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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윤 일병'을 만나다

이러다 죽을 수도...
고참은 때리고, 병사들은 구경만
[또 다른 윤 일병을 만나다-마지막 이야기] 군대폭력 목격자 5명 중 4명은 침묵... 왜?

15.08.11 12:50 | 김도균 기자쪽지보내기

▲ 2014년 8월 12일 윤일병이 폭행으로 사망한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포병부대에서 부대원들이 내부반에 모여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이날 병영문화혁신위원들이 이 부대를 방문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거대한 손이 물이 가득한 수조 안에 제 몸을 거꾸로 쳐놓고 머리를 짓누릅니다. 숨이 막혀 온몸을 버둥거리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요.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있지만 구경만 할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지난 2011년 전역한 이아무개(26)씨는 물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숨이 막혀 죽어가는 악몽을 자주 꾼다. 그런 날이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기 일쑤다.

경기도의 한 육군 부대에서 복무한 이씨는 입대 전부터 긴장하면 말을 심하게 더듬는 장애가 있었다, 이것이 폭행과 가혹 행위의 빌미가 되었다. 그는 방독면을 쓴 상태에서 갖가지 기합을 받았던 일을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꼽았다.

"차라리 몇 대 맞는 쪽이 나았어요. 고참들은 나에게 방독면을 씌우고 기마자세나 원산폭격을 시키고는 정화통 입구를 손으로 막아서 숨을 쉬지 못하게 했습니다. 쓰러져서 발버둥 쳐봐도 다른 병사들을 시켜 제 팔과 다리를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어요. 그 기합을 당할 때마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씨는 자신이 고통스러운 기합을 받을 때 같은 생활관을 쓰는 10여 명의 부대원들이 구경하던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더 괴롭고 수치스럽다고 했다. 그를 주로 괴롭히던 고참은 때론 다른 병사에게 자신이 말 더듬는 것을 흉내내게 해 이씨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제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소대 안의 병사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거의 매일 두들겨 맞고 얼차려를 받으면서도 그냥 당하기만 했던 제 자신도 밉지만, 그냥 구경만 했던 동료들도 싫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맞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를 때리던 고참이나 구경만 하던 그들이나 다 똑같은 놈들이에요."

유독 자신을 괴롭히던 선임병이 제대하고 나서도 이씨는 전역할 때까지 병사들 사이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씨는 자신의 질환이 군 복무 당시 폭행과 가혹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있다.

괴롭히던 선임병 제대 후에도 '없는 사람' 취급 받아

2013년 해병대에서 전역한 장아무개(25)씨에게도 군 복무 당시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해병대는 타군보다 위계질서가 셉니다. 오죽하면 '미제 철조망은 녹슬어도 해병대 기수빨은 녹슬지 않는다'고 했겠습니까. 강화도 해병대 해안 소초 총기난사 사건 이후 구타와 가혹행위 근절 분위기가 강했지만, 실무부대에 가보니 여전히 악습이 남아 있더군요. 선임들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것이라고 했지만요."

장씨도 폭행의 피해자가 되거나, 때론 다른 폭행의 방관자가 되었다. 장씨는 자신과 동료들에게 가해진 폭행과 가혹행위도 잘못이지만,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것도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고 했다.

"군대 폭력은 병사들 사이에서는 '알고 있어도 모르는 사실'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왜 맞고만 있느냐', '소원수리라도 해서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누가 소원수리를 했는지 빤히 알 수 있는데 그게 가능한가요. 몰래 적어내면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내부 고발자는 곧 배신자'라는 생각이 병사들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지휘부에서 아무리 구타근절을 강조해도 말단 병사들 사이에는 별로 와 닿질 않았어요."

군에서 구타나 폭행으로 형사 입건된 사건은 2008년 1308건, 2009년 1237건, 2010년 1177건, 2011년 1526건 등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또 지난 2010년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병사들의 6.4%가 구타와 가혹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폭행을 당한 후 탈영이나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병사는 20%에 달했다.

지난해 윤 일병 사건 이후 국방부와 군 당국은 병영 폭력을 뿌리 뽑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최근에 공군 1전투비행단과 해병대 2사단에서 발생한 폭행·가혹행위 사건이 보여주듯 군대 폭력 사건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 2014년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가해 병사들이 피고인 석에 앉아 있다. ⓒ 권우성

군 수사당국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윤 일병이 처참하게 숨지기 전 적어도 44명의 동료 병사들은 윤 일병에게 가해진 폭력을 직접 목격하거나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4개월 남짓 동기들로부터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던 공군 제1전투비행단 정아무개 상병의 폭행 현장에도 항상 5, 6명의 동료 병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중 아무도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상명하복이 중시되는 조직특성상 군대가 집단 내 폭력상황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내부 고발자를 배신자와 동일시하는 인식이 남아 있는 한 군대폭력의 목격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게 한다는 것.

대부분의 병영 폭력이 다수 목격자들 있는 상황에서 발생

또 대부분의 병영 폭력이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일대일 상황이 아니라, 다수의 목격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목격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죄의식을 1/n로 나누면서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어서 적극적인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 아래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장병들의 개인주의적 성향도 신고를 꺼리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다. 자신이 나서지 않더라도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서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리라는 내심의 기대도 이런 상황을 존속시킨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방관자 효과'다.

지난 2013년 군 인권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부대 안에서 구타를 목격한 뒤 개선을 요구하거나 상급자에게 보고한 경우는 각각 18.2%와 12.7%에 불과했다. 실제로 군대폭력을 목격한 병사 5명 중 4명은 침묵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신고에 따른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신고자가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내부고발 규정과 처리절차 또한 명확하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병영 내 가혹행위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군 외부로 알릴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유명무실한 소원수리 제도를 대신해 실질적인 권리 구제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병사들 스스로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겠다는 유기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또 다른 윤 일병을 만들지 않는 길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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