있는 식물들을 엮은 도감을 책으로 발행하려고 했는데, 주민들이 '책을 만드는 게 자원낭비가 될 수 있다'는 의견에 포기한 일도 있다. 아파트가 삭막한 공간이란 말은 이곳에서는 옛말이다."

꽃뫼버들마을 아파트가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려야 할 것은 화단에 심은 식물만은 아니다. '공동체'란 텃밭을 갈고 주민 스스로 행복의 씨앗을 뿌린 13년간의 노력의 결과도 기네스북감이다.

▲ 꽃뫼버들마을 아파트의 화단에는 총 368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화단은 아니다. 종류가 다양할 뿐 꽃잎이 만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계절로는 봄과 여름에 구경할 맛이 난다는 게 조안나 입주자대표회장의 설명이다. ⓒ 정대희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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