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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세월호의 미래, 힐스보로 참사에서 길을 묻다

"41명 생존 가능했다" 경찰이 살인을 한 셈
[10만인 리포트 : 세월호의 미래, 힐스보로 참사④]

15.10.14 13:18 | 박상규 기자쪽지보내기

최근 이 기획 기사(세월호의 미래, 힐스보로 참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지긋지긋하다. 대한민국 한복판에 초상집 차려놓고 뭘 더 바라나."
"무슨 진실을 기대하는 거지?"
"경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이제 그만 좀 하시죠."

세월호 참사는 안타까운 교통사고이니, 그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를 단순 교통사고로 치부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96명이 사망한 영국 힐스보로 참사는 자동차 범퍼가 조금 찌그러진 경미한 접촉사고로 보일까? 정확한 진실을 밝히려 26년째 노력하는 영국 사회는 어떻게 보일까?

'41명' 살릴 수 있었다... 얼마나 정밀하게 조사했길래

▲ 캐머런 전 영국 총리. ⓒ 연합뉴스·EPA

힐스보로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 힐스보로 축구경기장에서 발생했다. 축구팀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가 맞붙는 FA컵 준결승전이 그곳에서 열렸다. 경기장 안전, 통제, 경비를 맡아야 할 경찰은 수용 가능 인원보다 많은 사람을 경기장에 입장시켰다. 결국 압사와 응급 대처 미흡 등으로 96명이 숨졌다.

영국 사회는 이를 단순 사고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세 번의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했고, 진실 규명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놀라운 건 따로 있다. 힐스보로 참사의 진실을 조사한 '독립조사위원회'가 2012년 9월 발표한 결론의 한 대목을 보자.

"힐스보로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희생자 96명 중 41명은 경찰 초기대응 실패로 사망했다."

'40여 명'도 아니고, 정확하게 41명을 살릴 수 있었다고 발표하다니. 얼마나 정밀한 조사를 했기에 이런 발표를 했을까. 캐머런 영국 총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아주 세밀한 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사후 검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독립 패널은 28명의 사례에서 혈액순환의 폐색이 없었으며, 31명의 경우 압착(crush) 이후에도 심장과 폐기능이 지속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이 그룹에 속했던 사람들의 경우, 검시관과 이후 사법 심사(judicial review)의 소견과는 반대로, 3시 15분 이후에도 잠재적으로 원상 복구 가능한 무호흡증 상태일 수도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독립 패널은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경우 3시 15분 이후 일어난 일이' 그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데 '상당히 결정적일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영국 독립조사위원회와 캐머런 총리의 발표는, 숱한 참사를 겪으면서도 우리가 하지 않았던 질문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정부가 대응을 잘했다면 몇 명을 살릴 수 있었을까?'

세월호 참사로 처벌받은 정부 쪽 사람은... 거의 없다

▲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사진. ⓒ 해양경찰청 제공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씨랜드 참사…. 한국에서는 많은 참사가 발생했다. 그때마다 "이번에도 인재였습니다"라는 방송 뉴스 멘트가 반복됐다. 그래도 참사는 계속 이어졌지만 말이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세월호 사고는 승객이었던 최덕하 단원고 학생에 의해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전남 119에 접수됐다. 그 뒤의 상황은?

<한겨레21>은 감사원과 검찰의 세월호 수사-조사기록을 입수해 당시의 상황을 지난 4월 보도했다(제1057호). 해양경찰청 본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가 당시 얼마나 우왕좌왕했는지 적나라한 모습이 보도에 담겼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목포항공대 구조 헬기 B511호는 오전 9시 24분께 "(승객)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이라고 보고했다. 10분 뒤 현장에 도착한 경비정 123호 역시 "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갔고 못 나오고 있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해경 수뇌부는 정확한 승객 구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배는 골든타임을 지나 오전 10시 17분께 완전히 전복됐다. 해경은 침몰하는 배에 승객이 많은 걸 알면서도 구조하지 못했다.

하지만 승객 구조 문제로 현장에 출동한 해경 중 처벌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장에 출동했던 김아무개 123호 정장만이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지난 7월 광주고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한겨레21>이 보도한 대로, 해경은 '최초 사고 현장 보고'가 담긴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 녹취록을 감사원과 검찰에 제출하면서 일부 내용을 조작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해경 수뇌부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처벌에서 '탈출'한 셈이다.

참사 23년 지나도... "덮고 가자"는 말 없는 영국

▲ 지난해 4월 15일, 힐스보로 참사 25주기를 맞아 추모객들이 헌화를 한 모습. ⓒ 연합뉴스·EPA

힐스보로 참사를 겪은 영국의 사례를 보자. 참사에 책임 있는 정부 쪽 사람들의 사실 조작과 왜곡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영국 경찰도 그랬다.

힐스보로 참사 직후 영국 경찰은 "술 취한 훌리건들이 난동을 피웠다" "일부 관중이 입장권도 없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등 사실이 아닌 내용을 흘렸다. 일부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영국 경찰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164건의 증인 진술도 조작했다.

이 모든 사실은 참사 발생 23년 만인 2012년에 밝혀졌다. 영국 정부는 "오래된 과거 일이니 덮고 가자"거나 "국민 통합을 위해 용서하자" 등의 논리를 펴지 않았다. 경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곧바로 시작됐다. 약 1500명에 이르는 전현직 경찰이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경찰들은 지금도 힐스보로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법정에 불려 나간다. 참사가 벌어진 그날 그 순간에 무슨 일을 했고, 그때의 행동이 적절했는지 여전히 추궁당한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검찰은 이들을 기소한다. 힐스보로 참사 유가족들은 책임 있는 경찰이 '부작위 살인' 처벌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6년째 진실을 찾고, 경찰에게 '살인' 혐의 적용까지 검토하는 영국. 너무 과도한 책임 추궁일까? 생각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이번엔 우리 사회를 보자. 

지존파의 5명 살인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 502명 사망

▲ 범행 모습을 재연하는 '지존파'. 이들은 체포 1년여 만에 사형당했다. 다큐멘터리영화 <논픽션다이어리>의 한 장면이다. ⓒ <논픽션 다이어리>

<논픽션 다이어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1994년 9월 세상에 알려진 '지존파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지존파 6명은 1인당 10억 원을 갈취한다는 목표로 시민 5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듬해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502명이 사망했고, 939명이 부상 당했다. 6명은 실종됐다. 돈을 쉽게 더 많이 벌려는 사람(백화점)과 이를 감독하지 못한 정부 탓에 벌어진 참사였다. 영화에서 당시 지존파를 수사했던 고병천 전 서초경찰서 강력반장은 이런 말을 한다.

"피의자의 목적은 지존파나 삼풍백화점 운영권자나 다를 바가 없어요. 지존파는 각자 10억 원을 벌겠다, 백화점 운영권자는 (예를 들어서) 1조 원을 벌겠다 등의 목적이 있었겠죠. 당시 1년 매출액이 1400억 원이었으니까."

"한쪽(지존파)은 형법상의 살인이라는 방법으로 사람 생명을 박탈했지만, 한쪽(백화점 운영권자)은 다른 죄명,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라는 죄명으로 사람 생명을 박탈했죠. (중략) 직접적 방법으로 살인한 것과 간접적-미필적 고의로 살인한 것, 내용상으로는 차이가 없어요."

검찰은 "이 세상에 신과 악마가 있다면 이번 사건이야말로 악마의 대리자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라면서 지존파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살인 동기와 수법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의 인간성 말상 행위는 극형을 선고받아 마땅하다"라면서 사형을 선고했다. 지존파는 체포 약 1년 만인 1995년 11월 2일 사형당했다.

▲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현장 모습. 다큐멘터리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의 한 장면. ⓒ <논픽션 다이어리>

반면 사법부는 502명을 사망하게 한 삼풍백화점 이준 회장에게는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징역 7년 6월, 관리 담당 공무원들에게는 이보다 훨씬 낮은 징역과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존파의 5명 살해와 백화점 붕괴로 인한 502명의 사망. 고병천 전 반장의 말대로, 수법은 달랐지만 사람 생명을 박탈한 내용상 차이는 없다. 오히려 삼풍백화점에서 100배 넘는 사람이 희생됐다. 국가 기관이 법과 원칙에 따라 관리 감독만 제대로 했어도 삼풍백화점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모습. ⓒ 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 참사는 어떤가.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따져도, 돈을 더 쉽게 많이 벌려는 선박회사와 관리 감독을 제대로 못한 정부 탓에 벌어진 참사다. 사고 직후 해경 수뇌부가 승객 구조 명령을 정확히 내리고 이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해경이 조치만 했어도 희생자 규모는 달랐을 것이다.

26년 전 참사 때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경찰에게 '살인' 혐의 기소를 추진하는 영국. 우리는 정부 쪽에 이런 책임을 물은 적이 있었나? 이제 질문을 제대로 해보자.

"해경이 초기 대응을 잘했으면 세월호에서 몇 명이 생존했을까?"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정부 책임자에게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할까?"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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