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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

"내부고발 하겠다면 꼭 집안 형편 물어봅니다"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④] 양심 일깨운 내부고발자... 생계비 지원 절실

15.05.21 10:21 | 강민수 쪽지보내기|유성호쪽지보내기

여기 회사를, 조직을, 동료를 '배신한' 사람들이 있다. 조직의 부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된 사람들, 바로 내부고발자다. 그들의 용기는 현실을 바로 잡았지만 해고와 전출, 따돌림을 당했다. 무엇이 그들을 고발하게 만들었을까? 관심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말]
▲ 이지문 한국공익신고지원센터 소장이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내부고발자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을 눈을 뜨게 해 주는 사람이다"며 "내부고발자가 혼자 목소리를 냈다면 외롭지 않기 위해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유성호

'진흙탕에 빠지는 심청.'

이지문(47) 한국공익신고지원센터 소장은 내부고발자를 이렇게 비유했다. 심청이 아버지 심 봉사의 개안(開眼)을 위해 몸을 던졌듯 내부고발자는 국민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해서 못 보던 사실을 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장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은 연꽃을 타고 떠오른 반면, 내부고발자를 기다리는 것은 질척거리는 진흙탕 같은 현실뿐이다.

내부고발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일임을 지난 세 사람의 이야기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부고발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내부고발자의 고발 뒤 삶도 진흙탕이 아니라 연꽃일 수는 없는 걸까.

"전략을 통한 치밀한 계획, 이성적인 고발"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이 소장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이 소장은 1992년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고발한 이후 내부고발 운동을 해왔다. 이 소장에게 '지금 누군가 회사의 세금탈루를 고발하려고 상담하러 온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이 소장은 "쉽게 내부고발을 권할 수 없다"라고 운을 뗐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 소장은 "전문가와 상담을 거쳐 전략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라면서 "특히 해고를 당하거나 소송에서 진 뒤에 찾아와 어떤 수를 쓸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감정적인 고발이 아니라 이성적인 고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1992년 군부재자투표 부정 고발, 이지문 소장
이지문 소장은 육군 백마부대 중위로 근무하던 1992년 기자회견을 열어 군 부재자투표 과정에서 공개·대리투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14대 총선을 앞둔 때였다. 또한 군 내부에서 여당을 지지하라는 취지의 정신교육도 실시됐다고 증언했다.

군은 이를 전면 부인했으며 이 소장을 구속한 뒤 이등병으로 강등시켰다. 그러나 현역 군인들의 부정투표 증언이 이어졌고, 결국 군은 폭로가 사실임을 인정했다.

폭로로 인해 선거법이 바뀌었다. 부재자투표는 영외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 되었다. 그 결과 1992년 12월 대선에서는 대부분의 장병들이 영외에서 투표를 할 수 있었다. 군 장병의 영외투표 원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일로 이 소장은 구속됐으며 이등병으로 제대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이후 내부고발 분야에 시민사회 운동을 해왔다. 최근에는 같은 내부고발자들과 함께 <내부고발자, 그 의로운 도전>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업무에 성실해야 하고 동료와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회사가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내부고발자를 해고하려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시간에 내부 고발을 준비하거나 시민단체를 찾아간다면 업무 태만, 해사 행위로 징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고발이 끝이 아니라 그 이후를 길게 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내부고발 문제가 한두 달 안에 끝나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소송에 휘말리더라도, 해고당하더라도 이 일에만 매달리면 안 됩니다.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생활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이 소장은 "대책 없이 싸워서는 안 된다"라면서 "인생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집안 경제 상황이 어떤지 꼭 물어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 온 적이 있는 한 재무담당 과장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과장은 회사가 법인세를 30억~40억 원씩 탈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에 신고를 해 보상금을 받아봤자 잘 받으면 1억 원, 적으면 3000만 원입니다. 상담자 연봉이 7000만 원인데, 고발하면 일자리 잃거든요. 고발을 권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결국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양심선언'... 2000년대 이후 다양해진 내부고발

우리 사회의 내부고발은 '양심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특히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내부고발이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이문옥 감사원 감사관의 감사 비리 내부고발을 시작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공익제보가 이어졌다. 같은 해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현 기무사) 불법사찰을 폭로했다. 1992년에는 이 소장의 군부재자 투표 부정 폭로가 있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내부고발이 이어졌다. 2001년 부패방지법이 제정되면서 정부와 공공기관의 내부고발도 끊이지 않았다. 주한미군의 포름알데히드 무단방류, 인천공항 부실시공, 사학재단의 비리, 군부대 내 비리, 대한적십자사 감염 혈액 유통 등 내부고발 분야와 내용도 다양했다.

내부고발자의 연령도 점차 젊어졌다. 20, 30대 젊은 층에서 내부고발자가 늘어났다. 그러나 이 소장은 "내부고발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양면적입니다. 이성적으로는 내부고발 행위를 격려하고 칭찬하지만, 한편에서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있어요. 주변 사람들은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왜 그래?', '보상금 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잘 드러났다. 주인공 장그래는 기지를 발휘해 박종식 과장의 오랜 비리를 고발한다. 하지만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은 회사 안에서 불편한 시선을 받게 된다. 회사 내부망에 "왜 조용히 처리하지 못했느냐" "동료를 버리고 이익을 취하느냐" "너희는 깨끗한가" 등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보호는 미비, 보상은 쥐꼬리, 법 개정은 거북이걸음

▲ 이지문 한국공익신고지원센터 소장이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 법으로 의사자로 지정하고 있다. 내부고발자도 신고로 인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의인이다"며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이같은 이중적인 현실과 함께 제도 지원도 미비하다. 현행법은 그나마 신고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적용 대상이 제한적이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 181개 법률 위반행위에 대해서만 공익신고로 간주해 보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립학교의 비리와 같은 181개 법률 이외의 사안을 신고하면 공익신고자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특히 부패방지법은 부패행위를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된 것으로 포괄해 규정하고 있다.

현재 19대 국회에는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법 개정안이 21개나 상정돼 있다. 개정안은 공익제보의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변호사 대리를 통한 익명 신고를 가능하게 하며, 공익제보자 보호와 불이익 조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고발자 보상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권익원회에 따르면 연평균 700여 명이 공익제보에 나서고 있지만 2015년 공익침해행위와 부패행위 신고자에 대한 보상금 총액은 18억2000만 원에 불과했다. 신고자 보상 최고액은 7800만 원이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상금이 수억 원에 달한다. 이 소장도 보상금액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보험사에서 나이와 연봉을 고려해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나이와 연봉, 내부고발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상금을 책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같은 사회적인 요구 때문일까. 정부는 지난 13일 '공공부문 부패신고 활성화 및 신고자 보호·보상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해 부패신고자 포상금을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인상하고 내부고발자 누설에는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서는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양심을 일깨운 내부고발자... 생계비 지원 절실

정부 차원의 보상 외에도 민간 차원의 내부고발자 지원 단체가 있다. 2011년에 설립된 호루라기재단(이영기 이사장)이 바로 그것. 재단 이름에는 고발을 통해 사회의 양심을 일깨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재단은 내부고발자 상담 및 지원 활동과 함께 해마다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선정해 시상한다. 또 '물푸레기금'을 조성해 내부고발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재단이 설립되는 데는 한 개인의 기부가 큰 역할을 했다. 바로 사회적 기업을 실천하던 박선오(57) 고려정보통신 대표다. 박 대표는 지난 2006년부터 오랜 지인인 이영기 이사장, 엄주웅 이사, 오상석 이사와 함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다. 재단 설립을 위해 자금을 모으기 시작해 5년 넘게 모은 돈이 7억7000만 원. 이 돈은 재단 설립의 마중물이 됐다.

박 대표는 설립 이후로도 꾸준한 지원을 해 총 10억 원가량을 기부했다. 설립 시 재단 이사직을 맡았으나 지난 2013년 2월에 직을 내려놓고 회사 일에 전념하고 있다. 지난 13일 만난 박 대표는 "제 역할은 재단에 필요한 마중물을 붓는 것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라면서 "저 말고도 아름다운 분들이 나타나 재단을 이끌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부고발자에 대해 사회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앞으로 더 나은 사회가 되는 과정에서 내부 고발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욕구와 함께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필수적입니다. 관심은 물론 이들을 향한 경제적 지원을 통해서 내부고발자들이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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