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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대게를 부탁해요!

"난 그럭저럭 살겠지만, 아이들이 살아야 하잖아"
[현장 - 투표장 이모저모] 영덕 핵발전소 주민투표(1차) 큰 사고 없이 조용히 치러져

15.11.12 11:21 | 김종술 기자쪽지보내기

▲ 남정면 제 2 투표소는 남호해수욕장과 맞닿아 있다. 바닷바람에 갈매기들이 모래사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 김종술

"아저씨 반대예요, 반대"

영덕군 남정면 남호리 마을회관을 찾다가 착각하여 남정리를 찾았다. 50대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으니, 기자의 목에 걸린 프레스를 보고서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더니 오른손을 하늘 높이 올리면서 "반대, 반대, 반대" 구호를 외친다. 덩달아 미소가 지어진다.

돌아돌아 어렵게 찾아든 남정리 마을회관은 남호해수욕장과 맞닿아 있다. 입구부터 눈이 바다로 향한다. 높은 파도가 밀려든다. 바위에 부딪힌 파도는 모래언덕을 만나면서 하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산산이 부서지고 사라진다. 바람에 피난 온 갈매기들만 무리 지어 몰려든다.

투표자 수가 늘어나면서 핵발전소유치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아래 투표관리위원회)에 자원봉사자 지원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남정면 제2 투표소는 주민들이 한바탕 휩쓸고 갔는지 평화로웠다. 커피 한잔 타들고 돌아서는데 팔순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택시에서 내린다. 투표 관리소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을 투표소로 안내하는 동안에 기사님을 만나 봤다.

"내일도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새벽부터 투표하려 가야 한다며 어제부터 받아 놓은 콜이 밀린 상태이다. 2~3명의 어르신을 모시고 와서 투표하고 모셔다 드리는데 만 원 정도 받는다. 저 할머니들도 구계리에서 모시고 왔는데 투표하고 시장에 들러가자는 통에 기다리고 있다"

유치 찬성 현수막, 여기는 함부로 못 걸어

▲ 택시를 불러 타고 투표장을 찾은 할머니를 자원봉사자가 부축을 하고 있다. ⓒ 김종술

기분이 좋아 보이던 기사님, 덩달아 신이 난 자원봉사자들까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대통령 선거 때도 투표를 했는데 왜 안 된다는 것이여, 일부러 내가 할매 모시고 왔는데 그냥 하게 해줘"라며 어르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주소가 수원으로 되어 있어서 투표할 수 없다는 관리요원의 설득에도 어르신은 역정부터 내신다.

하얀색 승용차에서는 낯익은 어르신들이 몰려나온다. 조금 전에 만났던 남정리 아주머니가 할머니들을 태우고 온 것이다. 이 아주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어르신들을 자신의 차로 투표장까지 이동을 시키고 있다고 했다. "또 만났네요"라며 반가웠는지 커피 한잔을 타주신다.

"(투표) 귀찮아, 난 그럭저럭 살겠지만... 그런데 아이들은 살아야 하잖아"

어르신의 넋두리다. 50m 떨어진 지점에 서 있던 봉고 차량을 투표소 자원봉사자가 가리키며 "한수원 놈들이 새벽부터 진을 치고 있다"고 하신다. 주변에는 경찰도 배치되어 있다. 어디서 왔느냐며 고생한다고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 주신다. 어느새 내 손에 알사탕 하나가 놓였다.

동해안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영덕읍 제2 투표소 오일시장 옥상을 찾았다. 젊은 신혼부부가 투표소를 찾고, 아이 손을 잡은 엄마까지 줄지어 서 있다. 승용차를 타고 온 젊은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줄이 길어진다. 취재차 영덕에 내려와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젊은 유권자의 인터뷰였다. 젊은 사람들은 관심 밖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이 깨졌다. 투표소 관리원으로 나오신 수녀님의 뜨개질이 밀려드는 줄 때문에 자꾸만 손에서 놓인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가는 길목은 단풍으로 멋들어지게 물들었다.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매달린 붉은 사과가 군침을 돌게 한다.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투표장에 가지 맙시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하룻밤 사이에 수도 없이 걸렸다. 그만큼 투표 열기가 달아오르는 것으로 보였다. 

"사진을 왜 찍어요?"

▲ 농사일에 굽은 손가락 마디마디 골 자리가 파인 할머니가 투표를 하고 있다. ⓒ 김종술

지품면 제1 투표소. 신분증에 대책위에서 발급한 취재증까지 주렁주렁 걸었지만, 날 선 소리부터 들린다. 투표소마다 배치된 한수원 직원과 편파 보도하는 기자들 때문에 일부 주민들이 날카로워 보였다.

한 주민은 지품면 제2 투표소 입구부터 무용담을 털어놓는다.

"2005년부터 방폐장 문제로도 영덕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다. 이 지역만 (주민투표율이) 20%가 나올 정도로 드센 곳으로 다른 곳에 그 많던 유치찬성 현수막도 이곳엔 함부로 걸지 못한다."

지나가는 어르신들에게 투표 독려를 하던 투표관리위원회 측 투표 관리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친하게 지내던 환경단체 활동가를 따라 인근 식당을 찾았다. 투표소에서 봤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여기서도 커진다. "투표도 안 하고 밥부터 먹네!" 식당 안이 웃음바다다.

한수원 직원 눈치 보느라 투표 못하는 주민도 있어

▲ 밭일을 하다가 단체로 트럭을 타고 투표소를 찾은 어르신들 ⓒ 남어진

영덕읍사무소 제1 투표소에서 뜻하지 않게 큰 박수를 받았다. "어제 그 한수원 놈들 박살 내준 기자가 왔네요"라는 누군가의 큰소리 때문에 박수가 쏟아졌다. 엉겁결에 스타로 등극 했다. 양쪽 주머니가 찢어지도록 과자를 선물 받았다. (관련 기사: 영덕 주민들에 밥 사주고...'주민투표 소문' 사실이었다)

10일 투표를 앞둔 상태에서 한수원은 투표소 인근에 20~30m 부근에 천막을 쳤다. 대책위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일촉즉발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고가 터져도 크게 터질 것이라는 얘기들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도 충돌을 우려한 경찰의 주선으로 천막은 철거됐다. 하지만 투표소 인근에 봉고차를 세우고 4~5명 정도의 한수원 직원이 포진하자 서너 곳에서 말다툼은 있었다. 하지만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한수원이 투표소 인근에 포진하면서 투표 거부자도 나왔다. 영덕읍에서 가게를 하고 있다는 주민은 "좁은 땅에서 누가 투표장에 가는지 다 (한수원) 지켜보는데 장사하는 입장에서 내 소신대로 살 수가 있을까요?"라며 "우리는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고 한탄했다.

또다시 제보가 들어왔다. 한수원이 주민투표를 막을 속셈으로 주민들을 태우고 온천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고깃집에서는 여행을 마치고 음식을 대접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온천 여행을 다녀왔다는 어르신은 쏘아붙이듯 한마디 던지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부가 불법이라고 하던데 투표를 해서 뭐하나, 귀찮게 하지 마라."

11일 오후 8시, 우려와는 다르게 큰 사고 없이 1차 투표가 마무리됐다. 49.2%, 106세 최고령 할머니까지 투표를 마쳤다는 낭보가 전달됐다. 설마설마했던 투표율도 예상치보다 높았다. 환호성이라도 터질 줄 알았던 대책위는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투표와 개표가 끝나는 시간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는 대책위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2차 투표는 오늘 아침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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