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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이 사람, 10만인

그의 자기소개란이 특별한 까닭
[이 사람, 10만인] 화천군 공무원 신광태 회원

15.05.19 11:12 | 박형숙 기자쪽지보내기

▲ 무뚝뚝한 아들이 선물한 어버이날 카네이션 선물을 가슴에 달고 인증샷을 찍었다. ⓒ 신광태

신광태(55, 남) 회원은 2011년 3월부터 매월 1만 원씩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고 있다. 그 즈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제까지 300여 건의 기사를 썼다. 주로 그가 살고, 근무(공무원)하는 화천군에 관한 이야기. '공무원이 쓰는 지역 이야기'라면 왠지 뻔할 것 같지만 그의 기사는 그런 편견을 비껴간다.

'민통선 이북지역', '군인이 많은 곳'이란 화천군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데 그의 공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오마이뉴스> 지면에 소개된 그의 산천어 축제 기사는 포털 등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이미 친숙한 이름이지만, 신 회원을 10만인클럽 인터뷰로 소개하기로 한 데는 두 가지 계기가 있다.

첫째, 5월 9일 신 회원이 쓴 '군대 고참에게 남자를 소개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읽는 이를 혼자 키득거리게 만들 정도로 재치 만발한 글이다. 지역기사 외에도, '신광태'가 어떤 사람인지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그의 사는이야기에 독자들의 호응이 컸다.

명절날 아내와 겪은 불화(?), 어버이날 받은 아들의 선물(아내나 딸과 달리 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아빠가 기사로 쓰는 걸 싫어해 자제하는 편이라고 한다) 등 그의 사람 이야기에는 '유머'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글쓰기 교육을 따로 받았냐는 질문에 그는 "10년 이상 써온 일기가 전부"라고 말한다. 신 회원의 인생은 '독학'으로 일궈졌다. 시민기자로 가입한 뒤, 처음에는 눈팅(독자)만 하다가 기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반응은 없었다.

"6개월 동안 내 기사가 주요기사로 채택이 안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깨쳤죠. 이렇게 보도자료 쓰기 식으로 기사를 전송해서는 안 되겠다고."

스님이 되려고 한 적도 있다. 초등학교 때 그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소풍. 소풍날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해야 하는 상황이 그에겐 지옥 그 자체였단다. 때문에 소풍 전날이면 내일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할 정도였다고. 가난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이 불가능했던 그는 이후 검정고시로 정규교육 과정을 패스했다.

군대라는 단체 생활도 대인기피가 심했던 그에겐 고역. 때문에 제대 후 오로지 '혼자서 생활이 가능한 직업'이라는 이유로 출가를 결심하고는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을 깡그리 외웠다. 하지만 "다 버리고 오라"는 말에 그만 포기. 종래 그가 이른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면사무소에서 혼자 열심히 일하던 직원의 모습이 "나에겐 적합한 직업"이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독학으로 완성된 인생... "하고 싶은 일 하니 미칠 수밖에"

허나 운명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공무원이 되어서도 '홍보 담당'이라는, 남에게 나를 알려야 하는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피해갈 수 없으면 정면 돌파하라? 바닥부터 출발한 그의 눈물겨운 노력은 종래에 그를 화천군 홍보의 달인으로 만들었고, 지금은 지역전반의 기획을 도맡아 하는 '리베로'의 위치에 오르게 했다.

뿐만 아니다. 문광부의 정책기자단 선발에도 응모해 합격해 활동 중이고, 또 KBS 춘천방송 통신원으로도 일한다. 주말이면 화천을 찾는 외지인들의 관광버스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지역해설사로도 나선다.

지자체, 기업에서 강의 요청도 빈번한데, 교수나 전문가의 강의보다 실전 중심인 그의 강의를 공무원이나 기업 홍보실에선 선호한다. "스스로의 발전 기회를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라며 재능기부(무료)도 마다 않는다. 남 앞에 나서는 게 지옥이었던 사람이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이 주특기가 된 거다.

신 회원은 자신을 "미쳤다"고 표현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이란다. 평일·주말의 구분이 따로 없는 그를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특히 아내의 입장에선 영 마이너스 아닐까 싶은데….

"젊은 시절엔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파트너다. 주말, 휴일에 사람 만나고 지역 발굴하러 나갈 때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그럼 아내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얘기를 해준다. 기획 방향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고민을 나누게 되었다. 50이 넘으니 비로소 아내가 참 중요한 사람이구나 알게 되었다."

신 회원을 인터뷰 하고 싶었던 두 번째 이유. <오마이뉴스>의 모든 기사 말미에는 기자 소개 박스가 있는데, 신 회원의 경우 이런 한 줄이 담겨 있다.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으로 오십시오~"

물었다. 자신을 소개하고 싶은 말이 많을텐데 왜 하필 10만인클럽 홍보를 했냐고. "아부가 아니"라며 진지하게 답했다.

"<오마이뉴스>가 참 정직한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언론이 더 발전하면 좋겠는데 내가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어 고맙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가기 위해선 시민들의 작은 노력들이 모아져야 한다. 그 구심적 역할을 하는게 10만인클럽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가입하지 않으신 독자들에게 참여를 권하고 싶다."

끝으로 그는 '부탁'이라며 말했다. "제 계좌 잔고가 혹시 부족해질 수 있는데, 그러면 꼭 연락 달라. 다시 채워놓겠다"는 내용이다. 아이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기분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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