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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윤 일병'을 만나다

"피해자 병원 찾은 재판장, 회유 직감했다"
[또 다른 윤 일병을 만나다 2-③] 외상 후 스트레스 앓는 정아무개씨

15.07.15 13:28 | 김도균 기자쪽지보내기

지난 해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28사단 집단폭행·사망사건은 폭력으로 얼룩진 군대 폭력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윤 일병들의 고통에 관한 보고서다 [편집자말]
▲ 정 상병은 2014년 10월부터 올 1월까지 부대 생활관에서 입대 동기들로부터 성추행과 상습폭행을 당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중이다. ⓒ 권우성

"8대 1의 경쟁을 뚫고 공군에 간 아이가 저렇게 바보처럼 돼서 돌아왔습니다. 선임병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애를 관심병사로 분류해 놓고도 그냥 방치하다시피 해서 동기들로부터 또 폭행과 괴롭힘을 당하게 했어요. 우리 애가 관심병사였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동기들로부터 여러 달 동안 상습적인 폭행과 성추행, 가혹행위를 당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아래 PTSD) 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 중인 정아무개(22) 상병의 아버지 정대근(54)씨의 하루는 피켓을 챙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정씨는 국방부와 국회, 서울역 등을 돌면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씨는 가해병사들뿐만 아니라 아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합의를 종용했던 부대 지휘관들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가 부대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를 재판과정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3명의 가해자 중에서 2명은 우리 아이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써줬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지도 않았어요. 스스로 합의서를 제출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 폭행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는 애가 선뜻 합의서를 썼다는 겁니다. 한 달 동안 불러서 합의서를 쓰라고 한 것이 종용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재판장이 피해자 입원 병원 찾아온 까닭은?

▲ 지난 5월 6일 낮, 공군 가혹행위 피해자 정아무개 상병의 아버지 정대근씨가 제1전투비행단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도균

되풀이 되는 병영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반드시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 사회를 분노로 들끓게 했던 '윤 일병 사건'과 이 사건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두 사건 모두 보통군사법원의 1심 선고 직전 사회에 알려지게 됐으며,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군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했다는 점이다.

윤 일병 사건의 전모는 지난해 7월 31일 군 인권센터의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원래 재판을 맡고 있던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의 결심 공판을 불과 5일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만약 시민단체의 폭로가 없었다면 윤 일병의 사인은 당초 군 당국이 밝힌 질식사로, 가해자들에 대한 죄목도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가 적용됐을 것이고 사건의 실체는 영영 미궁에 빠져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도 공군 제1전투비행단 보통군사법원의 선고 공판 직전이었다.

"어떻게든 애를 먼저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했어요. 부대 안에 애가 있는 한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겠다 생각했거든요."

지난 3월 26일 정상병을 집으로 데려온 정씨는 아들이 부대에서 겪었던 폭행과 가혹행위를 언론에 제보했다. 3월 28일 "또 '군 가혹행위'... 콜라 강제 들이붓고 성추행까지"라는 제목의 KBS 보도를 시작으로 언론들은 '제2의 윤일병 사건'으로 이 사건을 알렸다. 4월 7일에는 군 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을 한 바로 다음날, 재판장이 애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찾아왔어요. 재판장이 피해자 아버지를 찾아 올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그때 '아, 이 사람들이 나를 회유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항소하지 않으면, 영영 끝나는 거라더군요"

▲ 정 상병은 2014년 10월부터 올 1월까지 부대 생활관에서 입대 동기들로부터 성추행과 상습폭행을 당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중이다. ⓒ 권우성

군 당국은 군사법원법에 따라 (법조인인 아닌) 일반 장교가 재판장을 맡을 수 있고, 김아무개 중령이 병원으로 정씨를 찾아 간 것은 사실이지만 재판장 자격이 아닌 인사참모 자격으로 갔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초 4월 초로 예정돼 있던 가해자 A상병에 대한 선고를 연기한 제1전투비행단 보통군사법원은 재판부를 교체하고 지난 5월 6일 공판을 재개했다.

A상병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지난 1월 12일까지 1주일에 3~4일씩 하루에 10회가량 동기인 정 상병을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하고 세 차례에 걸쳐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상병은 또 콜라 1ℓ를 마시게 하는 등 가혹행위를 하고 수십 회에 걸쳐 모욕한 혐의도 받고 있다.

군 검찰은 당초 A상병에게 상습폭행과 군인 등 강제 추행 혐의를 적용 징역 3년을 구형했지만, 정 상병이 겪고 있는 PTSD 등 피해사실을 추가하면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 6월 23일 결심공판에서 군 검찰은 A상병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했다.

하지만 이날 공판을 지켜본 정씨는 분노했다.

"증인으로 나온 병영생활 상담관이 우리 아이가 3살 때부터 나한테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5살 때 가출한 적이 있었다고 상담을 했다는 거예요. 가해자 변호인은 그걸 이용해서 3살 때 아버지한테 맞은 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이 아니냐고 질문을 하는데 속에서 천불이 납디다. 그런 적도 없지만 아니, 3살 때 맞은 일과 5살 때 가출한 것을 어떻게 기억하냐고요."

정씨는 이대로 1심이 끝나버리면 사건의 진상은 영영 묻혀버리고 자신은 '폭력 아버지'로 남게 된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1심 판결 후 검찰관이 항소하지 않으면 이대로 끝나는 거라더군요. 사건 직후 도대체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애가 이렇게 망가졌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수사기록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고, 군대는 감춰야 할 것이 뭐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정씨는 군에서 발생한 폭력과 가혹행위를 병사들 간의 문제로만 돌리고, 정작 부대 운영에 책임이 있는 간부들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행태가 계속된다면 군대폭력 근절은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건의 전면 재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는 1인 시위를 계속할 계획이다.

"우리 애를 못살게 괴롭힌 A상병의 부모들도 한편으로는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부모들도 그 애를 군대에 보내면서 이런 일이 있을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선고공판에서 A상병은 우리 애 때문에 부대 분위기가 나빠지고 위에서 연대 책임을 물어서 괴롭혔다고 하더군요. 누군가가 묵인하고 방조하지 않았으면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반드시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A상병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7월 24일로 예정돼 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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