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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아만남

"폭식투쟁? 흡혈 박쥐보다 못한..."
[10만인리포트-아만남] 장산곶매 등산패 20주년 기념 산행②

15.06.17 16:15 | 김병기 기자쪽지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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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산 선재길을 걷는 백기완 소장과 명진 스님 ⓒ 김병기

[셋째 마당] 아침 댓거리 '민중사상'

31일 오전 6시 30분, 소금강 마을 식당 유리창으로 아침 햇살이 반쯤 들어왔다. 그 햇살을 받으며 백기완 소장, 명진 스님, 이수호 이사장이 마주 앉아 있었다.   

"전 그때 미쳤습니다."

이 말이 끝난 뒤 30초간, 명진 스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결국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백기완 소장의 자글자글한 눈매에도 이슬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수호 이사장도 잠깐 동안의 막막한 침묵을 깨진 못했다. 백기완 소장 앞에게 파란만장한 삶을 유쾌하게 이야기하던 명진 스님은 동생의 죽음 대목에서 말문이 막혔다.

"세월호 엄마 아빠들은 대단한 겁니다. 제 권유로 해군에 입대했다가 1974년 해군 예인정이 침몰한 사고로 158명과 함께 충무 앞바다에 수장됐는데, 그때도 국가가 한 일이 없습니다. 머구리들이 시신을 수습했죠. 그 뒤 하루도 빼놓지 않고 49일 동안 동작동 국립묘지에 가서 강소주를 먹었습니다. '대체 사는 게 뭐냐?' '존재란 무엇인가?' 불구덩이 같은 가슴 속에 이런 질문을 던지다가 결국 출가했죠."

짧은 추임새를 넣으면서 10여 분 동안 명진 스님의 지나온 삶을 듣고만 있던 백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스님의 일생이 너무 참혹해. 모진 삶이었네. 초등학교를 6번이나 옮기면서도 건강하게 잔뼈가 굵은 것은 스님이 탁월한 것이야. 우리가 태어난 지구 우주가 자본주의 문명으로 망했어. 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지구에서, 역사 현장에서 태어나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했다니, 가슴이 찡하네.

그런데 장산곶매의 마지막은 부리질이야. 부리로 집을 부수고 집을 나오지. 돌아갈 곳이 없으니 목숨을 거는 거야. 가진 게 땀과 한숨 밖에 없는 민중들도 집을 부셔야 해. '내 것이다'를 부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해. 이게 민중사상의 뿌리야."

영혼의 자유란?

그 뒤에 이어진 대화는 농도가 짙었다.  

명진 : "물적 토대도 있지만 내가 가진 세계관, 사유의 틀도 때려 부셔야 하지요. 자유로운 영혼 속에서 지혜가 나오고 그걸 실천하는 게 자비입니다. 머무르는 순간 틀 속에 굳어집니다. 그것도 깨야지요."

백기완 : "개념이 애매한 영혼의 자유라는 말은 실체가 없어. 생명이 아닌 것과 싸우는 게 영혼의 자유야. 잘못하면 말의 함정에 빠지지."

명진 : "도덕적 가치와 살아온 세월의 무게에 따라 관점이 생기는데 그 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백기완 : "그런 걸 관념이라고 하는데, 민중적 관점에서 보면 육체적 해방이 정신적 해방이야. 민중도 관점이 있어. 살아가는 게 관점이야. 노동을 통해 사는 사람은 관점이 아니라 삶을 중시해.

중국에는 도덕규범이 3천 가지가 있다고 그래. 나쁘고 좋고를 가르는 기준이지. 그런데 '훔치지 말라'고 말할 때를 생각해보자고. 내 노동의 대가를 빼앗아간 뒤에 훔치지 말라고 말하는 도덕은 가짜야. 이런 관념, 도덕 같은 지배문화를 거부하는 게 민중사상의 뿌리야."

아침 댓거리를 마친 뒤에 백 소장은 동양시멘트 해고 노동자와 장그래운동본부, 지하철 노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네트워크 관계자 등에 둘러싸여 한 마디 하면서 이렇게 마무리했다.

"거짓말과 싸우는 게 노동이야!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이에 동양시멘트의 한 노동자가 힘찬 구호로 화답했다.

"죽기를 각오했다, 현장으로 돌아가자" "X발 X도 밟아 죽여, X새끼들" 

[넷째 마당] 산중 강연과 촌철살인, 그리고 소리

▲ 김중배 대표가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서서 산중 강연을 하고 있다. ⓒ 김병기

소금강을 따라 오르는 길. 나뭇잎이 가렸지만 군데군데 숲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은 따가웠다. 백기완 소장은 한 손에 명진 스님의 등산지팡이를 들었으나, 힘이 들어 보였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가 넓은 공터에 앉았더니, 김중배 대표가 물오른 숲을 배경으로 섰다. 등산로에서 15분 동안의 짧은 산중 강연이 시작됐다.

김중배 "비인간적인 역류...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그 뒤에 일어난 풍경을 아시지요. 폭식투쟁이니……. 저도 목격을 했지만 '뒈지지도 않을 새끼가 쇼하고 있다'고 욕하는 광경. 세월호 특별법 서명에 600만 명이 참여했는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비참한, 비인간적인 역류가 흘러 넘쳤습니다. 그걸 보면서 사회 정치 경제적 구조를 이야기해왔지만 이제는 사람을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 대표는 이어 "운동은 항상 어려웠지만 요즘이 겪은 운동의 어려움은 질적으로 달라진 것 같다"면서 "사람과의 소통이나 동감, 공감에 대해 한쪽에서는 밀도가 치열하게 높아지면서 다른 한쪽에선 굉장히 원심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요즘 안 좋은 사람 욕할 때 짐승 같은 놈이라고 안 하고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 한다"면서 흡혈박쥐 이야기를 전해줬다.

"흡혈박쥐는 밤이 되면 피를 빨아먹으려고 굴 밖으로 나섭니다. 그중에 몸이 아파서, 어디가 불편해서 피를 못 빨러 나온 놈이 있을 거 아닙니까? 바깥에 나갔던 놈들이 원정 사냥을 못하고 굴속에 매달린 박쥐들에게 피를 나눠준대요. 사람들이 흡혈 박쥐보다 나은 건가요?

그런데 우리의 세월호는 어떤가요? 쌍용자동차도 그렇고 중앙우체국 옥상에서도 싸우고 있고 이런 게 집적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질서라는 게 이미 도전을 받고 있다는 건 분명하고 여러 징후가 있습니다. 동이 트기 직전이 더 어둡습니다. 이렇게 어둠이 깊은 것을 보면 새벽이 오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속에서 타락해가는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 김 대표의 말은 울창한 숲을 잠시 진공상태로 만들었다. 김 대표의 산중 강연이 끝난 뒤 소금강을 오르다가 너럭바위 위에서 임진택 선생의 판소리 한마당이 펼쳐졌다.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한 등산패원이 "이번엔 명진 스님!"을 외쳤다. 맨발로 있던 명진 스님이 등산화를 신자마자 바위 위로 뛰어 올랐다.

▲ 명진 스님이 소금강 너럭 바위 위에 올라가 장산곶매 등산패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채원희

명진 스님 "부처를 도끼로 빠개... 어떤 게 진짜 부처냐"

"이름은 없었지만 내공이 있는 스님(단하선사)인데 절에 들어가서 자려고 보니 방이 추워요. 돌아다니면서 아궁이 군불을 때려고 장작을 찾으니 장작이 없어요. 그래서 법당에 들어가니 보니 부처님이 목불이에요. 목불을 안고 나와서 아궁이 앞에서 도끼로 빡빡 빠개서 군불을 땝니다.(하하)

그렇게 하룻밤을 뜨뜻하게 잤어요. 그 다음날 주지가 새벽예불을 보러 나갔더니 법당에 부처님이 없어진 거예요.(하하) 주지스님이 방 앞으로 가보니 도끼로 부처를 빠개서 땐 흔적이 남아있는 거예요. 방에 쫓아 들어가서 자고 있는 스님의 멱살을 붙잡고 '너 이놈아, 아무리 추워도 그렇지! 세상에 부처님을 빠개서 군불을 때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소리를 버럭 질렀답니다.

단하스님이 일어나서 '내가 어제 부처를 아궁이에 넣었단 말이냐? 나무부처가 산부처를 따뜻하게 해줬으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했답니다.(하하) '금부처는 용광로는 못 견디고 진흙으로 만든 부처는 물을 못 견디고 나무로 만든 부처는 불에 들어가면 타버리는 데 어떤 게 진짜 부처냐? 너 이놈아! 부처를 바로 대봐라!' 이 말을 듣고 주지가 꽉 막혀버립니다.

세상에 부처도 허상이고 모셔놓은 게 모두 헛된 것인데, 헛된 것에 엎드려서 돈을 내놓고 지옥에 안 가고 천당에 간다고 좋아합니다. 천당과 극락이 그렇게 좋은가요? 천당은 새가 울고 꿀이 흐르고 온갖 좋은 것을 모아놓은 곳인데 거기서 영생토록 못나오면 시설 잘된 감옥입니다.

지옥이니, 천당이니 하는 것은 종교가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협박, 공갈쳐서 돈을 뜯고 삥 뜯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백기완 : "아! 명진 잘한다") 이런 종교는 있을 필요 없습니다. 남한테 악한 짓 안하고 착한 일 하고 돈 생기면 불쌍한 사람 도와주면 이게 자비심이고 사랑입니다. 생명을 긍휼하게 여기고 연민을 느끼는 게 종교입니다. 종교는 친절이고 자비이고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겁니다. 나는 이걸 모르는 종교는 없앴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옳소!" "옳소!"라는 추임새가 터져 나왔고 한 등산객은 "명진 스님 팬"이라면서 "2부는 없나요?"라며 아쉬워했다. 백 소장은 웃으면서 이렇게 외쳤다.

"다들 만 원씩 내놔!" 

▲ 백기완 소장이 오대산을 오르다가 잠시 쉬고 있다. ⓒ 김병기

[닫는 마당] 장산곶매를 기다리며

장산곶매 등산패를 실은 버스는 31일 오후 4시경 대학로로 되돌아왔다. 유초하 교수 등은 뒤풀이를 한다면서 인근 술집으로 향했다. 백 소장과 기자는 학림다방에 마주 앉았다. 1박2일 동안 소리꾼 임진택뿐만 아니라 백기완 소장, 김중배 대표, 명진 스님은 명창이었다. 이들이 오대산과 소금강에서 벌어진 한편의 마당극에서 보여준 말과 몸짓은 절창이었다.

1995년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이 백 소장에게 세배를 드리면서 제안한 북한산 산행이 등산패 장산곶매의 시작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아니 두세 번씩 산에 올랐고 다 합치면 250여 차례가 된다고 한다. 백 소장은 산꼭대기에서 '민중문학 10분 특강'을 했다. 이것만도 100회가 넘는다고 했다.

산에 오르면서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도 벌였다. '야호'라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호기롭게 부르는 불림 '어이~'라고 했다. 등산조끼는 등거리, 산 정상은 산꼭대기, 능선은 마루길, 코스는 냇길, 아이젠은 징, 로프는 밧줄로 불렀다. 백 소장은 이번 냇길에서도 우스개로 "오마이뉴스가 뭐야! 우리말로 바꿔"라고 주문했고, 이 말을 들은 임진택 선생은 "오 나의 새뜸!(새롭게 뜨는 소식)은 어때?"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백 소장은 기자에게 맥주를 연거푸 권하면서 전날 다하지 못한 장산곶매의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장산곶 사람들은 매가 자기 집을 부리로 까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어. 지배 계층의 가렴주구가 없어진다고 믿었지. 하루는 장산곶매가 엄청난 수리 떼(대륙의 침략자 상징)와 구렁이(왜놈을 상징)고 싸우려고 멱치기를 떠나려고 하는데 날지를 못했어. 발목에 큰 쇠방울이 나무 등걸이에 걸려 있는 거야. 

'와라~ 와라~'. 조바심이 난 주민들이 나와서 아우성을 쳤어. 그 아우성이 하도 커서 장산곶매가 힘껏 날갯짓을 하니 빡하고 쇠방울이 떨어져 나갔어. 지금도 장산곶매는 캄캄한 하늘을 날고 있어. 캄캄한 하늘을 부리로 콕 치면 별이 생겨. 그게 '별만이'지. 그 별을 보면서 장산곶 사람들은 길을 찾아가고 있어."

기자 혼자 맥주 2병을 비운 뒤 백 소장을 부축하고 학림다방을 나섰다. 40~50년간 길거리에서 독재와 신자유주의의 캄캄한 밤하늘을 날면서 멱치기를 해 온 늙은 장산곶매가 힘없는 뒷모습을 보였다. 인간이 살 수 없는 쌍용차 굴뚝 위, 서울중앙우체국 광고탑 위에 앉은 장산곶매의 새끼 '뻘떡이'들이 힘차게 날아오르기를 희망하며.

▲ 장산곶매 등산패 20주년 기념 산행의 마지막 장소인 방아다리 약수터를 떠나며. ⓒ 김병기

장산곶매 등산패 20주년 기념 산행①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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