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목탁으로 독재자 머리통 내리쳐야"

10만인 리포트

김종술 기자에게 '투명카약' 선물하기

96년식 봉고 타고 4대강에
MB 고가 자전거보다 낫다
[김종술에게 투명카약 선물하기⑤] '낙동강 지킴이' 정수근

15.08.20 10:21 | 정대희 기자쪽지보내기

독자들의 성원으로 '김종술 투명카약 선물하기' 프로젝트 목표액이 조기에 달성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종술 기자가 낙동강을 지키는 정수근 기자에게 카약을 선물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투명 카약 2대'로 진화했습니다. 두 기자는 독자들이 선물한 투명카약을 타고 8월 24일부터 2박3일에 걸쳐 죽어가는 낙동강의 맨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줄 예정입니다. 계속 쌓이는 후원금은 김종술 기자의 취재비 등으로 전달합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환경운동연합의 공동 프로젝트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정수근 기자의 아들(좌)과 딸. ⓒ 정수근

여기 두 장의 사진이 있다. 아들 승준(좌측)과 딸 우인. 사진 속의 아빠는 이 녀석들 손을 잡고 매년 강으로 갔다. 함께 발을 담그고 재첩도 잡았다.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강에서 승준이도 뛰어놀았다. 그런데 지금은 파헤쳐졌다. 강의 흐름이 거의 멈췄다. 새들도 목을 축이려고 날아드는 강에서 아빠가 아이들과 놀았듯 언젠가 우인이도 지친 몸을 달랠 게 분명한 그 강이……. 3년 만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로 바뀌었다.

우인 아빠는 오늘도 하루가 다르게 죽고 있는 그 강, 과거의 강을 붙잡고 싶었단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단다. 구호를 외치면서 싸우다가 스스로 언론이 되었다. 언론이 기록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는 게 아니라 시민기자가 되어 직접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낙동강 지킴이'가 되었다.

'금종술'과 '낙수근'

여기 금강의 김종술 기자처럼 'MB 삽질'로 개고생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10만인클럽 회원인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아홉 살 예쁜 딸, 우인이 아빠다. 열한 살 아들, 튼튼한 승준이 아빠다. 금강의 김종술과 낙동강의 정수근 시민기자. 이를 빗대 '금종술, 낙수근'이라 말이 탄생했다.

지난 12일, 그를 만나려고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여름에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니. 출발 전부터 숨이 막혔다. 다행히 날씨는 남으로 내려갈수록 흐려졌다. 동대구에 이르자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대프리카에 비라니... 그나마 반갑다. 가물은 논밭도 모처럼 꿀맛을 즐기고 있을게다. 들뜬 마음에 정 처장이 보이자 다짜고짜 반가운 소식부터 전했다.

"캠페인 봤어요? 대박! 투명카약 2대로 늘어났어요."
"대단하데. 힘 받데요."

▲ 녹조의 강에 선 정수근 기자. ⓒ 정수근

비 오는 녹조강가에서

경상도 사내처럼 무뚝뚝했지만, 치켜 올라간 입꼬리는 숨길 수 없었다. 점차 빗방울이 굵어졌다. 대구 동부 송라로의 한 옥탑방 안이 빗소리로 가득했다. 대구에 도착한 지 5시간 만에야 여유를 갖고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자장면과 짬뽕을 앞에 두고 그와 마주앉았다. 이날은 투명카약으로 낙동강을 탐사하려고 금강의 김종술 기자와 함께 사전 현장답사를 다녀온 날이기도 했다.

- 아까 사문진교 밑 유람선 선착장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잖아요. 자주 싸우나요?
"현장조사를 하다 보면, 그런 일 많죠. 봤잖아요. 비 오는데 녹조 발생하고 물고기며, 자라며 죽어 있는 거. 좋은 이야기 아니니까 싸울 일이 많죠."

이날 현장답사를 위해 찾은 낙동강 달성보 상류 사문진교 인근은 '녹조강'이었다. 비가 내리는 강가에 쓰레기와 물고기, 자라 사체가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4대강 사업 이후 죽음의 강으로 변한 낙동강에선 흔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죽을 뻔했다

- 기억에 남는 일이라도 있나요.
"죽을 뻔했죠. 그것도 두 번이나. 4대강 공사가 끝났을 때였어요. 그날도 현장조사를 나가 강 둔치를 걷는데, 갑자기 밟고 있는 땅이 와르르 무너지는 거예요. 준설한 모래를 둔치에 쌓아놓으면서 제대로 다지질 않은 거죠. 개미지옥처럼 자꾸만 몸이 파묻혀 가는데……. 끝내 헤엄쳐 나왔다니까요. 얼마나 식겁했는지."

훗날 그는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을 바탕으로 4대강 사업으로 심각해진 낙동강의 측방침식 문제를 기사로 담아냈다.

▲ 정수근 기자가 취재하다가 지반 침식으로 강에 빠졌다. ⓒ 정수근 제공

- 또 다른, 경험은요?
"알잖아요. 낙동강 자전거 투어 때 박진고개에서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 나 벼랑으로 떨어질 뻔한 거. 최소한 다리 하나는 부러지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다치진 않았죠. 철조망이 없었으면 그냥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건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다 강이 나를 버리지 않아서 다치지 않은 거라고. 다시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강이 도와달라고 보살펴 주는 것 같은 느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지난 2013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환경운동연합은 '흐르는 강물, 생명을 품다'라는 공동기획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구간을 샅샅이 훑으면서 7일간 심층 취재 보도를 내보냈다. 정 처장의 사고는 둘째 날 현장 리포트(내리막에서 결국 사고...그래도 또 달립니다)을 통해 소개됐다. 

팔이 꺾이고 내동댕이쳐져

- 싸움이 벌어진 적은 없나요?
"왜 없어요. 근데, 싸움은 둘이 치고받는 거 아닌가. 일방적으로 당해도 싸움이라고 할 수 있나."

- 그럼 당한 일부터 이야기해보죠.
"4대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였죠. 현장조사팀을 꾸려 합천보로 향했는데, 하청업체 용역들이 강으로 가는데 막더라고요."

- 아무런 이유 없이 막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공사 현장이라고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죠. 아니 강이 자기들 거냐고. 왜 자기들 허락받고 출입해야 하냐고. 아무튼 그렇게 실랑이가 붙었는데, 하청업체 직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팔을 뒤로 돌려 꺾었어요. 경찰이 꼭 범인 검거하는 것 마냥. 어이가 없더군요. 저항하다 끝내 바닥에 내팽겨쳐졌지요. 그때 다친 허리가 아직도 아파요. 골병이 든 게지요."

지난 2010년 12월 8일, 4대강 사업 예산은 당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진두지휘해서 '날치기' 통과됐다. 공사 진행방식도 다르지 않았다. 곳곳에서 육탄전이 벌어지고 공권력을 내세워 반대 목소리를 제압해 나갔다(관련기사: "4대강 사업 공사현장을 왜 경찰이 지키나").

차마 꺼내지 못한 아픈 기억

- 그런 일을 겪으면서까지 현장조사를 포기하지 않고 기사를 쓴 이유가 있나요?
"낙동강은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강이죠. 가만히 보면 강줄기가 백두대간을 따라 혈관처럼 흘러갑니다. 인체에 혈관이 막히고 파헤쳐진다고 생각해봅시다. 몸이 멀쩡할까요? 마찬가지입니다. 국토의 혈관이 망가지면 국토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 속에 사는 우리도 멀쩡할 수가 없겠죠. 국민들 대다수가 4대강 사업을 욕합니다. 누가 봐도 상식에 어긋난 일이란 거죠. 국민들이 뜻을 모은다면, 강의 수문을 열고 국민적 합의를 통해 보를 철거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지치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두세 번 정도 위기가 있었죠."

- 금전적인 이유 때문인가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음……."

아픈 기억을 건드렸는지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구나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누구보다 낙동강을 지키기 위해 두 발로 뛴 그이기에 잠시라도 강을 외면했던 세월을 끄집어내는 게 힘든 듯했다.

"4대강 공사가 끝나 보가 건설되고 담수를 앞둔 시기였어요. 힘들더군요. 죽을 힘을 다해 4대강 사업을 막아왔는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만사가 귀찮아지고 더 이상 강에 나가기도 싫었어요. 패배의식과 무기력 증상에 빠져 허우적거렸죠. 게다가 애까지 아프니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은 무엇이었나? 지나온 삶이 무의미해지는 기분이랄까. 왜 사람이 신념과 가치가 무너지면, 모든 게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잖아요. 그때가 그랬어요."

- 많이 힘드셨나 보네요. 그런데 한 번 뿐인가요?
"음... 한 번 더 사람에 대한 신뢰 때문에 힘든 적이 있었는데, 그 일은 차마 말 못하겠네요."

옥탑방 안에 묵직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곁에 있던 백재호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장이 그가 겪은 아픔의 순간을 살짝 귀띔해준다.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글로 옮기진 않는다. 다만, 사람은 언제나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힘들 땐?

-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하게 된 방법이 있나요?
"현장에 나가는 거였죠. 옆에 있는 백재호 위원장이랑 여긴 없는데 이석우 팀장(대구환경연합 전 운영위원장)이 도움을 많이 줬죠. 우리 셋을 '낙동강 트리오'라고 부릅니다.(웃음) 사실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이 크게 변했는데, 누구 하나 현장조사나 모니터링을 하는 사람이 없어요.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현장조사를 하고 보는 사람이 없어도 기사를 썼어요. (웃음) 그거 알아요. '녹차라떼', '녹조라떼'라는 말, 우리 셋이 처음 만들었다는 거."

- 그래요? 저작권이 '낙동강 트리오'에게 있던 거군요?
"그렇다니까요. 4대강 사업 후 녹조 문제가 가장 먼저 불거졌잖아요. 현장조사 후 언론사에 보도자료 뿌리고 기사 쓰면서 '녹차라떼', '녹조라떼'란 단어를 처음 썼다니까요."

'MB와 맞짱'을 선언하면서 그는 꽤 많은 수상을 했다. 2011년 포털사이트 다음의 블로그 시사부분 우수상을 비롯해 환경운동연합 우수활동가상(2013),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상(2014), 시민단체의 환경상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임길진 환경상(2015)'등 모두 4대강 사업을 고발한 대가로 거둔 결과물이다.

- 현장조사는 매일 나가나요?
"그렇게 못해요. 아까 가봐서 알지만 여기서 가까운 현장까지 차로 40~50분 가야해요. 큰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죠. 그리고 현장조사를 위해선 경비가 필요한데, 우리 사무실(대구환경운동연합) 경제사정이 그렇게 좋지 못해요. 같이 있는 식구들이 이해해줘서 일주일에 2번 정도 현장에 갑니다. 물론, 시급한 일이 발생하면 더 자주 갈 때도 있고요."

96년식 봉고차와 500만 원대 자전거족

▲ 정수근 기자가 얼마전까지 타고다닌 96년식 봉고 취재차. ⓒ 정수근

- 경제적 사정이 활동에 큰 지장이 있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시민단체가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되다 보니 경제적 능력이 좋은 곳이 얼마 없어요. 월급도 최저임금 이하 수준이고요. 얼마 전까지 현장조사를 다니던 차도 96년식 봉고였어요. 하루는 오늘보다 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글쎄 자동차 창문이 안 닫히는 거예요. 수동인데... 비 쫄딱 다 맞으며, 현장조사 갔죠. 그리고 차가 퍼지는 경우도 허다했죠. 지금은 그 모습을 보고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에 그나마 멀쩡한 차로 바꾸게 됐죠. 아이고~ 그때는 진짜 말도 못하게 고생했어요(웃음)."

지난 2013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사진 한 장이 있다. 북한강 자전거 도로를 역주행하던 이 전 대통령은 고가의 자전거와 장비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보도내용에 따르면, 자전거의 가격은 약 440만 원, 헬멧은 28만 원, 고글 38만 원, 팔 다리 보호대는 2만 4000원 등이다. 단 한 번의 외출에 총 508만 400원을 몸에 두른 것이다.

- 김종술 기자 아시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말 뭐하지만... 미(美)친 인간이지요, 한마디로(웃음). 아니 어떻게 강에 만날 갈 수 있어. 나보다 더 강에 미쳤다니까. 거기에 비하면 난 정상이야. 그런데 한편으론 이해가 가기도 해요. 강에 한번 나와 보면, 매일 궁금하기는 해요. 가보고 싶은데 못 갈 뿐이지.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는 충분히 가죠." 

죽음의 강에 희망이

- 투명카약을 선물 받게 됐는데, 가장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그동안 보트를 타고 몇 번 강 조사를 해봤는데, 이젠 강 전체를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요. 강가가 아닌 강 한복판에 가서 강물의 흐름이 어떻게 변했는지 강바닥 상태는 어떤가 조사해보고 싶어요."

- 투명카약 현장리포트를 통해 낙동강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요?
"낙동강의 아픔과 희망이요. 강이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 게 느껴지거든요. 강물도 썩어가고 생명체도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녜요. 강이 스스로 제 모습을 찾아가려는 곳도 있어요. 감천 합수부가 그래요. 4대강 사업으로 6미터 깊이로 낙동강을 준설한 곳이죠.

그런데 현재 이곳에 거대한 모래톱이 다시 형성돼 있어요. 보의 수문만 열어 준다면, 강은 빠르게 제 모습을 찾아갈 겁니다. 더 나아가 국민적 합의를 거쳐 보를 허문다면, 낙동강은 다시 수문을 열 때보다 더 빨리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거예요"

- 후원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단지 글을 보고 후원을 결심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정말 너무 감사하죠. 하지만 그 감사한 마음 이면에는 4대강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녹아 있다고 봐요. 그런 뜻에 부응을 하도록 낙동강을, 4대강을 재자연화 할 수 있도록 해야겠죠. 이번 투명카약 탐사 보도를 통해 강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을 찾는데 기여할 겁니다. 다시 한 번 후원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어요."

▲ 정수근 기자가 현장 조사 중에 찍은 사진. ⓒ 정수근 제공

"아빠, 강은 괜찮아?"

오는 8월 24일부터 2박3일 동안 두 대의 투명카약이 낙동강에 출몰한다,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투명카약을 선물 받은 '금종술' 기자가 '낙수근'에게 한 대를 선물했다. 4대강 사업의 민낯을 누구보다 앞장서 고발한 두 명의 4대강 지킴이들이 뭉쳐 국민세금 22조 원을 수장한 4대강 사업의 실상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리려고 한다.

어느 날 강으로 향하는 그에게 초등학교 2학년 딸 우인이 물었단다. 

"아빠, 오늘도 강에 가? 강물은 괜찮아? 물고기들은 또 죽었어? 옛날에는 아빠랑 강에서 물고기 잡고 놀았는데..."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투명 카약 출전'을 벼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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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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