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목탁으로 독재자 머리통 내리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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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

회사의 치졸한 보복 "꽃무늬 청바지 입은 적 있죠?"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3-①]상사 성희롱에 왕따... 그럼에도 싸우다

15.05.06 13:52 | 박소희 기자쪽지보내기

여기 회사를, 조직을, 동료를 '배신한' 사람들이 있다. 조직의 부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배신자가 된 사람들, 바로 내부고발자다. 그들의 용기는 현실을 바로 잡았지만 해고와 전출, 따돌림을 당했다. 무엇이 그들을 고발하게 만들었을까? 관심이 사라진 지금,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 너무 외롭지는 않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말]
12년 9개월 동안 '삼성을 살았다'. 마지막 5년은 '왕따'로 살았다. 상사의 성희롱을 두고 입을 열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은의(42)씨는 숨지 않았다. 견뎠다. 삼성을 살며 싸웠다. 2010년 10월 31일, 그는 마침내 모든 싸움에서 이긴 다음 삼성을 나올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그가 오롯이 지켜낸 삶을 인터뷰와 저서,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기록해봤다. 이은의씨의 이야기는 2005년 6월 17일부터 시작한다.

마침내 찾아온 디데이

▲ 사진은 지난 2012년 12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홍보관 딜라이트. ⓒ 연합뉴스

'안 들으면… 나와서 그 다음에 생각하자.'

걱정보다는 '에이 모르겠다'란 심정으로 은의씨는 영업인사부장 앞에 섰다. 인사부장은 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 출장은 잘 다녀왔느냐,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느냐"는 말부터 던졌다. 삼성전기가 한창 수익이 저조하여 사양성 제품들을 분사하던 때였다.

구조조정 전담(TF)팀 대리였던 은의씨는 분사회사로 옮길지, 아니면 삼성전기에 남을지 선택해야 했다. 면담은 회사가 그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직장 내 성희롱을 고지하려고 합니다."

인사부장은 순간 얼어붙은 듯했다.

"회사가 제대로 조치를 안 하면 저는 법적 대응 하겠습니다."

은의씨가 말을 잇자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 인사부장은 "내가 조사를 해볼 테니… 이 대리는 일단 돌아가요"라며 약 10분 만에 면담을 끝냈다. 은의씨는 황망했다. 오랫동안 기다린 '디데이(D-day)'였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의 손버릇

▲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된 지 15년째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 내 성희롱’에 시달린다.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 상담기록을 살펴보면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가 오히려 해고나 전직 등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사진은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만들어 배포한 성희롱 예방 교육용 동영상의 한 장면. ⓒ 고용노동부

1년여가량 함께 일한 P팀장은 '손버릇'이 좋지 않았다. 전자영업1팀 시절, P팀장은 언젠가부터 은의씨의 몸을 건드렸다. 걸핏하면 브래지어 끈 위로 손바닥을 얹어놓거나 뒤에서 목이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가까운 선배들은 은의씨의 고충을 알겠다면서도 "자꾸 그러면 '대졸 여사원은 까칠해서 못 받는다'는 말이 나온다"며 참으라고 했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불쾌감과 씁쓸함, 분노 등이 뒤죽박죽 섞인 마음을 달래며 은의씨는 1년 반을 보냈다.

2005년 1월, 회사는 P팀장과 은의씨를 함께 구조조정 업무 전담(TF)팀으로 보냈다. 좁은 공간 탓에 직원들끼리 자리가 가까운데도 P팀장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갔고, 두 사람은 그해 5월 말 Y상무와 함께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6월 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 삼성전자 사업장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P팀장은 은의씨를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얇은 시폰 소재 스커트를 입고 있던 은의씨의 엉덩이를 툭 치더니 귓가에 바짝 대고 속삭였다.

"상무님, 잘 모셔."

은의씨는 수치심으로 귓불이 벌게지는 것을 느꼈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P팀장을 태운 자동차는 이미 출발한 뒤였다. 다음날 두 사람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했다. 지역법인 관계자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을 때, 팀장은 은의씨를 로비에 세웠다. 술자리에서 블루스 제안을 거절당한 그의 훈계는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여사원으로서 해줘야 하는 의전이 부족한 거 아나? 아침에 상냥하게 모닝콜도 해주고, 술자리 분위기도 좀 잘 맞추고 해야지 말이야…."

이날 밤, 방으로 돌아와 멍하니 TV를 보던 은의씨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엿 같아…."

성희롱 피해 알리면 조직부적응?

한국에 돌아온 은의씨는 자연스레 찾아올 인사부장 면담일을 기다렸다. 그날, 자신이 정한 '오늘의 할 일'은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 은의씨는 말했고, "조사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날, 평소처럼 일과를 마친 은의씨는 동료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은의야 잘했어, 수고했어"라며.

일주일이 지났다. P팀장의 행동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은의씨와 가까운 동료가 아닌 다른 직원들도 비슷했다. 조사가 이뤄진 것인지 아닌지 통 알지 못하는 채로 8월이 왔다. 그 사이 TF팀은 해체됐고, P팀장은 예정대로 명예퇴직한 뒤 분사회사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는 은의씨에게 당분간 인력개발원으로 교육을 다니라고 했다가 영업인사팀 사무실 한쪽으로 책상을 옮겨줬다.

딱히 주어진 업무는 없었다. 영업인사팀 부장은 은의씨를 때론 어르거나 찔러보고, 달래거나 그냥 기다리게 뒀다. 그러고선 한 마디 상의 없이 낮은 고과를 줬다. 은의씨가 항의하자 부장은 엉뚱하게 대꾸했다.

"상사의 성희롱을 회사에 고지하는 것은 조직 부적응이라고."

차일피일 부서 발령을 미루던 회사는 '그날' 이후 7개월 만에야 은의씨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내줬다. 2006년 2월, 은의씨는 삼성전기 주가 등을 관리하는 IR부서로 출근했다.

이때 외국에 나가 있던 K부서장은 부서원 전체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 내용은 부서장이 명령을 따르지 않은 직원을 직권으로 해고하는 일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소개한 기사가 전부였다. 첫 면담날, K부서장은 은의씨에게 "네가 부서장 등에 칼을 꽂았다는 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또 P팀장과는 ROTC 선후배 사이에, 사원시절부터 가까웠다며 친분을 과시했다.

그럼에도 K부서장의 마지막 말은 "지켜보겠다, 잘 해보자"였다. 은의씨는 부서장이 경계심을 풀었다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들이나 후배들은 '부서장이 너한테 뭐라고 한 것인데 너무 해맑게 반응했다'며 걱정했다. 기우(杞憂)가 아니었다.

"꽃무늬 청바지 입은 적 있죠?"

어느 날 K부서장이 그를 호출했다. "난 이 대리 같은 사람이랑은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네"라고 그는 간결하게 말했다. 은의씨는 당황스러웠다. 지난 13개월 동안 부서장은 그에게 일을 맡긴 적이 없었다. 은의씨의 고과와 진급은 내리막길을 치달았다. 그럼에도 그는 감내해야한다는 생각에 기다렸다.

하지만 K부서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은의씨를 내쳤다. 은의씨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본부인사팀을 만나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자신의 일을 진상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3주 뒤 '조사결과 보고서'란 파일을 들고 인사팀 L부장이 은의씨를 찾아왔다.

"꽃무늬가 그려진 청바지를 입은 적이 있죠? 지각한 적이 있죠? 주말에 부산영화제를 다녀와서 피곤한 얼굴로 출근한 적 있죠?"

그는 추궁하듯 물었다. 그리고선 성희롱 같은 일은 존재한 적도 없으며, 부서 배치 등은 일반적인 조치였다고 말했다. 또 꽃무늬 청바지를 입은 일이 대단한 잘못인 것처럼 얘기하더니 원하는 액수를 생각해 알려달라는 말만 남긴 채 회의실을 나갔다.

이후 두 달 동안 은의씨는 회사와 이메일로 지루한 공방을 벌였다. 인사팀 답변메일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당신은 무능하고, 있지도 않은 성희롱을 주장하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

은의씨는 싸움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움츠러들었다. 똑같이 P부장에게서 성희롱 피해를 당했던 퇴직 여사원은 자신이 먼저 증언을 약속했다가 돌연 연락을 끊었다. 또 다른 동료는 '나는 자존심을 지킬 힘이 없으니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는 문자를 끝으로 남이 됐다. 그사이 은의씨는 사회봉사단으로 발령이 났다.

은의씨는 첫 일주일을 회사에 보낼 내용증명을 쓰며 보냈다. 2007년 5월 1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1차례 조정 결렬을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8년 봄부터 인권위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그해 5월 마지막 주, 은의씨는 민사소송에 들어갔다.

기나긴 싸움, 첫 고지를 넘다

▲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은의씨가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그 일을 회사에 알렸다는 이유로 대기발령을 당해 업무상 불이익을 받았다며 2008년 9월 5일 삼성전기에 차별시정권고를 내렸다. 사진은 인권위가 익명처리해 공개한 이 사건의 차별시정권고 결정문. ⓒ 국가인권위원회

2008년 8월 4일, 그의 성희롱·왕따 피해를 다룬 첫 언론 보도가 나왔다. 휴가를 즐기고 있던 은의씨는 연락을 받고서야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그는 마냥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하기만 했다. 다음날 출근한 은의씨는 평소처럼 회사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선배, 사람들이 봐요."

함께 간 후배가 말했다. 은의씨 역시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눈빛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이구나' 하는 시선이라 다행스러웠다.

'별것 아니구나, 괜찮구나….'

은의씨는 그 눈빛들로부터 힘을 받았다. 수백 통의 격려 문자와 메일도 이어졌고, 사무실에 직접 전화가 걸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2008년 9월 5일, 인권위는 삼성전기에 차별시정권고를 내렸다.

"주식회사 삼성전기 대표이사에게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직원 대상 교육 및 예방을 철저히 할 것과 성희롱 사건 발생 시 철저한 조사와 피해자 보호조치 등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

회사는 인권위 권고에 불복하며 곧바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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