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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교사 40년', 전성은이 말한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면 아이는 제 길 간다"
[10만인리포트] '교사 40년' 전성은이 말한다⑥ 닫는 글

15.08.02 10:45 | 박형숙 기자쪽지보내기

▲ 거창군 거창읍 한 셀프카페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 양복에 중절모, 고무신, 길게 늘어진 천가방...시골 교장 선생님의 멋. ⓒ 박형숙

2006년 정년 퇴임한 뒤부터 전성은이 바로 시작한 일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가스레인지에 커핏물을 올린다. 테이스터스 초이스 커피 한 숟가락에 황설탕 두 스푼. 크림은 넣지 않는다. 가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커피 잔을 달리할 때면 이전 커피 잔에 들어갔던 물을 넣어봐 정확히 계량한다. 그래야 아내가 좋아하는 맛에 딱 맞춤할 수 있다. 그가 탄 커피를 마시며 아내는 아침드라마를 보거나 신문을 읽는다. 전성은의 아침이 아내보다 10분 먼저 시작되는 이유다. 아내에게 커피 타주기.

그는 "사랑이 교육의 전부"라고 말한다.

"부모가 사랑하면 아이는 제 길을 간다. 나는 그래서 부모들에게 말한다. 결혼은 실패해도 사랑은 성공하라고. 그것도 한 사람과!"

정년 퇴임 후 바로 시작한 일

전성은은 거창읍에서 알아주는 애처가로 통한다. 하지만 그 '명성'을 얻기까지 피 튀는 세월이 있었다. "몇 년 동안 쫓아다니며 졸라서"한 결혼이었지만, 순탄치 않았던 순간 "그래서 내가 싫다고 했잖아"라는 원망의 말을 아내에게서 들어야 했다. 결혼 2년 차 때는 아내와 자가용을 몰고 가다가 홧김에 액셀을 세게 밟은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이었을까.

정년퇴임을 하고서도 '한 사람과의 사랑'은 시험대의 연속이었다. 5, 6년 전 일이다.

"집사람이 매우 아팠다. 병명도 정확치 않았다. 일어나 앉지도 못했다. 곁에서 간호하며 2년 반이 지났을까. 미국에 간 큰 딸애가 어렵게 가게 하나를 얻어 흑인 동네에서 식당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위험하지는 않겠는지 불안했다. 한 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를 두고 갈 수가 없어 망설였다. 집사람은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정말 가도 되겠어?' 문 열고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물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행 비행기를 탔는데 해방감이 밀려와 아내를 잊었다. 비행기는 천국을 날고 있었다. 워낙 비행기 타는 좋아하는 나였다. 

그리고 미국에 도착해 수요예배를 보러 교회를 갔는데 목사의 설교 한 마디가 망치로 뒤통수를 치는 듯했다. '사람은 가야 할 길이 있고 또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나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날 밤 침대에서 숨죽여 울었다. 딸이 들을까 봐.

최선을 다해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를 사랑한다는 나의 수준이 어떠한가를 본 거다. 아내 병간호에서 벗어났을 때 느껴진 그 해방감, 자유…. 내가 나한테 속은 거였다. 사랑하고 있다고. 내가 대단한 사랑을 했다고. 근데 아니었다고 그날 깨달은 거지. 사랑 아닌 걸 사랑이라고 착각한 거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혼잣말인 듯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게 굉장히 약한 거야. 감정의 사랑은 유리창보다 더 깨지기 쉬운 거지. 사랑은 위대한 게 아니야. 노력하고 발버둥 치는 게 아름다운 거지. 그때 나는 알았어.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란 걸. 사랑은 섬기는 거야."

내 40년을 걸고 말할 수 있는 것

정년퇴임 후 제자들의 소식을 듣는 것도 큰 낙이다. 기자가 인터뷰 차 거창에 내려갔을 때, 한 제자가 번역한 책이 우편물로 도착해 있었다.

"번역 참 잘했네. 000이 거창고에 거의 꼴찌로 졸업했어. 농악대에 들어가 꽹과리만 치던 녀석인데. 공부를 못했는데도 봐 이렇게 자기 자리를 찾잖아. 이론적으로나 지난 나의 40년 경험으로나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 먹고 사는 거 문제 되는 거 없어. 내 40년을 걸고 말할 수 있어. 그러니 제발 아이들을 믿고 도와줬으면 좋겠어." 

전성은과의 인터뷰에서 내내 떠나지 않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대안학교의 길은 아니었을까?' 교육적 이상(理想)은 제도 밖에 있으면서, 교육 행위는 제도 안에서 이뤄졌던 전성은의 '선택'이 쉽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선 '10년 내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1970년 초부터 파면, 복직, 유신을 겪어온 몇몇 교사들이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은 바라지 않는 교사들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교육은 마음대로 해야 하지 않느냐. 국가가 만들어준 교과서로, 교육과정으로, 입시라는 평가 방식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을 할 수 없다, 그러니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자는 결론에 이를 참이었다. 실천안도 마련됐다. 교사들은 월급을 반만 받겠다는 결의도 했다.

여기에 한 교사의 말이 분위기를 역전시켰다. '아무리 국가의 통제가 심하고 국가가 만들어준 교과서와 교육과정대로 교육해도 그 속에서 인격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하지 않느냐? 그래야 국가의 통제를 받는 학교에서 교육받는 100만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조건이 되면 교육을 하고, 조건이 안 되면 교육을 안 한다는 건 모순 아니냐는 말에 다들 공감했다."

제도권 안이냐, 밖이냐의 논쟁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 전성은 전 거창고 교장은 "사랑이 교육의 전부"라고 말한다.(자료사진) ⓒ 윤성효

전성은은 인터뷰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동어 반복했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너보다 훨씬 아름답다. 너의 신비로움은 가늠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말"이라고 되받았더니, "알 수 없으니 섬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반면, 한국교육의 실상은 다음의 세 문장으로 압축된다.

가만히 있어라.
시키는 대로 하라.
나서지 마라.

그 사태가 세월호 참극을 낳았고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안겼다. 이 거대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줄기차게 '꿈'을 이야기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꿈꾸는 존재다. 꿈을 꾸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성장을 멈춘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학창시절은 꿈으로 가득 차 있는 시기다. 이 시기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도록 도와주는 일이 학교 교육의 제일 목표다.

인간은 자기 삶에 대한 꿈만 꾸지 않는다.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 인류가 더욱 따뜻하고 보다 밝은 세상 꿈꾸기를 멈추면 또는 꿈꾸기를 포기하면 역사는 힘을 가진 집단의 노예로 전락한다. 이 세상은 싫든 좋든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신들이 인간을 꿈꾸지 못하게 한다. 인간의 꿈꾸기를 방해한다. 꿈꿀 필요가 없이 이데올로기에 순응하여 살면 편하다고 믿게 만든다.

학교 교육은 바로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악영향에 맞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이데올로기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 바로 아이들로 하여금 학창시절에 이상적인 세상을 머리와 가슴 속에 그려볼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다. 아이들이 자기 개인의 앞날만 꿈꾸는 차원을 넘어 마음껏 인류의 미래를 위한 이상 사회를 꿈꾸게 하는 일이야말로 교육과정을 기획하는 일이다." -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 中    

내가 교장 선생님에게 드린 유일한 선물은...

'교육이 실패한 곳에서 비로소 교육이 시작된다'는 전성은의 믿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이 인터뷰 기사를 마무리할 즈음이 되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 교육은 "다 안다"는 사람들에 의해 망쳐져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실패, 얼마나 아름다워?"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음 짓는 전성은의 얼굴은 반짝반짝 빛났다. 끝으로 그의 제자이자 거창고 교사였던 한 50대 여교사에게 들은 '전성은의 사생활'을 전하며 6회에 걸친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교장 선생님(전성은)의 아버지(전영창)가 폐교 직전의 거창고를 인수하면서 재산을 다 털어 넣어 집 한 칸 없이 줄곧 사택에 사셨다. 또 박봉에 자식 다섯을 키우자니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는 사모님이 하루 용돈으로 1천 원을 주셨다고 하더라.

또 아침마다 '양말 전쟁'이 벌어졌다. 출근하려고 하면 구멍 난 양말이나 짝이 안 맞는 양말이 교장 선생님의 차지가 되었다. 나는 가까이 살고 있어서 그 집 형편을 아는 편이었는데, 크리스마스 때였나? 양말 다섯 켤레를 사서 드렸다. 그게 내가 고등학교 1학년부터 40년 가까이 교장 선생님과 지내면서 했던 유일한 선물이다."

차례
① 여는 글- "학생이 왕이다, 학교를 탈출하라"
② 자녀교육 즉문즉설- 배웠다는 부모의 주특기 '무언의 압력'
③ 시골학교 이야기- "우린 안 하는 걸 잘한다", 놀면서 성공한 학교
④ 교사론- "교사의 인권? 학생 앞에서 그런 건 없다"
⑤ 해법- "해방 후 지금까지 교육 정책은 없었다"
⑥ 닫는 글- 왜 대안학교의 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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