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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가족 신문 만들기

'초딩' 1학년 편집장 보좌하는 직업기자
[10만인리포트-가족신문만들기⑤] 좌충우돌 다섯 단계

15.05.20 14:01 | 김병기 기자쪽지보내기

▲ 푸짐한 상에 항상 등장하는 막걸리. 한 잔 걸치면 기사쓰기가 고역이다. ⓒ 김병기

"아이들이 여행가서 글 쓰는 걸 싫어하지 않나요?"

가족신문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한 아주머니가 던진 질문이다. 

"혹시 아이들이 일기장 앞에서 몸을 비틀지 않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이들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막상 부딪쳐보니 예상과는 달랐다. 여행지에서 나는 가끔 초딩 편집장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아빠, 정말 이럴 거예요!"

1시간 만에 기사 한두 개를 뚝딱 해치운 녀석들이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누워있는 아빠를 채근하는 소리였다. 왜 이러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녀석들에게 글쓰기는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놀이였다. 게임의 법칙도 공정했다. 맞춤법이나 문법, 즉 글의 '질'이 아니라 기사의 '수'가 중요했다. 1일 최소 한 꼭지 전략.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더 있겠지만 요약하면 그 비결은 이랬다.          

[1단계 : 선택과 집중] 3박 4일, 반경 30km

▲ 팜플렛 지도를 이용한 여행코스 안내. ⓒ 김병기

아빠 휴가기간은 1주일 정도였다. 여행을 마친 뒤 개운한 몸으로 출근하려면 취재여행은 3박4일이 적당하다. 어떤 때는 2박3일짜리였지만, 그러면 가족신문 두께가 빈약해진다. 짧은 일정에 쫓기면서 여러 곳을 다니면 취재 내용도 부실하다. 여행이 길어지면 신문 기사는 풍성하겠지만 며칠 동안의 여행 일정을 책으로 엮을 게 아니라면 적당한 선에서 그쳐야 한다. 아니면, 여행을 마친 뒤에 우리 가족의 생계비가 줄어든다.

가족 여행 코스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한 지역을 집중 공략했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취재 범위는 반경 30km 정도로 한정했다. 여행지에서 이동하는 거리가 길면, 유일하게 운전면허가 있는 '운짱' 엄마는 매일 파김치가 된다. 운전 노동에 비례해서 잔소리도 는다. 아이들의 투정까지 겹쳐 짜증이 난 엄마 기자가 분노하면 차 안의 공기가 싸늘해진다.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여행지에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유~ 집에서 발 뻗고 쉴 것을……. 도대체 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야?"  

이뿐만이 아니다. 한꺼번에 넓은 곳을 둘러보려고 욕심을 내면 이동거리만큼 취재시간을 날린다. 여행을 온 게 아니라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것 같은 상황이 전개된다. 피곤에 지친 아이들은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는커녕 뒷좌석을 침대칸으로 쓴다. 자동차 연료 게이지에 빨간불이 자주 깜박거린다. 이래서 선택과 집중 전략은 여러모로 유용했다.    

[2단계 : 일필휘지] 매일 1, 2꼭지씩

▲ 작은 딸이 그린 황당한 일기. ⓒ 김병기

취재할 때 우리 식구가 지키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팸플릿은 꼭 챙겼다.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고 나중에 신문을 근사하게 꾸밀 수 있다. 손글씨 신문에 사진이나 그림을 오려서 붙이면 디자인이 산다. 알찬 정보를 통째로 담을 수 있다. 특히 지도를 이용해 여행 일정을 알기 쉽게 보여줄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기록한 양과 기사 품질은 정비례한다. 손바닥만 취재수첩과 사진기는 몸에 달고 다녔다. 물론 아이들에게 모든 걸 기록하라고 하면 금방 질리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다음 일정 때문에 마음이 급할 때에는 수첩에 기록해야 할 내용을 요약해서 불러주기도 했다. 취재수첩이 아니라 핸드폰 사진기로 복사하는 것도 눈감았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을 그 날 '날 것'으로 보도해야 싱싱한 회 맛을 즐길 수 있다. 날마다 하루를 끝낸 뒤에 식당이나 텐트, 민박지에서 한 기자가 한두 꼭지 정도 기사를 썼다. 식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때론 배를 깔고 엎드려서 기사를 쓰는 모습에 감동한 아주머니들로부터 서비스 세례를 받기도 했다.

"어이쿠 이놈들, 참 기특하데이…….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우리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보장했다.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린 뒤에 단숨에 내려쓰는 일필휘지 기사쓰기 작법을 택했다. 대단한 무공을 연마한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 A4 용지도 아낄 수 있고, 글 쓸 시간이 많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기사쓰기에 정신이 없었다. 땀 냄새 풍기는 옷가지도 정리하고 텐트 안에 이불도 깔고……. 아이들이 쓴 기사에 빨간 펜을 그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느낌 대로 연필과 볼펜을 휘갈겼다. 과대포장하자면 기행문, 답사기, 토막 인터뷰, 르포, 사진 기사 등 형식도 다양했다. 심지어 산뜻한 디자인을 넣어 그림뉴스를 만들 거나 감정이 솟구치면 감히 시인 흉내도 냈다. 재미난 뉴스, 맛있는 뉴스, 기사 같지 않은 기사를 1인칭 시점으로 솔직하게 적었다.   

[3단계 : 1인2역] 취재와 편집 사이

▲ 큰 딸의 일러스트. 글로 설명하는 것보다 명쾌하다. ⓒ 김병기

그 다음이 편집 단계다. 왜 내 기사와 제목을 맘대로 자르고 고쳐? 그럼 편집부는 오타만 고쳐주면서 취재 기자의 종노릇을 해야 하냐? 언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취재원을 먼저 생각하는 취재기자와 독자를 먼저 생각하는 편집기자들 사이의 충돌이다. 두 직종은 기사라는 완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업 관계이자 생산적 긴장관계이기에 어쩔 수 없다. 가급적 서로를 존중하는 수밖에.

그런데 우리 가족 편집국엔 갈등이 없었다. 여행지에서 취재를 마친 기자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편집기자로 옷을 갈아입었다. 수북이 쌓인 A4 용지를 정신없이 포장했다. 가족신문 전체 제목을 잡고, 따 붙이고 오려붙이고 디자인하고 색칠했다. 여행 때 미처 쓰지 못한 기사를 잡고 씨름하기도 했다. 아주 드물지만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글은 고쳤다. 사실 형편없는 기사가 더 많았지만…….

여행지에서 돌아와서 처음 맞는 주말은 정신이 없었다. 내 기자생활 초년병이었던 20여 년 전 신문사 편집국 마감 시간과 비슷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너무 달랐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족 소통형 손글씨 신문이 탄생했다. 아이들의 글쓰기와 편집 능력도 조금씩 좋아졌다. 적어도 아이들이 글쓰기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큰 성과다.

[4단계 : 덤] 특권 또는 성공 보수?

▲ 숙제로 낸 가족신문 하단에 담임선생님이 '검' 도장을 찍었다. ⓒ 김병기

"아빠! 얘들이 그러는데, 내께 제일 재미있대요. 펼쳐보고 난리라니까."

가족신문 2호를 만들고 개학한 뒤에 당시 편집장이었던 큰 녀석이 현관문을 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들이 힘든 여행길에서 기사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까닭은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놀이이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도와주는 숙제였기 때문이다. 가족신문은 학급게시판 단골 전시 품목이었다. 1주일 정도 지난 뒤에 다른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가족신문이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신문 초기 4년 동안 편집장이었던 큰 딸은 학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인 2009년 겨울(가족신문 7호)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당돌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편집장을 할게요."

언니는 순순히 편집장 자리를 내놨다. 나는 이때부터 1년짜리 편집장을 보좌하는 한 명의 기자였다. 신임 편집장은 그때부터 가족신문을 방학 과제물로 가져가는 특권을 누렸다. 

[5단계 : 미래 가치] 가보 만들기

▲ 큰 딸이 쓴 가족신문 그림기사 ⓒ 김병기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쭐거릴 수 있는 것은 자투리 수입이다. 이걸 모아두면? 사진과 이야기,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어린 시절 기록이자 우리 가족이 함께한 '시간의 두께'이다. 13호까지 총 350여 쪽, 그러니까 A4용지로 따지면 사진을 포함해서 550여 꼭지의 기사를 썼다. 

해를 거듭할수록 한 호, 한 호 쌓이는 여행 기록, 그동안 우리 가족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보를 공동 제작했다. 하루 지나면 깔개로 쓰거나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리는 신문이 아니라 적어도 20~30년 동안은 두고두고 펼쳐볼 것 아닌가. 가보를 만드는 데 투여되는 시간은 1년 365일 동안 휴가기간 일부면 족하다.

남해의 한 폐교를 예술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한 곳을 둘러보다가 운동장 구석 벤치에 누군가 낙서한 글을 보고 기사화한 적이 있다.

"머리 좋은 놈은 질긴 놈을 이기지 못하고, 질긴 놈은 즐기는 놈을 이기지 못한다."

공자도 <논어>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한 아주머니가 우려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평소에 글쓰기는 싫어했지만 가족신문 놀이는 즐겼다. 머리가 좋지도, 끈기가 있지도 않았지만 때론 즐길 줄 아는 녀석들이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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