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4대강 찬성한 전문가들, 피해 모를 리 없었다"

10만인 리포트

'시골교사 40년', 전성은이 말한다

"노무현 질문에 답했다, 국사교육 강화 안된다고"
[10만인리포트] '교사 40년' 전성은이 말한다⑤ 해법

15.07.31 12:02 | 박형숙 기자쪽지보내기

▲ 전성은 전 교장이 펴낸 '교육 불행 3부작' 중 첫번째 책. ⓒ 박형숙
전성은은 초중고 교사, 교장을 지낸 자신의 교육 40년을 갈무리하며 "제도 안에서 달리 한 것은 없다. 달리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교과서, 커리큘럼, 학생선발, 학교평가, 감사 등 교육부와 교육청이 틀어쥐고 있는 상황. 다만 그런 조건에서 거창고의 실험이 여지를 만들어낸 것은 교사의 헌신과 신념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제도 순응론자는 아니다.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근본적이다. '국가'를 지목한다.

"미국 정책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하롤드 라스웰은 정책이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자본이 전 지구를 식민화한 오늘날 인류 보편의 문제는 평화라고 본다. 한해 환차익을 노린 투기성 외환 거래액이 4조5천억 달러였다고 한다. (2007년) 같은 해 무역 총액의 86배다. 도박으로 돈을 버는 게 당연시 되는 시대다.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다수의 희생 위에서 소수의 권력과 부를 집중시키는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피부색, 신체적 장애 유무, 지역, 종교, 사상은 물론 인종, 민족, 국가, 문화를 넘어 평등하게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고, 더 나은 삶과 세상에 대한 꿈을 추구하는 자유를 누림으로써, 삶의 기쁨과 신비를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 공동선이 살아 있는 세상이다.

따라서 학교 교육의 목적은 인류의 평화라고 생각한다. 평화를 위해 역할 할 사람, 전 분야에 그런 기능인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여야 한다. 판검사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힘이 아닌 정의를 추구하는 법관이 되라는 것이다. 의사가 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돈벌이가 아닌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라는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 자신이 지닌 재능으로 자기 분야의 '피스메이커(분쟁을 종식시키려 애쓰는 중재자)'가 되는 것이다. 

평화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교육이 실현되려면, 학교가 국가권력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가가 '성장'과 '발전'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로 부국강병을 내세우는 한, 학교가 국가권력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서는 학교에서 평화를 위한 교육이 일어날 수 없다."

"해방 후 지금까지 한 번도 교육정책이 실행된 적이 없다"는 전성은의 말은 그런 차원에서 나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숱한 정책이 쏟아졌는데, 무슨 소린가? 해방 이후엔 학교 교육의 목적이 반공이었다가 박정희 정권 때는 산업역군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교육 정책은 없었다는 얘기다. 최근 세계화 추세에선 '글로벌 인재양성'이라며 한 발 더 나갔다.
     
학교 교육의 목적은 평화... 국사 교육 강화해선 안돼

▲ 퇴임 후에도 연구 및 저술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전성은 선생. 일흔의 나이에도 세 개의 모니터로 멀티태스킹을 한다. ⓒ 박형숙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그가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할 때다.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로 대통령 주제 회의가 열린 자리. 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조가 지배적이었다. 국영수와 비중을 같이 하고, 국가고시에도 반영 폭을 넓히자는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노 대통령이 전성은 위원장의 의견을 물었다. 

"국사교육을 강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강화하면 저쪽도 강화할 거다. 나는 기본적으로 역사교과서에서 국사가 아닌 동북아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의 역사를 함께 놓고 과거 언제,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났는지, 또 언제,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 한중일 삼국의 평화가 유지되었던가를 가르쳐야 한다. 이미 유럽은 그렇게 시도하고 있다. 삼국이 저마다 국사 교육을 강화하면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웃 나라 나쁜 나라' 식으로 편협한 애국심을 심는 교육이 되기 쉽다." 

평화를 지향하는 교육의 전제로서 초등, 중등, 대학의 교육목표를 전성은은 이렇게 제시한다.

▲ 초등교육의 목표
: 아동들의 재능, 소질, 관심을 '발견'하는 데 두어야 한다. 학부모, 학교, 국가가 이를 도와야 한다. '다양한 체험'이 중요한 시기다. 그래야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관심이 있는지 알 것 아닌가. 재능과 관심은 다르다. 슈바이처는 오르간 피아노 연주에 재능이 있었지만, 신학에 관심을 두고 공부했고 그 결과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났다.

내가 방문한 외국의 학교 중에서 예루살렘의 '보이스타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8학년부터 10학년까지 있는 학교였는데, 과목이 40가지가 넘는다. 수학, 국어, 과학 등 학과목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제공했다.

심지어 학생들이 보도블록을 깔아보는 과정도 있었다. 기껏해야 우리는 '레고 블록'을 경험하는 정도인데 말이다. 연극, 미술, 음악… 잘하라고 할 게 아니라 다양하게 체험하고 아동의 소질을 발견하는데 중심을 둬야 한다.

중등교육의 목표 : 선거에서 투표를 바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두어야 한다. 투표를 바르게 하려면 정당이나 출마자들이 내거는 정책이 나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판별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길러야 한다. 유럽은 이미 그렇다. 반면 우리는 중고등학교의 교육목표가 홍익인간이다. 홍익인간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세상을 열려면 '정책판단 능력'부터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영호남 지역에 따라 '묻지마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환율이 올라가면 누구에게 유리한지, 보수당의 주장대로 의료보험을 개혁하면 누구에게 유리한지, 지금의 상가와 주택을 포함한 집세 제도는 누구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지를 따질 수 있는 능력이다. 특히 사회과목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가져가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과목이어야 한다.

대학교육의 목표
: 아동들의 재능과 소질과 관심을 '선발'하여 '최대화'시켜주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입시의 선발 방식이 지금처럼 '결과'만 담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혁신위원회가 제출한 안('학교 정상화를 위한 2008년도 이후 대학입시제도 개선안')에는 '교육이력철' 제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교사가 어떻게 가르쳤는지, 교사에 대한 평가도 함께 담자는 취지다.

평가를 하는 진정한 이유는 아이들을 경쟁시키고 성적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잘 가르치는 데 있다. 따라서 교사가 어떻게 가르쳤고, 그 결과 어떤 적성과 특기를 가진 학생이 어떤 학생으로 성장했는지 알 수 있게 그 교사의 교육방법을 기록하자는 취지다. 그럴 때 대학 입장에서도 아동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봤다.

교육이력철 제도를 이명박 정부 때 '입학사정관제'로 갖다 썼더라. 근데 충분한 준비 기간도 없는 데다 취지까지 달리하니 결과적으로 사교육 증가, 스펙 입시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안타깝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첫 만남에서 "교육부 장관 못 시켜 드려 죄송하다"고 말할 정도로 '전성은 혁신팀'에 대한 신뢰는 두터웠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당시 입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수능 등급을 대폭 완화해 2등급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했지만, 단 세 사람(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비서실장, 이정우 정책실장)을 빼고는 모두 반대했다. "논의 끝에 5등급까지 양보했지만 교육부 최종 발표에선 9등급으로 결정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노무현, 문재인, 이정우만 빼고 모두 반대

▲ 방과후 학교 운동장에 남아 있는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전성은 전 교장. 그는 샛별초, 샛별중, 거창고 교장을 모두 지냈다. ⓒ 박형숙

인터뷰가 국가에 관한 이야기로 깊어지자, 전성은은 "나는 궁극적으로 국가가 사라지는 세상을 꿈꾼다"라고 말한다. 왜?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모두가 다 제각각이다. 학교 교육은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 소질, 관심에 따라 다양한 교육을 해야 한다. 국가는 그렇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자고 국가가 있는 것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에 나와 있다. 그런데 지금 국가는 어떤가. 그런 인간에게 주어진 천부 권리의 실현을 막는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답이 없진 않다. '교육 독립'을 위한 전성은의 구상을 들어보자.

"교육부는 기획권, 집행권, 인사권, 예산권, 평가권 거기에 감사권까지 쥐고 있다. 일선 학교의 입장에서 교육부 장관은 국가의 대통령보다 막강하다. 그런 교육부의 수장은 대통령의 뜻에만 맞추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아동을 왕으로 섬기는' 교육이 가능하겠나.

입법, 사법, 행정으로 삼권분립이 되어 있듯, 교육부가 행정부에서 독립해야 한다. 불가능한 게 아니다. 미국이나 독일에는 교육부 장관만 있지 우리와 같은 교육부가 없다. 교육부 장관은 지방정부에 재정을 배분하는 일과 큰 교육정책을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일을 주로 한다. 교육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개별 학교가 갖는 식이다.

그럼 개별학교(교사)에 대한 책임은 누가 묻느냐? 평가 방식을 바꾸면 된다. 지금처럼 교육청의 승진심사를 위한 통제 방식이 아니라 '컨설팅' 형태로 바꿔야 한다. 민간 전문가들로 평가단을 구성해 교사들과 마주 앉아 자문도 하고 권고도 하는 식으로 '합리적 압력'을 가하자는 것이다. 평가의 근본 목적은 잘 가르치는 데 있다."

16개 시·도 교육감 협의체에 법률적 힘을 줘야

이 같은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그는 '교육감협의회의 법제화'를 제안했다. 16개 시·도 교육감들의 모임이 지금처럼 친목 수준이 아니라 교육부의 권한을 대폭 이양받아 완전한 분권 자치로 가자는 취지다.

이른바 '진보' 교육감 시대. 그의 구상은 실현되기 좋은 조건일까? "모르겠다. 답답하기도 하다. 등교 시간을 늦추는 게 교육혁신인지 잘 모르겠다. 교육으로 정치해서는 안 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선출직 교육감 시대의 명암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전성은이 후배 교사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이 있다. 교육운동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때다. 그는 "한 걸음부터"라며 '간접싸움'을 제안한다. 이에 대해선 '작은 틀→큰 틀' 모형으로 그의 저서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에서 자세히 언급했다. 

"준비 없이 큰 틀부터 바꾸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성공하더라도 실효를 가져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소위 기득권 세력에게 역이용을 당할 수 있는 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양반계급은 없어졌지만, 기득권 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급은 엄연히 존재하지 않는가. 그만큼 그들은 영리하다. 그리고 그들은 불리하면 숨죽이고 있다가도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반격하여, 어렵게 이뤄 놓은 변화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만든다. '어둠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롭다'는 예수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잠시 사라질 뿐, 절대 죽지 않는다."

아울러 '자성'을 강조했다.

"과거와의 단절은 모두가 네 탓이라는 오만에서 나오는 발상이다. 자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 나는 책임이 없는가를 반드시 점검해 봐야 한다. 자성이 있어야 모두가 마음이 통하는 장이 마련될 수 있다. 그렇게 마음이 통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지난 일을 느리지만 확실하게 바로잡을 수 있다. 마음을 통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새로움을 열 수 없다."

차례
① 여는 글- "학생이 왕이다, 학교를 탈출하라"
② 자녀교육 즉문즉설- 배웠다는 부모의 주특기 '무언의 압력'
③ 시골학교 이야기- "우린 안 하는 걸 잘한다", 놀면서 성공한 학교
④ 교사론- "교사의 인권? 학생 앞에서 그런 건 없다"
⑤ 해법- "해방 후 지금까지 교육 정책은 없었다"
⑥ 닫는 글- "왜 대안학교의 길은 아니었을까?"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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