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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진 시인의 소년의 눈물

'전교 2등' 일진 뒤에 '강력범 검거 1위' 노형사
[소년의 눈물 9화] 인천남동경찰서 학교전담경찰 박용호 경위

15.09.09 12:52 | 조호진 기자쪽지보내기

▲ 사부와 제자. 유도 선수가 된 순둥이(16)는 "사부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년은 지난 5월 학교폭력 예방활동 공로로 경찰청장 상을 수상했습니다. ⓒ 조호진

[기사수정 : 10일 오전 10시 22분]

※기사에 등장하는 모든 소녀·소녀는 별명으로 표기했습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 동안 1000명의 학생이 자살했다고 교육부가 밝혔습니다. 지난해에만 118명이 자살했고 올해 8월 현재 61명이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끊었습니다. 정부와 사회가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비극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대책에 인간애(人間愛)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사부이자 영웅이라 불리는 한 경찰의 인생을 통해 해법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사부님 안 만났음 정말 어땠을까요. 순둥 아빠는 순둥이 일로 회사도 그만두고 순둥이는 매일 15층 올라가고 ㅠㅠ 한 가정이 파탄 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사부님께 은혜를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멋진 우리 사부님~ 언제나 우리에게 영웅이십니다. 저도 아프지 말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엄마니까요^^" (순둥이의 엄마가 박용호 경위에게 보낸 카카오톡)

지난해 7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순둥이(16)는 15층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학교폭력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소년을 수상하게 여긴 경비원의 제지와 소년의 엄마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자살시도는 중단됐습니다. 그 경위를 직접 들어볼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와 학교폭력으로 이리저리 치이면서 대인기피증이 생겼어요. 지난해 1학기에는 일진들에게 집중적으로 왕따와 폭행을 당했어요. (학교와 부모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일진이 너무 무섭고, 쪽팔려서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한 달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일진에게 계속 시달리는 게 너무 무서워서 아파트 15층 옥상에 올라갔어요."

자살시도를 중단 시켰으니 모든 게 해결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찰에 신고했다고 모든 게 해결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년을 살린 건 사부라 불리는 경찰의 지극한 돌봄이었습니다. 소년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봅시다.

"사부님을 만나 유도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일진들에게 하지말라고 했는데도 계속 괴롭혀서 엎어치기를 했더니 그 아이가 바닥에 쓰러졌어요. 그 이후로 일진들은 저를 건드리지 않아요. 대신에 친구들을 괴롭히면 하지말라고 경고해요. 사부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자살했을 거예요. 사부님은 생명의 은인이에요."

자살까지 시도했던 소년이 '용감한 소년'으로 변했습니다. 정의의 소년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한 생명을 끊게 하는 것은 물론 가정까지 파탄 내는 학교폭력의 사슬에서 소년과 가정을 구한 사부이자 영웅으로 불리는 경찰을 소개합니다.

우리의 사부이자 영웅인 경찰을 소개합니다

▲ 유도, 태권도, 함기도 등을 합쳐 20단이 넘는 박용호 경위. 그는 1989년~1992년 3년 연속 강력범 검거율 전국 1위를 차지한 검거왕, 강력계 형사들의 전설이었다. ⓒ 조호진

인천남동경찰서 학교전담경찰 박용호(58) 경위의 제자가 된 순둥이는 2014년 제4회 네이버 카페컵 국제유도대회에서 동메달을 땄습니다. 시합에서 치아가 깨지고 기절하면서도 항복하지 않을 정도로 근성을 발휘했고, 지난 5월엔 학교폭력 예방활동 공로로 경찰청장 상까지 받았습니다.

순둥이를 비롯한 16명의 중고교생 제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저녁 6시, 토요일은 오전 10시에 인천경찰청 상무관에 모입니다. 학생연합파인 '인천 만수복개파'와 '주안역전파' 등의 학생폭력 조직원들이 경찰청을 드나들며 운동하게 된 것은 윤종기 인천경찰청장과 인천경찰청유도회원 그리고, 남동서 학교전담경찰들의 성원 덕분입니다.

이들은 멍게, 서창동 왕제비, 작은 거인, 왕코, 머털이, 작전동 왕모기, 만수동 까시, 간석동 하리마오, 구월동 불곰, 개고기, 만수동보스 등의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불우소년들입니다. 학교폭력과 비행으로 학교는 물론 부모들도 포기한 아이들이었는데 사부를 만나면서 꿈이 생겼습니다.

▲ 인천경찰청 상무관에서 유도훈련을 마친 뒤에 제자들읕 안아주고 있는 박용호 경위. ⓒ 조호진

박 경위는 학교폭력 가해·피해 학생들의 사부(師父) 즉, 스승이자 아버지입니다. 그는 지난 7일 한 소년을 구하기 위해 인천지방법원 소년법정에 섰습니다. 29년 7개월 경력의 베테랑 경찰인 그는 체면불구하고 판사에게 꼴통이(14)를 책임지겠다고 호소해 선처를 받았습니다.

꼴통이는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서 한 달 동안 지낸 소년입니다. 꼴통이는 세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헤어졌습니다. 새엄마가 세 번이나 바뀌었고, 아버지의 폭력은 더 심해졌습니다. 지옥 같은 가정을 탈출했다가 비행청소년이 된 꼴통이는 버림받은 자신을 구해준 사부의 품에 안겨 대성통곡하면서 이날 부로 제자가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지난해 3월 12일에도 그는 판사 앞에 무릎 꿇고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만수복개파 짱으로 활동하다 구속된 만수동보스(17)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아인 소년은 외삼촌 등의 친척에게 심하게 맞으며 자란 탓에 어른과 세상에 대한 증오심이 컸습니다. 이대로 두면 조직폭력배가 될 수밖에 없기에 무릎을 꿇어서라도 구해야했습니다. 그렇게 구한 만수동보스는 학교생활과 유도훈련을 잘하는 애제자로 변했습니다.

소년원에서 1년 살다 나온 개고기(17)에겐 꿈이 생겼습니다. 체육교사가 되거나 무도관 도장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부모 이혼 이후 방황하던 소년이 어떻게 해서 달라졌는지 직접 들어볼까요.

"학교에서 사고치고 잘리게 됐는데 사부님이 학교에 찾아와 사정하셨어요. 사부님 덕분에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더니 선생님이 반장까지 시켜줬어요. 예전에는 엎어버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유도하면서 엎어치기를 했더니 스트레스가 풀리고 뿌듯함까지 생겼어요. 사부님은 저희들을 살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세요."

개골뱅이들을 모범생으로 변화시킨 인간애의 승리

▲ 인천지역 일진과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사부인 박용호 경위는 박봉을 털어서 자장면과 국밥, 라면을 사준다. ⓒ 박용호

사부는 제자들의 변화를 기적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이 표현이 더 맞지 않을까요? 눈물어린 인간애의 승리!

"그냥 일진이 아니라 '개골뱅이'(골통 중에 골통이란 은어)였던 아이들이 반장이 되고, 성적으로 1~2등을 다투고, 서울 명문대 체대에 진학했어요. 여학생 일진이었던 보살(18)이는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삼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으로 변했고, 일진에서 모범생으로 바뀐 민들레(18)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인권변호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변화시킨 방법이 뭐냐고요? 딴 것 없습니다. 아이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편들어주고, 밥 사주고, 안아주면서 끝까지 지켜주면 아이들은 놀랍게 달라집니다."

인간애의 비결은 자기희생입니다. 그는 동료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상무관에서 제자들과 구슬땀을 흘립니다. 유도 훈련만 한 달에 30시간 정도 합니다.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법원, 학교, 가정, 밤거리 등을 밤낮없이 뛰어다닙니다. 명령에 의한 게 아니니 잔업수당은 없습니다. 수당은커녕 제자들에게 짜장면, 국밥, 라면을 사주려면 박봉을 털어야 합니다. 스폰서는 없습니다.

정부와 사회가 대책에서 인간애를 뺀 것은 희생할 사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살기도 바쁜데 누가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저를 '똘아이' 경찰이라고 부른다"고 귀띔합니다. '똘아이' 경찰이 '똘아이 짓'을 계속 하게 만드는 건 제자들입니다. 한 여학생 제자에게 이런 카톡을 받았습니다.

"사부님~! 이번 수능이 끝나면 저도 고3이 되겠죠? 멀게만 느껴졌는데 막상 다가오니까 두렵기도 해요. 가끔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사부님과 약속한 게 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사부님은 항상 존경의 대상이세요. 저도 어른이 된다면 사부님 같은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부님 뵙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나 강력계 형사 박용호야' 수재 소년의 죽음으로 바뀐 인생

▲ 학교폭력예방 전도사로 변신한 박용호 경위. ⓒ 박용호

1989년부터 1992년까지 3년 연속 강력범 검거 전국 1위를 달성한 박 경위는 전설의 강력계 형사였습니다. 조폭 사이에선 '뽀찌'(뇌물이란 뜻의 은어)와 향응접대가 통하지 않는 공포의 강력반 형사로 불렸습니다. 그에게 형사란 존재감이고 자존심이었습니다. 조폭들이 뽀찌와 향응접대를 하려고 하면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야, 내가 누군지 몰라? 나, 박용호, 망치형사라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진 놈들은 다 조지는 망치형사란 말이야!"

범죄자 일망타진이 목표였던 망치형사, 그의 인생을 바꾼 건 한 소년의 죽음이었습니다. 1992년 인천의 명문고 학생으로 교내 1등이자 전국 10위권인 수재 소년의 사건을 맡았습니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진학이 목표인 소년은 수능을 3개월 앞두고 바람 쐬러 집밖으로 나섰다가 주차된 빈 자동차를 발견, 호기심에 시동을 걸면서 데이트하던 젊은 연인을 살짝 쳤고, 당황한 소년은 차를 버려두고 달아났다가 붙잡혔습니다.

피해자들은 합의금 5000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합의가 안 되면 구속된다는 약점을 알고 집요하게 돈을 요구했지만 소년의 부모는 큰돈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망치형사는 소년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받아 낸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했지만 끝내 구속됐습니다. 출소한 소년은 인천 학익동 집창촌에서 지내면서 망가진 삶의 고통을 술로 달래다가 1995년 자살했습니다.

"소년을 수갑 채워 교도소로 데려가는데 절망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봤어요. 소년의 그 눈빛을 생각하면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한국의 아인슈타인이 될 수도 있었던 천재소년을 비정한 사회, 우리 어른들이 죽인 겁니다."

▲ 지난 1월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위기청소년 희망토크콘서트'에 출연한 박용호(우측) 경위와 청소년공동체 (사)세상을 품은 아이들 대표 명성진 목사 ⓒ 조호진

망치형사는 경찰 옷을 벗으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그 소년을 죽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작은 실수가 이렇게 큰 비극이 된다는 걸) 알았으면 제가 그랬겠어요!"라는 소년의 말을 뼈아프게 새기면서 청소년 범죄예방활동에 투신했습니다. 1995년 12월 청소년지도사 자격증을 딴 이후 20여년을 전국 학교를 다녔습니다. 지난 4월 29일 상인천중 김부호 선생이 박 경위에게 감사편지를 보냈습니다.

"반장님은 아이들이 보석이라는 본 모습을 찾아주시는, 누구도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반장님의 몸은 반장님 것만이 아니고 앞으로도 등불이 필요한 수많은 아이들의 몸이기도 하니 건강 챙기시고 더 많은 보석들의 빛으로 남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는 26년째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26년 전, 교도소에 보낸 결손가정 극빈소년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그는 "아이들의 비행은 아이들의 죄가 아니라 어른들의 죄입니다. 몰라서 그렇지 아이들은 사랑해주면 천사로 변합니다. 천사로 변한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라면서 박봉을 털어서 짜장면, 국밥, 라면을 사 먹입니다.

정년 2년 남긴 만성간염 노 경찰과 병에 걸린 경찰 아내

▲ 박용호 경위는 24년째 만성B형 간염을 앓고 있다. 제자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병든 몸이 그를 흔들고 있다. ⓒ 조호진

천사들의 사부인 그의 가정은 어떨까요? 7년 전 '전세 떠돌이'로 사는 사위를 보다 못한 처갓집이 도와줘서 겨우 집을 마련했고, 학원도 못 보낸 3남매는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과 노인 등을 위해 봉사하던 아내가 '후종인대골화증'이라는 병에 걸려 두 번의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됐습니다.

만성B형 간염환자인 그는 24년째 투병 중입니다. 망치형사로 명성을 떨치던 1992년, 연쇄살인범을 쫓다가 과로로 쓰러지면서 간염을 발견했습니다. 사건 해결에 물불을 가리지 않다가 연골도 망가졌습니다. 정년퇴직 2년을 남겨둔 노 경찰에겐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엄습한 피곤에 휘청거립니다. 제자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쓸 뿐입니다.

"요즘은 간염 약을 먹고 비상약까지 먹는데도 오래 버티기가 힘듭니다. 경찰생활 30년 동안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갔는데 아이들 돌보는 일만 끝나면 조금 쉬려고 합니다."

사부의 길은 가시밭길입니다. 저도 사부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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