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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가는 꿈틀버스

행복? 덴마크 아닌 광산구에서 찾았어요
[행복을 찾아가는 '꿈틀버스' - 광주 광산구⑨] 꿈틀버스를 타고 떠난 1박 2일 여행

15.05.21 10:56 | 강봉춘 기자쪽지보내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광주 광산구는 오는 5월16~17일(1박2일) '꿈틀버스'를 운행합니다. 꿈틀버스 1호차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광주 광산구에서 꿈틀거리는 협동조합 '클린광산' '더불어락' 등을 찾아가며 오연호 대표의 '행복특강'도 개최합니다.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오마이뉴스와 광산구가 꿈틀버스 공동 취재단을 구성했습니다. [편집자말]
일상이 나를 지치게 하고 나도 일상에 지쳐갈 때면 서로 잠시 떨어져 있고 싶어진다. 내 눈에 '꿈틀리' 광고가 띈 건 내가 조금 지쳐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샛말로 오글거리는 이름에 가벼운 거부 반응으로 코웃음이 났지만, 거부하고 싶은 우리 현실에 비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을 때 나아지는 미래가 보인다면 좋겠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내일의 나는 집을 잃고 쫓겨난 철거민들과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 틈에 같이 서 있다.

그러다 문득, 열심히 살다 갑자기 아이들을 잃어 버리고,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거리를 헤매는 어머니 아버지들을 마주할 때면, 내 최악의 미래가 저 모습일 수 있단 생각에 분노와 울음이 함께 솟는다. 그러나 그렇게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칼처럼 굳어 다시 내 심장에 박힌 것은 내가 여전히 삶의 해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을 떠나면 항상 나를 깨우쳐주는 스승을 만나듯, 이번 '꿈틀버스 1박2일' 여행에서도 나는 이름 모를 위대한 선생님들을 만났다. 꿈틀버스 1박2일은 지난해 '행복한 우리 만들기'란 주제로 전국 순회특강을 다닌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만난 주민(꿈틀리 주민)을 만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꿈틀버스 첫 번째 행선지는 광주광역시 광산구다.

▲ 광주 광산구 송정시장안에 있는 협동조합카페 '아름다운 송정씨' 대표님이 각지에서 찾아온 꿈틀버스 이웃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 강봉춘

지난 16일 광주 송정리에서 우릴 맞아준 꽃다운 얼굴의 아저씨 선생님께서는 당신과 당신 이웃들의 옛이야기를 너무도 즐겁게 전해주셨다.

"아이고, 마을 사람들이 다 떠나기 시작하는디 이러다 마을 비어버리면 워찌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붕께, 아니다 이렇게 두면 안 되겠다 하는 정신이 버뜩 들어붕거지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이웃들과 나누다 시작한 게 바로 '아름다운 카페 송정씨'입니다. 이름 참 예쁘져?"

이야기는 이렇다. 송정 시장 안에는 주민들이 오가며 쉴 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에 카페를 열기로 결정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과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정기모임을 진행해 할 일을 만들었다.

알음알음 이어진 관계 속에서, 목욕탕을 가고 싶은데 못 가시는 할머니와 목욕탕 같이 가는 일도 하고, 산을 좋아하시는 마을 분께 아이들을 맡기면서, 그를 자연체험 선생님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그거 좋지요' 하면서 나서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야기하다 '니가 함 해봐라'하며 명함을 턱 안겨주면 '못해요'하다가도 척척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토피 걸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아토피 교실을 열어 정보와 치료법을 나누고 함께 공부했다.

이런 좋은 모임이 자생할 수 있으려면 수익이 나야한다는 걸 모두 잘 알기에 발벗고 영업하시는 조합원들이 늘어났다. 조합원은 아니지만 참여하는 아름다운 송정씨들은 자꾸 늘어갔다. 그 분들은 차를 안 타고 걸어다녔다.

▲ 클린광산협동조합에서 일하시는 두 분. 앞에 계신 삼촌은 상임이사를, 뒤에 계신 삼촌은 노조대표를 맡고 있으시다. ⓒ 강봉춘

꿈틀버스 다음 정거장에서 만난 선생님은 내 고향 가래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의 삼촌들이었다. 삼촌들은 미화원이었다. 이야기는 이랬다.

동산미화라는 민간위탁 청소업체에서 일을 하던 삼촌들은 업주가 짠 임금에도 장갑과 피복을 지원하지 않고 대화마저 거부하는 날들이 계속되자 불만이 쌓였다. 특히 지저분한 화장실에 갈 때마다 그 분노가 아로 새겨졌는데 마침내 그 분노는 노조결성을 이루게 했다.

그리고 노조를 꾸린 뒤 민간위탁을 책임지는 행정서를 찾아 시위를 하고 업주에게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시위도 계속했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날 무렵 이런 소식이 알려졌다. 함께하는 시민들이 늘어 그 분들과 거리를 행진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렸다. 그런데 대화창을 열 줄 알았던 업주가 위장폐업을 해버렸다.

그래서 이대로 끝나는가, 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 누군가 협동조합이 대안이라는 말을 들었다. 곧바로 출자금을 댈 조합원들을 모으고 행정 지원책을 알아봤다. 그렇게 마침내 새 청소차를 구입했다. 다른 민간청소업체와 달라져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다들 열심히 일하고 주민들에게도 서비스했다. 더 재밌는 건 주변 청소업체들의 근무환경도 좋은 방향으로 개선됐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나 설득과 대화였다. 다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라 말 꺼낸 사람조차 확신하기가 쉽지 않았다. 2년 계약직이라는 서로의 상황은 새로운 결성을 맺는 것을 크게 방해했다. 그 기나긴 설득과 대화와 고민의 시간 끝에 14명 중 9명이 뭉쳐 결의한 게 지금 클린광산협동조합을 있게 한 첫 디딤발이었다. 삼촌들은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무엇을 해야할지 알려주고, 방법을 찾아주고, 정책을 이어주는 좋은 공무원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 말씀 한마디 한마디, 눈빛 하나하나 내 심장을 울리던 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님. ⓒ 강봉춘

내가 욕심 내서 찍은 사진들은 꼭 흔들린다. 사진 속 선생님은 공익활동지원센터장이셨는데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으로 민(民)과 관(官)을 연결하는 지원센터의 역할에 대해 알려줬다. 눈빛과 목소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어쩜 저리 또렷하고 강하게 말을 할까.

"열무김치 담그는 법, 수채화 그리는 법, 무엇이든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공간들이 필요합니다. 평생학습이죠. 시작된 사업은 이익을 다시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하는 사회적 경제로 자리 잡습니다. 이런 마을공동체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협동입니다."

꿈틀버스를 타고 온 우리들을 환영하는 마무리 인사말에서 선생님께서 어떻게 그리 분명한 철학을 가질 수 있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5월 광주에 잘 오셨습니다. 광주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대단한 상징입니다. 광주시민들은 무력진압을 보며 모두가 무엇을 해야할지 바로 깨달았습니다. 솥을 걸고 밥을 지어 모두 같이 주먹밥을 나누었습니다. 쟤들도 배고플 거라고 진압군까지 먹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싸워 이겼습니다. 우리가 깨달은 정신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항쟁(抗爭) 그리고 대동(大同)."

▲ 우산동 복지네트워크 위원장을 맡고 계시다는 사진 속 어머니는 아주 소소한 것들을 너무도 행복하게 자랑하셨다. ⓒ 강봉춘

잉계마을에 있는 도서관은 우산동 복지네트워크의 거점이었다. 우릴 맞아주신 분들 중 문을 열어주시는 분이 바로 사진 속 분이다. 난 도서관에 온 주민인 줄 알고 인사했는데 위원장님이셨다. 우리 이모를 닮은 분은 위원장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모님은 우산동의 상황과 잉계마을 공동체가 하는 일을 자랑하셨는데, 내용은 이랬다.

"지금 서 있는 이 공간은 치과하시던 선생님께서 사회에 환원한다며 내놓으셨어요. 우린 마을공동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소문나서 재능기부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어요. 공방도 운영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우중충한 골목을 예쁘게 꾸미는 일도 했어요. 또 목도리를 떠서 독거노인과 다문화가정에 나누기도 했고요. 예쁜 문패도 달아줬어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나도 엄청 행복해졌다. 그런데 내가 적은 걸 읽어보니, 가만 이게 돈이 되는 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다문화가정도 많고 저소득층도 많아요. 새터민도 있고요. 일을 하나 하나 시작할 때마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얼마 전에 저도 재봉틀을 하나 사서 현수막 재활용을 해봤어요. 이제 시작이지만 자랑할 게 너무 많아요. "

모든 일의 중요한 첫 시작은 관계라는 말을 다시금 새기게 하는 이모님의 말씀이었다.

▲ 모든 일의 시작은 인사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침내 이 노인복지관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 강봉춘

까까머리에 흰 옷을 입고 검은 안경테를 쓴 선생님은 더불어락 관장님이시다. 정말로 유쾌하시고 말씀도 잘 하셔서 하루종일 강의를 듣고 싶었다. 나는 선생님께 "광주분들은 모두 말씀도 잘 하시고 넉살이 좋으신데 대체 비법이 뭐냐"고 가볍게 물었는데, 선생님은 무거운 질문이라면서 진지하게 답해줬다.

"배우고 밤새 이야기하고 또 배우고 부딪혀보고, 그렇게 끊임없이 사는 거다. 허허. 이게 답이 되었나요?"

병원 로비 같은 노인복지시설의 현관이 싫었고,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보고 싶었던 선생님. 노인을 유치원생 취급하는 게 못마땅했고, 운남권근로자노인복지관 이란 이름은 더 싫어서 직접 바꿔버렸다는 선생님.

"여러분 우리가 곧 들어갈 곳이 여깁니다. 어르신들은 오래 일할 수 없어 교대가 잦다보니 식사 때마다 같은 메뉴도 맛이 다릅니다. 여기 계신 도서관 내부는 어르신 한 분이 1년 걸려 완성하셨습니다. 그 분께서 내가 태어나 가장 잘한 일 같다고 하셨습니다. 고기맛이 어디가 가장 좋은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여기 어르신들이 가장 잘 압니다. 어르신들 스스로 결정하고, 어르신들 스스로 일을 만들고 즐깁니다. 인간답게 사는 게 복지입니다."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꿈틀버스의 물음에 광산구청장이 답하고 있다. ⓒ 강봉춘

노란 옷을 입은 분은 광산구청장이다. 사진 찍을 때면 매번 구석으로 멀찌감치 가시고, 마이크만 쥐고 한 말씀 하라 시키면 손사래를 치다 마지 못해 잡고선 한다는 말씀이 "저 그냥 노래 한가락 할까요?"하셨던 선생님. 눈을 꿈뻑이시면서 간간이 하시던 말씀들이 기억난다.

"통치에서 자치로 바뀌어야지요. 통치 문화는 우리 교실까지 깊이 들어갔습니다. 자기 이름 석자 새기려 건물 세우기 바쁜 정치인들은 모두 자기 혼자 한 것처럼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낸 것입니다. 정의로운 항쟁과 자치 공동체의 미래가 우리가 가야할 분명한 길입니다. 가정부터 교실, 직장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 걸쳐 있는 통치 문화를 바꿉시다. 다시 스스로 자랍시다. 광주의 자치 공동체라는 뿌리가 맺을 열매는 바로 행복입니다."
▲ 사진 찍자고 하면 귀퉁이에 서 계시던 노란옷을 입은 분은 광산구청장이시다. 까까머리의 더불어락 관장님도 반대편 귀퉁이에 보인다. ⓒ 강봉춘

이 사진은 내가 꿈꾸던 미래가 담겨 있는 사진이다. 더불어락 관장님과 광산구청장도 같이 하라고 사회자가 시키자 쭈삣쭈삣 겸연쩍게 올라선 두 분에게, 무대 앞에서 지휘하시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어, 느그들은 저쪽 구석으로 가라잉. 너는 저기 너는 여기..."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인사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나누고, 열심히 찾아가야겠다. 꿈틀버스는 나를 제대로 꿈틀거리게 했다.

멀리, 아주 먼 여행을 꿈꾸는 세상의 모든 친구들아, 바깥의 새로움을 찾아 떠나봤으면 이제 우리 안에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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