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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이 사람, 10만인

"나와 사상이 맞지 않아도 돕고 싶었다"
[이 사람, 10만인] 농부 박정재 회원

15.08.23 09:32 | 박형숙 기자쪽지보내기


박정재(54) 회원을 만난 건, 10만인클럽의 특강이 있던 날이었다. 7월 말 '나답게 사는 법'이라는 주제로 열린 명성진 목사의 특강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앞좌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말을 걸었다. 두 가지 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장성한 고3 아들과 동행했다는 점, 저 멀리 전남 함평에서 오로지 이 강의를 듣기 위해 올라왔다는 점. 옆에 앉은 아들에게 물으니 아버지 제안에 잠시 망설였지만 오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왔다고 답한다. 입시 막바지에 아버지와 먼 '공부 길'을 떠날 수 있는 아들을 둔, 그가 궁금했다. 추가 인터뷰는 8월 17일 전화로 이뤄졌다.

"신분이 노출되면 안 되는디…. 지은 죄가 많아서…. 허기사 열심히 산 죄밖엔 없지."

박정재 회원의 말에서 느릿느릿 구성진 전라도 사투기가 묻어났다. 인터뷰 요청에 부담을 느끼는 듯하더니 이내 "최전선에서 일하시느라 고생이 많은 분인디"라며 받아준다. "나는 식량안보를 위해 일하고 있소"라는 어눌한 말투에 당당함이 느껴졌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세상 공부하는 채널이자 정보를 줍니다."

그가 10만인클럽 회원이 된지는 2년 여. 그 동안 그는 오마이스쿨의 인문학 강좌 <조국 교수의 법학고전> 강의도 현장에서 들었다. 4회 모두 개근. 수강 목적? "농부도 법을 알아야지" 그게 전부다. 강의가 끝나고 부랴부랴 밤차를 타면 새벽 4시쯤, 함평에 도착한다.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도 수료했다. "폭력 보다 펜이 강하다고 하니까"라는 그. 아직 '시민기자'로 데뷔작을 쓰진 않았다.

바다 사나이에서 농부로

그의 세상을 보는 눈은 넉넉한 듯하면서도 예리했다. "긍정적으로 보고 잘 되는 쪽으로 생각하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지만, "야당은 좋고 여당은 나쁘고, 니편 내편 가르는 이분법은 정치인만 좋은 거고 국민은 거기에 놀아나는 거요. 정치수준을 높이려면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식으로 시민이 깨어야제"라고 지적한다.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게 된 동기를 물었다. "<오마이뉴스>가 색깔이 좀 짙지요. 나의 사상과 100% 맞지 않아도 좋은 일 하기 때문에 십시일반으로 돕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내처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상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중도"라고 말한다. 중도가 뭐냐고 다시 물었다. "나 좋으면 다 좋은 거고, 내가 안 좋으면 다 안 좋은거니까. 안 잡히는 세상 아니요. 그렇게 쉽게 바뀌면 대한민국 벌써 바뀌었지." 알듯말듯, 선문답처럼 들렸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현재 살고 있다. '5대양 6대주를 돌아' 귀가한 고향집이다. 그는 5.18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난 80학번으로 수산대학을 나왔다. 졸업 후 선박 회사에 취직했다. 10여 년 동안 5대양 6대주를 거의 다 다녀본 것 같다고 말한다. "파나마, 수에즈 운하 다 돌고 케이프타운도 통과했지…"며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처음엔 상선을 탔지만 참치 배, 오징어 배, 명태 배 등 어선을 많이 탔다. 1등 기관사로 마무리, 바다와는 작별했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이었다. 그는 아직도 연어의 회귀본능처럼 '바다 사나이' 시절이 떠오르지만, 자신의 천직은 농부라고 확신한다.

그는 쌀과 보리, 밀 농사를 이모작으로 짓는다. 농부로 살기 괜찮냐고 물었다. 밀, 보리 자급율이 얼마나 낮은지, 보리, 밀, 쌀의 국민 일인당 연간 소비량이 몇 킬로그램인지 수치까지 정확히 바로바로 말한다. 역시 식량안보를 책임진 전문가답다.

"정부 정책이 그런 걸 어쩌겠소. 공산품 수출하자고 농업 희생시키는디. 정치하는 사람들도 머리가 아프겄죠. 그래도 여야 막론하고 농촌 출신 의원들이 가장 많은디, 저그들도 살라면 줄서기 해야겠지요. 소신 발언 했다가는 살아 남겄소. 그래도 참… 대기업들에게 수출세 물리고 그 세금 거둔 걸 (농업으로) 환원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겄소. 야당도 이제 배부른 사람 많은가 봅디다. 옛날엔 투쟁도 하고 그러더만…."

그가 요즘 보는 책은 얼마 전에 작고한 김수행 선생의 책이다. 잡식성이라 이것저것 다양하게 읽지만, 최근 <오마이뉴스> 서평 기사를 보고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잡았다.

끝으로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부모로서의 원칙이 뭐냐고 물었다. 짧게 답한다.

"진인사(盡人事) 하고, 대천명(待天命) 하라."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는 오직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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