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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영덕대게를 부탁해요!

위험과 맞바꾼 '원전 머니', 35년 뒤 영덕은 어떨까
[10만인리포트-영덕대게를 부탁해요!⑥] 2050년 한국 '핵 발전소' 가상 시나리오

15.10.16 16:00 | 이정필 기자쪽지보내기

'대게의 고장' 영덕에 대게가 사라진다면? 정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영덕에 핵발전소 2~4기가 신설되면 방사능 오염과 온배수 배출로 서식환경이 악화되고, 상표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주민들은 11월 11일을 목표로 주민투표를 추진한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녹색당은 '영덕대게를 부탁해요!'라는 제목으로 '탈핵 응원글 보내기' 공동 캠페인을 벌인다. 또 영덕 핵발전소 계획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핵발전 사업의 거짓과 진실을 알리고 대안도 제시하는 현장-기획 기사도 내보낸다. 이번 글은 이정필 에너지 기후 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이 썼다. 2050년 미래의 시점에서 쓴 가상 글이다. [편집자말]
2050년, 새해가 밝았다.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지 오래됐지만, 그럭저럭 버티면서 적응하고 있다. 언제였을까? 교과서에 우리나라 기후를 아열대로 설명하기 시작한 게. 농촌·산촌·어촌은 물론 도시에서도 방재 기준을 높이 잡고 재해 예방에 힘쓰고 있지만, 일 년에 한두 차례 큰 사고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제 더는 핵발전소를 짓지 않고 있으니까 말이다. 2017년에 고리 1호기가 폐로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차후 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영덕에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후쿠시마 키즈

세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지만, 신규 원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정부와 지금은 사라진 한국수력원자력의 훼방에도, 영덕 군민들이 자체적으로 시행한 주민투표를 포함해 반대 운동은 다음 정부로 넘어가면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새 정부는 계획된 핵발전소 건설을 계속 추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결국 '천지 원전'은 2026년과 2027년에 각각 1기씩 완공되어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비극으로만 끝나는 역사는 없는 듯하다. '후쿠시마 키즈'가 확인됐다는 연구조사가 뉴스를 장식한 이후 국민의 생각은 명백해졌다. 탈핵에 소극적이던 정당들이 당론을 바꾸더니 대통령 직속 '에너지 전환 위원회'가 꾸려졌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서서히 움튼 '탈핵 에너지 전환' 흐름이 조금씩 퍼지더니 마침내 사회적 합의를 이룰 만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특히 원전을 끼고 사는 지역 사회의 움직임이 큰 힘이 됐다.

▲ 2012년 4월 6일 방사능에 노출된 먹거리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자회견 ⓒ 녹색당

오랜 논의 끝에 위원회의 권고안이 마련되었고, 이를 토대로 단계적 탈핵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2025 대타협'은 헌정사상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었지만, 영덕 주민들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탈핵 프로세스에 맞춰 부산·경주·울진·영광에서 하나둘씩 폐로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핵발전소 2기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24시간 돌아갔다. 6기까지 늘지 않고 2기에 그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낡은 모델이 잘못 예측했던 경제성장과 전력 수요가 나타나지 않았던 탓이다. 그리고 재생 가능에너지가 점점 증가하기 시작하자, 원전 확대를 주장했던 집단들도 현실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 짓는 것보다 없애는 게 유망 산업으로 인식된 것도 한참 전이었다고 한다.

'원전 특수'? 영덕의 비극

다른 원전 단지에서 들리는 소식에 주민들은 영덕에서도 폐로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35년 전 여론이나 주민투표 결과가 보여줬듯이 다수가 신규 원전에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지역발전을 기대하며 원전에 찬성했던 주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려나 하는 심정으로 동의하기도 했다. 보상이다, 지원금이다, 돈이 풀렸던 적도 있었다. 특히 건설 기간에는 화물차도 많이 다니고 현장 인부들도 부쩍 늘어 동네가 활기차 보였다.

'원전 특수'가 한때라는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들어 익히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이 상주하여 그만큼 상권이 유지되고 이런저런 지원금과 세금이 영덕에서 돌기만 한다면야, 인구가 5만을 넘어 10만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영덕 대게? 어차피 어획량도 줄고 있고, 기후변화다 뭐다 해서 영덕 대게로만 살 수 없을 바에야 뭔가 다른 것에 매달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 터다. 대박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쪽박도 아닐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원전과 방사능이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기장 미역이나 법성포 굴비·울진 홍게나 대게도 그런대로 장사 좀 된다고 하니,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성싶었다. 옛날같이 "조국 근대화의 등불"이니 "전기 만드는 공장"이니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모르지도 않고, 원전이 있다 해도 안전 기술도 더 보완될 것이다. 전 세계에 400개가 넘는 원자로 모든 곳에서 큰 사고가 발생할 것도 아닐 테니까.

그런데 막상 원전이 가동되고 나니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고리 1호기 폐쇄 이후 다른 발전소들이 순서대로 사라지는 동안 왠지 모를 소외감과 불안감이 들었다. 이쯤이야 그러려니 했는데, 기대했던 기회가 반쪽자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지역발전 논리의 맨얼굴

ⓒ 녹색당

천지 원전 사택은 있지만, 직원들이 주로 포항에서 출·퇴근하는 바람에 인구유입 효과는 바랄 수 없었다. 부산·울산·서경주·광주 등 원전 단지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다른 곳의 사례를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꺾여버린 블루 로드 때문인지 예전의 생기는 찾기 어려웠다.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금과 지역 자원 시설세가 요긴한 지역사업에 쓰이기도 했다. 목돈이 드는 그럴듯한 시설물을 올리는 데도 썼다. 천지 원자력본부가 군과 마을 행사에 협찬도 많이 해줬다. 몇몇 사람들은 영덕에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하고 다녔다. 전력 생산량에 비례해서 돈을 받게 되니까 6기 규모는 되어야 충분하다는 근거를 댔다.

여기에 동조하는 군민들이 없어 작은 소동으로 끝났다. 아마 그 무렵인가,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영덕만 30~40년 전의 구시대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경제활동은 성장만을 좇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더 의미있는 곳에서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 통일은 안 됐지만 왕래는 꽤 자유로워졌다(뉴스에서는 북한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통일도 시간 문제라고 한다). 에너지난에 시달렸던 북한은 일찍이 재생 가능에너지에 눈을 돌려, 에너지 생산량은 적지만, 오히려 한국보다 재생에너지 비중은 더 높다고 한다(초기 설비들의 잦은 고장으로 보수하는 데 일손이 달릴 정도라고 한다).

어쩌면 영덕은 지역발전의 시기를 놓친 건지도 모른다. 위험과 맞바꾼 돈, '원전 머니'를 밑천 삼아 어업과 농업에 투자하거나 도시화에 매진했더라면, "군민이 행복한 도시"를 만드는 데 성공했을지 모를 일이다. 물론 한 20년 겪다 보니 원전에 적당히 적응하며 살고는 있다.

고독한 영덕

도리어 이제는 원전에 대한 걱정보다는 영덕군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영덕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저출산 고령화'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고령사회로 바뀐 지 오래다. 대도시에서 농촌과 중소도시로 인구가 이동하는 게 유행인데, 울진으로는 거의 오지 않는다. 오히려 귀찮은 일이 많아졌다. 원자력 방재 훈련이다 뭐다 해서, 사이렌 울리면 이리저리 움직여야 할 일이 성가실 정도다.

2005년에 가동된 풍력발전단지로 영덕은 전력 100% 자립이 가능했다고 한다. 영덕과 함께 신규 원전 부지로 선정됐지만, 건설을 거부한 삼척은 대신 태양광과 바이오매스 등을 활용해 이제는 먼 곳에서 에너지를 가져오는 일이 확 줄었다고 한다. 영덕에도 그런 재생 가능에너지 설비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곳 원전에서 쓰는 전기는 어디에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도서관에 간 김에 옛날 자료를 더 찾아보니 흥미로운 책들이 눈에 띈다. 사라진 노물리·석리·매정리의 과거를 담은 책자를 보니 새롭다. 지금은 망향탑만 남아 있는 자리에 있었을 마을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책장 한쪽에 먼지 쌓인 책 <위험한 동거 : 강요된 핵발전과 위험경관의 탄생>도 있다. 핵발전의 위험을 기록한 것 같은데, 원전이 들어설 당시 그리고 원전과 함께 생활하면서 변화하는 주민들의 반응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심이 간다.

핵발전소의 "위험경관"이라. 정확한 뜻은 알기 어려우나, 핵 자체의 위험보다는 이 위험이 문화적·사회적·정치적·경제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려 한 듯하다. 아쉽게도 영덕은 나오지 않지만, 이전 네 곳에서 원전 단지가 들어설 때와는 분명 다른 상황이었을 것이다.

위험한 동거를 끝낼 상상력

ⓒ 녹색당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원전 단지가 있는 이곳, 영덕. 이제 몇 기 남지 않은 핵발전소 가동을 바로 중단 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처음부터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올바른 선택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닐까.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주장에 주민들 대부분은 동의하는 것 같다.

<위험한 동거>라는 책에 이런 내용의 대화가 나온다. 원전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이 지역의 삶은 어땠을까요? 상상하는 게 힘들겠죠? 아니오. 분명 지금보다 윤택하고 살기 좋은 곳이었을 겁니다. 영덕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영덕은 원전에 발목 잡혀서 세월을 허비했는지 모른다. 35년 전인 2015년의 결정이 강요된 것이었건 자발적이었건, 그 혜택이 다수에게 돌아갔던 소수에게 돌아갔건, 이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구를 위한 발전이었을까? 무엇을 위한 발전이었을까?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장·동경주·울진·영광이 처한 현실이 아닐까. 원전이 사라지기 시작한 곳은 유령 도시가 되어간다고 한다. 그곳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원전 수명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위험한 동거를 무탈하게 끝내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새로 시작할 상상력이 필요하다. 35년 전에 원전을 반대하면서 가졌던 비전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 <탈바꿈> 162-163쪽 중에서. '방사능에 위협받는 미래.' ⓒ 오마이북


○ 편집ㅣ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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