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박원순 음모? 홍준표는 왜 '실력 저지'를 말했나

10만인 리포트

행복을 찾아가는 꿈틀버스

자칭 이민자로 산 10년, 버스를 타고 달라졌다
꿈틀버스를 타고 돌아본 내가 사는 고장 수원

15.11.12 10:45 | 강봉춘 기자쪽지보내기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 낙원을 찾아나선 그들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영화는 정확히 말해준다. ⓒ 직접 캡쳐

지난 여름 보았던 영화가 나에게 던져 준 질문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정말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 어디서 살아야 나는 행복해질까? 이 질문이 나만의 질문은 아닐 게다. 타국으로의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미 넘쳐나고 있으니까.

나는 10년째 수원에 살지만 수원의 주인이 아닌 이민자로서 사는 기분이다. 언제 훌렁 이곳을 떠날지 모르겠고, 내 이웃들도 언제 나를 떠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은 수원에 있지만 직장은 서울과 타지에 있다. 마치 섬에 사는 것 같다. 마음은 고립되고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그래서 버스를 탔다.

▲ 다시 한 번 돌아 보자. 이 그림이 우리의 미래인지 현재인지.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 정대희

내가 탄 버스는 안양행 65번 버스가 아닌 행복을 찾아 떠나는 꿈틀버스였다. 그런데 그 버스가 내가 살고 있는 섬 수원으로 와버렸다. 여행자의 눈으로 다시 찾은 행궁동.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 생태교통마을을 돌아볼 때는 마냥 이쁘고 좋았다. 길거리에 서 있기만 해도 행복이 샘솟을 거 같았다. 자전거를 타는 아가씨가 그려진 저 벽화를 그 날 처음 보았다.

▲ 살고 계신 집주인과 어울리는 벽화를 그렸다는 행궁길 벽화. ⓒ 정대희

비 때문이었을까. 집에 살고 계신 할머니의 젊은 날을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마을 해설사 님의 말씀이 젖은 채로 들려왔다. 할머니 얼굴을 뵙고 손을 잡아 보기 전까지 나는 저 자전거 타는 아가씨가 행복의 기록인지, 행복의 역설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궁동 생태교통마을은 차없는 거리로 세계에 알려진 수원의 자랑이다. 그곳 거리 하나하나에는 이야기가 하나씩 담겨 있었다. 마을 해설사님께서 없었더라면 나에게 그 길은 그저 잘 꾸며진 관광코스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 차없는 거리로 유명한 행궁동 생태교통마을이 생기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해설사 선생님. 길 하나에 이야기 하나인 행궁동은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 정대희

내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행복했던 것은 아마도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 같은 이야기보다 저마다 다르게 생긴 이유를 담은 그 삐뚤빼뚤한 이야기들 때문이었던거 같다. 그래서 생태교통마을을 계획하면서 생겼던 많은 갈등과 비극 혹은 화해의 이야기들 모두 살아 있길 바랐다. 누군가가 좋은 이야기만 남겨 두진 않을까를 염려했다.

▲ 수원의 가장 좋은 전망대인 제일 교회 노을빛 전망대는 예술가의 손길을 거친 뒤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 정대희

수원제일 교회의 종탑에 올라갔을 때는 수원에서 가장 값진 보물을 찾아낸 느낌이었다. 난 늘 교회의 첨탑을 볼 때마다 범인의 방문을 꺼려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곤 했는데 그 종탑으로 권위에 대한 인상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 멋진 전망대를 시민 모두에게 공개하는 수원의 본심도 자랑스러웠다.

화성을 지었던 오래전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진 하얀 벽화는 경이로우면서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그것을 담아낸 예술가의 청량한 목소리는 종탑의 종소리보다 깊게 울렸다.

"수원 지동 사람들은 모두 지동을 떠나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재개발을 원했지요. 벽화를 그린다고 제가 갔을 때 시선들은 말 그대로 눈총이었어요. 눈으로 총을 쏴서 따갑기 그지 없었지요. 그 따가운 눈총알이 왕구슬만한 금귤이 된 날이 있었어요. 그래서 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제가 여기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

▲ 정조대왕은 수원을 만들 때 '정치적'으로 화성을 세웠다. 돌을 가져오는자에게 돌값을 주고 품을 파는 자에게 품값을 주어 이주한 백성들이 먹고 살게 했다.그래서 수원 화성은 수원의 상징일 수 밖에 없다. ⓒ 강봉춘

내가 살아 오며 닫아 놓은 내 마음의 문들을 떠올렸다. 그 문들은 나를 지키기도 했지만 나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먹지도 못하는 한낱 그림 따위를 무시하며 밥그릇이 더 중요하다고 저울질한 마음들이 그랬다. 교회 첨탑이 나를 거부하는 건지 내가 첨탑을 거부하는 건지 헷갈린 마음들이 그랬다. 교회 출입문을 지키는 아저씨께 "제가 언제 다시 와도 될까요" 물었더니 "안경 낀 사람 별로 없으니 내가 꼭 기억하고 있을게" 하셨다. 하하하.

▲ 꿈틀버스 참가자들이 사회적 협동조합 마돈나(마을을 가꾸는 돈가스 나들터)로 자립한 조원동 마을만들기 활동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정대희

사실 조원동에서 만난 마을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나는 내 닫힌 마음을 알지 못했다. 수원의 행정가들이 여전히 꾸미기만 좋아한다는 인상을 재확인하자 마음이 더 좁아졌다. 사회적 협동조합 '마돈나'가 정부 보조로부터 독립하기까지 과정을 열심히 이야기 하시던 부대표님의 농담도 기억에 남았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교육 많이도 받았어요. 보이시죠? 좋은 말은 다 써놨어요. 어쩌겠어요. 참고 받아야죠. 그래야 보조금이 나오니까."

▲ 꿈틀버스 참가자들이 조원시장 안의 대추동이도서관을 찾아가고 있다. ⓒ 정대희

조원시장의 주인은 조원시장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어야 했다. 상인만이 되어서도 안 되고, 손님만 되어서도 안 되었다. 엄마 손을 잡고 따라 나온 아이도 시장의 주인이 되어야 시장이 제대로 살아있다 할 것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가 하면 그런 이야기를 할 누군가도 필요했다. 또 누군가는 시작해야 했다. 이런 나의 문장을 완성시켜 준 수원의 진짜 꽃을 만났다.

▲ 사진 오른쪽 노란 우산을 든 분이 꽃뫼버들 아파트에 꽃을 심기 시작해 유명해진 동대표 조안나 선생님이다. ⓒ 정대희

찾아간 꽃뫼버들 아파트는 조경이 잘 되있었다. 꽃도 있고 나무도 있었다. 그런데 거기다 꽃을 심기 시작한 분이 있었단다. 아니 '원래' 아파트에는 꽃이 심겨져 있는거 아닌가? 이 원래란 말을 나는 좀 더 아주 깊숙하게 들여다 봐야 했다.

"나는 아이들이 층간소음을 걱정하며 노는 게 아이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곳 1층으로 이사왔지요. 그리곤 또래 아이들 부모와 어울리며 말을 텄어요. 아이들 간식도 함께 해먹이고 같이 어울려 놀리기도 했지요. 그러다 아이들이 놀 시간 동안 엄마들은 꽃을 심어보기로 했어요."

그랬다. 꽃이 없는 곳에 내가 꽃을 심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임을 나는 왜 잊고 있었을까. 같이 온 참가자들의 우스갯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왠지 내가 하면 꽃이 다 싹도 못 틔우고 죽을 거 같아. "
"아니 꽃 심을 데가 없는데..."
"왜 꽃을 골랐죠?"


▲ 꽃뫼버들 아파트의 꽃을 보러 걸음을 옮기는 꿈틀버스 참가자들과 동대표 ⓒ 정대희

계속해서 들려오는 동대표님의 이야기는 단풍보다 짙게 기억됐다.

"같이 어울리는 게 즐겁다보니 봉사도 같이 했어요. 거리 청소도 하고 엄마들이 방범도 직접 돌았지요.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떠나기가 싫어졌어요."

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벌과 나비를 불러오듯이 좋은 일은 소문을 타고 좋은 이웃들의 응원과 관심을 불러왔다. 아파트 지하의 방치된 공간을 주민들의 어울림 공간으로 바꿔 눈치 보지 않고 크게 악기를 연주하는 공간으로도 쓰고 아파트 또래 아이들이 형 누나로 만나는 공간이 되었다.

▲ 누가 벽에 다 꽃을 심어 걸어 놓을 생각을 했을까? 좋은 것들은 얼른 따라해봐야 한다. ⓒ 정대희

그런 시기에 동대표에서 기금 사용을 제한하는 걸림돌이 생겼다. 그런데 이것이 마을만들기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되는 길을 터주었다. 대표님은 마을 만들기 활동 강의를 들으며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이웃들과의 시간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꽃뫼버들마을의 이야기는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사업의 모델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내게 들려온 진짜 이야기는 이것이 아니었다. 함께 꽃을 심은 이웃들은 우리 꿈틀버스 참가자들에게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다. 싫단다. 미안하지만 싫다고 하셨다.

"우리 이야기가 알려지자 여러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행정가들과 정치인들도 왔었죠. 그러다 어느날 누가 우리에게 정치적 의도가 있는게 아니냐고 딴지를 걸어 왔어요. 그때부터 갑자기 마을 만들기 지원금을 획득하기까지 과정과 우리가 했던 일들 모두를 들춰내서 트집을 잡기 시작하는데 정말 괴로웠어요. 같이 하던 주민들도 힘들어 이제 그만하자고 하는 소리도 나고 떠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잘못한 게 있어야죠. 그래서 서로를 다독였어요. 그리고 길을 찾았죠. 지금 이렇게 제가 동대표가 되어서 다시 자리를 잡았어요. 함께 시작한 이웃들이 그래서 노출되는 것을 싫어해요. "

"하루는 공무원들이 찾아왔는데 서로 다른 네 곳에서 오신 거예요. 그래서 한두 시간씩 같은 이야기를 네 번이나 한 거지요. 그 날 할 일 아무것도 못하구요. 지금 도지사가 된 남경필씨도 아파트 앞에서 사진 찍고 자신의 정책 홍보물로 썼답니다. 우린 그분이 다녀갔는지도 몰랐어요. "

"꽃을 심고 거리를 청소하던 아이들은 정말 진심으로 봉사를 즐거워해요. 엄마들은 꽃을 심고 키우는 것을 배우는 교실도 열고 아이들과 팸플릿도 함께 만들었어요. 사내 아이들은 벌레들을 좋아했죠. 꽃을 보고 따라온 벌레들이요. 벌레 이름 찾다 한글을 배우는 꼬마도 있었어요. 우리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동대표님은 꿈틀버스가 떠나는 곳까지 나와 우릴 배웅하시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집에 돌아와 직접 쓰신 두 장의 편지를 읽어봤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다.

"현실에서 어둠을 탓하지 말고 내가 켤 수 있는 촛불하나를 켜 봅니다."

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이제 의심을 갖지 않는다. 아마도 힘들어 취해 처지는 날이 오면 다시 버스를 타고 떠날 것이다. 훌륭한 사람들의 훌륭한 이야기를 다시 새기면 다시 살아날 것이다. 희망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야할 곳이 어디인가?란 질문에 이제 내 삶으로 답해야겠다.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