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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밥 먹여주냐" 혹독해도 25년 버틴 이유
[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프로젝트] 4화. 표정과 몸짓만으로 감정 움직이는 광대의 삶

15.11.12 09:49 | 이정림 기자쪽지보내기

1990년 창단한 마당극패 우금치는 25년간 창작극 40편, 공연2500회를 올린 한국의 대표 마당극 극단입니다. 우금치는 동인제 극단으로서 공동책임과 투명한 재정운영, 체계적인 훈련시스템 등 독자적인 운영방식과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받아 백상예술대상 특별상(1997),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 창작연희 대상(2008), 대한민국 창작국악극 대상(2014) 등 각종 상을 수차례 수상했습니다. 우리의 전통예술을 잇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20대 청년들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습니다. 연습 공간 하나 없는 척박한 전통예술 환경에서, 마당극을 지키려는 열정과 헌신을 우금치인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이라 합니다. 지금 우금치는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마당극장 ‘별별마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단원이 대출을 받아 건물을 구입하고, 건물 수리비를 시민이 후원합니다. 그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배우 생활 재밌나요?"

내가 단원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대중이 예술가에게 보내는 시선을 담은 질문. 좋아하는 일,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을 하며 사는 것이 괜찮은가 하는 물음이다.

많은 대본을 어떻게 다 외우느냐는 질문만큼이나 사람들이 자주 묻는 말이란다. 단원들은 "공연할 때만 좋아요" 하며 웃었다. 그 외에 생활은 어렵다고 했다. 특히 이십대 때 팔러 다닌 표를, 중년에도 이리저리 부탁해야 하는 상황에 가끔은 모멸감을 느낀다고 한다.

입단 후 정단원이 되고 나서 받은 첫 월급 5만 원, 이후 급여가 10만 원으로 오르자 교통비는 됐다고 그때부터 숨쉬기가 나아졌단다. 다른 곳에 취업할 생각은 안 해봤는지 궁금했다.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저희 때 84, 85학번 선배들은 학교 졸업하고 공장이나 농촌으로 들어갔는데, 저는 그렇게 못했고요. 나는 문화패니까 예술 쪽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우금치에 들어오게 됐죠. 사람이 사람답게 인정받는, 서로 그렇게 해주면서 살 수 있는 사회를 예술로 만들고 싶었어요. 졸업해서 돈 버는 것은 가장 마지막에 선택해야 할 일이라 여겼으니까요. 그건 자기만을 위한 거라고…(이신애, 46세)."

취업이 20대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문제인 현재, 이신애님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현실적 어려움보다 사회적 역할과 책임의 추구를 당연하게 여긴 사람들이라니. 그래도 어떻게 그 정도의 적은 돈으로 생활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취업한 친구들과 밥 먹고 술 먹고 할 때, 저는 처음부터 '나 돈 없어서 못 낸다' 말해요. 그럼 친구들이 '당연하지' 그렇게 했었고, 그 자체가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게 해줬어요. 서로가 그랬죠. 친구들은 자기들이 못하는 일을 내가 대신하고 있다며, 오히려 후원 많이 못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어요(이신애, 46세)."

그 시대는 당시 차갑고 암울했지만, 이들은 서로 따뜻하게 보듬으며 살았구나 싶다. 경쟁이 갈수록 조장되는 지금,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손해 볼까 전전긍긍하며 서로 호구가 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고 있다.

25년 함께한 극단생활 "가장 힘든 건 바로 지금"

▲ <껄껄선생 백일몽> 공연 장면. ⓒ 우금치

그렇지만 아무래도 25년은 긴 시간이다. 연습도, 공연도 늘 함께하는 극단 생활은 답답하지 않은지, 동료들 간에 충돌은 없는지 물었다.

"그게 신기해요. 애증의 관계죠(웃음). 26살 때가 아직도 기억나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암자에 들어가서 혼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간절히 바랐어요(웃음)…아침에 별거 아닌 걸로 싸우고 말도 안 하려고 했는데, 공연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 맡은 역할을 연기해야 하잖아요(웃음). 결국 그러고 나면 어느새 풀려있고 그렇죠(이신애, 46세)."

"갈등 많죠. 그런데 서로 너무 잘 아는 거야. 걔가 싫은 소리 하고 지금은 성질을 내도, 왜 그러는지 아니까. 내일도 만나고, 모레도 만나는데 화났다고 자기 바닥을 다 드러내면 본인만 아침에 나오기 힘들죠(웃음). 동료들은 가족이에요. 어쩌면 '또 다른 나' 같은 느낌이고요. 탈춤동아리 활동하면서 대학교 1, 2학년 때부터 봐왔으니까. 술버릇이 어떻고 연애사가 어떻고, 부모님이, 형제가 어떻고를 다 알아요. 무엇보다 그 애들이 가지고 있는 예쁜 마음을 다 알거든요(이주행, 51세)."

배우, 내게는 신기한 직업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꾼들. 때로는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 관객은 그들의 연기를 보며 희로애락을 담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마당 위에서 연기하면서 무엇을 느낄까?

"제 에너지가 관객과 맞아 떨어질 때 보람 있어요. 느껴져요. 쫙 오는 게 느껴지죠.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의 표정도, 누가 나를 쳐다보는 것도 느끼죠. 내가 하는 연기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구나, 박수 치지 않고 웃지 않아도 나름대로 자기감정을 추스르고 있구나, 딱 보이죠(이주행, 51세)."

"공연하기 전에 바들바들 떨려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데, 무대에서는 전혀 안 그런 척하잖아요. 동작 하나 소리 하나에 초집중을 하고.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나서 인사를 할 때 사람들이 막 박수 치잖아요. 공연 시작 전에는 '내가 미쳤지, 내가 왜 배우가 됐나' 하다가도, 끝나고 나서 박수 받을 때는 '그렇지, 내가 이래서 이 맛에 하지' 그래요. 희열이 있어요(이신애, 46세)."

배우의 가족도 마당극을 좋아할까? 가끔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는지 궁금했다.

"공연 때문에 아이랑 같이 자주 못 있고 그래서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엄마 배우 하지 말까' 하고 물어봤더니 하라는 거예요. '엄마가 공연하는 게 좋아' 그러더라고요. 그때 뭉클했죠(이신애, 46세)." 

"우리 애들은 마당극 안 할 거래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공연 봤죠. 좋아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자기들은 다른 거 하며 살고 싶대요. 엄마, 아빠처럼 풍물치고 공연하고 맨날 바쁘게 살고 싶지 않대요.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여행 다니며 살겠대요(이주행, 51세)."

마지막으로 마당극 배우로 살면서 가장 힘들 때가 언제였는지 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금'이라고 한다. 추운 겨울날 산속에서 훈련하던 시절도, 단 몇만 원으로 한 달을 나던 시기도 아니라. 자신들의 25년 노력이 헛된 것 같은 불안 때문이다.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예술을 해왔는데, 사회는 이들의 열망과는 다르게 점점 변해간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 강하게 사익을 추구하고 공동체는 부서지고 있다.

또 마당극의 가치가 퇴색되어 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도 있다. 20대의 후배들은 선배처럼 사회적 가치를 위한 목적 의식으로 마당극을 하는 것이 아니다. 후배들은 우연히 이 길에 들어섰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금치와 마당극에 전부를 걸 수 없다. 하지만 선배는 마당극이 단순히 연극의 한 장르로만 여겨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연극배우 사망에 싸늘한 반응, 그런데도 버티는 이유

▲ <껄껄선생 백일몽> 공연 장면. ⓒ 우금치

최근 생활고로 사망한 어느 연극배우를 대하는 여론도 이들에게 상처가 됐다. 그 배우에 관한 기사 아래 달린 수많은 댓글은 이랬다. '게으르다', '다른 일을 했어야지',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반응. 예술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에게 예술인은 '사치스러운 존재'였다.

사회의 약자를 위한 마당극을 하려고 25년을 혹독하게 버텨왔지만, 대중의 싸늘한 시선 앞에서 이들은 위축된다. 단원들은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져서 그렇지요" 라며 애써 이해하려 했다. 그들은 "예술이 밥 먹여주는 거 아니니까요" 하고 말한다.

아니, 아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밥만이 아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감정으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존재다. 돈 한 푼 없던 시절,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를 지경이던 그 때 내 유일한 낙은 한 편의 시였고, 누군가 만든 음악이었고, 나 대신 추는 춤이었다. 그 큰 위안을 나는 잊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술을 위해 노력해준 사람들이 있어 고맙다. 그래서 마당극패 우금치의 광대들이, 더 왕성하게 살아 움직여 우리 스스로 하지 못한 정화(淨化)의 굿판을 벌여주길.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 평송 송림에서. ⓒ 우금치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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