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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진 시인의 소년의 눈물

에이즈 어린이 껴안은 남자, 그가 말하는 희망
[소년의 눈물 10화] 아프리카 탄자니아 선교사 박관일-최미숙 부부

15.09.16 13:11 | 조호진 기자쪽지보내기

▲ 겨자씨마을 고아를 안고 있는 박관일 선교사 ) ⓒ 법무부 푸르미방송국

2013년 12월 말, 소년원 출원생 돕기 후원의 밤에서 아프리카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탄자니아에서 선교 중인 박관일(45) 선교사는 에이즈 보육원 건축기금을 모으기 위해 한국에 잠시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물장사를 한다는 겁니다. 선교사가 건축기금을 모으려면 교회나 교인들을 상대로 모금하는 게 통상적인데, 선교사가 고물장사 해서 건축기금을 모은다니?

알고 보니 그는 신학대학 출신 선교사가 아닙니다. 선교사 중 상당수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목사입니다. 또 그는 교단이나 교파 혹은 선교단체가 파송한 선교사도 아닙니다. 이들 선교사에겐 월급과 자녀교육비는 물론 사업비도 지원됩니다. 그는 신학대학 출신도 아니고 소속 선교단체도 없는데 무슨 배짱으로 아프리카까지 갔을까요? 그는 맨땅의 선교사입니다. 

그는 왜 맨땅의 선교사가 됐을까요? 남들이 기피하는 위험한 아프리카를 선택했을까요? 알고 보니 그는 고아였고, 소년범이었고, 전과자였습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은 변두리 인생이었고, 배신자였으며 예수가 아꼈던 막달라 마리아는 직업여성이었습니다. 기독교에선 이들을 가리켜 탕자라고 합니다. 예수교는 탕자들의 종교이기도 합니다. 탕자가 어떻게 선교사가 될 수 있냐고요?

보육원, 소년원, 교도소... 죄와 벌로 얼룩진 절망 인생

▲ 박관일-최미숙 선교사가 운영하는 겨자씨마을의 고아소년. ⓒ 박관일

그는 네 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보육원은 춥고, 배고플 뿐 아니라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폭력과 기합(얼차려)이 난무했습니다. 1981년 초등 5학년 때, 오락실에서 돈을 훔치다 붙잡혀 파출소로 넘겨졌습니다. 보육원 선생에게 인계된 그는 야구방망이로 피멍 들게 맞았습니다. 형들에게 집단폭행 당할 차례가 되자 보육원을 도망쳤습니다.

그리고는 껌팔이와 신문팔이를 하다 지갑을 훔치고, 쪽방에서 자고, 구두닦이를 하고, 술과 담배를 배우고, 웨이터 생활을 하다 손님과 싸우고, 소매치기하다 붙잡혀 소년원에 들어갔습니다. 열여섯 소년에겐 면회 올 부모도, 사고 좀 그만 치라고 혼낼 조부도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자'(법무부의 자식이란 은어)로 입적됐습니다.

▲ 잔지르바 겨자씨마을의 아이들 ⓒ 박관일

소년원에서 엄마뻘의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기독교인인 여성들은 매주 월요일이면 맛있는 음식을 싸왔지만 불편했습니다. 그건 기독교인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보육원 원장은 배고픔과 폭력의 배후였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친절에도 '이 아줌마들이 밥만 주지 왜 이리 말이 많아!'라고 아니꼬워했습니다. 선한 척, 거룩한 척하면서 나쁜 짓을 하는 위선의 교도들…!

여성들이 가져온 음식을 먹는 월요일, 간질환자인 소년원생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습니다. 소년원생들은 "저 새끼, 하필이면 이 시간에 거품 물고 지랄이야!"라고 욕을 했습니다. 꿀맛 같은 시간을 방해한 데 따른 성토였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이 간질로 쓰러진 소년을 안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저 아줌마들이 왜 우리 같은 것들 때문에 저러지? 자기 아들도 아닌데 저 더러운 거품을 닦아주며 우는 걸까?'

그 광경을 보면서 보육원에서 맞던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가슴 찡한 통증이었습니다. 소년의 아니꼬움은 사라졌습니다. 다른 소년들처럼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2년 여의 소년원 생활을 마친 소년은 어머니의 소개로 선교 공동체에서 생활했습니다. 얼마간은 잘 지냈지만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왕년의 구두닦이 친구들과 소매치기하다 구치소에 들어간 것입니다.

연대보증으로 16억원 덤터기... 구두닦이, 노점상, 고물장사 끝에

▲ 한국에서 온 자원봉사들과 원주민들을 진료하는 박관일-최미숙 선교사 ⓒ 법무부 푸르미방송국

집행유예 1년을 받고 구치소를 나온 박관일씨. 그는 수배자의 몸이었습니다. 구치소 가기 전에 시계방을 턴 적이 있는데 공범이 경찰에 나팔을 분 겁니다. 그는 선교단체 회원들의 설득으로 자수했습니다. 1년 8개월의 실형을 받았습니다. 선교회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주었는데도 항소하지 않은 건 죗값을 치르고 새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형기를 마친 뒤에는 선교사를 따라 아프리카 보츠나와로 떠났습니다.

거기서 자신보다 더 비참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으로 죽고, 어머니는 에이즈로 죽어가고, 아이들은 굶주려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버려진 상처로 방황하고, 죄짓던 삶을 뉘우쳤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선교회의 농장 사업이 부도나면서 목사와 선교사들이 다투었습니다. 크게 실망한 그는 선교회를 떠났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소매치기를 하다 목포교도소에서 2년간 복역했습니다.

▲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운영하고 있는 노아제빵기술대학에서 제빵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박관일 선교사 ⓒ 법무부 푸르미방송국

다시는 죄짓지 않으리라, 다짐한 그는 불우청소년학교 체육교사가 됐습니다. 학교에서 간호사인 아내 최미숙(44) 선교사를 만나 1996년 결혼했습니다. 딸과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난생처음 가족이 생겼습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습니다. 그 춥던 겨울도 따뜻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떠났습니다. 처가의 도움으로 치킨 장사를 하면서 버려진 소년들을 돌봤습니다. 그런데 연대보증 건이 터졌습니다.

선교회의 유리온실 사업에 타의 반으로 참여한 그는 위험을 감지했습니다. 이사에서 빼달라고 한 뒤에 농장을 떠났는데 사업은 부도났고, 이사직 삭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목사 등의 사업자에게 채권이 확보되지 않자 채무보증인인 그에게 16억4000만 원을 갚으라는 통보가 내려지면서 그의 이름으로 된 장모님 집을 압류한 겁니다.

3년 동안 사우나 구두닦이, 노점상, 고물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돈을 벌었지만 청천벽력의 빚을 갚기엔 까마득했습니다. 장모님이 4000만 원을 도와줬습니다. 그 돈으로 신용보증회사와 협상하면서 채무의 족쇄에서 풀려났습니다. 아내는 아프리카로 떠나자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2006년 8월 탄자니아 잔지바르로 떠났습니다.

교회 부수고 불 지르는 원주민... 제국주의 기독교의 죄악이 화근

▲ 박관일-최미숙 선교사가 주민들에게 옷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 박관일

박관일-최미숙 선교사 부부가 10년째 선교 중인 탄자니아 잔지바르는 탕가니카라는 독립 국가였다가 1964년 탄자니아에 합쳐진 연합공화국입니다. 국민소득 800달러의 가난한 땅입니다. 제주도 크기에 70만~100만 명가량이 사는 섬인데 주민 통계가 불명확 것은 에이즈에 의한 영아 사망률이 높기 때문에 출생신고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잔지바르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팔려가는 중간 기착지, 노예의 한이 서린 땅입니다. 그래서 백인을 비롯한 이방인에 대해 매우 배타적입니다. 주민의 98%가 무슬림으로 선교사들이 꺼리는 위험한 땅입니다. 교회에 불을 지르거나 부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큰 건 원주민의 폭력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국주의 종교였던 기독교의 죄악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맨땅의 선교사는 원주민의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배운 것이 많지 않으니 잘난 척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주민들은 그가 소년원 전과자 출신이란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에이즈 고아들을 돌보고 살리면서 마을 주민들을 섬기는데 배척하겠습니까? 피부와 언어, 문화는 달라도 진정으로 사랑하며 섬기면 와서 안깁니다.

축구리그 열고, 우물 파고, 고아 돌보는 그의 '맨땅 계획'

▲ 박관일 선교사가 지원하는 헤브론 파이널 매치 리그전 출전 선수들. ⓒ 박관일

잔지바르 청년들은 '공 찰래? 밥 먹을래?' 물으면 공을 선택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한답니다. 맨땅의 선교사는 맨발의 청년들에게 축구화와 유니폼을 선물하고 여덟 개의 축구팀을 만들어 헤브론 파이널 매치라는 리그전까지 열었습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리그전에는 500여 명의 선수들이 출전할 정도로 성황이랍니다. 이로 인해 범죄가 줄고 청년들은 씩씩해졌답니다.

맨땅 선교사 부부의 '겨자씨마을'에는 11명의 고아들이 살고 있습니다. 또 마을의 에이즈 어린이 15명이 이곳에서 선교사 부부의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제빵 기술대학을 만들어 청년들의 자립을 돕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주민들에게 많은 선물을 줬지만, 그중에서 가장 귀한 선물은 우물이라고 합니다.

"우물을 처음 파서 물이 나오던 날, 주민들이 기뻐서 난리가 났습니다. 4~5km를 걸어가서 물을 뜨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고, 물을 떠간다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 박관일 선교사는 잔지르바에 16곳의 우물을 파주었습니다. ⓒ 조호진

맨땅의 선교사는 우물파기 비용과 보육원 건축비 마련을 위해 한국에 와서 고물장사를 한 것입니다. 돌아갈 때는 TV, 세탁기, 오토바이 등 중고 가전제품 등을 컨테이너로 싣고 가 팔기도 하면서 우물 열여섯 곳을 파줬습니다.

빽도 돈도 없는 맨땅의 선교사를 돕는 사람들…. 보츠나와의 선배 자비량 선교사와 소년원에서 만난 장정순(78) 어머니가 보육원 건축기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우물도 네 곳이나 파줬습니다. 헤브론축구선교회 단장 유영수 목사는 축구 물품을 지원했습니다. 맨땅의 선교 사실이 알려지면서 후원자들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많진 않습니다. 법무부는 법자 출신의 선교사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죽어갑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에이즈에 걸리면 치료를 포기합니다. 부모로서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치료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이즈 쉼터와 병원을 지으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선교사의 도리가 아닙니다. 건축 계획은 있지만 건축비는 없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하늘의 뜻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맨땅의 선교사는 에이즈 환자들과 에이즈 고아들을 위한 병원과 쉼터를 짓고 싶습니다. 간절하게 원합니다. 하지만 계획과 간절함만 있고 건축비는 없습니다. 맨땅의 헤딩 방식입니다.

뇌종양 수술 아내와 우직한 남편이 부르는 아프리카 희망가

▲ 뇌종양 검진 때문에 한국에 온 최미숙 선교사 ⓒ 조호진

▲ 겨자씨마을 고아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는 최미숙 선교사 ⓒ 법무부 푸르미방송국

최미숙 선교사는 지난 7월 14일 한국에 왔습니다. 2년 전에 뇌종양 수술을 했는데 다시 머리가 아파온 것입니다. 검진 결과 큰 이상이 없다니 다행입니다. 오는 17일 돌아갈 예정입니다. 아들(15)은 3년 전에 현지 주민의 공격으로 크게 다쳤다가 한국에 와서 수술받고 완쾌했다고 합니다. 김희관 광주고검장과 이중명 한국소년보호협회 이사장 등의 선한 손길이 최 선교사와 아들의 수술을 도와줬다고 합니다.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축복에 환장했습니다. 돈독에 올라서 날뛰니 미친 세상이라고 말들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맨땅의 선교사 가족들은 왜 아비와 본토 친척을 떠나 환난고초의 삶을 사는 걸까? 지난 11일 최미숙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힘든 남편과 힘든 삶을 선택했는데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박관일 선교사는 고아였고, 전과자였고, 못 배웠고, 돈도 빽도 없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목욕탕 때밀이, 구두닦이, 고물장사를 했지만 그게 어때서요?! 돈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내와 자녀를 그렇게 사랑할까요? 박 선교사는 죄를 씻은 뒤로는 하나님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환난고초가 닥쳐도 남편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우직한데 아내인 제가 왜 흔들립니까? 세상 잣대로만 보지 마십시오. 보여 지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세속적인 질문을 했다가 혼났습니다.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일침에 얼얼했습니다. 탄자니아 잔지르바의 박관일 선교사와 카톡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아프리카에 심으려는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 잔지르바의 에이즈 아이들입니다. ⓒ 박관일

"생존조차 어렵던 아이들이 겨자씨마을에 살면서 의사 혹은 선생이 되겠다고 합니다. 꿈과 희망이 생긴 겁니다. 의사나 선생이 돼서 남을 돕겠다고 합니다. 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실현시켜주는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장정순 어머니를 비롯해 많은 분들의 헌신 덕분에 탕자였던 제가 이나마 사람 노릇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희망의 통로가 돼주신 많은 분들처럼 저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희망의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탕자의 눈물이 아프리카를 적십니다!

▲ 2년 전, 뇌종양 수술 당시의 박관일-최미숙 선교사 ⓒ 박관일

하나님 입장에선 사면권을 가진 대통령과 행정수반인 국무총리 그리고 법무부장관도 죄인입니다. 죄인을 심판하는 대법원장과 부장판사, 판사도 죄인입니다. 기소독점권을 쥔 검찰청장도 부장검사도 검사도 죄인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은 물론이고 수사과장과 경찰청장도 죄인이지요.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고관대작을 죄인 취급하니 불쾌하십니까? 충분히 그러실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한 척, 깨끗한 척, 죄인 아닌 척하는 권력자와 부자와 배운 자보다 가난하고, 못 배우고, 죄 많은 인생들을 긍휼하게 여깁니다. 이제 맺겠습니다. 눈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눈물은 돌아온 탕자가 흘리는 회개의 눈물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눈물이 아프리카를 희망으로 적시고 있습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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