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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프로젝트

"마당극장 만들려 빚까지, 욕심 아니에요"
[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프로젝트] 2화. 이들은 무엇때문에 마당극 배우가 되었나

15.10.29 14:03 | 이정림 기자쪽지보내기

1990년 창단한 마당극패 우금치는 25년간 창작극 40편, 공연2500회를 올린 한국의 대표 마당극 극단입니다. 우금치는 동인제 극단으로서 공동책임과 투명한 재정운영, 체계적인 훈련시스템 등 독자적인 운영방식과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받아 백상예술대상 특별상(1997),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 창작연희 대상(2008), 대한민국 창작국악극 대상(2014) 등 각종 상을 수차례 수상했습니다. 우리의 전통예술을 잇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20대 청년들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습니다. 연습 공간 하나 없는 척박한 전통예술 환경에서, 마당극을 지키려는 열정과 헌신을 우금치인은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이라 합니다. 지금 우금치는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마당극장 ‘별별마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단원이 대출을 받아 건물을 구입하고, 건물 수리비를 시민이 후원합니다. 그 따뜻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여름이 끝날 무렵, 우금치 단원 세 명을 만났다.

야외극장의 작은 카페에서 그들은 내게 우금치를 취재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년의 배우들은 상냥했지만 알 수 없는 절실함이 있었다.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이 척박한 풍토에서, 마당극을 25년간 해 온 사람들이다. 마당극을 유지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왔지만 마당극을 아는 사람도 줄어들고, 할 수 있는 여건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고립되는 것이 두렵다고 한다.

어쩌면 자신들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둬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마당극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고 싶단다. 마당극은 지금 사라짐의 기로에 서 있는 듯했다.

우금치에는 대표를 포함해서 총 18명의 상근단원이 있다. 이 중 10명은 선배그룹으로 연령대가 40~50대며, 나머지 8명은 후배그룹으로 전원 20대다. 이전에는 30대의 단원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극단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떠났다. 지금의 20대 단원은 사회적기업 일자리 정책으로 급여를 지원 받고 있다.

선배는 대부분 1980년대 학번으로 대학에서 탈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전통예술을 처음 접했고, 이를 시작으로 풍물, 판소리 등을 배우며 전통예술의 표현방식이 동시대의 삶과 시대를 담아낼 수 있음을 자각했다.  

"대학 들어와 처음 춰본 탈춤, 화가 났어요"

"대학에 들어와서 탈춤을 처음 춰 봤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전통예술을 접한 게 전혀 없잖아요. 생경했지만 애착이 가더라고요. 좋았고, 재밌었고 그리고 의무감도 들었죠. 뭐랄까 화도 났던 것 같아요. 이런 것에 대해서 왜 스무 살 되도록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나 하는…

탈춤은 춤짓이 정말 매력 있어요. 그 전까지 춤은 전문가만 하는 건 줄 알았죠. 탈춤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물론 탈춤도 일정 동작을 익히지만 내 힘껏, 내 신명으로 마음껏 추는 춤이죠. 거기에 시대를 반영한 풍자와 해학, 굉장히 매력 있죠(이주행, 51세)."

졸업 후 이들은 대전·충남지역의 문화운동단체 '충남문화운동연합' 공연분과 '얼카댕이'에 참여해 활동했다. 그리고 이후 그곳에서 독립하여 1990년 마당극 전문 극단 '우금치'를 창단한다. 본격적으로 전통예술을 바탕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서였다.

"잘못된 여러 가지를 바꿀 수 있기를 원했어요.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 편에서 아무도, 무엇도 하지 않으니까요. 작지만 우리가 그 일을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이주행)."

▲ 1회 후원인의 날 ⓒ 우금치

우금치라는 이름은 동학농민운동의 마지막 격전지인 공주 우금치에서 따온 것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망했던 농민의 뜻을 계승한다는 의미다. 단체의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창단 초기에 우금치는 농민운동과 연계하여, 농촌문제를 알기 쉽고 재미있는 마당극 형식으로 만들어 각 농촌지역을 순회하며 공연했다.

"우금치가 우리 학교에 왔어요. 탈춤 동아리 활동하면서 선후배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때 우금치의 호미풀이를 처음 봤고 충격이었죠. 마당극이 역동적인 게 말로 못하겠더라고요. 순간순간 힘이 바뀌는데,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 들었다 놨다 하는 거죠. 학교에 최루탄 가스가 뿌려졌는데, 배우들이 고추를 따는 연기를 하면서 오늘 따라 고추가 맵다는 둥 현장성이 살아있었어요. 그때 반해서 저도 이 길을 가게 됐어요(이신애, 46세)."

▲ 아줌마만세 ⓒ 우금치

이후 분단문제에서 지금의 환경, 노인, 다문화가정 문제까지 사회성 강한 작품을 창작하고 공연해 왔다. 우금치의 작품 '호미풀이', '아줌마만세', '돼지잔치', '쪽빛황혼' 등은 그 경향을 담고 있다.

단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내가 아는 것과 이들의 경험 사이에서 큰 괴리감을 느꼈다. 나에게 전통예술은 여전히 옛것의 다름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신명과 현장성 그리고 역동성을 경험한 바 없다. 특히 내 삶과는 무관했다.

96학번, 학교 운동장에서 들리던 북소리에 끌려 가입한 풍물패. 심장을 울리는 그 소리가 좋아 한동안 운동장에서 악기 연습도 했지만, 그뿐이었고 사회에 나와서는 관람하기도, 배우기도, 무엇보다 시대와 호흡하는 전통예술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관심은 곧 사그라졌다.

가끔 명절 때 방송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고전무용, 우리 것을 지키자는 명분으로 들어본 판소리는 그냥 그랬다.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예술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지역에 뿌리를 둔 사람들의 공유된 희로애락, 전통예술은 그것을 표현해 줄 수 있었던가? 마당극은 그것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역사 쓰는 심정으로 별별마당을..."

▲ 쪽빛황혼 ⓒ 우금치

예술은 역사적으로 부유층의 유희이거나 서민의 무기였다. 서민의 예술은 응어리진 감정을 해소하는 도구로 주로 기득권층을 풍자하고 웃어 제끼는 기능을 했다. 또 자신들의 삶을 변화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떤 감흥도 주지 않는 박제화된 전통예술만 남은 채, 함께 호흡하는 전통예술은 교육되지도 쉽게 접할 수도 없는 것이. 살아 있는 예술은 누군가에게 위험하니까, 그런 게 아니었을까?

▲ 꼬대각시 ⓒ 우금치

우금치는 안간힘 쓰고 있다. 생명력 있는 전통예술로 사회를, 삶을 이야기해 보려 애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형편도 어려운데 빚까지 내어 마당극장을 만드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욕심이 아니에요. 환경오염으로 종(種) 하나가 사라져도 생태계에 문제가 생기잖아요. 징후 같은 것. 마당극이 사라지는 게,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것이 없는 것, 훗날 삶에 힘든 반향을 가져 온다고. 그래서 지키고 싶은 거예요. 별별마당을 역사 쓰는 심정으로 만들고 있어요(이주행)."

사회의 약자 편에 선 예술을 하려 마당극을 한다는 이주행님의 말. 민중예술, 오랜 시간 잠들어 있는 민중의 힘을 일으켜 세워줄 예술을 지켜야 한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모든 것이 상업화, 그 하나로 묻히고 다 사라지기 전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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