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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

"'센 놈' 삼성과의 싸움
내 모든 잠재력이 폭발했다"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3-②] 내부 고발자에서 변호사가 된 이은의씨

15.05.13 13:20 | 박소희 쪽지보내기|유성호쪽지보내기

여기 회사를, 조직을, 동료를 '배신한' 사람들이 있다. 조직의 부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된 사람들, 바로 내부고발자다. 그들의 용기는 현실을 바로 잡았지만 해고와 전출, 따돌림을 당했다. 무엇이 그들을 고발하게 만들었을까? 관심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말]
▲ 이은의 변호사가 서초구에 위치한 자신의 법률사무소 사무실에 환한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는 삼성과의 싸움에서 승패보다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돌보는 일이 더 중요했다고 밝혔다. 무엇을 위한 투쟁인지를 잊지 않았기 때문일까. 지금의 그는 더이상 삼성전기 이은의가 아니지만 홀로 단단히 이 땅에 발 딛고 선 이은의로서 잘 살고 있다. ⓒ 유성호

"나 진짜 간다, 잘 있어!"

2010년 10월 31일, 은의씨는 삼성을 떠났다. 오래 살던 집을 나오는 기분이었다.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 현관을 나서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에 박혔다. 늘 밥 먹던 구내식당, 좋아했던 나무들… 버스를 타려고 뛰다가 넘어진 자신을 잡아준 사람에게 너무 창피해서 고맙다는 말도 못한 채 사무실까지 줄행랑쳤던 기억 등 지난 12년 9개월의 삶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던 싸움에 이미 종지부를 찍은 뒤였다. 은의씨는 회사를 상대로 한 법정 다툼에서 모두 이겼다. 삼성전기는 성희롱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인권위의 차별시정권고는 부당하다며 취소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 은의씨가 제기한 손해배상금청구소송 결과 역시 그의 승소였다.

과정은 물론 순탄치 않았다. 그의 인사고과는 항상 C 마이너스(-)였다. 은의씨가 맡은 결연후원사업의 성과가 크게 높아졌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만년 '이 대리'였다. 왕따를 당하는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회사가 직장내 성희롱 고지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했다며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 탓에 기각 당했다. 그 사이 아버지도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내가 싸우지 않고 침묵했으면 진급이라도 할 텐데….'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후회와 외로움이 불현듯 찾아오곤 했다. 그러나 늘 결론은 '이 싸움을 안 할 수 없어'였다. 은의씨는 자신에게 이 후회와 괴로움을 안긴 상황 자체가 잘못됐으니 답은 열심히 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옳았다.

싸움의 법칙

그의 싸움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한 인터뷰에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첫째, 은의씨는 안에서 버텼다. 그는 '범죄 현장을 떠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제가 나가면, 회사 안에 남은 사람은 무조건 사측이 돼요. 10~20년 다녔어도 일단 (회사를) 나가면 사람들이랑 밥도 잘 안 먹고, 경조사도 챙기지 않잖아요? 정말 친한 사람들만 남는. 그런데 제가 회사랑 싸우는데 나간다면, 남은 사람들이 제 편을 들어서 싸워줄 이유가 없죠."

'내가 왜 나가야 해'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월급이 나온다는 점이 중요했다. 싸움에는 돈이 필요하다. 은의씨가 민사소송을 시작하는 데에만 든 비용도 1000만 원가량이었다. 그는 "회사를 그만 두면 1년에 1000만 원도 못 벌 수 있지 않느냐"며 "회사에서 받는 돈으로 회사와 소송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또 다른 특징은, 그가 '이기적'이었다는 점이다. 은의씨는 싸움의 승패보다 자신이 망가지지 않도록 잘 다듬는 일이 중요했다. 평범한 행복을 포기하기가, 분노를 담고 살아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는 더 열심히 싸웠다.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의씨는 "자신이 망가질 것 같으면 싸우지 말아야 한다"며 "그건 이미 피해가 큰 상황에서 또 피해를 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삼성과 싸우느라 삶이 피폐해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삼성이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략)… 나의 싸움은 이런 소중한 기억들을 변질시키려는 것들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 <삼성을 살다> 본문 273쪽 중에서

삼성이란 '센 놈'과 싸운 것 역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은의씨는 "저는 고질라와 싸우는 격이었다"며 "큰 활을 써보고, 때론 거기에 불도 붙여보고, 수류탄도 던져보면서 더 머리를 많이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잠재력이 폭발했다"며 "삼성이 센 놈이어서, 정식으로 싸워서 고마웠다, 삼성에서 싸울 수 있다면 다른 곳에서도 싸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부고발의 그림자

▲ 이은의 변호사가 법률사무소에서 자신을 찾아온 의뢰인의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그가 맡은 사건 중에는 회사의 비리를 문제 제기했다가 왕따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사례, 상사의 성희롱을 회사에 알렸다가 징계를 당한 사례 등 자신의 경험과 닮아있는 것들이 많다. 본인의 경험 덕에 의뢰인들을 더욱 폭 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그는 이 작업을 두고 의뢰인들과 함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 유성호

삼성을 그만 둔 이듬해, 은의씨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진학했다. <오마이뉴스>가 앞서 만난 '윤 일병 사건' 제보자 김재량씨는 지금 변호사를 꿈꾸고 있다. 포스코의 내부고발자 정진극씨는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보좌관이 됐다. 내부고발을 하고, 싸우다 보면 자연스레 법에 관심이 생기는 걸까? 은의씨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을 겪다 보면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법이죠. 그게 부실한 것도 맞아요. '법보다 주먹'이란 말이 여전히 존재하잖아요? (웃음) 그래도 결국 약자들이 믿을 수 있는 게 법이니까…."

하지만 내부고발의 경험은 로스쿨 진학 동기에 그쳤을 뿐이었다. 은의씨는 "그 이력은 로스쿨 진학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로스쿨을 준비할 때,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조언은 '삼성과 싸운 경험을 감추라'였다. 로스쿨 교수도 보수적인 편이라 자신 같은 사람을 입학시키면 학교가 시끄러워진다고 우려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은의씨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학교 사람들은 2011년 가을, 그의 책이 나온 뒤에야 은의씨의 싸움을 알게 됐다.

그래도 은의씨는 내부고발 자체가 승리로 끝났고, 그 경험이 또 다른 길을 열어준 '성공사례'다. 내부고발은 정의롭고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많은 내부고발자는 그 대가로 직장을 잃고 삶이 흔들리게 됐다. 은의씨는 "한국사회는 내부고발의 문제를 너무 개인의 역량으로만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는 내부고발자의 지위를 보장해준다고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믿나요? 최소한 국가기관이 몇 년 동안은 내부고발자가 조직 안에서 평균적인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지 확인하는 등으로 지원프로그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조직에 남을 수 있고, 내부고발이 활발해져요. 국가와 사회를 신뢰할 수 있어야 내부고발을 하죠. 우린 믿지 못하는데도 내부고발을 하라고, 그게 정의라고 하잖아요."

사실 사람이 조직과 싸우는 일은 매우 드물다. 누구나 겪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싸움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와도 그냥 넘어가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은의씨는 "제가 굉장히 힘들었던 부분이다"고 말했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사람들은 크게 네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 가해자 ▲ 피해를 당하고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 가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들, 특히 저항하는 피해자들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 ▲ 피해자들을 응원하는 사람들 등이다. 이 가운데 절대다수는 2·3번 그룹이다. 은의씨는 "갑은 돌을 맞아도 다치지 않지만, 을은 돌을 맞으면 죽는다"며 3번 그룹 때문에 피해자들이 점점 입을 닫게 된다고 했다.

은의씨는 "그래서 내부고발을 두고 사회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적확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내부고발자가 안에서 버티는 방법을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늘 이은의입니다"

▲ 이은의 변호사가 법률사무소에서 의뢰인들의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유성호

지난해 변호사가 된 은의씨는 의뢰인들과 길을 함께 찾고 있다. 그가 맡은 사건 중에는 회사의 비리 문제를 제기했다가 왕따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 사례, 상사의 성희롱을 회사에 알렸다가 징계를 당한 사례 등 자신의 경험과 닮아있는 것들이 많다.

은의씨는 "제가 직접 싸운 경험이 있으니까 '법리가 이렇다' 하고 끝나지 않고 '지금은 이렇지만 저렇게 해봐라' 등등을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의뢰인이 상처받은 이야기를 꺼내면 '저도 그랬다'고 말할 수 있다"며 "제 경험이 그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더라"고 덧붙였다.

"저는 사실 그 싸움을 해서 크게 잃은 것들이 없어요. 왜 싸웠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는데, 그 질문은 미혼인 제게 '왜 결혼 안 하느냐'고 묻는 일이랑 같아요. (결혼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거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싸우지 않았을 때 '왜 안 싸워?'라고 묻는 게 맞죠. 공을 누르면 다시 튀어 오르는 것처럼 반응하는 일이 당연했어요."

그는 다른 이들이 '이은의란 사람이 있었지'하고 끝나지 않고, 이은의를 꾸준히 찾기를 원한다.

"삼성전기 이은의가 아닐 뿐, 저는 이은의잖아요. 회사 그만둘 때 내부게시판에 작별인사를 썼어요. 책 뒤에도 실렸는데, 그 글에 '저를 기억해주는 분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살겠다'고 했죠. 삼성 생활이 끝난다고 끝이 아니라, 저는 이은의로 계속 살아가니까요. 늘 현재형인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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