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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을 인터뷰 하다

17년만에 밝혀진 비밀, '그 여자'가 미웠다
[입양을 인터뷰하다 19] 비밀입양으로 자란 성인입양인 영선씨

15.07.01 20:48 | 김지영 기자쪽지보내기

▲ 위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 김지영

평생, 그녀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11월 27일 밤이었다. 학교 악기연습실로 사십대의 중년 여자가 그녀를 찾아왔다. 사전에 아무런 통보나 약속 따위는 없었다. 학교 앞 분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면서 뭔지 모를 이상하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분식집에 앉았다. 떡볶이가 나오고 그 중년의 여자가 얘기를 시작했다.

"내가 너를 평생 그리워하다 찾아왔다."

그녀가 기억하는 대사는 거기까지였다. 똑 부러지게 '내가 네 엄마'라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뭔가 인생이 엉키고 있다는 직감이 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친구에게 말했다.

"나 지금 드라마 주인공 되는 거야?"

날짜는 잊을 수 없는데 서로 나눈 대화는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도 나중에 친구가 이야기 해줘 알았다. 지우고 싶어서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고 생각했다.

그녀는 두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친구가 전해주기를 함께 집으로 걸어가면서 그녀가 한 말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오늘 일은 어느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일주일 뒤였다. 그 중년여성은 그녀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그녀와 만났다는 사실을 알렸다. 집 안은 말 그대로 사색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모르는 일이고 알고 싶지 않다'고 잡아뗐지만, 그녀의 엄마는 평생을 키워 온 자식이 사실 자신이 낳은 것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녀의 엄마는 '사실이 아닌데...'라는, 사실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말로 심장이 찢기는 아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집을 나왔다.

영선(가명, 41)씨를 알게 된 건 입양관련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였다. 그녀가 쓴 글을 읽었고 쪽지를 보냈다. 인터뷰 성사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출생에 얽힌 인생의 속살을 카페에서 조금씩 내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입양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지만 대면 인터뷰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인 듯했다. 많이 망설이던 그녀가 용기를 내줬다. 그렇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타난 생모... "너무 힘들었어요"

- 부모님이 불임이셨나봐요?
"구체적으로 물어보진 않았는데 이런 말씀은 하셨어요. 그 전에 아이를 가지려고 많이 애를 쓰셨는데 제가 생기고 나서는 별로 노력을 하지 않으셨대요. 운명이라 생각하시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동생을 가졌는데 유산이 됐어요. 그때 제가 많이 운 기억이 나요."

- 영선씨 입양은 어떻게 하신 거예요?
"부모님 큰 아버지 쪽으로 모임이 있으셨나 봐요. 그 모임에 계시던 분 조카딸이 어린 나이에 저를 낳았는데 답이 없으니...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그쪽에서도 6개월을 저를 키우다가..."

- 느닷없이 생모가 나타나고 가출을 하셨는데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집을 나와 넷째 이모네 집으로 갔어요. 다섯째 이모가 와서는 '야 너 낳고 니 엄마 산후조리 내가 했어. 어떤 XX년이 와 가지고 참.' 이렇게 얘길해요. 그래서 아 아니구나, 이러고 있는데 어느날 넷째 이모부가 술이 취해서 저를 부르는 거예요. 제가 모든 사실을 다 알고 방황을 하는 걸로 착각을 하셨나 봐요.

하시는 말씀이 '니가 지금 그 사실 때문에 힘들고 방황하는데 너는 어차피 이모부 조카고 나는 지금 딸이 넷인데 딸이 다섯이라도 부담 없다. 니가 집에 있기 싫으면 여기 와서 있어도 좋다.' 다섯째 이모 말 듣고 아닌 줄 알았는데 제 생모가 따로 있었다는 게 기정사실이 된 거예요. 그 이후로... 아... 그 이후로... 저의 방황은 시작됐죠."

고등학교 선생이었던 삼촌 손에 이끌려 영선씨는 일주일 만에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여자(영선씨는 아직도 생모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를 만났다. 그 여자의 언니와 영선씨의 엄마, 아빠가 함께 했다.

"그때 엄마랑 저랑 멀어졌던 것 같아요. 뭐였냐면 아... 그... 생모라는 위치가 지금 생각해도 아주 크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왠지 우리 엄마가 쩔쩔 매는 듯한 느낌. 그 여자의 당당함.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얘기해줘야 하는 위치..."

그날 부모님은 생모와 3박 4일 동안의 여행을 허락했다. 하지만 그 여행의 출발에서 영선씨는 엄마로부터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상처를 받게 된다.

"엄마랑 참 깊은 오해가 있었는데 서로가 미안한 게 뭐냐면 내가 이렇게 딱 그 여자를 따라 가는데, 와 엄마가 나를 그 여자한테 보내면서 웃으면서 잘 놀다오라고 하는 거예요. 가면서 뒤를 돌아 봤는데 엄마랑 아빠가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거예요. 제가 봤을 때.

근데 놀러 가서도 엄마는 원래 성격이 제가 가는 곳마다 확인 전화하고 안부 묻고 하는데 제가 그 분한테 저희 엄마한테 전화 왔냐고 물었는데 안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더 상처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도 저를 돌아봤는데 제가 뒤돌아보지 않아서 속상했다고 그래요. 서로 엇갈렸던 거죠."

여행 첫날밤 영선씨 몸에 이상이 왔고 하룻밤을 자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왔다.

- 생모하고는 그 뒤로 계속 만나셨겠네요?
"안 만났어요. 그 여자 분이... 참 웃겼어요. 지금 제 생각인데요. 자기가 당시 함께 살던 일본인 남편하고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아요. 헤어지려고 저를 이용했던 거죠. 저를 일본에 데려가서 공부를 시키겠다. 제가 음악을 하니까 NHN교향악단에 넣어 보겠다, 말만 하다가 그냥 일본으로 돌아갔어요. 그러고 연락이 끊겼죠."

- 생모를 만나고 나서 어떤 느낌의 변화가 있었나요?
"차라리 그냥 안 봤으면 상상이라든가 피치 못할 상황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제가 만난 입양아들 중엔 생모 만나고 나서 괜찮았다고 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왜 그런가를 봤어요. 내 부모님들은 나하고 평생을 살았잖아요. 그분들에게는 제가 언제나 일순위잖아요. 그런데 생모는 제가 과거인 거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은 있겠지만 현실 속에서 생모의 삶 안에 저는 일순위가 아닌 거죠. 당사자가 그런 느낌을 받으면 또 상처받는 거고요." 

- 영선씨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고 나서요. 사촌들이라든지 이모라든지 그간 친하게 지내왔던 친척들에 대한 느낌은 어땠어요?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이게 뭐야, 진짜 다 너무 오버스러운 거예요. 이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면서. 트루먼쇼 같이 나만 모르고 있었네."

- 배신감인가요?
"네. 나만 모르고 있는 현실이 웃겼고요. 큰아버지는 저를 '우리 공주님' 어쩌고 그러면서 악기하는 저를 지원해 주셨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딸은 무슨 피리를 분다고 저러고 있냐, 나를 닮아서 공부를 못하다보다' 이러기도 했고요. 다섯째 이모는 '제가 꼭 나 닮아서 성질이 더럽다'고 했는데, 그런 말들이 너무 오버스럽고 거짓같고... '불쌍해서 얘기한 거야?' 이런 생각까지 들고요. 그때는 사춘기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특히 제가 제일 좋아했던 다섯째 이모는 나를 끝까지 속이려고 했던 이모인데 그러니까 더 싫었죠. 한동안 그 이모랑은 말도 잘 안 했어요."

"입양아라는 사실 충격적으로 알게 되면서 주눅 들게 됐죠"

- 지금은 그런 관계들이 회복이 됐나요?
"글쎄요. 회복이라고 하기에는... 되게 웃긴 게 우리 이모가 늘 그래요. '지혼자 지랄했지 뭐.' 아무도 그런 식의 제 행동이나 말에 반응을 안 해요. 나중에 이모 그때 왜 그랬어? 그러면 이모가 오히려 소리를 질러요. 아니 그럼 내 조카를 남의 애라고 하니. 늘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 입양사실을 알고 본인한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어요?
"저희 집안이 경기도 OO인데 우리 집만 유일하게 서울에서 살았어요. 아빠가 대기업 다니셨고. 큰 집 식구들도 아빠를 엘리트 작은 아버님이라고 부르면서 함부로 대하지 못했어요. 사촌오빠 결혼할 때 제가 폐백도 받고 올케들도 저한테는 반말을 못할 정도였어요. 그러다보니까 제가 건방이 하늘을 찔렀어요. 세상 무서운 게 없었고요. 그런데 제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그렇게 충격적으로 알게 되면서 스스로 되게 작아진 것 같아요."

- 겸손해진 건가요?
"아니 내 스스로가 주눅이 많이 들었다고 할까요? 겉으로는 똑같이 행동하지만..."

-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신 거네요?
"네. 그런 게 많은 거 같아요."

- 엄마하고는 관계가 어때요? 인터뷰 때문에 통화할 때도 엄마, 아빠 얘기 나오면 눈물 흘리시는 것 같던데요?
"저는 지금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엄마한테 상처를 너무 많이 줬어요."

- 무슨 상처를 그렇게 많이 줬어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은 안 맞았어요. 엄마는 귀걸이 목걸이에 발찌까지 하고 다니고, 그런 데 관심도 많고 성격도 세심한 편이에요. 저는 학교 다닐 때도 운동화 신고 추리닝 바지위에 교복 입고 학교 담 넘어 다니고 그런 성향이고요. 엄마가 조근조근하다면 저는 대찬 성격이죠.

엄마가 집 안에서 막내인데도 하는 일이 많았어요. 늘 피곤하고 바쁘고 그랬죠. 그러다보니까 제가 엄마를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해왔어요. 어느 날은 엄마한테 '엄마는 나를 낳은 걸 축복으로 생각해? 지금 딸 하나라고 눈치 보는 게 있다면 엄마는 나까지 없었으면 이 집안에서 '땡'이었을 거야"라고 그러면 우리 고모가 '맞아' 이러고. 우리 엄마도 '내가 너 안 낳았으면 살고 있겠니? 이혼했지.' 그럴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런 자연스러움이 열여덟 살에 깨졌죠.

지금도 우리 애를 엄마가 끼고 돌아요. 그럴때 제가 막 뭐라고 하면, 옛날 우리사이였다면 '이놈의 지지배 그러면 안 돼'라고 할 텐데 '그래 엄마가 뭔데 꼈나싶다. 엄마가 주제넘었다' 이런 식인 거죠. 그게 아닌데. 서로 생각하는 게 다른 거 같아. 나는 이게 아니고 엄마는 이게 아니고. 엄마는 늘 서운한 거야."

- 본인은 어때요?
"저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같아요. 엄마가 오해하는 게 싫을 뿐이지.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고 내 여태까지의 삶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엄마 친자식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왜냐면 입양사실을 아는 순간 뛰어 넘을 수 없는 뭔가가 생긴 것 같아요."

- 출생에 대한 문젠가요?
"그냥 싫었어요. 다시 태어나고 싶었어요. 그게 싫어서 자살시도도 했었어요. 그냥 싫더라고. 기억상실증 그런 게 너무 좋아요. 너무 싫은 거야. 그냥 그 자체가. 내가 왜 버려졌고, 입양이나 이런 게 궁금한 게 아니에요. 내가 우리 엄마, 아버지하고 피가 안 섞인 게 너무 짜증이 나고 싫은 거죠."

- 지금도 어머님하고 계속 다투고 그러지만 영선씨 마음 속에 엄마는 딱 한 분이잖아요?
"그럼요. 당연하죠. 누구나 자기 엄마를 사랑하죠. 제가 열여덟 살에 생모를 처음 만나고 여행 간 날 뒤돌아섰을 때 엄마, 아빠가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던 모습에 상처받고, 그날 저녁 평소 같으면 몇 번을 전화해서 뭐 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전화 한 통 없어서 또 상처 받고 했잖아요.

한참 나중에 들었는데 엄마는 그날 제가 혹시 영영 안 돌아올까봐 밥은 고사하고 물도 한 모금 못 마시고 그랬다고 해요. 저는 저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상처받고 있었던 거예요. 상처는 상처대로 있는 거지만 마찬가지로 엄마나 저나 부모자식으로서의 마음은 똑같았다는 거죠. 엄마에게 저는 항상 당신 자식이었고 저에게도 엄마는 항상 내 엄마였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공개입양하는 게 아이들에겐 더 좋다고 생각"

- 우리나라는 아직도 공개입양과 비밀입양이 반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영선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지켜질 수만 있다면 비밀입양이 무조건 좋아요. 부모하고의 관계가. 이거는 백프로예요. 출생의 비밀은 정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비밀이 지켜질 수 없잖아요. 그럼 공개를 해야 하는데 어느 시기에 공개를 하냐에 대해서 사람들이 물어봐요. 저는 내 자식 자아만 잘 형성된다면, 어렸을 때 공개입양에 대해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아이가 또렷하게 서면서 방황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비밀입양아나 커서 입양 사실을 안 아이들은 부모를 궁금해 하는 것조차 미안한해 해요. 본인은 궁금하지만..."

- 한 인간의 전인적 삶을 봤을 때 과연 어떤 방식의 입양이 더 좋은 걸까요?
"저는 아예 그냥 공개입양으로, 어렸을 때부터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 말씀하신 부모가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게 실제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기가 직접 배로 아파 낳은 자식만큼의 끈끈함은 없을 것이다?
"아니요. 부모는 있어요."

- 부모자식의 관계는 기른 정인가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 그래도 대다수 사람들은 낳아준 부모에 대해, 근원적인 어떤 애정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대부분 부모-자식 관계에서 형성되는 깊은 사랑은 밤을 새서 우유를 먹이고, 우는 아이 잠 설쳐가며 다독이고, 아프면 같이 울고 그러면서 쌓이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아무리 낳은 정이라도 그런 사랑의 깊이는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요.

제가 생모와 완전히 인연이 끊어진 이유가 있어요. 나중에 제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생모가 연락해 왔어요. 우리 애들 보고 싶다고. 안 된다고 했어요. 복잡한 관계는 내 대에서 끝내야 된다고. 그게 서운했나 봐요. 저는 이 분이 용서가 안 돼서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 이 사람을 인정하면 우리 엄마, 아빠는... 그 부분 때문에 어머니라고 안 하고 인정을 안 하는 거지 원망은 아니에요. 저에게 엄마, 아빠는 딱 한 분씩이에요."

이미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아무런 예고없이 영선씨 앞에 나타난 생모의 존재는 영선씨와 영선씨 엄마의 삶을 뒤흔들었다. 세월이 그렇게 흐른 지금도 영선씨의 엄마는 입양사실이 탄로(?) 났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고 있다.

오직 비밀입양뿐이었던 당시의 입양 현실 속에서 한 평생 딸 하나 보고 살았을 영선씨 엄마가 느꼈을 충격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건 영선씨도 마찬가지였다. 한 인간의 삶에, 출생의 근원이 가지는 무게감에 비해 생모의 느닷없는 출현은 너무 급작스러웠고 결과 역시 너무 가혹했다.

영선씨 앞에 처음 드러난 입양은 바닥을 뒤집는 충격이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선씨와 가족들은 오랜 시간 동안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 여진은 아직도 두 모녀의 마음 끝을 붙잡고 있다. 입양이 두 사람을 모녀로 만들어주었다면 입양을 했다는 사실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모녀 사이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 셈이다. 

다행히 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끝까지 가족으로 남았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에 대한 연민과 상처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러므로 서로에 대한 측은지심이 일상인 그런 관계로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하게 말했다. 자신에게 엄마가 둘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진짜 엄마는 오직 한 명뿐이라고.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모든 인생을 훤히 꿰뚫고 있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기쁨과 슬픔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해준 그분, 지금의 엄마가 자신의 유일한 엄마라고 말이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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