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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윤 일병'을 만나다

세면장에 들어온 대대장 "네가 희생해 주면 안 될까"
[또 다른 윤 일병을 만나다 2-②] 외상 후 스트레스 앓는 정아무개씨

15.07.07 12:50 | 김도균 기자쪽지보내기

지난 해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28사단 집단폭행·사망사건은 폭력으로 얼룩진 군대 폭력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윤 일병들의 고통에 관한 보고서다. [편집자말]
▲ 정 상병은 2014년 10월부터 올 1월까지 부대 생활관에서 입대 동기들로부터 성추행과 상습폭행을 당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중이다. ⓒ 권우성

지난해 공군에 입대했다 동기들로부터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정아무개(22)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아래 PTSD)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정씨는 아직도 과거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부대 안에서 겪었던 기억들이 자꾸 떠오르곤 해 악몽을 자주 꾸고, 신경이 예민해져 사소한 일에도 쉽게 놀란다. 정씨는 공포와 두려움, 무력감 등의 반응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런 증상이 이미 지난해 가을께 시작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질책이나 잔소리로부터 도피해 공상이나 놀이로 빠져들듯, 정씨는 요즘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서 유희왕 카드 놀이를 하면서 보낸다. 식욕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마구 먹어대는 통에 입원중에 체중이 10kg이나 불어났다.

의료진은 정씨의 부모에게 되도록 자주 정씨를 데리고 외출할 것을 권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정씨가 병실에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길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일쑤다.

"한번은 애를 데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자리에서 욕설이 들려왔어요. 옆자리 손님들이 자기들끼리 대화하다 장난으로 한 욕이었는데, 우리 애는 푹 고개를 숙이고 밥도 먹지 못하더군요. 부대에서 동기들로부터 들었던 온갖 욕설과 모욕이 생각나는 거지요."

정씨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들을 선처해 달라는 합의서를 선뜻 써줬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폭행 동기 3명 중 2명에 대해 합의서 제출한 이유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중순까지 약 3개월 동안 정씨에게 폭행을 하고 욕설을 했던 동기는 모두 3명. 그중 폭행을 주도한 1명만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고 나머지 2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되어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정씨가 2명에 대해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정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합의서를 써줬다는 사실을 지난해 3월말 재판과정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부대 측은 정씨가 법적으로 성인으로, 부모는 법정대리인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에게 이런 사실을 알릴 의무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씨가 민간병원에서 PTSD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4월 초. 하지만 PTSD 증세가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씨는 그 이전부터 PTSD를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합의서를 써줄 당시 정씨의 심리상태는 과연 온전했을까?

▲ 정 상병은 2014년 10월부터 올 1월까지 부대 생활관에서 입대 동기들로부터 성추행과 상습폭행을 당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중이다. ⓒ 권우성

정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인숙 변호사(민들레법률사무소)는 "매일 반복되는 폭행으로 장애가 생긴 정씨가 제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심신상실 혹은 심신미약 상태에서 가해자 2명에 대한 합의서를 제출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경우라면 법률적으로 합의서의 효력이 없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또 김 변호사는 "3명의 가해자가 정씨에 대한 폭행과 가혹행위에 동시에 가담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적용 죄목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가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정씨를 폭행한 행위(폭행죄)와 달리, 가해자들이 공동으로 정씨를 폭행하여 그 결과 PTSD가 발병하였다고 한다면 형량이 훨씬 더 무거운 '공동상해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정씨에 대한 폭행을 가해자들의 개별적 행위로 쪼개놓으면 상대적으로 죄가 가벼워지지만, 만일 가해자 3명이 모두 가담한 상태에서 정씨를 폭행했다면 엄벌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정씨는 자신이 폭행당할 때 가해자 3명이 거의 함께 있었다고 기억했다. 자신이 합의를 해준 1명은 주범격인 A일병과 함께 폭행에도 직접 가담했고, 또 다른 1명은 직접 폭행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욕설과 가혹행위에는 가담했다는 것.

"대대장이 가해자 중 (합의서 써준) 두 명과 함께 서 있는 걸 봤다"

그는 또 합의서 작성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월 중순 헌병이 수사에 착수한 후 약 한 달 동안 부대 측이 합의해줄 것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가해자 중 2명과 자신을 대면시킨 일도 있다고 말했다.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압박감을 심하게 느꼈어요. 한 번은 세면장에 있는데 대대장이 들어와서 '가해자들을 용서해 줄 수는 없겠느냐' '네가 부대를 위해 희생 좀 해주면 안되겠느냐'고 말을 했어요. 그 직후 바깥에서 대대장이 가해자 중 (합의서를 써준) 두 명과 함께 서 있는 걸 봤어요."

정씨는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에서 합의서를 제출할 당시 상황에 대해 "(누군가의) 조종을 받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매일 매일 반복적으로 가해졌던 구타와 심한 가혹 행위 속에서 정씨는 이미 정서적으로 심한 위축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도 그를 괴롭혔다.

"무려 한 달이에요. 한 달. 정신도 온전치 않은 애가 수사가 시작된 후 한 달 동안을 매일 같이 상관에게 불려가서 합의서를 써주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걸 어떻게 압박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정씨의 아버지는 부대 측의 처사를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아들이 가해자들 중 2명에게 합의서를 써줬다는 사실도 지난 3월말 부대에서 열린 가해자 A일병에 대한 공판에서였다. 그날 재판정 밖에서 만난 아들은 그에게 남몰래 쪽지를 건네주었다. 다섯 장짜리 쪽지를 건네면서 아들은 "아빠, 살려 주세요"라며 울고 있었다.

정씨의 아버지로부터 진정서를 접수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정씨의 소속부대와 부대 관계자들을 상대로 조사에 착수했다.

- 3화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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