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공주에 나타난 '실지렁이 산책로',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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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10만인

"오마이뉴스는 '한국 짱돌', 왜냐고?"
[이 사람, 10만인] 돌에 혼 불어넣는 김주표 조각가

15.09.22 21:07 | 이희훈 쪽지보내기|김병기쪽지보내기

▲ 10만인클럽 회원 암각 조각가 김주표씨. ⓒ 이희훈

우두커니 바위처럼 앉아 있었다. 어슴푸레한 길가에 차량 불빛이 비추자 그는 그림자처럼 일어섰다. 야전 군복 차림이었다. 불쑥 내민 손은 두텁고 거칠었다. 그의 입에서 소주 냄새가 희미하게 번졌다. 

"아이~ 왜 이제 왔어? 후배님들이 온다기에, 기분이 좋아서 술 한잔하고 있었지. 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모처럼 고향을 찾아온 친인척을 맞는 것처럼. 외롭다는 뜻이다. 김주표 (56)씨는 강원도 인제 내설악 예술인촌에 산다. 그는 30여 년간 바위와 돌에 암각을 해온 조각가다. 주로 작은 돌에 낙관을 새겨왔다. 지난 11일 만난 그는 집으로 올라가서 황토방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앉으니 뜨끈했다. 창문은 없지만 황토 흙의 향기로 청량했다.

"불을 지폈어. 따뜻하지? 여기서 하루 자면 천 년 묶은 때가 벗겨져. 하하. 구들장 황토 두께가 이 정도(두 손을 30cm 정도로 벌리면서)라고. 이 난로에 나무를 집어넣으면 사우나야. 오늘 자고 가."

돌에도 결이 있다

▲ 10만인클럽 회원 암각 조각가 김주표씨의 작업장에는 돌가루가 뽀얗게 켜켜이 싸여 있다. ⓒ 이희훈

▲ 10만인클럽 회원 암각 조각가 김주표씨의 야외 작업장. ⓒ 이희훈

▲ 김주표씨의 작업장 가는 길은 나무와 풀들로 둘러 싸여 있다. ⓒ 이희훈

그 옆 작업장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은은하게 붉은 기운을 띤 진달래석도 있고, 김씨의 후배가 작업장에서 갖다 준 이름 모를 돌도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모나고 울퉁불퉁한 돌이다. 이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첫 작업은 쓰임새에 맞게 자르는 일이다. 판잣집처럼 대충 엮은 그의 야외 작업장 둥근 그라인더는 돌가루로 뒤덮여 있다. 힘겨운 작업의 흔적이다.

"난 이 돌이 다이아몬드보다 좋아. 조선 사람의 정감이 있고, 자기 생긴 대로 쓰임새가 있지. 내 구도대로 깨고 쪼개려 하지만, 너무 심하게 다루면 자기 결대로 쪼개져. 고기처럼 부위도 있어. 목살, 안창살, 심지어 뼈까지 있어. 그 부분은 나무옹이와 비슷한데, 단단하고 얇은 심이 무더기로 박혀있지. 겉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결과 살이 모두 다른 이 녀석들이 내 보석이야. 하하하."

그는 닭장을 지나 낙관 마무리 작업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각종 전선줄과 돌을 깎는 기구들이 가득한 그곳 역시 창고에 가까웠다. 그가 의자에 앉아서 불을 켜니 '고독한 예술'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각칼과 사포, 오래된 스탠드와 스피커 그리고 잘려나간 돌조각. 의자 정면에는 아궁이만한 구멍이 있었다. 돌가루가 소복하게 쌓였다. 손으로 만져보니 밀가루처럼 부드러웠다. 그는 매일 그 아궁이 앞에서 옥석과 진달래 석에 누군가의 이름을 새겼을 것이다.

"돌의 살코기를 싹 발라내다가 나무의 옹이와 같은 딱딱한 심이 나오면 절대 피해갈 수 없어. 그 부분은 무지하게 단단해. 거기에 색감이 다 들어있어. 그런데 요만한 거(자기 검지를 들어 보이며)로 작업하는데 그걸 잘라버리면 돌 전체를 버려야 해. 단단한 칼로 힘의 안배를 달리해서 파야하지. 힘을 너무 주면 글자의 한 획이 떨어져 나갈 수 있어."

가장 강한 쇠, 가장 강한 칼
▲ 김주표 ⓒ 이희훈

그래서 칼이 중요하단다. 돌을 깎는 조각칼. 그가 직접 만든 공구들이다. 그는 돌먼지가 뽀얗게 앉은 의자 위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말을 이어갔다.

"난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청계천에 가. 을지로 8가에서부터 쭉 걸어오면서 가장 강한 쇠를 사지. 그 칼로 조각칼을 만들어. 돌을 깎으려면 가장 강한 칼을 써야 해. 그런데 요즘 대견한 게 있어. 인사동에도 가끔씩 들르는데, 돌 도장을 파서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더라고. 그 친구들 중 한 명은 어느 순간에 그 작업이 단순한 '멋'이 아니라고 깨우칠 거야. 그때부터 나처럼 '전각'을 할 수 있어. 전각쟁이가 되는 거지."

이야기가 약간 옆길로 샜다. 그는 허름한 탁자 위에 놓은 재떨이에 담뱃불을 비벼서 껐다. 꽁초가 수북했다. 그 밑에 누런 A4용지를 끼워놓은 연습장과 볼펜이 놓여 있다. 낙관 한 개를 새길 때마다 글자 모양을 수십 번 구상한 흔적이 남아 있다. 낙관은 목도장처럼 기계적으로 이름을 파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돌은 생명체다
▲ 10만인클럽 회원 암각 조각가 김주표씨가 세긴 그를 닮은 낙관들. ⓒ 이희훈

"돌은 무생명체인데 보면 볼수록 생명이 있어. 내 손에서 떠나 누군가가 이름 석 자를 받아 가면 힘이 되고 희망을 품게 되지. 나는 낙관의 주인이 될 사람들의 희망을 생각하면서 이름을 새기고, 돌은 자기에게 농축된 기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거지."

그는 "모든 수석에는 산수화가 담겨 있고, 산과 물과 바람 등 자연의 풍경이 퇴적하면 그 흔적이 단단한 돌에 농축이 되는 것"이라면서 "내가 작업하는 돌은 우리나라의 모든 기운과 역사가 담겨 있는 한국의 돌"이라고 말했다.  

순간, 그가 왜 이 길로 들어섰는지 궁금했다. 또 낙관은 물론이고, 목도장조차 사라지는 '사인의 시대'에 고행과도 같이 혼자서 꽉 막힌 작업실에서 돌에 이름을 새기는 작업을 계속하는지도 궁금했다.

"젊었을 때 돌조각을 하는 선배 집에 갔다가 돌을 몇 개 가져왔어. 호기심이 생겼지. 그걸 파보니 재미가 있더라고. 그런데 세상은 온통 싸움판이었지. 뭐하면서 살아갈까 생각하다가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택한 거야. 사람들은 산 입에도 거미줄을 치지. 거미줄이라도 쳐야만 거기에 뭔가 걸리고 먹고 살 수 있잖아.

돌에 조각하는 삶이 강퍅하긴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고 이 땅에서만 할 수 있는 작업이야.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에도 암각이 있는데, 우리처럼 섬세한 돌조각,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 남아 있지. 우리의 자연과 삶을 돌에 용해시키는 작업을 나는 계속하고 싶어. 돌에 혼을 넣어주는 작업이야. 요즘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이런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런 그는 매월 월정액의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다. 지난 7월 10만인클럽이 진행한 '이외수 작가와의 아름다운 만남' 때 취재진을 처음 만난 그는 <오마이뉴스>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신청해서 기사를 받아본단다.

오마이뉴스는 '한국 짱돌'

▲ 10만인클럽 회원 암각 조각가 김주표씨. ⓒ 이희훈

"가장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뉴스지. <오마이뉴스>를 빨갱이 신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볼 때는 극우도 아니고 극좌도 아냐. 그리고 기사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정신'이 들어 있어서 좋아해. 사람과 자연의 삶이 농축된 돌의 정신과 같은 한국 짱돌이지. 하하. 또 <오마이뉴스>는 리드미컬해서 좋아. 동요와 같이 순수한 기사들도 많아."

강원도 인제의 내설악에서 혼자 돌에 이름을 새기다가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돌가루가 묻은 손으로 스마트폰을 열어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는 그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와의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되고, 소주와 막걸릿잔이 오갔다.

오후 10시가 다 돼서야 그의 집 앞에서 나오는데, 불쑥 거친 손을 건넸다. 묵직한 손은 돌덩이 같았다. 어둠 속에 어슴푸레하게 비친 그의 얼굴도 큰 바위 얼굴 같았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길가, 그곳에서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는 바위처럼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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