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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이 사람, 10만인

아버지를 목조른 아들, 당신이 판사라면?
[이 사람, 10만인] 김용국 회원이 펴낸 책 <판결 VS 판결>

15.08.03 10:29 | 김병기 기자쪽지보내기

▲ <판결 vs 판결>의 저자 김용국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10만인클럽 회원이다. ⓒ 오마이뉴스
양날의 검, 한쪽 날은 남을 벨 수 있고 다른 한쪽 날은 자신을 칠 수 있다는 경고다. 엄정하게 사용하되 남용하지 말라는 얘기다. 천칭 저울, 양쪽 입장을 듣고 공평하게 재량하라는 의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법의 여신 디케가 사용하는 '정의 구현' 도구다. 이 두 개를 양 손에 든 디케는 눈을 가린 채 서 있다. 계급이나 신분 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어떤 모습일까? 법원 공무원 17년차인 김용국 <오마이뉴스> 시민기자(10만인클럽 회원)는 최근 자신이 펴낸 책 <판결 VS 판결>(개마고원 출판)에서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사법부가 양날의 검으로 자기 목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뜯어보았다. 우리 법정이 가진 자들만의 리그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선 이 책엔 40여 개의 판결이 등장한다. 대부분 한 편의 이야기다. 법정에 설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삶이기에 가슴을 뜨겁게 하고, 울컥하게 만든다. 때론 법적 차별을 극단적으로 드러내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책에 소개된 법조문도 법전에 박힌 딱딱한 활자가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또 이 책은 용어조차 알 수 없는 경직된 판결문에 기초하고 있지만, 술술 읽힌다. 글쓰기의 기초에 충실하게 법적 상식을 풀어썼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독자들이 불편할 정도로 집요하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이를 극대화 하려고 작가는 두 개의 판결을 화두처럼 던진다. 신문기사들이 생략한 판결 이면의 불편한 진실까지 파고든 뒤 질문한다. 15만 원을 절도해 3년 실형을 산 60대 노인과 1500억 원을 횡령했지만 집행유예형을 받은 재벌회장. 판사는 누구의 편인가? 어머니와 누나가 지켜보는데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목을 조른 아들, 만약 당신이 법복을 입었다면?

마지막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턱대고 판결을 비판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진영논리로 볼 때 황당해 보이는 판결도 저변에 흐르는 원리와 원칙을 들여다보고 비판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판결의 기초 상식은 필수! 표현의 자유와 모욕죄, 정당방위와 폭행의 범위 등 구체적인 판결을 통해 일반인들이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법적 정보를 담았다.

이제 '판결 VS 판결' 속으로 한발 들어가 보자.

[판결 VS 판결 1] 정당방위, 그 경계

"새벽에 도둑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판사님은 어떡하시겠어요? 가족들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일단은 도둑을 제압해야지요. 그러다 보니 도둑에게 주먹질과 발길질도 하고... 어쩔 수 없이 힘을 썼던 겁니다. 그게 무슨 죕니까?"(책 16쪽)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했던 정씨는 결국 징역을 살았다.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과잉방위(정당방위가 정도를 초과한 경우로, 형을 깎아주거나 면제할 수 있다)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정씨에게 상해죄로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정씨에게 맞은 절도범은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가 사망했다. 무슨 흉기를 들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도둑과 마주했을 때당신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사건을 보자. 알코올중독자인 남편이 뒤에서 강하게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아내가 순간적으로 손을 뿌리치며 발로 찼다. 남편은 바닥에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쳤고, 다음날 두통을 호소하다가 쓰러진 뒤 뇌사 상태에 빠졌다. 아내의 행동은 정당한 방어인가, 아니면 도를 넘은 공격이었을까?

1심은 정당방위로 인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에서는 달랐다. 손을 뿌리친 행위까지 정당한 방위였고, 발로 찬 것은 '소극적 방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판단해서 유죄를 선고했다. 아내는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는 이 두 사례를 소개하면서 상식과는 다소 유리된 판결이 가능했던 원인을 분석하고, 법리적 해석을 곁들였다. 그리고 이렇게 제안한다.

"당황과 공포에 휩싸인 긴급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중략) 먼저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가 흉기를 갖고 있을지, 나보다 힘이 셀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신사적인 행동만 하라는 건 비현실적이다. 정당방위의 문은 지금보다 더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1부 '판결은 완벽할 수 없다'에서는 성폭행과 자살, 사랑과 성의 문제 등 우리 사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건이지만 법이 잣대로는 완벽한 판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건을 소개했다. 

[판결 VS 판결 2] '황제노역'과 '평민노역'의 차이  

▲ <판결 VS 판결> 표지사진. ⓒ 개마고원
2부 '재판대에 오른 판결'은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사건들이어서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24년 만에 무죄를 받은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KTX 여승무원들의 10년 법정 싸움, 벤츠 여검사 사건, <나꼼수>와 안도현 시인의 국민참여재판 등. 이중 디케의 천칭 저울을 떠올릴 수 있는 두 개의 사건을 소개한다. 일당 5억 '황제노역'과 일당 5만 원 '평민노역'이다.

박경석 1급 척추장애인은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이다. 그는 2012년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한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사이에 화재로 질식사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국가의 책임을 주장하면서 노제를 지낸 뒤 차로를 점거하고 행진했다. 법원은 그에게 집시법 위반과 교통방해죄로 200만 원의 벌금형을 확정했다.

그는 벌금형을 거부하고 자진출두해서 구치소에서 노역을 했다. 박 대표의 노역 일당은 5만 원. 그는 닷새만에 건강이 악화돼 교도소에서의 노역을 중단했고, 시민들의 성금으로 남은 벌금을 냈다. 교도소에서 장애인 노역으로 그가 벌충한 금액은 25만 원이었다.

"500억 원대의 법인세 포탈, 100억 원대의 횡령으로 천문학적인 벌금형 판결을 받은 재벌 회장이 벌금을 납부하는 대신 하루 5억 원짜리 노역을 하고 있다면? 2014년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황제노역'이라며 분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책 164쪽)

대주그룹 허재호 회장 이야기다. 1심 재판부는 법정형보다 낮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 원을 선고했다. 벌금을 납부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환형유치(벌금형이 확정된 뒤 30일 이내에 납부하지 않는 사람은 교도소 노역장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 때 벌금액을 보충할 노동의 대가) 1일 환산금액은 2억5000만 원이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벌금을 절반으로 낮추고 일당을 5억 원, 두 배로 올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 여론이 일었고, 검찰은 닷새 만에 노역형 집행을 중단했다. 그 사이 허 회장은 30억 원을 탕감받았다. 박경석 대표의 일당과 비교하면 1만분의 1 수준이었다. 이 두 개의 사건을 비교한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묻는다.

"노역장 유치는 교도소 생활과 별 차이가 없어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은 벌금형을 받고도 징역살이를 하는 셈이라는 비판도 있다. 가진 사람에겐 하룻밤 술값도 안 되는 수백만 원의 벌금이, 또 다른 누구에게는 가혹한 형벌이라면 불공평하지 않은가. 일당 5만 원과 일당 5억 원, 당신은 어느 쪽인가."(책 173쪽)

[판결 VS 판결 3] 친일파 후손을 당혹케한 판사

국가폭력, 내란음모, 종북, 세월호, 표현의 자유 등은 우리 사회 '정의'의 현주소를 진단할 주요 키워드다. 한계는 있지만 법정은 첨예한 쟁점들의 가르마를 타는 곳이기도 하다. 3부 '법정 안의 사회'에서 다룬 사건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세월호와 미네르바 사건, '종북 지자체장 퇴출 주장' 사건과 '이정희 부부 종북 주장' 사건 등 민감한 내용들이다.

3부에는 '부끄러운 판결'이 많이 등장한다. 법적 진실과 실체적 진실의 궤리가 느껴진다. 특히 판결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게 만드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심판을 보아야 할 판사들조차도 법조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이념의 링' 위에 올라가 선수로 뛰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모든 판사가 그런 건 아니었다.

"친일 재산은 '3.1운동의 정신으로 건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에 위반되는 행위로 취득된 재산이다. 이를 박탈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는 법률이 없으므로 국회가 친일재산 환수법을 만들 때까지 재판을 정지하는 의미로 소를 각하한다."

작가는 이종광 수원지법 판사(현 부장판사)의 판결 내용을 소개했다. 을사오적 중의 한명인 이근택의 형 이근호(중추원 부의장, 법무대신)의 손자가 국가 소유로 넘어간 조부의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위와 같은 이유로 각하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소송으로 이완용의 후손은 당시 시가 30억 원의 토지를 찾아갔고, 2001년 이후 친일파 후손들이 찾아간 토지를 합치면 여의도 면적 36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 판결은 친일파 후손들에겐 당혹감을 주었고,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판결의 충격 탓인지 한 달 뒤 국회는 드디어 헌법과 법체계의 충돌을 해소한다. 2005년 12월 29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책 278쪽)

작가가 마지막으로 기록한 '판결 VS 판결'은 한진중공업과 쌍용차동차 파업. 법원은 둘 다 불법으로 규정했다. 작가는 두 개의 판결을 분석한 뒤 "임금 인상 등 근로조건 개선을 하면 귀족노조의 밥그릇 싸움으로 매도되고 민영화 반대 등 공공성을 목표로 내걸면 그것대로 불법파업이 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만 죽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연 법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법으로 정의를 지킬 수 있을까? 책을 덮으며 떠오른 건 <윌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시민불복종>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당연하다."

법복을 입은 판사들도 귀담아 들을 말이다. 법치란 인간과 정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 책은 눈을 가린 채 양날의 검과 천칭 저울을 들고 서 있는 디케의 '정의'를 생각게 하는 판결 비평서이자 사회 비평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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