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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진 시인의 소년의 눈물

중학교 중퇴 '소년원 전설', 그가 석사모를 쓰기까지
[소년의 눈물 8화] 두 여인의 순애보, 이런 영화를 기다렸습니다

15.09.02 12:43 | 조호진 기자쪽지보내기

▲ 김기헌, 이 청년의 꿈은 많이 배워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소년원 동생들을 스포츠로 치유하는 것입니다. ⓒ 조호진

▲ 소년원 출신으로 소년원 동생들의 멘토인 김기헌씨가 쓴 대학원 논문입니다. ⓒ 조호진

한 청년에게 대학원 논문을 선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논문을 받으면 기뻐하십니까? 그럴 리 없을 겁니다. 검은 상복 같은 검은 표지의 논문은 환영받지 못하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소년원 청소년들의 스포츠 활동참여에 따른 자아통제력 및 공격성이 사회적응에 미치는 영향'이란 긴 제목의 논문을 선물 받고는 가슴이 울컥거렸습니다. 법자(법무부 자식)라는 낙인을 극복하고 거둔 월계관이기 때문입니다.

경기대교육대학원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한 논문의 저자 김기헌(36)씨는 소년원 출신입니다. 낙인과 가난의 폭우를 헤치면서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졸업식장에서 이사장상이나 총장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장한 이 청년에게 <소년의 눈물>의 이름으로 '최우수 인생상'을 수여하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수락해주시면 이렇게 축사하고 싶습니다.

"검은 가운에 석사모가 잘 어울리는 소나무 같은 청년이여! 버려져 상처 입은 소년들을 스포츠로 치유하려는 그대의 가시밭길에 영광 있으리라. '상처 입은 치유자'의 길을 가다보면 눈물과 좌절의 골짜기가 도처에서 나타나겠지만 소년들의 아픔과 함께하는 그대의 혁혁한 인생길은 총총히 빛나고도 남으리라!"

떠난 어머니와 슬픈 고향 그리고 소년원 총반장

▲ 한 번의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요? 김기헌씨의 서울소년원 시절입니다. ⓒ 김기헌

"일곱 살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저와 동생에게 300원씩 나눠주면서 시장에 갔다 올게! 하시고는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방황하셨고 저는 큰집으로, 여동생은 고모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사촌형제가 4명인 큰집에 얹혀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눈칫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 우주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잃어버린 소년들은 우주의 미아가 됩니다. 큰집에 얹혀살던 소년은 종종 가출했습니다. 버림받은 아픔과 눈칫밥의 슬픔으로 떠돈 것입니다. 소년은 타고나길 뼈대가 굵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선 씨름선수, 중학교에선 역도선수로 소년체전에 출전해 금메달까지 땄습니다.

역도선수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뒷받침이 필요했습니다. 부모 지원 없이는 운동선수로 클 수가 없었습니다. 운동선수로는 찬밥이었습니다. 눈칫밥과 찬밥에 절망한 소년은 중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선배를 따라 상경했습니다. 소년에게 공장일이 쉽습니까? 잔업과 철야에 지친 소년은 공장생활 6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단란주점 웨이터 생활을 하다 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소년원생이 됐습니다.

1997년 2년 처분을 받고 소년원생이 된 18세 청춘은 총반장의 완장을 찼습니다. 소년들을 통솔하려면 힘과 깡이 세야만 합니다. 힘은 날 때부터 타고났지만 깡다구는 버려지고 뒹굴면서 다져졌습니다. '김기헌'이란 이름만으로도 억센 소년들을 휘어잡을 정도로 소년원의 전설이 됐습니다. 1999년 3월, 2년간의 소년원 생활을 마치고 잠시 귀향했다가 예전에 일했던 가구공장에서 다시 일했습니다.

어머니, 저 사실은 너무 외롭고 힘들었어요

▲ 김기헌씨와 어머니 전길순(66),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고 치유합니다. ⓒ 조호진

소년 또한 웨이터와 소년깡패 생활을 했고, 선배 사채업자를 따라다녔습니다. 어차피 버림받은 밑바닥 인생, 소년원까지 갔다 왔으니 겁주고, 패고, 뺏는 양아치와 건달이 인생 수순이었는데 소년은 가구공장 노동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렇지만 잔업으로 청춘을 죽이고, 짬밥으로 설움을 달래고, 기숙사에서 그리움을 파묻고 잠들기란 힘들었습니다.

소년원 어머니들이 생각났습니다. 신앙인인 소년원 어머니들은 음식을 가져와 자식에게 먹이듯이 먹이고, 편지를 보내주고, 부모와 자식을 잇는 통신원이 되어주고, 옷이 없는 퇴원생에겐 옷을 사주고, 차비를 주면서 바른 인생으로 인도하려고 애썼습니다. 어머니들은 아들이라 부르며 안아주었고 소년들은 엄마라고 부르며 안겼습니다. 면회 올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생일을 특별하게 챙겨주면서 소년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소년도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버리고 떠난 어머니가 원망스러워 어머니의 '어'자도 꺼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머니의 '어'자만 발음해도 눈물 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년은 군기반장 총반장의 권위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맹수 같은 얼굴을 했고, 어머니들은 그런 소년이 겁나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저 기헌인데요. 광주(경기도)에 있는 가구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당시, 10년째 소년원 아이들을 돌보는 전길순(66) 어머니에게 전화하자 음식을 싸가지고 달려왔습니다. 어머니는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원의 전설이 술집과 뒷골목이 아닌 공장에 있다니? 소년은 한걸음에 달려 와준 어머니가 눈물 나게 고마웠습니다. 험난한 세파를 홀로 헤치며 살아야 하는 독불장군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 줄 아십니까?

"누군가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에게 고백했습니다. 저, 사실은 너무 외로워요. 이 세상이 너무 힘들어요. 저 좀 안아주세요. 저도 무언가가 되고 싶어요. 맹수처럼 사나운 척했던 것은 세상이 무서워서 그랬던 거예요. 소년은 주말이면 어머니 집에 가서 가족들과 어울렸습니다. 기숙사의 잠과 가정의 잠은 달랐습니다. 공장 짬밥과 어머니의 따뜻한 밥은 천지 차이였습니다.

"저 아이를 우리마저 버리면..." 소년 지켜준 어머니와 목사님

▲ 전길순 어머니가 김기헌 막내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가 어둠의 길로 가려는 소년원의 전설을 지켜주었습니다. ⓒ 조호진

어머니 집에서 잠시 살았습니다. 하지만 반대가 거셌습니다. 자식과도 갈등이 생기는데 핏줄도 아닌 소년원 출신과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으로 인해 어머니가 이혼 위기에 이르자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기헌아, 나는 너 없으면 못 산다, 가지마라 아들아!"라고 눈물로 막았습니다. 그러나 떠나야만 했습니다.

소년은 신앙공동체인 '겨자씨마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겨자씨선교회 김원균(65) 목사님은 소년원 교회에서 세례를 주신 분입니다. 목사님이 "기헌아, 3년만 참고 공부하면 너도 대학생이 될 수 있다"라면서 공부를 권했습니다. 영어 알파벳도 다 까먹었는데? 잠시 고민하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겨자씨마을이 있는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에서 안양1번가의 검정고시 학원까지 10km를 차비를 아끼기 위해 자전거 타고 다녔습니다.

▲ 중학교 중퇴생인 소년원 출신이 대학원 석사모를 썼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승리입니다. ⓒ 김기헌

사람이 금방 환골탈태합니까? 희망은 중단 없는 전진입니까? 그런 인생과 그런 희망은 없습니다. 변화보다 훨씬 센 건 습관입니다. 공부와 담 쌓고 살다가 공부와 씨름하려니 쉽겠습니까. 게다가 공동체에선 규율로 통제합니다. 제 멋대로 살아온 소년들은 통제를 하면 견디지 못합니다. 소년은 겨자씨마을을 뛰쳐나가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어머니의 손길에 이끌려 돌아왔지만 순탄치 않았습니다.

소년들은 분노의 화산입니다. 힘이 장사인 소년이 폭발하면서 누구도 못 말립니다. 문짝을 부수고 밥상을 엎습니다. 참다못한 공동체 선생들이 "기헌이 때문에 공동체가 다 깨지겠습니다, 기헌이를 내보내야 합니다"라고 탄원하자 김 목사님은 "우리가 기헌이를 내보내면 그 아이가 어디에 가겠습니까, 우리가 공동체를 만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헌이가 자기 발로 나간다고 하기 전까지는 지켜주어야 합니다"라고 설득했습니다.

사나운 소년을 탈바꿈시킨 건 징벌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이 소년을 지켜주자 소년은 백운호수처럼 잔잔해졌고, 인생 목표가 생기면서 확 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체대 진학을 권한 것입니다. 분노의 에너지를 공부로 전환하면서 일로매진했습니다.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에서 잇따라 합격한 뒤에 2004년 장학금까지 받고 경기대 체육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중학교 중퇴생인 소년원 출신이 스물다섯에 대학생이 된 것입니다.

겨자씨선교회와 여동생의 도움, 학비 대출과 아르바이트, 휴학과 복학의 역경을 거쳐 2010년 학사모를 썼습니다. 그리고는 소년원에서 동생들의 멘토이자 체육선생으로 봉사 활동했고, 교사자격증을 따면 소년원 교사로 특채될 수 있다는 귀띔에 2012년 대학원에 입학해 지난 8월 21일 석사모까지 썼습니다. 현재는 소년원 퇴원생의 사회정착을 돕는 법무부 산하 '소년보호 예스센터'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고지순한 두 여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남편 김기헌씨를 바라보는 아내 전수진씨의 눈빛이 따스합니다. ⓒ 조호진

지난해 1월 어린이집 교사인 아내를 만났습니다. 참 묘합니다. 사랑이 찾아왔으면 마냥 설레고 행복해야 하는데 심연에 잠겼던 슬픔이 가슴을 흔듭니다. 장모님의 결혼 반대는 통과의례였지만 그에겐 고통이었습니다. 버려짐과 거절의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간절한 꿈은 행복한 가정을 갖는 것이었는데 막상 꿈을 이루려니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말은 때로 마음의 반대입니다. 그는 "장모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으니 우리 그만 헤어지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묘한 게 또 있습니다. 사랑보다 손익에 몰두하는 연애시대에, 손톱만큼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다투다 헤어지는 얄팍함에 경종을 울리는 순애보가 있네요. 그의 아내는 그의 불리한 모든 조건을 감싸 안으면서 가정을 꾸몄습니다. 아내 전수진(34)씨는 남편 김기헌을 지키라는 특명을 받은 수호천사임이 틀림없습니다.

"독불장군으로 살아온 탓에 저도 모르게 제 맘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데도 엄마처럼 돌봐줍니다. 임신부라 몸이 힘든데도 저부터 챙겨줍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허물투성이인 저를 선택해준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저의 아픔을 함께하고, 안아주고, 오직 저를 위해 밥을 짓는 아내는 하늘이 주신 선물입니다."

가시밭길을 걷는 순애보의 주인공이 될 순 없지만 순애보 영화는 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은 아픔을 치유하는 묘약이어서 최고의 의사이사 약사인 아내로 인해 그는'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꿈은 청소년체육비행예방센터를 만들어 세상이 외면하는 소년원 동생들을 스포츠로 치유하는 것입니다. 그의 아내에게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을 만나 힘든 일도 겪고, 눈물도 흘렸지만 남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퇴근해 집에 오면 기쁨(태명)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노래해주고, 기도해줘요. 자상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감사해요. 원래는 저렇게 부드러운 사람이었는데... 상처로 인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면 더 많이 사랑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 기쁨이는 11월 초순에 출산 예정입니다. 기쁨이로 인해 가정의 행복이 충만할 것입니다. ⓒ 김기헌

두 여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경의를 표합니다. 맹수처럼 사납던 소년원의 전설을 막내아들로 삼으면서 그 아들을 위한 천일의 기도를 15년째 드리는 전길순 어머니와 못난 사내를 장군으로 만든 평강공주처럼 상처투성이인 사내를 '상처 입은 치유자'로 훈련시키는 아내 에게 영광이 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혼을 반대했던 장모님과 주변 사람들은 장차 큰사람이 될 그를 보면서 딸의 현명한 선택에 탄복할 날이 올 것입니다. 다가오는 11월에 태어날 '기쁨'이로 인해 이 가정에 행복이 충만할 것입니다. 끝으로, '법자'라는 이유만으로 재목이 될 수 있는 소년들을 찍어 넘어뜨리면서 미래를 황폐화시키는 우리들의 편견과 무정함을 뉘우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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